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받은 암살자(가칭)은 다시 잠들어버렸다. 아니, 그 전에는 기절한 거였으니 조금 성격이 다른가. 아무렴 어때.

“아버지의 정신공격과 스승님의 직접공격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최면이 풀린 이유를 제갈랑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야 하필이면 머리를 핀 포인트로, 야구 방망이로 피가 날 정도로 후려쳤으니…….”

“네 정신공격이 효과적이었다잖아. 대체 무슨 소릴 하였기에…….”

어째선지 우리는 그렇게 공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네 덕분이야. 아니아니, 네 덕분이지. 그렇게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 제갈남의 자택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겨우 10대 초반의 여자애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군.”

“그러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우리의 논란은 결국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러나 곧 태클이 걸려왔다.

“용서하지 못하면 어쩔 건데?”

매였다.

“확실히 뭔가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용서는 하지 않겠어!!”

“그게 뭐야~!!”

김유신이 깔깔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너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한 주제에!

“아니, 너는 할 수 있어.”

웃음을 간신히 그친 김유신이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라고. 그들이 왜 너를 죽이려고 했을까? 그것도 직접 손을 쓰지는 않고, 10대 초반의 소녀를 잡아다가 세뇌까지 시키면서.”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다.

동기.

그것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암살자(가칭)는 이 시대의 인간이다. 제갈랑의 증언이다. 그러니 그녀는 세뇌된 상태로 현 시대에 보내져 온 미래인이 아니라, 이 시대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세뇌된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범인이 미래인이다, 아니다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신대륙이 동기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겠지.”

김유신은 나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신대륙을 없애버리는 게 그들에 대한 벌이 될 수 있겠군.”

“바로 그거야!!”

김유신은 나의 말에 무릎을 치며 웃었다.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닐까?”

“더 이상 복잡하게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할 건데? 아니, 그보다. 만약 더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고 해도 어차피 나나 너나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

“그건 그렇군.”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에 들어가 노트를 꺼냈다. 다름 아닌 『나는 여동생을 좋아한다』 원전. 여동생이 안 나오는 버전이다.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신대륙』

“자아, 적었다.”

“엥? 그렇게 적는 것뿐이야? 뭔가 내용을 덧붙이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따라 들어온 여동생이 노트 내용을 들여다보더니 어딘가 조금 맥 빠진 얼굴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걸로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시험해보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노트를 덮었다.

“………….”

“………….”

침묵.

침묵.

그리고 침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군.”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네.”

“그럼 실패한 건가…….”

“그 봐, 역시 내용에 제대로 포함을 시켜야…….”

그 때.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버지! 고모!!”

제갈랑이었다.

“고모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매는 그렇게 태클을 걸었다. 그게 중요하냐, 지금?

“무슨 일이야?”

나는 제갈랑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라? 이 녀석 조금 인상이 달라진 것 같은데……. 뭐가 달라진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다름 아닌 제갈랑 자신의 입으로 인해.

“저, 가슴이 커졌어요!!”

원래 아예 절벽이었던 제갈랑의 가슴은 어느새 나이에 걸맞는……. 아니, 조금. 아니, 많이 넘칠 정도의 크기까지 커져 있었다. 사람의 인상마저 달라질 정도로. 게다가 속옷을 착용하지 않은 지라……. 그만두자.

“아, 그러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 나는 그렇게 담백하게 대꾸했다.

침묵.

침묵.

그리고 침묵.

“그래서?”

“아니, 그……. 그렇다구요.”

“흐응.”

제갈매의 별 흥미 없는 것 같은 반응에 제갈랑은 의기소침해했다. 하지만 이 오빠는 보았단다. 제갈랑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자기 가슴을 슬쩍 만져보는 제갈매의 모습을. 그리고 전혀 변화가 없는 자신의 가슴에 대한 실망감도 언뜻 그 얼굴에 나타났다!!

“오빠?”

“응?”

“지금 무슨 생각해?”

“아무 것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목숨이 아까우면 이실직고를 할 리가…….

“이야아아아아압!!”

“어째서어어어어?!”

뭐 그렇게 사이좋은 가족을 연출하고 있는 한 편.

“제갈남! 제갈남!!”

밖에서 갑자기 내 이름을 연호하는 고등학생 한 마리.

“TV 좀 봐!!”

“TV?”

여동생이 앵클 락을 풀어주어서 거실까지 간신히 기어갈 수 있었던 나는, 김유신이 튼 건지 어느새 on 상태가 된 TV 화면을 보았다. TV에서는 긴급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긴급속보입니다. 신대륙, 가칭 천지대륙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아나운서 아저씨도 굉장히 흥분한 기색이었다. 흥분이랄까, 당혹하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이변? 무슨 이변?”

“아직 안 나왔어!!”

어째선지 조금 화난 말투로 김유신이 말했다. 화났달까, 흥분한 목소리처럼도 들렸지만.

[직접 화면으로 보시죠. 현장에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이시민 기자?! 이시민 기자!!]

아나운서 아저씨의 말투도 화난 것처럼 들렸다. 바로 연결이 안 되니 매우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 여기 현장에 이시민 기자 나와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리는 장면은 편집된 것이나 CG가 아닙니다! 바로 생방송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현장의 기자는 그렇게 뜸을 들였다. 헬리콥터 안인지, 주변이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프로는 프로인지 기자의 말은 똑바로 잘 들렸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사라진 거야?! 남, 너 뭔가 썼냐?!”

김유신의 물음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트에 『신대륙』이라고만 썼는데…….”

“사라졌나보다!!”

여동생이 역력히 흥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흥분은 다음 순간, 그대로 식어버리고 말았다.

원인은 다름 아닌 TV화면에서 비친 영상 때문이었다.

[보이십니까? 여러분. 이것은 꿈이나 소설이 아닌 현실입니다. 지질학자들이 존재할 리 없다고 한 신대륙은 정말로 존재할 리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미리 준비 된 대본도 없는지, 횡설수설하는 기자의 말은 굉장히 산만했지만 그를 절대 비난할 수는 없었다.

떠올라 있었다.

뭐가?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부유섬, 라퓨타 같지 않습니까?! 저것이 본래 천지대륙이었지만, 방금 전의 지진 후에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해서 지금은 헬기보다도 높은 고도까지 부유하고 있습니다!]

신대륙이.

아니, 그것은 더 이상 신대륙이 아니었다.

[저는 원래 시민 여러분께 천지대륙이 점점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취재차 나와 있었는데요, 지금은 원래 천지대륙은 더 이상 떠오르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 발견된 섬 부분만이 분리되어 부유섬이 되고, 나머지 부분은 바다에 잠긴 채입니다. 아, 네, 시민 여러분께 아쉬운 말씀 전해드립니다. 저희 대한민국의 영토가 될 수도 있었던 신대륙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보십시오, 저 부유섬이 우리나라 제갈천지 박사가 발견한 원래 천지대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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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대단하다.”

“내가 아니야!!”

* * *

상황을 정리하자면.

부유도가 된 천지대륙은 대륙이라는 명칭을 잃고 천지부도, 영어명칭으로는 chun-ji floating island로 바뀌었다. 천지부도라니 사회과부도 같잖아……. 꼴같잖은 현실도피 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신대륙이 없어지긴 했네.”

자기 가설이 맞아든 것이 기쁜 듯, 김유신은 대단히 밝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신대륙이 없어진 것까지는 좋다. 그래, 좋다. 좋은데…….

“대신 이상한 게 생겼잖아…….”

“천지부도 말야? 그러고 보니 저 사람 너희 아버지라며?”

제갈천지씨는 다시 TV 화면에 등장해서 흥분한 표정으로 뭔가를 떠들고 있었다. 중요한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절대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저런 대단한 섬을 발견하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너는 다 알면서도 그런 소릴…….”

내가 김유신을 째려보며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쯤, TV화면에 몰두하고 있던 제갈랑이 돌아보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저 분이 제 할아버지인가요? 우와, 젊네요! 아버지도 동안이고 귀여운 얼굴이지만 할아버지는 한 술 더 뜨네요?!”

“시끄.”

매는 짧게 태클을 걸었고, 랑은 “죄송합니다.”라고 조그맣게 말하며 수그러들었다. 저게 19살과 14살이 나눌 대화인가? 적어도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순조로운 현실도피도 긴급뉴스가 마칠 시간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TV를 끄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노트에 세 글자 적었을 뿐이라구.”

“잉? 뭐라고?”

내 혼잣말을 들은 김유신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래서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신대륙.”

“푸핫!”

빵 터져서 웃기 시작한 김유신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도 반대였다면 웃었을 테니까. 아니, 칼 맞아 죽기 전에 그만뒀을라나.

“진짜……, 저 노트에 아무 거나 적으면 안 되겠군. 점점 일이 커지는 느낌이야.”

“그러게. 그러니까 내 이름 적지 마?”

매가 끼어들어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아, 그 방법이 있……!? 실언이야! 아니, 농담이야?!”

“이야아아아아압!!”

이번 기술은 라쏘 프롬 엘 파소. 지금은 고인이 된 비바 라 라싸, 에디 게레로의 필살 서브미션 기술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자랑스러운 내 여동생이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로프를 찾아 헤매며 바닥을 기고 있을 무렵.

“제 가슴이 커진 원인을 알았어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제갈랑이 갑자기 그렇게 선언했다. 아니, 어쩌면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라쏘 프롬 엘 파소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날 바라보며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 그래? 뭔데?”

매가 랑의 말을 받았다. 내게 건 기술을 풀어주면서. 만세!! 나는 바닥에서 몸을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뼈와 근육의 고통을 분산시켰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데도, 묘하게 랑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자 랑은 기뻐하며 빠른 목소리로 설명했다.

“제 가슴은 원래 전쟁 통에 방사능 오염 때문에 유방암에 걸려서 전부 절제했었거든요.”

쓸데없이 묵직한 에피소드가 갑자기 밝혀졌다?!

“그런데 제 가슴이 다시 재생됐다는 건 제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던 과거, 지금 기준으로는 미래가 삭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어……? 아……, 응.”

묵직한 과거를 털어놓고도 지나치게 기뻐하는 제갈랑의 모습에, 나는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해하면서도 일단 대꾸는 했다. 나의 당혹에 답답해하면서, 랑은 딱 잘라 선언했다.

“그러니까 핵전쟁은 취소된 거예요!”

그렇게.

“아버지 덕분에 임무성공! 이야아,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제가 실패하더라도 그저 아버지와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는데, 이렇게 임무마저 성공리에 마칠 수 있게 되다니! 아버지, 정말 기뻐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 정말로!!”

내게 답싹 안기며, 랑은 말했다.

“아, 어어. 응.”

아직 사태를 제대로 다 소화하지 못한 나는 그냥 멍하니 대꾸하며 제갈랑의 머리를 대충대충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와 랑의 모습을 어딘가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매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런데 그러면 제갈랑은 ‘원래 이 시대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전쟁을 막기 위해 온 거라며? 왜 아직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할 정도로 기분이 상한 거냐!? 아니, 대체 왜?! 아아, 알았다. 오빠, 알았다. 가슴 때문이로구나!! 가슴이 커진 랑을 질투하는 거로구나?!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매의 시선이 살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랑은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말했다.

“저도 몰라요!”

“아, 그래…….”

여동생은 독기가 빠진 듯 한숨마저 내쉬며 휘적휘적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큰 가슴을 갖고 싶은 걸까? 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내 표정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김유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 커진 딸 껴안고 있으니까 그렇게 기분이 좋냐?”

엥?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까지 어째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거야?”

김유신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니 진짜 무서웠다. 아니 어째서 갑자기 왜?! 물론 랑의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기분이 좋긴 했지만 딸한테 발정할 정도로 이 제갈남,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해결됐으니 다행이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김유신은 자기 룩쌕을 메고 거친 발걸음으로 나가버렸다.

…………으음. 불가사의한지고.

“……둘만 남았네요. 아버지.”

“벗지 마!!”

* * *

월요일.

아침에 나는 여동생의 방에서 일어났고, 제갈랑은 내 침대에 침입해 있었으며 제갈매는 그런 제갈랑에게 들러붙어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학교에 왔다.

수학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갈구고, 어째선지 잔뜩 화가 난 채인 김유신은 거의 나를 못 본 척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방과 후.

나는 문예부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에 [방과 후에 부실로]라는 문자가 오는 통에, 학교에 이걸 들고 온 게 들키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물론 이걸 준 건 담임이고, 지금 와서 휴대폰 반입을 대놓고 금지하는 교사도 드물기야 하지만 말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부실에 도착했다.

노크를 세 번.

“들어와!” 라는 대답.

나는 문을 열었다.

“뵙고 싶었어요, 선생님.”

“부실에선 반말하라니까.”

“응. ……하지만 그 전에 말씀드릴 게.”

나는 말했다.

무엇을?

그야 전부를.

17세인 후아유가 내게 연애감정 비슷한 걸 품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다. 아무리 둔한들, 그리고 둔한 척을 한다 한들 모른다고 말한다는 건 그저 거짓말일 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내 탓이며 환상에 불과하다.

모르는 척을 하고 그냥 넘어가는 건 간단하다. 물론 그녀의 마음에 응하는 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응하지 않는 건 그럭저럭 쉬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은인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의 은인. 나를 학교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고, 내가 학생인 채 남아있을 수 있게 해준 분이 바로 나의 은사, 후아유 선생님이다.

나의 예기치 않은 능력? 그것을 능력으로 칭해야 할지는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여하간 내 탓에 친구와 지위, 그 외에 쌓아올린 대부분의 것을 잃어버려야 했던 그녀에게는 역시 모든 것을 말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용서받을 수 있다면, 용서받고 싶었다.

이기심인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모든 것을 밝히는 것, 그것만은 해두고 싶었다.

전부 다 듣고, 그녀는 말했다.

“큰일 치렀구나. 잘했다.”

그 예상 불가능했던 반응에, 나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네?!”

“반말 하라니까.”

“엥?!”

머리가 아팠다. 뭔가 내가 빼놓고 안 한 말이 있나?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결국 모르겠어서 나는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아니, 저기. 그러니까 후아유 선생님은 원래 40대 후반으로 대단한 경력을 쌓으신 분인데 제가 그걸 전부 날려버렸다니까요? 화 안 내요?”

“반 말 해 !!”

화를 냈다. 응, 완전 예상범위 바깥의 방향으로.

“으, 응.”

내가 당혹감에 젖은 채 다시 소파에 앉자, 후아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걸 나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결국 나한테 가장 마지막에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 화를 내야 할 것 같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아니, 사실은 아직 어머니한테도 말은 안 했는데…….”

“아무튼.”

“네. 아니, 응.”

네, 라고 발음한 순간 후아유의 시선에 아예 살의마저 깃들었기 때문에 나는 급히 내 발언에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유신처럼 내게도 ‘변혁되기 전’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어. 40대 후반의 노처녀에, 어머니 아버지는 전부 돌아가시고, 집에서는 물론 혼자, 교무실에서도 언제나 혼자였지. 분명히 천재이기는 했지만 너무나 이단적인 연구결과를 내놓는 바람에 연구실에서 쫓겨나, 학계에서도 퇴출 된 과거도 있고.”

“………….”

그것은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은사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과거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연구실로 복귀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내 연구결과를 굽힐 마음은 없어. 그러니 그 인생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인생이라는 소신에 변함은 없어. 다시 태어나도 같은 인생을 살 테지. 실제로 지금 이 상태에서도 나는 같은 연구결과를 내고 연구실에서 쫓겨나 교사가 된 상태야. 변함은 없어. 뭐 시기가 10년 정도 빨라졌다는 차이는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19년 산 애송이가 인생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물론 상대의 외모는 17세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꿈’ 속에는 40년 이상의 경험이 녹아있다.

“그러니 네가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아니, 오히려 나는 네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적어도 이 인생,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는 있을 테니까.”

겨, 결혼이라든지!?

그런 묵직한 단어를 기습적으로 내뱉지 말아줬으면 한다. 제발 부탁이니까!

“하지만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군.”

“그게 뭐죠? 아니, 뭐지?”

내가 묻자, 후아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히 선언했다.

“바로 내가 널 조, 좋아한다는 착각 말이다! 이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의식과잉에 빠진  변태가! 그딴 걸로 사과하지 마! 암살해버린다!?”

“…………………………………………………할 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것치고 후아유는 꽤 말을 더듬는데다 얼굴은 새빨갛고 손가락 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굳이 못 본 척 했다. 알아도 모르는 거다.

“응, 그럼 됐지? 그러니 이제 전처럼 대해. 전처럼이랄까, 토, 토요일 때처럼!”

“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와 이 소설, 『나는 여동생을 좋아한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실제로는 문제가 더 늘어난 것처럼도 느껴지지만 그건 일부러라도 무시하자. 뭘 어떻게 하려고 소설에다 단어를 몇 개 더 추가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다.

당장 집에 돌아가면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내 딸과 여동생, 그리고 기억을 잃은 암살자가 있겠지. 거시적으로는 이 세계에 부유도가 하늘 위를 떠다니고 있을 거다. 내 원래의 일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상한 세계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아무튼 이상한 일상이라도 일상은 일상.

적어도 지금은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1권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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