자칭여동생인 정체불명의 소녀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김치찌개랑 밤밥은 무지 안 어울리네.”

“응, 예상대로야.”

밤 까서 손질하느라 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언뜻 화까지 나는 반응이었지만, 애초부터 몇

 푼 아끼겠다고 깐 밤을 안 사고 그냥 밤을 사버린 내 잘못이었다. 미리 밤 가위를 사둘

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그나저나 이 혈연도 인연도 지연도 없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조른다고 김치찌개랑 계란말

이, 밤밥을 한 번에 다 해버린 나도 진짜, 이상한 인간이다. 게다가 세 음식이 다 따로 놀

고 있잖아. 음식궁합이 최악이다. 소녀의 지적도 그리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맛있어.”

“……아, 그래? 다행이네.”

뚱하니 대답했다.

“오빠는 새침데기.”

“……뭐라?”

“오빠는 새침부끄.”

“일부러 유행어로 안 바꿔도 돼!”

“그보다 새침데기하고 새침부끄하고 뭐가 다른 거야? 그냥 새침데기 쓰면 되잖아?”

“이야기가 20년 된 레코드판처럼 툭툭 튀는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문제없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당당한 거냐.”

“그보다 오빠는 20년 된 레코드판 틀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말 해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문제없어.”

대화가 뭐 이러냐.

그러면서도 이 자칭여동생인 정체불명의 소녀는 맛있다는 듯 밤밥을 아구아구 먹어치우

고 있었다. 그 덕분에 대화가 가끔씩 툭툭 끊겼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하지 않았으므로

알아서 감안할 것. 그나저나 자칭여동생인 정체불명의 소녀라고 하니 너무 길군. 어떻게

줄일 수 없을까?

“야, 자여정소.”

“응? 나 부른 거야? 자연 미녀 순정파 소녀란 뜻이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게다가 女자가 두 번 들어갔잖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기준이 뭐야?”

“오빠지, 뭐.”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자여정소는 그렇게 말했다.

“오빠가 신이잖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정신병자 같잖아.”

“………….”

“왜 이 시점에서 묵묵히 먹기에 열중하는 거냐!!”

“제갈매.”

내 비난에 자여정소는 의미불명의 세 글자 단어로 대꾸했다.

“뭐?”

“내 이름.”

“………….”

“설마 오빠한테 자기소개를 해야 할 줄은 몰랐어.”

뚱한 표정으로, 자칭 제갈매는 그런 소릴 했다. 꽤 기분이 상한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

간, 소녀는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부언했다.

“더불어 우리 남매의 별명은 제갈남매야.”

“아버지 짓이군.”

“아빠 짓이야.”

너는 제갈가의 남자이니 이름을 제갈남이라고 지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분이 바

로 우리 아버님이시다. 한 번 내 앞에서 그런 아버지를 둬서 부럽다고 해보시지! ……별

일은 안 생기지만!!

그런 아버지가 여동생의 이름을 제갈매로 지었다는 건 너무 쉽게 상상이 가서 달리 할 말

도 없다. 제갈남의 여동생이니 제갈매라고 지었겠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고패턴. 그 앞

에선 어떤 다른 상상의 여지마저도 사라지고 만다. 그저 당연, 이 한자어 두 글자로 표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표현이라는 단어도 약하군. 차라리 정의……! 저스티스가 아닌 쪽

의 정의!!

아무래도 나는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듯싶다.

“잘 먹었습니다.”

그 소리에 나는 생각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식탁이 상대적으로 깨끗해져 있었다. 주로 접시 위가.

“어?! 나는 아직 덜 먹었는데 너는 언제 계란말이까지 싹 비웠지?”

“김치찌개의 김치는 남겨뒀어.”

“어?! 내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내 돼지고기가?!”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먹는 걸 깜박한 오빠 잘못이야.”

“어?! 같이 이야기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숙련도의 차이야.”

그건 어떤 항목의 숙련도일까요? 뭘 하면 올릴 수 있죠?

“알았어, 오빠가 좋아하는 푸딩 사올 테니까 그렇게 낙담하지 마.”

“?!”

내가 푸딩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가족 그 누구도 모른다. 가족도 모르니 친구……는 없지

만 서점의 형도 모르고 담임선생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아니, 나한테 며느리가 있

을 리는 없지만……. 여하간 아무도 모른다! 어째선지 이유도 없이 조금 슬퍼졌다?! 여하

간 왜 그걸 숨기기 시작했는지, 왜 그게 부끄러운지는 여태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들키지

않았으므로 관성적으로 계속 숨기고 있다. 거의 필사적으로, 말이다.

나의 대경실색한 표정을 바라보며 소녀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어떻게 아냐고? 오빠는 푸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푸딩 심부름은 항상 나에

게 시켰기 때문이지. 오빠는 집안의 폭군. 무력한 나는 오늘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이

한 몸 보전을 위해 순순히 푸딩을 사러가는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음……, 잘 부탁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고마운 일이었다. 푸딩을 살 때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에

게도 얼굴을 익히지 않으려고 매번 새로운 편의점을 찾아 헤매던 나다. 대신 사다준다면

그것보다 고마운 일은 없다!

“그래야지.”

소녀는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 * *

시간이 저녁 8시도 절반쯤 넘어선 지금,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자칭여동생이

푸딩을 사다주고 난 다음 자진해서 설거지까지 끝내주었기 때문이다. 요리와 달리 설거

지는 잘했다. 이런 게 여동생이라면 여동생 하나 집집마다 놔뒀으면 좋겠다.

……뭐라는 거야, 나는. 방금 전까지 얻어맞고 욕먹고 노동력까지 제공했었던 주제에.

“대신 내가 라면 끓일 때는 설거지 해줘야 돼?”

“내가 여동생 손에 물을 묻히게 만들 것 같아?!”

“지금 절찬 물 묻히는 중인데…….”

“난 요리는 좋아도 설거지는 싫더라.”

“난 움직이기도 싫어. 숨쉬기도 귀찮아.”

그렇게 불퉁대면서도 설거지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게 귀엽다. 역시 내 할 일을 대신 해

주는 인간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는가보다.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내 안목.

“그래도 푸딩 하나 사줬더니 여동생 취급해주네.”

“엥?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여동생 손에 어쩌고를 입에 올린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푸딩 때

문이라니 나를 뭘로 보고…….

“너, 내가 그렇게 속물적이고 즉물적인 인간처럼 보이냐?”

“그럼?”

“설거지를 해주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건 속물적이고 즉물적인 거 아냐?”

“물건이 들어갈 여지가 없잖아.”

“아, 그러네?”

아하하하하.

“화제를 바꾸자.”

“그러도록 하자.”

옆에서 보면 사이좋은 남매처럼 보이는 분위기의 연출. 누구 보라고 연출한 거지?

자칭여동생은 고무장갑을 잡아당겨 벗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의 아빠는 어떻게 됐어?”

“이쪽의 아버지, 라니?”

“이쪽 안방에 아빠의 흔적이 아예 없어서.”

자칭여동생은 쓸쓸하게 웃었다.

“알게, 됐어. 내가 살던 세계……, 와 설정……, 이 다르다는 것을.”

띄엄띄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

“이혼했어.”

나는 담백하게 말했다. 아마 이미 예상하고 있을 테니까, 별로 시간 끌 필요는 없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칭여동생은 대경실색했다.

“아빠가 바람이라도 폈어?! 아니, 그럴 리가!”

“그래, 그럴 리는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자칭여동생은 ‘그럼 설마…….’하면서 결국 그 말을 입

밖에 내뱉고 말았다.

“그럼 엄마?!”

“그건 가능성 있지만 아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무섭다.

“그럼 빚이라도 졌어?!”

“그럼 네가 오늘 밤밥과 돼지고기 잔뜩 든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해?”

“그럼 왜?!”

눈물마저 그렁거리며, 자기 일인 것처럼 여동생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아, 방금 여동생이

라고 생각해버렸다. 여하튼 자칭여동생의 반응을 보아하니 ‘저쪽’의 우리 부모는 이혼까

지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의견차이야.”

자칭여동생이 너무 우울해하기에 나는 오히려 가벼운 기분으로 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외국에 가서 일하길 원했고, 어머니는 한국에 남아있길 원했거든. 한바탕 싸우

고,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당신 기다리지 말고

이혼하자고 말씀하셨고.”

아버지를 존경했다.

일만 아는 아버지. 하지만 그 뒷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존경스럽다고, 진심으로.

그러나 우리보다, 가족보다 일을 우선할 줄은 몰랐다.

우리를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아직 존경하지만.

“그리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군.”

“잘 아네?”

“엄마 성격이 성격이니까.”

지기 싫어하고, 자기애 강하고, 무엇보다 아버지보다 나를 우선시했기에.

그렇게 됐다.

“그쪽의 아버지는 일보다 우릴 택했나보네?”

나는 기분전환이라도 하듯, 가벼운 목소리로 자칭여동생에게 말했다. 여동생은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혼까지는 안 했지만……, 떠났어.”

“떠났어? 어딜?”

”신대륙을 찾아서…….”

뭐?! 얘가 방금 뭐라고 그랬지?

“신대륙?!”

“꼭 있을 거라고…….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답지…….”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

“……나 소설 속에 그런 설정 넣은 적 없는데…….”

“응? 그럼 그것도 빠져나왔겠네.”

소녀는 조금쯤 유쾌해진 듯, 약간은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헛소리……, 그것도 무서운 헛소리 하지 마.”

“아하하하.”

내 반응이 재밌었던 듯, 소녀는 소릴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나는 조금 안심했다. 왜

피도 안 섞이고 가족도 아닌 타인이 눈물을 그친 것에 안심해야 하는지 이유는 절대 모르

겠지만.

“아~아! 너랑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도 없다! TV나 봐야겠다!!”

나는 어째선지 조금 부끄러워져서 이 미묘한 기분을 날려버리기 위해 일부러 큰 목소리

로 그렇게 말하고는, TV를 켰다.

TV에서는 마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우와, 그럼 9시야?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약 3초간 정도였다.

[오늘은 놀라운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태평양에서 신대륙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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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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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아닙니다. 아, 크툴루도 아닙니다.

실버였습니다.

사족 : 아닛, 자동줄바꿈 옵션이 어딜 갔지?;; 수동엔터엔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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