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 베스트란을 둘러보다가 대뜸 1/4 삭제예정이란 문구를 발견하고 한 번 눌러본 글입니다. 장르는 로판 선작수는 약 2.8만 편수는 약 150편. 6월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150편을 올리신 만큼 상당히 성실한 연재를 하신 걸로 짐작. 소개글은 흔히 쓰이는 책빙의물이라 딱히 땡기진 않았고, 아주 예전에 읽은 책빙의물 구경하는 들러리양이 완결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실망이 너무나 컸기에 이 글에 대한 기대도 사실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상당히 기대를 많이 가졌습니다. 7챕터인 유령들의 산책까지만 해도 작품이 로판이라기보단 뭔가 일상물+약간의 스릴러가 가미된 코믹? 사실 작품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유쾌한 건 아니지만 1인칭 주인공시점이고 책빙의인 만큼 서술에 현대 서브컬처드립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재밌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건 딱 7챕터까지였습니다.(...)

 

일단 간단히 작품을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고달픈 직장생활을 하는 20대 중후반 여성으로, 빙의된 책은 BL소설(...)이었습니다. 여기서 진입장벽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지만 다행히 작중에 나온 남남커플이 둘이서 같이 등장하는 빈도가 적어서 그럭저럭 버틸만 했습니다. 해당 남남커플은 무려 왕+후궁(남자라 왕비가 안된다고...)이며 주인공이 빙의한 인물은 왕비(...)의 시녀1입니다. 그냥 엑스트라이다보니 주인공은 빙의한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편리하게 빙의되자마자 빙의된 인물의 기억이 막 자동입력된다거나, 하다못해 꿈을 꿔서 읽어들인다거나 이런 편리한 시스템 없이 구르고 구릅니다(...) 

 

시작은 왕비가 왕자를 낳는 부분이며, 빙의 과정도 약간 참신하다면 참신합니다. 라면 끓이다가 갑자기 출산 과정을 돕는 시녀몸에 빙의한 거라서요. 흔한 환생트럭이라거나, 술먹다 눈뜨니 다른사람 이런 식은 아니어서 중간중간 주인공이 내가 끓이던 라면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곧잘 회상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높으신 분들이 남남커플인데 왕이 후사는 봐야해서(다행히 임신수 같은 아스트랄한 세계관은 아니었습니다 휴) 왕비에게 자식을 봤는데, 사랑이 없으니 당연히 왕비는 자기가 낳은 왕자에 애정을 주지 않습니다. 작중 BL소설을 읽은 주인공은 왕비 캐릭터에 몰입하여 주인공커플을 저주하고 왕비가 불쌍하다, 왕비시점만 열심히 봐서 소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식입니다. 대충 메인 남남커플 가운데, 후궁이 워낙 마성의 게이라(작중 별명이 무려 요물...) 꼬인 사람이 어마어마하다는 정도만 압니다. 그래서 뭐 미래를 미리 알고, 바꿔보려 한다, 그런 거 없이 4~50여편에 이르도록 죽어라 왕자 육아만 합니다.

 

1인칭 시점인데 문체가 굉장히 깔끔하고 묘사도 과하지 않아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주인공이 왜 난 빙의자 버프 따윈 없는 걸까 슬퍼하고 육아에 지쳐 잠도 제대로 못자고 고생하는 걸 보면 짠하기도 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응원도 하면서 로맨스의 ㄹ자도 나오지 않는 초반부에 이거 정말 로판 맞나 의심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갑자기 들이대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자는 주인공이 빙의된 시녀와 과거에 인연이 깊어 보이는 인물로, 작품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립니다. 이쪽은 주인공이 읽은 원작소설에서 제법 비중있는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마성의 게이에게 넘어가지 않은, 오히려 왕과 플라토닉러브(...)라는 식으로 의심받는 남자입니다. 직위는 백작->공작으로 변경. 직위가 높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드맛스타라서(...) 여튼 이 남자가 등장하면서 거의 본격적인 로판이 시작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즈음 갑자기 글공부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은근슬쩍 주인공에게 그린라이트 신호를 보내옵니다. 이쪽은 주인공보다 연하이고, 원작에서 그리 비중도 많지 않아 마성의 게이의 표적조차 안된(...), 그리하여 주인공은 잘 모르는 인물인데 작중에서는 아이돌 혹은 요정 같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상당히 반반한 연하남입니다. 이세계에 빙의하여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제법 큰 도움을 줍니다. 자세한 건 패스.

 

그리고 육아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도서실에 갔다가 만난 전쟁 PTSD를 앓고 있는 위대하신 대마법사님과 마주합니다. 여기서 마법사들은 유치하게 파이어볼~외우는 법 없이 그냥 선천적으로 타고난 족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마법사는 거의 신에 버금가는 마법능력의 소유자로, 낮과 밤을 바꾸는 것조차 가능합니다. 막 죽은 사람을 되살릴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오오 대마법사님 오오...인데 사람 죽인 트라우마로, 잠을 제대로 못잡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간신히 쪽잠자고 있다가 주인공이 자고 있는 마법사 머리에 책을 떨어트릴뻔 한 순간, 반사적으로 주인공의 목을 조릅니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겨우 산 주인공은 사과도 않고 줄행랑치는 마법사를 보며 굉장히 서럽고 서럽고 또 서러워집니다... 여튼 첫만남은 최악이지만 결국 이쪽도 뭐(이하 생략)

 

마지막으로 아기왕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호위기사로 있던 사람이 있는데 이쪽은 원작에서 이미 마성의 게이에게 반한 남자라 주인공이 얼굴은 완전히 취향이지만 자기랑 전혀 그런 관계로 발전할 거라곤 상상도 안했는데... 여튼 이쪽도 미묘한 관계에 접어듭니다.

 

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굉장히 재미가 없어졌습니다-_-

 

작품초반부에 굉장히 몰입하게 한 주인공의 소시민 같은 태도, 버프 따위 없이, 자력갱생을 입에 달며 아득바득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던 주인공이 후반부로 접어들며 사람이 바뀐 것처럼 그냥 사랑, 사랑, 사랑~만 주구장창 얘기합니다(...) 와, 나, 이... 그래도 일단 완결이니까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대체 이 많은 남정네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최후의 승리자는 과연 누가될지. 그리고 과연 주인공은 왜 빙의되었으며, 주인공이 빙의된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 석연찮은 구석들을 작가분께서 과연 어떻게 해결할 건지 기대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런 거 없습니다. 네. 정말 하나도 정리가 안 됐습니다(...) 다 읽고나서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이게 완결이야? 

 

일단 책빙의물 중에 왜 책빙의가 됐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게 워낙 흔해서 사실 이쪽은 큰 기대가 없어서 실망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다인엔딩은 정말 제 개인적으로 최악 of 최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작중에서 계속 본인은 어중간하다, 수동적이다를 언급하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뭔가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봤는데 시종일관 같았습니다. 초반에 그래도 나름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귀엽던 주인공이 작품을 다 읽고 난 이후엔 뭐 이런 게 다 있냐,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취향의 문제인 거니까, 양손의 꽃이 취향인 분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풍악을 울려라 만족스러우셨을지도 모르지요. 

 

근데 작품내에 깔아둔 이런저런 복선들이 대부분 회수가 안 된 채, 정말 뭐 싸다 만 것 같은 완결을 보고 나니 허탈하더군요. 로판은 아니지만 예전 패스파인더를 완결까지 읽었을 때랑 감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필력좋은 작가가 자기 쓰고 싶은 걸 써내려갔다는 느낌. 도대체 왜 이런 결론에 이른 건지, 작품을 읽으며 정말로 알고 싶었던 인물들 개개인의 갈등, 사정, 사건 등이 무엇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바 없고, 정말로 패스파인더랑 똑같이 응 완결 이란 느낌입니다. 출판될 글에는 다양한 외전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연재물에서 해소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의문점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으나... 본문도 아닌 별도 외전으로 작품을 이해해야한다는 건 꺼려지네요. 차라리 그냥 완결이라고 말을 하지 말든가, 뭔가 우롱당한 기분도 들고... 비록 1원 한 푼 작가님께 보태진 않았지만, 읽고나서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네요.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나머진 결제해서 보세요~인 것 같은데, 완결 그렇게 낸 거 보면 결제할 생각이 전혀 안 드네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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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덧글이 무려 1300개가 넘는 100화는 지루한 후반부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준 베스트화였습니다. '')b 달달하다 달달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치정싸움에 결국 치를 떨게 됐지만, 그래도 100화는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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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에 나이스보트가 나온다면 결제할 마음이 생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