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주인공을 뛰어난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이계로 가는 이계인들 자체가 상대적으로 생각의 틀이 좁고 정신적인 발전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며,

주인공이 뛰어난 연구원이라는 점을 들어서 뛰어난 지식을 가졌다는 점을 어필하고,

계속해서 주인공이 관련한 주제를 이야기할 사람들-애쉬그레이브나 펠티어, 고영호 등을 두어

맥락이 끊기지 않도록 하더군요.

 잘해봐야 주인공도 보통사람인데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인물들의 지성을 다운그레이드하고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작품들에 비해서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다만, 그렇다쳐도 주인공이 좀 지나치게 다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읽는 독자인 제가 평범한 사람인지라, 당장 붉은 낙인 찍고 이계로 떨어져도

손색이 없을 사람인지라(...) 이렇게 유능한게 보통인가 싶더군요. 사실 다른 작품들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작품의 세세한 퀄리티에 관심이 가게 되니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이 예전부터 문명발전 트리에 관심을 가진 덕후였다고 

뇌내보정을 한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그에 관한 작중 묘사는 저한텐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인물에 대한 감상을 하자면, 고영호는 안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휘긴님이 자주 다루는 환경에 매몰되어 변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군상들 중에서도,

한국 사람이 상대적으로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소설 내에서 다루는 화제에 대해서도 인상이 남습니다.

저는 예전에, 인간에게 가장 최적의 상태는 그냥 시험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배부른 돼지 - 동물원일지라도 사람이 그에 만족한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적어도 인류 역사 중에 그런 시간이나 공간이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지요.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더 큰 시련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 

그에 대비한 시험과 단련 -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요.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다루는 사람들을

그래서 더 주의깊게 보게됩니다.

주변 사람에게 재앙이 되는 이계인들은 처음부터 그런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얻게 된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다루다보니,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얻는 사고방식이나 감정이 말라붙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적으로는 결락이 존재하고, ​ 

그래서 사람들에게 해악이 되고요.

 

제가 최근에 본 작품 중에 2015년 연말에 고전게임 갤러리에서 연재되었던

'캐피탈리즘 호 하는 만화'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요정들이 생각났습니다.

(스포일러는 긁어주세요)

거기서 나오는 요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홀려서

죄악과 고통의 굴레에 올려놓고 변모시키고 

즐거움을 위해서 사기와 악행, 사건의 조작조차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요정같은 종자들이 이 작품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레벨업을 해서 강해질 수 있다, 특수한 능력을 준다면서

​이계에 던지는 '얼굴없는 신'이라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준비되지 않은, 단지 자신들이 이용해먹기 좋은 사람들을 지멋대로 데려다가

이계에 던져놓는 존재들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이계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때마다

얼굴없는 신들같은 작자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불쾌한 존재들인지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작품 전체적인 느낌에서 닮은 것을 찾아보면, 휘긴님의 전작 중에서 발틴 사가와 마왕전생의 느낌을 받습니다. 

발틴 사가 관련해서는 발틴의 야망보다는 평소의 털털한 성격 같은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왕전생은 '원래 황제를 향해 쏴라' 라는 연중된 작가님 작품의 리메이크인데, 

저는 리메이크를 하면서 원작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느낌이 열화되었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낙인의 플레인 워커는 그와는 반대로 마왕전생의 좋은 점들을 극대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은 흥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짧은 감상 마칩니다.

며칠 전부터 지금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비축분 없이 한방울씩 떨어지는 연재에 목마르게 되었네요.​ 

 

ps. 창작물의 신들에 대해서.

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옛날의 신들, 세라신족도 좋았습니다.

신이 실존한다면, 신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왔던 부분을 이렇게 다뤄주셔서 생각을 다듬을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