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하늘이 노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이 무너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 손에 그 고귀한 피를 묻히게 된것이.

분노한 세상에게 나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냥]의 타겟이었다.

세상은 애초에 나를 받아줄,

그런 생각이 없었다.

결국, 나를 벼랑으로 밀어내고는,

그 더러운 웃음을 흘렸지.

아아, 황송하구나.

고귀하며 더러운 웃음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단순히, '칼 들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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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남 시점]

 

"우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해맑게 활짝 웃는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미소를 흘리게 되는, 그런 모습이었다. 정남 그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두려웠다.

왜, 그랬을까?

 

"으으..."

 

몸서리를 치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오직 하얀 색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살려줄까?"


​무언가 이상하리만치 검은 무언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던 그것은 난데없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단 하나는 확실했다.

내 온몸의 세포에 깃든 본능이, 알려주고 있었다. 아니, 간절히 외치고 있었다.

죽을거라고.

 

"너...뭐야?!"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멀어지려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내가 어딘가에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기도 전에 걷는 게 될리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뒤로 가려고 했다.

 

"모르는 사람보고 갑자기 반말이라니, 혼나야겠네.

아주 많이."

​ 

그러자 갑자기 내 발 아래가 벼랑으로 바뀌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이, 하얗기만 한 곳이었는데, 어떻게...?

나는 이미 뒷걸음질을 해버렸고, 나는 벼랑으로 떨어졌다.

 

"우아아아아악!"

 

그러나 벼랑은 그닥 깊지 않았다.

금방 다시 땅에 닿은 것이다. 마치 침대에서 떨어진 것처럼.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몸이 아팠다. 온 몸의 신경 하나하나가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커헉...너, 데체...큭!"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엔 예절교육을 확실히 해주지.

천박하고도 더러운 것아."

 

그러자 눈 앞이 엄청 환한 빛으로 물들더니, 그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후, 내가 누워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침대 위에서 떨어져 대자로 누워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네요. 일단 차에 깔리고도 가벼운 찰과상 외엔 멀쩡하니까...당장 퇴원해도 될 것 같군요. 그런데...괜찮으세요?"

 

그제야 나는 내 꼴이 어떤지를 자각하고 일어서서 몸을 털었다.

 

"아,네."

 

그보다, 가벼운 찰과상이라고? 거짓말. 난 다리가 찢겨나갔었어. 내 두눈으로 봤어. 말은 이렇게 해도, 나중에 자기들의 신 기술

덕분이라면서 무슨 서약서따윌 건네겠지. 의학이 참 좋아졌어. 참, 내가 무슨 참견이람.

 

"나 같이 천박한게."

"예?"

 

순간 머리가 생각이 끊어진 듯 혼란스럽고 아파왔다.

마치 잊었던 무언가가 떠오른 듯, 생각이 정리 되질 않았다. 일단은 이 곳을 어서 나가야 했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조종당하는 듯, 갑자기 이곳이 싫어진 것이다.

이곳이 두려워졌다. 무언가 사고라도 일어날 것 같아서, 어서 여길 뜨고 싶었다.

 

"퇴원증명서 좀 주시겠어요?"

"아, 그건 일층 안내데스크에서..."

"고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즉시 그 병실을 나왔다.

더는 들을 얘기도 없었다. 왜 그런진, 어떻게 아는 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무언가 위험했다.

 

"......"

 

엘레베이터와 계단.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엘레베이터를 타겠지만, 난 그러지 안았다.

그냥 무언가 불안했다. 난 계단을 타고 빨리 내려갔다.

위에선 무슨 호랑이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지금 그런걸 신경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301호, 퇴원이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익숙한 듯 착착 일을 진행했다.

마치 무언가 이 모든게 누군가가 짜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그래야했다.

느낌은 느낌일 뿐이니까.

 

"자, 여기 있습니다."

 

나는 퇴원 증명서류를 들고 병원을 나설 채비를 했다. 그리고 막 병원을 나서려는 찰나,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이봐요! 당신...헉헉.."

 

그 여자는 내 손을 세게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사람을 붙잡고 뭐하는 짓이지?

 

"당신...어떻게...헉...헉..."

 

그런데, 왠지 이 여자가 익숙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매우 익숙했다.

그러나 일단은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유는 몰랐다. 위층에서는 호랑이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그리고 또 하나 알 수 있었다.

이건, 누가 짜놓은 거다. 생각과 의식은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고, 무언가가 내 의식을 좀먹고 있었다.

무언가가 내 몸을 조종하려 하고 있었다.

 

"으윽..."

 

결국 나는 몸이 시키는 대로 손을 잡은 그 여자를 끌고 병원 밖으로 뛰었다.

다리가...말을 듣지 않았다. 안쓰던 근육을 막 쓰는 듯, 다리가 아파왔다.

지금 내 다리는,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불과 몇초만에 나는 병원과 몇백미터의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다..당신 데체...!"

 

내 손에 잡힌 그 여자는 매우 놀란 듯 보였다. 마치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없을 거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도 일어났다.

우리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은 분노에 찬 호랑이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고, 이윽고 엄청난 진동 과 함께

병원은 무너졌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운명이란 것의 이름은, 나에겐 '나'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주인'이란 것을.


 

                                                                                                     [ep1.운명이란 것의 이름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