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이 없이 헛도는 사랑은

치사량에 이르지 못한 독과 같아서

내 심장을 녹슬게 한다

 

캬, 누군지 몰라도 이 글을 썼던 사람은 존잘러임이 틀림없습니다. 

 

제대로 된 연애는커녕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흐리멍텅하던 중학생 꼬꼬마는 '애증'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는 알지언정 그게 어떤 감정인지 가슴 깊이 이해하진 못했으니까요. 

 

그런 미지의 영역을 추악하고도 달콤한 서사의 연속에서 알려준게 디모나였죠. 아이러니하게도 10년이 지난 지금, 홍정훈님은 현실세계에서도 애증이란 단어의 뜻을 저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인이 저를 비롯한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는 형태로 말이죠. 


치사량에 미치지 못하는 독처럼 매력적이었던, 그래서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까지 우리를 과거에 속박하는 남자 홍정훈님의 신작들입니다. 용신의 게임은 연재중이고, 드림, 낙인은 이미 완결을 친것들이죠 

 

사실 용신의 게임도 연재한지가 꽤 됐는데 이제껏 문피아만 보고 살다가 우연히 카카페 광고보고 가서 드림사이드-낙인-용신까지 다 봐버렸네요. 각각 따로 리뷰글 하나하나 올리는건 좀 오바같고, 절충안으로 연재중인 용신의 게임 위주로 감상평 좀 쓰겠습니다 

 

아마 커그에 올라오는 다른 홍정훈님 글 리뷰가 그러하듯이 즐거웠던 그 시절을 함께했던 전작들도 줄줄이 언급될거 같습니다. 창작에도 때와 에너지라는 자원이 분명히 있다는걸 이해함에도 요즘 쓴 글들의 퀄리티에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이성적으로 생각했을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듯, 홍정훈님이 더 많은 가능성과 더 나은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선,

 

그리고 작가의 창작능력을 과거의 굴레에 속박하지 않기 위해선 전작을 놔줘야하겠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요즘 필력이 전성기 시절과 다를바 없다한들 팬들의 후속작 타령은 멈추지 않았겠지만 그건 아마 다른 방향에서의 후속작 타령이었겠죠. 

 

"와 저 필력으로 아키블레이드 2부를 쓰면 어떨까?", "카이레스는 과연 디모나를 다시 찾아내는데 성공했을까?" 이런 느낌으로요. 

 

반면 지금 후속작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 즐기는자 모드였던 홍정훈님의 향기를 그리워하기에 후속작 얘기를 계속하는게 아닌가 사료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 근본적인 문제로는 서사를 떠나 신작의 세계관들 자체에 매력과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솔직히 서사는 더 로그가 좋아도 세계관뽕차는건 타이세라였거든요. 

 

그런바 후속작에 대한 아쉬움은 신작들의 세계관이 매력없음...에서 오는게 적잖아 있어요. 

 

다만 개인적으론 홍정훈님의 작가로서의 발전을 위해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아키와 더로그등은 미완으로 남았으면 바랍니다. 

 

더 로그가 씁쓸하고 달콤한 여운을 남기고 우리사이에서 회자되는건 카이레스가 디모나를 찾아내는 장면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을테니까요. 

 

모든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상상할 여지를 남겨줬기에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진 거지요 

 

사실 이런 생각은 창월야랑 광월야를 보고나서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광월야 완결을 보고나니 역시 한세건은 채월야 7권에서 스스로의 순수를 증명한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위해 햇빛아래서 타협 없이 타죽어야 했고, 실베스테르가 눈물 흘리는 흡혈귀를 찾는 여정 또한 답 없는 구도로서 남는쪽이 아름다웠을거란 생각이 끊이질 않더군요. 이 부분은 적어도 후속작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느끼는 감상입니다. 

 

서론이 길었고... 이 아래부턴 본격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드림사이드 


솔직히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습니다. 홍정훈님 글중에 유일하게 읽다 하차한 글이네요. 


차사장이 차례마트에 정육점 차려놓은 부분까지 텍스트중독자 종특인 관성으로 보다가 픽하고 식어버렸네요. 아직 결제한 이용권도 남아있는데 마저볼 생각도 안 들어요. 


초반부는 그래도 기본필력탓에 재밌습니다. 

 

그 시점은 스토리보단 오히려 카카페 댓글들이 발암이더라고요. 

 

나도 내 인생에서 매 순간마다 최선은커녕 차선의 선택도 제대로 고르지 못해서 안이한 루트로 빠져버리는 일이 허다한데, 나보다 좀 나은 놈이라한들 같은 인간인 소설주인공이 매 순간순간 최대이익 보고 꿀빠는 선택지를 안 고른다고​ 비분강개할 깜냥은 못 되먹으니까요. 

 

물론 대리만족 포르노로 전락한 장르소설판에서 먹히는놈은 중국 신선무협 스타일의 x나게 이기적이고 후안무치한 마인드가 패시브로 탑재된 놈들이란걸 생각했을때 댓글들의 심정이 이해는 갑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의 나이브한 판단들이 딱히 주인공을 더 인간적으로 공감가게 하거나 매력적으로 만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리뷰를 쓰는 지금 권혁, 차이혜, 홍유리 이런 이름은 다 기억나는데 주인공 이름만큼은 한참을 생각해도 기억 안 날 정도거든요. 


그래도 서사를 견인하는 기본 필력 자체는 죽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한해서는요. 좀비와 흑마술로 멸망한 세계, 주인공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반혼인은 그렇다면 누구인가? 라는 궁금증이 매력없는 주인공을 커버해주며 어느정도 이야기를 끌고갑니다만.... 그게 중반으로 갈수록 무너져내립니다. 


어느 순간부터 7년후의 세계가 얼마나 긴박한들 긴장감이 전해지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이제는 참신하다고 말하기 힘든 소재인 과거변경의 근본적인 문제가 마음에 걸려 몰입이 안 됐습니다. 


영화로는 나비효과, 같은 장르소설에선 그림자자국처럼 익숙한 작품들이 이미 과거의 작은 변화가 불러 일으키는 파문의 여파에 대해서 설명하니까요. 


작가가 초등학생도 아니니 아마 드림사이드라는 제목, 남화진인 (글쓰는중에 생각났는데 주인공 이름 남화진이었네요), 호접지몽등 미리 뿌려둔 장치를 엮어서 "당연하지만 이건 과거-현실을 진짜 오가는 메커니즘이 아니었음. 내가 바본줄암?" 이럴거같긴 한데, 그걸 확인할 마음마저 들지 않을만큼 중반부에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그냥 반혼인이 누군지도, 홍유리의 운명마저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캐치하지 못한건지 홍정훈님 작품이라면 꼭 등장하곤하던 주제의식도 찾아보지 못했네요. 


다같이 히힛 대리만족 포르노 발싸! 하는 와중에 한줄기 메시지라도 독자에게 전할 수 있으면 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주제의식이 확고한 홍정훈류를 좋아했는데 드림사이드는 그 아이덴티티마저 흐려진것 같아서 읽는내내 슬펐습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아픔과 갈급함은 치사량에 이르지 못하는 독과 같다고 했는데, 드림사이드를 읽고나니 한술 더 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집창촌에서 재회한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드림사이드는 이 이상 얘기해봐야 생산적인 얘기는 안 나올거 같네요. 



2. 낙인의 플레인워커 


드림사이드를 읽다말고 이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드림사이드 때문에 떨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맘 잡고 쓰신건가. 


재밌었습니다. 술술 잘 읽히더라고요. 홍정훈님의 작가로서의 장점은 역시 주인공의 강함이 어중간한 수준일때 맥시멈이 되는것 같습니다. 


한 호흡으로 읽어서 그런지 앞뒤가 안 맞는 파트도 눈에 띄지만 까짓거, 카카페 연재시스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가 다이내믹하지 않고 플랫한 인간상이니 뭐니하는 얘기도 있던데 그리 공감가진 않더군요. 


충분히 이해할만한 여지를 주는 이야기였고,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서 다른 비평글들을 보기까진 오히려 단점들이 크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아마 홍정훈님의 작가로서의 장점 두가지가 극대화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 적당한 파워와 기믹키한 아티팩트 (예컨대 로그마스터의 비보... 여기선 엘프제 액체금속과 과학) 를 활용한 재밌는 전투 

 2)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이지만 입담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끊임없이 입을 텀 (아키에선 타이악, 용신에선 켄타우로스 로그마스터, 여기선 애쉬그레이브의 입담이 계속 작가의 매력을 발휘하기 위한 창구로 활용되는데... 애쉬그레이브는 계속 붙어있다보니 필요한 순간마다 입을 잘 털어줘서 서사의 무게균형을 잡아줍니다) 


하여튼 재밌었습니다. 


후반부가 위태위태하긴 했지만 페이스조절을 나름 잘 해내서 결말도 타이트하게 지은것 같구요. 


사실 농담삼아 종종 홍정훈님의 유작은 아키블레이드라고 하곤 했었는데 낙인의 플레인워커를 일독하고나니 완전히 만족하진 못하더라도 나름 희망이 보였습니다. 


즐기는자 시절의 광기를 되찾았다기보단 과도기를 지나 나름 메타에 적응했다는 방향이긴 하지만요. 


아쉬운점은 아니고 안타까운 점인데, 반천인 레드+그린+브라운은 무지할지언정 죄를 지었던 놈들이니 값을 치루는거라고 해도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클론이기에 태어날때부터 피해자였고 죄인신세였던 플라티나마저 구원받지 못한건 좀 안타깝습니다. 


하다못해 오만 패악질을 저지른 전여친외 기타 이계인들도 다 부활했는데 말이죠. 죄의 무게에선 비교할 수 없겠지만 플라티나는 황제를 향해 쏴라의 키마이라가 죽었을때랑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해는 하는데 그랬어야 했는가에 아쉬움이 들죠.  



3. 용신의 게임 


너무 어릴때 비상하는 매를 읽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항상 페르아하브가 왜 자기 눈알을 서이준한테 던졌는지 이해 못했습니다. 


사실 이해 못했을때도 책의 다음장을 넘기는데는 문제가 없었죠. 당시로선 x나 충격적이게도 페르아하브가 마크2도 아닌 "자, 이제 서로 죽여라!" 에서 살아남은 복제품으로 대체되는 놀라운 전개로 이어졌으니까요. 


당시엔 막연하게 페르아하브가 상대를 희롱하려고 저러는건가 싶었죠. 아니면 자기 존엄성이 위협받으니 거기에 온몸으로 저항하나 싶은거기도 했고요. 


그런데 10년을 훌쩍 지난 시점의 신작이 옛작품의 이해를 도와주니 신기하네요. 사리불의 눈알시주는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일어났을거란 주인공의 친절한 설명에 전 무릎을 탁 쳐버렸습니다. 


알기 쉽게 주제의식을 던져주고도 모자라, 혹여나 사람들이 못 알아차릴까봐 끊임없이 주인공의 추한외양과 그로 인해 얻어진 통찰을 설명해주니 작품의 지향점을 따라가기가 수월하더군요. 


이건 아키블레이드 때와 비슷합니다. 주인공 현우진의 두 아버지는 초인이고 철인들이죠. 그리고 끊임없이 현우진에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을 것을 당부합니다. 현우진은 초인의 자질을 타고났으니 바람 따라 흔들리는 범속한 갈대들을 위한 방풍림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란거겠죠. 하지만 두 초인은 결국 범속한 이들의 배신에 생을 마감합니다. 


덕분에 현우진 특유의 유니크한 캐릭터성이 완성됩니다. 범속한 인간들을 혐오하는 인간적이고 나약한 마음, 그런 인간들마저 사랑하는 가르침을 따르고자하는데서 오는 초인적인 도덕성과 영웅심. 그 둘의 기묘한 공존이죠. 


그 두가지 마음의 충돌에서 오는 내적갈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를 끌어가는건 물론, 스토리의 큰 줄기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있습니다. 


바로 전작인 위겐 개인에 대한 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걸 작가 스스로도 인지했기 때문일까요? 


용신의 네르갈이 느끼는 컴플렉스는 과하고 억지스럽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전 이런식으로나마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시도를 했다는거 자체가 만족스럽네요. 


카카페 댓글들은 질색팔색이지만 전 팔방미인인것도 모자라 아치고절한 인격마저 갖춘 위겐에게선 느껴볼 수 없던 인간성이 네르갈에게서 느껴지는것 같아 좋습니다. 


아마 이 컴플렉스는 네르갈이 스스로의 존재가 가진 존엄성을 의심받았을때 어둠을 밝혀줄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뭐, 꼭 젠야타처럼 간지나게 자아성찰을 통한 초월을 통해서만 존재이유를 자신과 분리해야합니까? 


좀 추하지만 네르갈처럼 추함 그 자체로 스스로의 영혼을 증명하는것도 역으로 멋진 그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작 이십년 남짓 산 카이레스가 영혼의 격 자체가 다른 환염의 미카엘의 시험에 들었을때 뜬금없이 종교적 깨달음같은 걸로 승부보진 않잖아요? 


뒤스띤이 털리고, 메이파가 간살당하고, 디모나한테 반복적으로 통수맞아온 삶의 다이내믹함으로 승부를 보죠.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훌륭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카카페 댓글여론이 아무리 아우성쳐도 네르갈의 어글리함 어필을 멈추지 않은 작가의 우직함에 오히려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상업작가이니만큼 직접적으로 편당결제를 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작품의 완성도 자체를 위해 감수하고 밀고 나갔다는 뜻일 테니까요. 전 팬으로서 이 못생긴 놈이 부디 성공적으로 철인구세주 스타일 주인공들의 자가복제를 막아주고 작가의 역량을 늘려주는놈이 됐으면 하고 바랍니다.  


하여튼 용신의 게임은 아직 연재중이지만 정말 재밌더군요. 쉐도우아츠하는 놈이 애쉬그레이브같은 핵심멤버가 아니라 만담이 좀 덜하긴한데, 이번작은 대신 네르갈의 사유를 통해 캐릭터와 감각하는 세계를 읽어가는게 쏠쏠하고, 또 종종 터져나오는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들도 좀 살아 있습니다. 


카카페에서 연재한것들 기준 제 종합평가는 


드림사이드(보지마세여) <<<<<<<<<<< 낙인 <<< 용신(굿)


이 정도 될 거 같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용신의 평가는 바뀌지 않을거란 감상평을 쓰고 저장했었는데


문제는 용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 최근화들을 쭉 보니 지금껏 쌓아온 서사들이 무너질 조짐이 보입니다. 제발 용신의 게임은 이제껏 해온 모든 노력이 사실 무의미했다는 식의 전개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