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남 시점]

 

학교 수업은 재미없었고, 친구들은 거지같이 욕만 해댔다.

교사들은 잔소리만 퍼부었고, 급식은 맛없었다.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해서 더더욱 이상했다.

 

"이상해! 이상해! 아주 이상해!"

"그 저주 받은 입을 좀 다물어줄래. 니가 한마디 할 때마다 반경 10km이내의 모든 생명체가 너의 그 

 강렬한 입냄새에 죽어가거든."

 

친구라는 녀석이 나지도 않는 입냄새를 탓하며 반경 10km이내의 모든 생명체의 장례식을 예견했다.

이 녀석의 말은 맞은 적이 한번도 없어서 거의 도사급이다. 따라서 나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무튼 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오늘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랬다. 오늘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재앙' 이라고 불릴 정도로 운이 없는 녀석이라 가만히

있어도 재앙이 굴러 들어온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대재앙이 3~4번은 일어났었는데 오늘만 멀쩡했다.

 

"드디어...내 인생에도 봄이 오는가! 후하하하하하!"

"시끄러 짜식아. 입냄새 나 뒤지겠다고."

 

말로 하면 될 일을 괜히 폭력을 쓴 친구 덕에 얻어맞은 정강이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이제 내 불운이 떨어져 나간다면, 이정도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손에서 놓쳐버린 닭꼬치에게 만큼은 무한한 애도를 표했다.

시간은 오늘따라 그 무엇보다 빨리 흘러갔다.

나는 왠지 오늘따라 일이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따라 더 힘들었다며 찡얼대며 학원을 나서는 천성이를 따라 나는 사거리로 향했다.

그곳이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 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

 

천성이가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나 여친 생겼다."

 

그러자 천성이는 나를 한번 쓱 흝어보더니 마치 '오늘도 안됬구나, 불쌍한 놈' 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동정심이 가득 담긴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뭔데 그 표정은."

"아...아니다. 다 이해한다, 이해해."

 

뭐 딱히 여친이 생긴 것은 아니었으니 천성이에게 뭐라 하기도 그랬다.

그래서 이번 한번만은 참았다. 그러나 천성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너 오늘따라 기분 좋은 이유가 뭐냐고?"

"아...응?"

 

대충 둘러대기엔 너무 날카로운 그 눈빛. 그러나 난 그냥 대충 둘러댔다.

저 놈은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다.

게다가 이런 말은 친구에게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진솔하고 소중한 친구면 몰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친구라는 것은 본디 불신과 배신으로 이어지는

관계이니까. 통수 치는 맛이 좋아서 그저 '친구' 로 이름 붙일 뿐.

나는 내 비밀을 한번 말해줬다가 저 놈이 그걸 다 퍼트려서 중학교 시절 내내 놀림받고 살았다.

그런 소중하고 불신하는 친구에게 이런 일을 말하면 안되지.

 

"아, 다 왔다."

 

드디어 집이다. 이 횡단 보도만 건너면 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어서 무단횡단해도 될 듯 했으나 어차피 신호등이 푸른 불을 내뿜고 있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천성이는 건너지 않았다.

 

"천성아! 왜 안 오냐? 이젠 붉은 색과 푸른 색도 구분을 못하냐?"

 

그러나 천성이는 뻣뻣하게 굳은 채 얼굴까지 새하얗게 질려서는 겨우 입술을 떼었다.

 

"너..옆에..."

"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둔탁한 무언가에 온몸이 튕겨져 나갔다. 온몸이 단 한 군데도 빠짐없이 피멍이 든 듯 아파왔다.

 

"크으으으윽!"

 

그러나 고통도 잠시, 고통은 서서히 밀려 나갔고 졸음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졸......리다.'

 

졸리다. 그게 다였다. 이윽고 이 편안한 느낌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 머릿속이 울리며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색과 푸른색도 구분을 못한다고?"


이 목소리는 뭐지. 머리가 웅웅 거리며 울렸다. 머리가 세게 조이듯이 아파왔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소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구분을 못하다니, 어이없네. 이봐, 진짜로 구분을 못하는 건, 너야."

 

"콰직!"

"허억......!"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옴과 동시에 무거운 무언가가 내 두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

너무 나도 큰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이 찢어져 피가 나오고 있었기에 피로 목이 잠겨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 따라 운이 좋다 생각했는데......오늘 따라 모든 게 완벽했는데......

이걸 위해서 그런 거였나......

 

                                        [1화-운명이란 것의 이름上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