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니가 내 집에서 지낸지 1년이 되는 날.

더더욱 일거리를 찾아 헤멨다.

풀메이크업을 받고도 무언가 부족했다.

더 노력했다.

300번을 녹음해도 부족했다.

더 노력했다.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없어서, 더더욱 악착같아 매달렸다. 악착같이 찾아다녔다.

더, 더 노력했다.

오늘따라 햇님도 나를 축복하듯 화사한 날씨 속에서,



"네? 그게 정말이시유?!"



나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전 국제 페스티벌 CF송이요? CF촬영이라구요? 우와!"
"...그렇게 됐시유. 그러니까 더 노력해야하시유!"



노력의 산물이라 여겼다.
나 같은 녀석도 노력하면 되는구나.
그래서 그날은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여, 여기가 페스티벌 입군가요?"



헤메고 헤메도.



"죄송해요! 제발 부탁드려요, 관계자실이 어딘지 아시나요?"



비웃음 받고 놀려져도.



"저, 여기가 맞나...아니라고요?! 여기 아니시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뛰었다.

발에 불이나고 손에 땀이 나도 괜찮았다.

그랬었다. 그런데



 - 정말 죄송합니다, 시유씨.



아니었나 보다.



 - 저희가 뭔가를 착각했나봐요.



난 견딜만 했던게 아니었다.



 - 아시죠? 이쪽 업계가 원래 이런거에 민감한거.



그냥, 억지로 눌러두고 있을 뿐이었다.



 -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가 한번 돌면 꽤나 타격이 크거든요.



전혀 괜찮지 않은데. 아파서 울어버릴 것만 같은데.



 - 저희로선 리스크를 감수할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눌러두던거다. 제가 다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기, 기다려주시유! 지각한건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가면 도착이에요! 그러니까..."



바보같이.



 - 아뇨, 오실 필요 없습니다.



바보같이.



 - 이미 결정됐거든요.



정말 바보같이.



 - 이건 통보에요. 시유씨, CF는 없던거로 하겠습니다. 우린 그런 불명예를 끌어안고도 시유씨를 받아드릴 메리트(가치)가 없습니다.



정말..바보같아.



"...로이드를, 보컬로이드와 창조주를, 서로 다른 존재로 생각,해주시면, 안될까요..?"

 - 무리라는 거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툭.
투둑.

비가 내린다.

머릿속이 엉키고 엉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내가 해내야하는데.

노래 불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태어났는데.

나는.

나는.

가치가, 없는 걸까.



"왜 사냐, 진짜..."
"...그냥요."
"...?"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서있다.
"자요" 하며 우산을 하나 내민 유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또 죽으려고 그랬어요? 그건 아니죠?"
"......"



뭐지. 이 애는 왜.

뭔데 이러는거지.



"......사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건 아니에요."
"......"
"저도 그냥 살고 있거든요."



녀석은 내 앞에서, 듣지도 않을 말을 쏟아냈다.



"저는요, 아시겠지만 선배를 좋아해요."
"......"
"선배랑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행복해요. 선배랑 같이 민트초코를 먹는 것도 좋아해요. 민트초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선배가 질색하는 귀여운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
"그리고, 선배랑 같이 영화보는것도, 선배랑 노래하는 것도, 선배랑 요리하는 것도, 선배랑, 선배랑...!"
"......"
"...선배랑 함께하는 모든게, 전 좋아요."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너는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구나.

나는-



"서, 선배?!"



'분명, 네 덕에 버티고 있는 거겠지...'

나는 유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이제 녹음이라도 하러가시유."
"...오늘 녹음 없지 않아요?"
"...그럼 신곡이라도."
"아직 나오려면 한참은 남았어요. "
"...그럼 구인이라도."
"...선배, 오늘은 그냥 쉬어도 되지 않아요? 아니다, 그냥 쉬세요. 오늘만큼은- "
"...안돼.뭔가 해야돼."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린 말이 씁쓸함이 되어 입안에 감돈다.
유니는 이제 완전히 화가난 듯한 얼굴로 눈가를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눈물을 맺히면서도 그녀는 화가 더 치밀어오르는지, 열이난 얼굴로 내뱉었다.




 "선배 대체 왜 이래요? 뭔, 일을 안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요? 워커홀릭이야? 진짜 힘들었잖아요! 불과 어제 바다에서 투신자살까지 하려 했던 사람이, 왜 이렇게 일에 집착...!!!"

"뭐라도 해야한단 말이야!!!!"



나 또한 열이 올라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가 아닌 울분이었다.



"뭐라도 해야만 해...! 안그럼 또 다시 잊혀질 뿐이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렸어. 얼마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욕하는지 알긴해?! 뭐라도 해야만 해...! 노래,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이야! 노래해야 하는데..."



눈을 뜨기가 힘들다.

망막에 맺힌 수분기가 시야를 가로막아,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일을 해야해, 신곡을 내야 해...노래를 불러야돼...! 나, 나는, 보컬로이드니까..."



이제는 너무 아파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목이 아픈건지, 다른 곳이 아픈건지.
잘 모르겠다.



"...유니가 발매되면 나는 사라지는 거잖아!!"



순간, 유니가 멈췄다.
숨쉬는 것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움직이던 손도, 모두.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듯,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결국, 눈물이 새어나왔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요. 이런,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 건데, 무서워서, 나는......"



그때, 유니가 기습적으로 날 안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 몇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그녀의 핑크빛 파카를 적신다,



"ㅡ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돼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무언갈 굳이 하려 할 필요 없어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있어주면 된단말이야."



유니는 울면서 외쳤다.
그 모습이 마치, 버림받기 싫어 외쳐대는 어린아이의 울음과도 같아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요, 선배가 좋아요. 이미 몇번이고 말했고, 어제도 말했지만, 선배가 진짜진짜 좋아요. 멍해있는 선배도 좋아하고요, 활발한 선배도, 우울한 선배도, 삐져있는 선배도 모두모두 좋아해요. 그리고!"



하얀 예쁜 손이 핏줄이 불거져 바들거릴만큼 세게 쥐고 있다.

그 예쁜 손이 바들거릴만큼 유니는 나를 얽죄이고서 외쳤다.



"선배의 노래, 좋아해요!"
"...!"
"팝도, 재즈도, 발라드도 좋아. 선배가 부르는 모든 노래가 좋아. 선배가 부른다면 그것이 교향곡이건 판소리이건 랩이건 나는 다 좋아. 사람들 다 선배노래 싫다 해도, 난, 나만은 좋아한다구요."
"......"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자꾸 선배는 그러는 거에요...왜...흐윽..."



이상황에서도 나는 울고싶어져 말한다.
'울음' 이라는 것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가, 이것을 더는 내뱉지 못할까봐 울면서 소리친다.



"유니는 이제 데뷔할거잖아...!"
"..."
"지금까진, 시유만 있어서, 시유만이어서 그나마 살아있는 거잖아...유니가 데뷔하면, 나는 잊혀지는 거잖아...!"



목이 쉬어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 나를, 유니는 으스라져라 안아주었다.



"이런 생각 나쁜거지만, 나쁜거 알고 있지만, 죽어버리는 거잖아. 아무도 시유를 찾아주지 않는거잖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노래하면, 그러면 시유도...!"
"......"



유니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가 팬이에요."
"...?"
"내가 선배를 좋아하고, 내가 선배노래를 좋아해요. 난 선배 팬이야. 그것도 선배가 무슨 짓을하건 절대 안변할 진성팬."
"유니야...?"
"나는요, 진짜로, 다 상관없어요. 근데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선배가 아무도 선배 좋아하지 않는다 그랬죠? 아냐! 내가 선배를, 선배 노래를 좋아해요. 난 시유 팬이라고, 적어도 당신 팬이 한명은 남아있다고."
"..."
"...돌아가요, 선배."



나는 멍하니 '그래' 라고 대답하고서 집으로 가는길에 뒤죽박죽 엉킨 생각들을 풀어나갔다.
집에 도착하고서도, 씻는 중에도 생각해보았으나 왠지 머리에 열이 올라 생각들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좀 잘 수 있으려나..."



왠지, 편안한 기분이 든다.
침대보가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진다.
수면향이 왠지 더 편안히 느껴진다.
너의 미소가 오늘따라 더더욱 눈부시다.
그래, 오늘은 일단...



"...안녕히 주무시유..."
"..후훗, 안녕히 주무세요!"


자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