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말과 티겟값이 아까웠다.

영화는 상영 시작 후 몇분 만에 챕터명을 통해서, 이 영화가 라쇼몽의 구성을 대놓고 본딸 거라는 걸 선언하고 시작한다.  당사자들 각각의 관점으로 같은 사건을 몇번 되짚어 보겠다는 건데 뭐 좋다.  그래서 영화는 카르주(맷 데이먼)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결투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같은 시간들을 드 그리(아담 드라이버)의 입장에서 한번 더 변주한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뉘앙스 차이가 있고,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것들도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카르주의 입장에서 자신은 전장에서 돈을 벌어오며 가족에게 헌신하는 가장이며, 드 그리의 입장에서 자신은 능력있는 가신이자 카르주의 아내에게 반해 간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로맨스남이다.

문제는 사실 그 둘의 각각의 입장을 확인한 순간 이미 어떤 놈이 나쁜놈인지는 명확히 판단된다는 점이다.  드 그리의 관점에서 본 스토리에서도 드 그리가 강간범이라는 건 분명하고, 비옥한 영지를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도 드 그리가 친구인 카르주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라쇼몽의 구성을 취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관객들이 러닝타임 동안 계속 진실을 궁금해하게 만들고 싶었다면, 최소한 드 그리의 관점에서 그 관계는 강간이 아닌 로맨스로 그려졌어야 한다.  카르주 부인의 시점에서 본 사실관계는 드 그리가 조금 더 병X 같이 사랑타령하고, 자신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거부의 의사표시를 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드 그리가 주장하는 바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미 알고 싶은 건 다 알았는데 뭐 어쩌라는 건가.

애초에 두 챕터를 지나오면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관계 ㅡ 드 그리가 카르주 부인을 강간했는지 여부는 이미 확정되었고 더 이상 의문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거기에 달라붙는 세 번째 챕터 ㅡ 카르주 부인의 입장은 관객에게 더이상 흥미로운 대상이 될 수 없고, 오프닝 씬에서 보여줬던 결투 재판 장면이나 빨리 틀어줬으면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거기에 더해 카르주 부인의 관점에서 본 스토리는 챕터 제목에서 이미 '진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들어가는데, 그 순간 이 영화는 흔한 페미니즘 계몽주의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가 특정한 관점을 '진실'로 공언한 시점부터 앞에서 보여줬던 다른 시점들은 각각 가부장적인 즈언통 프남충과 로맨틱가이인 척 하는 난봉꾼 프남충의 자기도취로 전락할 뿐이다.  그럴 거면 애초부터 앞의 두 챕터를 반복해서 보여줄 필요나 있었는가.

그 와중에 세번째 챕터에서 카르주 부인의 눈을 통해 하는 이야기는 이제 하도 많이 봐서 지겨울 정도인 페미니즘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 참여, 프남충들의 왜곡된 여성관, 중세 유럽의 여성차별, 성인지 감수성 없는 사회제도, 침묵하는 여성과 침묵을 거부한 여성을 비난하는 여성의 모습.  새로운 게 없을 뿐더러, 상징적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다.  재판 과정에서 카르주 부인을 배신하는 동네 친구는 왜 그런 배신을 하게 되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고, 시어머니 역시 과거의 강간 경험이 그 캐릭터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어떠한 묘사도 없다.  그냥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 장치적 캐릭터이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카르주 부인의 결혼생활이 그 남편이 생각한 것만큼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섹스와 카르주 본인이 의사결정을 도맡아 하는 보수적인 영지 운영방식, 카르주의 폭력적인 언행 정도로 표상된다.  그러나 정작 카르주는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부인에게 손을 대는 일이 없고, 부인이 영지의 일을 도와주는 것에 관한 호오가 있는지 여부는 영화 내에서 확인도 되지 않는다.  영화 막바지에서 갑자기 제시되는 갈등은 카르주가 아내와의 논의 없이 결투재판을 신청한 점에 관한 부부간 다툼인데, 등장하는 시점이 너무나 늦을 뿐만 아니라 카르주 부인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도 없다.  카르주가 행정권과 사법권이 분리되지 않은 중세유럽에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을 합리적으로 선택한 상황에서, 카르주 부인이 드 그리의 악행에 침묵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다른 방법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카르주 부인의 불만은 투정에 불과하게 된다.  안그래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별다른 궁핍 없이 귀족 영애로 살아온 카르주 부인을 중심으로 한 이상 유한마담의 페미니즘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상황에서 말이다.

리들리 스콧이 역사물을 찍을 때마다 보이는 습관이 있는데, 해당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관에서 이탈하여 현대의 가치를 설파하려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발리앙과 살라흐 앗 딘이 보여주는 모습이 대표적인데, 둘이 종교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역사속의 실제 인물과는 갭이 상당하다.  리들리 스콧이 기존의 역사극에서 주역들을 통해 주장하던 탈종교주의와 민주주의 옹호는 이 영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옹호로 바뀌어 그대로 변주된다.  카르주 부인은 마치 홀로 현대에서 이세계로 날아간 인물처럼 그려진다.  이미 영화가 카르주 부인의 편을 들기로 작심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결투재판의 결과가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전쟁통에서 맨날 구르고 온 아저씨가 세금 걷고 다니던 애 이기겠지 뭐.

차라리 허접한 여성주의 담론을 포기하고, 역사상 마지막 결투재판을 둘러싼 세 사람의 관점을 제시하면서, 어떤 것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꾸몄다면 극의 완성도는 훨씬 더 높아졌을 거라 생각한다.  어설프게 페미니즘 담론을 올리고, 하나의 관점이 '진실'이라는 걸 박아넣으면서 영화 전반의 한시간 이상 분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필름뭉치로 전락했다.  그러니 네러티브의 구조 자체가 뒤틀려 있는 이 영화가 로튼 86점을 받는 상황을 개탄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평론하고 평가할 거면 그냥 평론가 때려치세요.  아, 스콧 영감님답게 중세 결투 장면이나 전투 장면 묘사는 짧지만 탁월했다.  그나마 참고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게 만든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건 좀 논외의 이야기인데, 아담 드라이버가 영화 안에서 공인 미남으로 통하고 있는 게 참 뭐랄까...  관련된 대사를 들을 때마다 다크나이트의 '헬로 뷰티풀~'을 반복재생하는 기분이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잘생긴 척하는 연기라도 탁월하지, 이거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