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야아아아아압!!”

묘사 생략.

“아아, 손님이 계셨네. 죄송해요. 못 보일 꼴을 보여드려서…….”

제갈매는 이제 와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김유신은 웃으면서 맞받았다.

“아니, 나는 괜찮아. 이걸로 두 번째 만나는 건가? 제갈남의 여동생.”

“네, 안녕하세요? 제갈남의 여동생인 제갈여동생이랍니다!”

“굳이 한자를 풀어서 설명할 것까진 없었잖아…….”

안 그래도 이상한 이름인데. 아마 내 탓이겠지만. 전신의 뼈, 특히 등골이 저릿저릿하지만 그 고통을 참아가며 태클을 거는 나의 이 숭고한 행위는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하리라. ……나는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양 눈동자가 새빨갛게 충혈 된 여동생의 꼴은 확실히 못 볼꼴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녀석, 울었나…….  

“랑! 이제 괜찮아!!”

“아, 넵!!”

김유신의 부름에 따라 허공에서 제갈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1초 후, 암살자를 업은 제갈랑의 모습이 현관에 나타났다.

“왓?!”

제갈매의 놀라는 소리는 나를 조금쯤 유쾌하게 했다. 하지만 제갈매의 시련은 아직도 남아있었으니…….

“안녕하세요, 고모!!”

“WHAT?!”

자기보다 현격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한테 그런 소릴 들으면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한다. 하지만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나을 게 틀림없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는데…….”

“해!”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김유신에게 설명할 때처럼 장황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제갈매는 애초부터 이 이변의 구심점인 거나 마찬가지라 상황 자체는 거의 다 알고 있었으므로, 나와 헤어진 뒤의 이야기만 조금 하면 되었다.

물론 미연 누나와의 해프닝은 말하지 않았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째선지 나의 생존본능은 말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언니가 나를 고모라고 부른 거구나.”

“언니라고 하지 마세요! 조카라고 하세요, 고모!!”

의외로 미래인 설정을 담백하게 받아들인 제갈매는 제갈랑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는 무시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왜 나를 버리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설명 안 했어.”

“그건…….”

나는 여동생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제갈매는 내 머리통을 양손으로 붙잡아 고정시키고 결국 눈을 마주치게 하고 말았다.

“미, 미안…….”

“사과가 아니라 설명을 해!”

빠악!

“우오아아악?!”

“꺄아으으윽!!”

자기 분을 못 이겨 박치기를 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결국 너도 바닥을 나뒹굴 거면서 어째서 이런 짓을…….

“아버지!? 고모!? 괜찮아요?! 약 발라드릴까요?”

“바르면 여자가 되는 약 따위 필요 없어!!”

나는 놀란 제갈랑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고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재밌는 남매네.”

김유신의 감상평을 뒤로 하고,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크흠.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집에 오자마자 백 브레이커를 당한 것 같지만 그건 별개로 치고.

“너를 두고 간 이유는……, 단순히 네가 죽는 꼴을 내가 눈앞에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오빠가 죽는 꼴을 상상하는 내 꼴이 되어나 보고 말하지 그래!”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있는 이유는 과연 박치기가 아팠기 때문뿐일까?

“아아, 그래……. 알면서도 그랬지. 미안. 나 밖에 몰라서.”

“이야아아아아압!”

우지끈.

이번에 시전 된 기술은 넥 브레이커였습니다. 으아아아악!?

“이 바보! 두 번 다시 그랬다간 봐라!! 목을 부러뜨려 버릴 테니까!!”

“너, 너, 너, 지금 건 기술이 그 기술이야!!”

5분 후.

“그래서 이게 『나는 여동생을 좋아한다』2권입니다.”

들고 있던 암살자의 가방을 열어서 나는 책을 보여주었다.

“2권도 누드 표지네. 오빠도 차암.”

제갈매가 말한 것처럼, 2권 표지도 1권처럼 소녀의 알몸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표지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 마!!”

“아무튼 이것도 읽어볼까? 제목, 나는 여동생을 좋아한다. 작자 제갈남.”

“그만 해…….”

똑같은 개그를 몇 번이나 읽어야 하는 독자 입장에서라도 생각해보라고! ……라는 소설적인 발상을 하는 나는 천성이 소설가일지도 모른다. 헛소릴 해서 죄송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뻔했다. 암살자와 조우한 나……, 아니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제갈남과 그의 친구 김유신은 암살자를 죽이고 원수를 갚는다. 이 과정에서 암살자가 제갈매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다뤄지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살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일상으로 그대로 복귀하지만 ‘그래도 내 곁에는 여동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허함을 지울 수는 없구나.’라는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나 마지막까지 안 살아나네.”

“어째서 살아난다는 발상을 할 수가 있지?”

“소설이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납득할 뻔 했잖아.”

그렇게 대꾸하면서 “아아, 그러고 보니.” 라고 말을 이었다.

“이 책에 대한 참신한 의견이 들어왔습니다.”

“참신한 의견?”

“이 책의 작자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제보가.”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김유신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뭐, 그 책을 지은 이는 이름은 제갈남일지도 몰라도 소설 속의 제갈남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 그 이유는 단순,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야.”

그 말에 제갈매는 그 자리에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말했어?”

“응. 말했잖아,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 안 할 수가 없었어.”

버터플라이 나이프가 무서워서, 라는 술어는 굳이 붙일 필요가 없어보였다. 그렇다기보다 붙이면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았다.

노파심에서 부언해두자면 물론 여기서 말한 것은 제갈매가 소설 속의 인물이라는 명제.

그럭저럭 머리가 좋은 여동생은 김유신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을 파악해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 나와 있는데도 이 소설 속에 제가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가짜다, 맞아요?”

“그래. 이해력이 빠르군. 제갈남은 느린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소릴 굳이 덧붙이는 이유가 뭐냐.

“그러고 보니 아직 손님 분들께 차를 대접하지 않았군요.”

제갈매는 갑자기 일어서면서 그렇게 말했다.

“저는 손님이 아니라 조카딸이에요, 고모.”

“차를 대접하도록 하지요.”

제갈랑의 목소리는 또 한 번 무시당했다. 심정은 이해한다만 제갈랑의 심정도 좀 이해해줬으면 했다. 물론 내 목숨이 중요하므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네 여동생 원래 저렇게 까칠하냐?”

매가 차를 타러 간 틈을 타 김유신이 내게 속삭였다.

“응.”

나는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김유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보야. 네 여동생 악담을 하는데 긍정하면 어떻게 하냐?”

“사실인걸.”

게다가 네 말에 반대하다 괜히 죽고 싶지도 않고.

“아, 깨어났네요.”

김유신과 속닥거리다가 갑자기 들린 제갈랑의 목소리. 덕분에 그 의미를 잠깐 파악할 수가 없었다.

“랑아, 말을 할 때는 주어를 꼭 붙이도록 하거라.”

“네, 아버지. 암살자가 깨어났어요.”

주어가 붙었더니 더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건 그저 현실도피일 뿐이다.

“손님이 한 명 늘었네.”

여동생이 말했다.

“차를 한 잔 더 탈까?”

매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살기 때문에, 나는 좀처럼 그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코에다 녹차를 들이부어 버릴 것만 같은 위협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필요 없어.”

나는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썼다. 그것만이 암살자를 위한 최대한의 동정이자 배려였다.

“자아, 그럼 심문을 시작해볼까.”

굉장히 즐거운 목소리로 김유신이 말했다. 눈을 뜨자마자 암살자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서렸다.

……아니, 역시 이상해.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위화감이 느껴진다. 노을공원에서도 한 번 느꼈던 거지만, 지금의 암살자에게는 암살자다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었던 눈동자. 광기와 살의가 처연하게 물든 그 눈동자의 빛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다.

“저기, 너는…….”

암살자가 맞아?

그렇게 묻기 전에.

“다, 당신들은 누구예요! 무슨 권리가 있어서 저를……! 이렇게!!”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눈동자. 피해자의 눈동자.

“이봐, 이봐. 이미 이야기는 다 들었다구. 암살자양.”

사디스틱한 빛을 띤 목소리로 김유신이 말했다. 암살자의 목구멍에서 히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암살자라니……. 그게 누구예요?! 전 아니라구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이제는 빌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다른 소릴 해도 소용없어……. 자아,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보실까?”

“저는 아무 것도 모른다구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이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갔다가는 경찰서에서 사이좋게 얼굴을 맞볼 가능성이 충분해보였다.

“아, 그 여자가 말하는 건 사실일 거예요.”

갑자기 제갈랑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렇게 되물은 것은 김유신이었다.

“그 여자를 업고 있는 사이에 사실은 이곳저곳 조사해봤는데,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가 아니었어요. 인간이 훈련으로 낼 수 있는 힘은 한정되어 있고…….”

“결론부터 말해.”

“아, 네. 스승님. 그 여자는 최면에 걸려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면?”

“네. 그것도 단순한 최면술이 아니라 약물과 전극을 동원한 본격적인 최면에요.”

아니면 그런 힘을 낼 수 없죠. 그렇게 제갈랑은 덧붙였다.

“저 여자 근육 여기저기에 파열이 생겨있었어요. 신체가 한계를 넘긴 탓이죠. 원래대로라면 본능적으로 통제해야 할 한계를 최면으로 돌파하게 만들어뒀으니……. 근육이 다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내서 몸 전체가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저도 그 정도의 힘을 내면 치료를 필요로 하는 걸요, 라는 제갈랑의 증언이다.

“아마 풀어줘도 아무 것도 못할 거예요. 저를 믿고 한 번 풀어줘 보세요.”

“흐응?”

김유신은 일단 믿기로 결정한 건지,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꺼냈다. 그러자 암살자(가 아니라고?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지?)는 공포에 질려서 꿈틀대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그 움직임에는 힘이 느껴지질 않았다.

양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묶고 있던 케이블 타이를 끊자, 암살자(임시)는 일어나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대로 서지도 못하고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각대로군요. 다행이다.”

제갈랑의 혼잣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다행이다라니……, 확신이 없었던 거냐?”

나의 물음에도 제갈랑은 별로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은 채 평범하게 대꾸했다.

“확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란 게 있잖아요. 전장이란 그런 곳이니.”

전장이라. 가보지 못한 내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군.

“저 정도 기술의 최면이라면 아마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를 겁니다. 오히려 최면에 걸리기 전의 기억조차 상실되지 않았을까 우려되는군요. 후유증이 담뿍 남는 최악의 최면술이니까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피해자.

제갈랑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암살자(임시)에게 다가가 시선을 맞추며 되도록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일단은 신체적인 부분은 제가 케어 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 부분은 미안하지만 자력으로 어떻게든 해주세요. 저희들이 당신을 해친 것이 아니니 책임소재는 분명히 해주시구요. 쓸데없이 원망하지 말아주세요.”

상냥한 목소리와는 다른 냉혹한, 현실적인 대사였다. 하지만 그녀를 책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오히려 내가 해야 하는 말을 대신 해준다는 점에서 감사마저 해야 할 터다.

“고모, 침대 써도 되요?”

“고모라고 안 부른다면.”

“그럼 뭐라고 부르죠?”

“매라고 부르세……, 불러.”

“아이 참, 저한텐 여동생이 없는데.”

그런 매와 랑의 대사를 곁귀로 들으며, 나는 암살자(임시)를 바라보았다. 그런가, 내 캐릭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최면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결국 아무 것도 못 알아낸 셈인가…….”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김유신의 말에 나는 대꾸했다.

그렇다. 그녀가 최면에 당했다는 말은…….

그녀에게 최면을 건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그야말로.

진짜 적.

* * * * *

세월 빠르네요. 이렇게 텀 두고 연재할 생각은 없었는데...

실버였습니다.

 

 

 

***** 레이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2-22 11:46)

 

 

 

***** 레이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 +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13-02-22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