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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다시피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자는 매리셜리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나올 당시는 산업화와 계몽주의가 퍼졌지만 그 이면에 아직도 존재하는 신분제와 성차별, 인습.... 그리고 새롭게 도래하는 산업화와 과학만능주의의 폐해들...이 가득하던 때죠. 

이런 시대적인 이유로 여성인 매리셜리 역시 처음에는 프랑켄슈타인을 자신의 이름을 걸지 못하고 출판했었죠.

물론 페미니스트의 딸이니 만치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출판하게 됩니다. 

 

암튼 당시 프랑켄슈타인이 부제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알다시피 프로메테우스는 불(문명,이성,권위,주체)을 신에게서 훔쳐서 인간에게 나눠주고 그 벌로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입니다.

프랑켄 슈타인은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의해 인간이 신에 가까운(대등한) 존재로 거듭난 것처럼, 과학에 의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피그말리온처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 이야기입니다.

 

본래 인간의 신에 대한 동경과 도전은 지혜를 탐내 선악과를 먹는 이야기,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야기, 태양에 접근하려던 이카루스의 이야기, 신에게 솜씨를 뽐내다 거미가 된 아라크네 처럼... 신화와 전설부터 시작해서 주구장창 이어지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현대에 와서도 인간은 신의 영역을 노리고 있고 또 상당 부분을 빼았기도 했고... 하지만 한 가지! 이런 신에 대한 도전 이야기는 모두 인간의 좌절로 끝이 납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프로메테우스 본인을 고통받게 하고 인간들에게 전쟁을 가져오고, 이카루스는 떨어져 죽고... 프랑켄슈타인의 생명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도전 역시 이런 비극을 숙명처럼 전제하고 들어가지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는 당연히 누군가와 닮았으며 또 그 누군가를 넘어설 수 없게 숙명지어집니다. 인간은 신을 닮아 그 신성의 일부를 품었고, 그럼에도 인간은 신을 넘어서고자 하지만 결국 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결국 프랑켄슈타인을 닮고 프랑켄슈타인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지요.(육체적으로야 넘어서야 겠지만 그 존재에서...)

 

뮤지컬의 대략적인 스토리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야기는 대프랑스동맹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싸우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접합술의 달인인 외과의 앙리는 야심만만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고 프랑켄슈타인의 야심-생명창조에 대해 마음을 같이 하게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두 사람은 프랑켄슈타인의 고향인 제네바로 가게 되며 이야기가 시됩니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이야기가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신(이 왕권을 내린 왕들)과 싸워 스스로 신의 자리(황제)에 올랐던 인물이고 결국 신들(왕들)에 의해 몰락한 인물이라는 이지요. 결국 나폴레옹=프랑켄슈타인이라고 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몰락과 비극역시 예언되고 있다고 볼 수 습니다.(고전극에서 인물의 운명에 대한 암시나 예언과 함께 극이 시작되는 것과 닿아있지 않나 생각됨)

 

프랑켄슈타인과 앙리의 연구는 잘 풀리지 않고... 프랑켄슈타인의 과거가 설명됩니다.

흑사병으로 죽은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자신, 과학(생명창조)에 대한 집착과 미숙한 기술에 의한 실수(줄리아의 개를 살렸다가 줄리아를 다치게함)... 그러면서 스스로를 저주받았다고 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신을 이길 수 있는 저주를 달라고하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자신 만만한 야심...

 

앙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실수를 덮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예전의 극들중에 남주를 위해 희생하는 성녀역할처럼 보통 여성에게 주어지던 역이 앙리에게 주어졌다는 느낌도 듭니다. 사실 이후 극중에서 앙리가 소실되고 그럼에도 괴물을 통해 앙리를 보는 프랑켄슈타인은 이런 과거의 고정적인 남녀관계에 대한 변주처럼 보이기도합니다. 뭐 딱히 그게 좋다 나쁘다는 아니고...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괴물을 만들어내지만 자신의 기대(앙리의 부활)와 다른 괴물에(미숙하고 무지하고 야수처럼 보이는) 당황하고 두려워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괴물은 도망치게 됩니다.

 

이후 괴물은 투기장에 잡혀 억지로 싸움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괴물과 카트린느의 대비 역시 재미있는 점입니다.

괴물이지만 살인을 거부하는 괴물(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동경)과 인간이지만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다가 인간답고 싶어서 인간성을 버린 카트린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만을 갖게 된 괴물은 결국 나중에 무구한 소년마저 인간으로 자라게 둘 수 없어서 죽이기에 이릅니다.

 

결국 괴물은 스스로 괴물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힘을 모두 발휘해 투기장을 벗어나 복수를 위해 프랑켄슈타인에게 돌아오고...

 

저주받은 숙명(=신)에게 저항하기 위해 생명창조를 택한 프랑켄슈타인, 괴물로 태어난 자신에게 숙명을 부여한 창조주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괴물...

결국 이 둘은 마치 거울을 두고 마주한 자신처럼 본질적으로 동질한 존재들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숙명을 지닌 존재들은 결코 세상과 섞일 수 없는 고독한 존재들이고요...

 

결국 북극에서 죽음을 택한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완전한 고독을 강요함으로써 복수를 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잃음으로써 숙명을 극복하지 못한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은 절규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중구 난방인 거 같은데... 암튼 프랑켄슈타인은 숙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장엄한 절망에 대한 찬가가 아닌가 합니다. 그건 결코 이뤄질 수 없지만 위대한 일이겠지요...

 

 

사실 서울 본공은 끝난지 오래고 이제 지방 일정만 조금 남았지만... 기회가 닿는 분들은 꼭 한 번쯤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대작이라고 불리는 공연들은 분명 그만한 힘이 있다는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