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평어체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원래 장르소설 자체를 어느순간 완전 접었었는데, 얼마 전 전생검신이란 작품이 크툴루 신화 세계관이라길래 카카오페이지로 결제해서 보게됬다. 크툴루 신화의 광팬으로서 그래도 나름 괜찮은 평을 받고 있는데 안볼수가 없었다.
굉장히 참신한 세계관이고 여러모로 맘에 드는 점이 많았다. 물론 크툴루 신화를 메인으로 풀어낸 한국 장르소설이란데서 애초에 굉장한 점수를 주고 시작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일단 느낀 점
1. 개복치놈 뇌는 언제쓰나.
물론 개복치가 아자토스의 화신체나 아자토스 본인이 꾸는 꿈의 주인공 느낌인 건 알고 있는데, 아무리 우둔한 우리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행동에 개연성이나 합리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혼돈 그 자체라서 그런가 진짜....독자가 답답해서 코즈믹 호러를 느낀다.

2. 크툴루 세계관(또는 코즈믹 호러) 자체의 공포가 느껴지질 않는다.
난 러브크래프트가 정립한 코즈믹 호러의 핵심이 '무력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개복치가 아자토스 화신이라 그런지 고생은 하긴 하는데 멘탈이 깨지질 않아서 무력한 화자의 공포감이 전달되질 않는다. 애초에 개복치가 심리묘사라는게 있긴 한가 싶기도 하고. 물론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또다른 클리셰인 '알고보니 내가 원흉(동류)'라는 느낌으로 가는 것 같긴 한데, 이건 러브크래프트 작품이 단편작이 대부분이라서 가능했다고 본다. 미약한 떡밥과 복선이 뿌려지긴 하지만 독자는 긴가민가 한 정도에 주인공은 작중 내내 멘탈이 작살나면서도 근근히 희망을 쥐고 있지만 결국은 본인이 동류나 원흉이란 걸 깨닫고 마지막엔 멘탈이 쌀가루가 되서 흩어지면서 그것에 동화되는 서술이 독자 통수를 후려치는거지. 근데 이 작품은 해당 떡밥을 너무 과하게 뿌린데다가 장편이고, 개복치의 심리묘사나 고뇌가 없어서 그 긴장감이 전혀 없다. 물론 이건 러브크래프티언의 관점이니 그냥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래도 루프물의 장점은 잘 살렸다.
보통 루프물은 노답자위물이 되기 굉장히 쉽다. 주인공이 대부분의 상황을 알고 시작하고, 주인공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건드리지만 세계의 큰 흐름이 뒤집히지 않는다. 근데 이 작품은 주인공의 개입으로 매번 인과관계의 변동으로 인해 흐름이 뒤틀리며 작살나고, 주인공이 예측과 기억에 의존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매 회차를 통해서 주인공은 점점 진실에 다가가고, 숨겨진 떡밥들이 차례로 풀려나간다. 물론 떡밥은 계속 뿌려지지만 작가도 먹고 살아야지. 작품이 과도하게 늘어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근데 요즘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이 쓸데없이 늘어지는 것 같아서 살짝 빡치긴 한다) 애초에 인간이 그레이트 올드원한테 개기는 스토리인데 증기선으로 박아버릴거 아니면 쉽게 답도 없고.

4. 감정이입 안되는 화자
사실 크게 보면 위의 내용들하고 동일한 얘기긴 하다. 애초에 개복치는 정상이 아니다. 자신의 주관도 없고 남에게 굉장히 의존, 심지어는 타인의 관점을 자신에게 투영시켜 그대로 따라서 살고, 이성이란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라 정상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판단들로 상황을 악화시키며, 이유없는 강박증세에다 주관은 없는 주제에 높은 확률로 타인의 말은 들어쳐먹지 않는다. 그리고 백수십여년동안의 경험이라면 범재가 아니라 멍청이라 하더라도 가져야할 기본적인 통찰력이나 상황 이해력조차 가지질 못했다. (중간중간에 뭐 명을 깨달았다거나 순간 대응능력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정말 일순간일 뿐이라 설득력이 없다)
결국 결론을 내리자면 백수십년을 루프했는데도 결국 그냥 애새끼다. 전생자로서의 고뇌도 공포도 성찰도 없으니 자아의 성숙을 바라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육체가 애라 어린애로서의 삶만 살다보니 성숙할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이것이 작가가 주인공의 특이성과 숨겨진 정체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면 이에 대한 심리묘사나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아니라면 그냥 얘 심리묘사를 좀 더 우겨넣어서 감정이입 좀 하게 해줬으면 싶다.

쓰다보니 비판이 많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크툴루 신화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한 작품이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