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죽는다는 것.
"세상" 이라는 존재로부터 잊혀진다는 것.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경시하곤 한다.
죽음이 언제나 그들 곁에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설마 내가 죽곘어' 하는 안이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절대 우릴 이해할 수 없다.
죽음과는 거리가 먼 그들은, 절대 우릴 이해할 수 없다.
우린 매 순간이 죽음의 연속이고, 마침내 죽음이 찾아왔을때조차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하는,
그럼에도 꿈꾸길 멈추지 못하는...

(중략)

...그렇기에 우리는 한없이 어리석고도, 한없이 비참한 존재이다.



- 최초의 로이드 "아담" 의 저서 [로이드들의 지켜지지 않을 삼원칙을 논하는 머리가 키비악을 훈연한 통조림으로 이루어진 꼴통들에 대하여]에서 발췌 -



 ☆ ° ● ° ■ ° □ ° ○ ° ⊙ °《 ◇》 ° ⊙ ° ○ ° □ ° ■ ° ● ° ☆



"......"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압도되어 있었다.
평소, 영화나 소설 속, 뉴스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죽음들 중에는 고통스런 죽음들이 많았다.

그러나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더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업계의 한물 간 퇴물인 내게는 그리 보수도 좋지 않으면서 고되기만 한 일만 날라오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보통은 아예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이곳에까지 나왔다.
그랬는데, 그랬는데도.
나는 또 이렇게 겁만 집어먹는구나.
먹고 또 먹어
속이 곪아 터질때까지 먹어서
더는 겁먹지 않을 줄 알았는데.


"......"

- 철썩.



시원한 파도소리가, 내게는 망나니들의 칼춤소리처럼 들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끝낼 수 있는데.
이제와서 뭘 겁내는 걸까.



"......"



미련이 남은걸까.
왜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지.



"...죽자."



그래, 오늘이야말로 죽자.
오늘이야말로 죽고, 완전히 잊혀져 나조차 내가 누군지 잊기 전에.
그 전에 먼저 죽어버리자.
좋은 예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아담 선배도 그랬잖아.
차라리 이게 나은거잖아.
그런거잖아.



"......"



세상 그 누구도 로이드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우린 그저 유희삼아 만든 장난감에 불과하기에.
그러기에 빨리 떴다가도 빠르게 잊혀진다.
잊혀짐, 그 말의 무게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ㅡ풍덩



아아.
머릿 속 깊은 모세혈관까지 확장되어, 이 차디찬 물길을 받아내는 느낌이 든다.
뛰어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미친듯이 박동하던, 터질 듯 불거진 오른손의 핏줄이 잠잠해져간다.
떨어질 때, 머리라도 맞은건지 아픔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까.
그 때문인걸까.

마지막까지 멍청한 나는 미련을 떨치지 못한 듯,
흐릿해져가는 시야 사이로 너를 그린다.
목이 메인 듯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
뻐끔뻐끔 공기방울만 빠져나오는 입술로 너를 부른다.



 '유, 니이...'



마침내, 내 세상에 어두운 적막이 찾아왔다.
무언가 세상이 요동치듯, 끌어올려지는 느낌이 든다.
이게 "죽음" 이라는 걸까.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아담 선배애ㅡ!!"



고막을 찢어놓는 고음에 남자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부른 당돌한 여자를 쳐다봤다.
핑크빛 머리에, 빙크빛 눈, 연분홍 입술에 붉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유니였다.
고급진 그 멋스런 하이힐 밑창이 다 벗겨질 정도로 달려온 그녀에게선 절박함이 온몸에서 뿜어져나왔다.



"혹시, 혹시 우리 선배 어디 계신지 아세요? 아까, 아까부터 연락이 안돼서, 안그래도 계약사에서도, 그런 일이 있어서, 그래서, 시유 선배가...!"




그 붉은 여자는 쉼없이 떠들어댔다.
선배가 어쩌고 저쩌고. 너무 말에 맥락이 없고 이랬다 저랬다 주체를 못하니 귀에 잘 들려오지도 않았다.

문득, 남자는 귀찮아졌다.



'내가 왜 얘 말을 들어줘야 하는거지.'



그랬다.
그는 이미 죽은 몸이었다.
잊혀지지 않고자 죽음을 택한, 어리석고도 현명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까마득히 어린 후배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뭔가.



'내가 흥신소도 아니고.'



말만 한다고 해서 그가 다 찾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였다.
그도 그가 아는 것만 알 뿐이었다.
남들보다 좀 더 자유로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 가 사라질 때마다 자신만을 찾아와 안절부절 난리를 쳐대니.
남자, 아담Adam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끄응.'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생각을 감히 입에 담지 못한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 심정을 차마 내뱉지 못한다.

그건 아마, 이 녹아내릴 듯 달콤해 보이는 머리칼 때문이리라.
하늘을 담은 듯 맑고, 티 하나 없이 순수한 핑크빛 눈동자 때문이리라.
그런 사랑스러운 눈동자에 맺힌, 옥에 티와도 같은 눈물자국 때문이리라.

눈이 붉게 물들어 부을 정도로 울었음에도,
제가 도와주겠노라 확답하지 않자 다시 울어버릴듯 그렁그렁 맺힌,
이 눈물 때문이리라.
그래, 바로 이 눈.
이 눈에 내가 담기길 바랬기에.



ㅡ스윽

"...그래서, 선배가, 전화도 안받아서 걱정했던...선배...?"



이 눈이, 이 꿀처럼 다디 달 눈이.
이 눈이 나만을 바라보길 원했기에.
그 여자가 아닌, 나를 담아내길 바랐기에.
그러하기에, 나는 입에 담지 못한다.



ㅡ까득

"서, 선배애...?"



차마 네게 마음이 있다고.
너를 연모(戀慕) 한다고.
차마 그리 내뱉지 못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찬란하다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 끝이 정해져있는 사랑은ㅡ



꽈악 -

"아, 아파요...놔주세요 선배...!"



그저 고통만의 연속과 이어짐일 뿐.

유니는 그녀의 눈물자국을 지분거리던 손가락이,
이제는 그녀의 얼굴을 쥐고 놓아주질 않자 소리쳤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잠식해갔다.



"서, 선배..? 아담 선배...?"
"......"



유니는 이제 두려움으로 완전히 그렁그렁해진 눈을 하고있다.
그를 향한 눈이다.
그만을 바라보는 눈이다.
오직, 그 만을ㅡ



"서, 선배애...읍!"

콰악ㅡ



유니는 무언가를 외치려 하였으나, 이내 거친 손길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고통과 두려움에 찬 눈으로 아담을 올려다 보았다.
기이한 열기와 무언지 모를 감정으로 가득찬 그의 두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유니는 두려움에 차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여성과 남성간에 태생적인 신체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로이드들이 인간의 신체능력을 가볍게 웃돈다지만, 여성과 남성간의 골격차이는 어찌 메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읍...흐으읍...!"
"......"



아담, 그는 무언가 기이한 열락을 느꼈다.
그는 이내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저 이 눈이, 이 눈에 나만을 담아내면 된다고.
분명 꿀처럼 다디 달 이 머리칼을, 나만이 만질 수 있으면 된다고.
오직 나만이, 오직 나만이......



"......뭐야 이거."



그리고 그런 둘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새하얀 가운에 달린 주머니에 손에 들린 알 수 없는 기기를 넣어두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더 쉬운데? 초창기 로이드라 그런가, 보안 레벨도, 보안망 수준도 그리 높지 않고..."



그녀는 이내 손가락을 들어 살포시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직후, 혀로 입술을 느릿하게 핥아낸 그녀가 다시 내뱉었다.



"......꽤나 재밌는 장난감이 되겠네."



이내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스레 걸음을 돌려 아담과 유니의 뒤를 따랐다.
아직 돌아가기엔, 보다 더 재밌는 광경이 그녀를 기다릴 것이기에.
조금만 보고 돌아갈 것이라고, 그녀는 그리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그녀의 단추가 헤져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이건 뭐야."



일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