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녀석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검끝을 쥔 손이 떨렸다.

 

-파파팍!

 

나는 검끝으로 바닥을 파냈다. 검끝에 메달린 흙덩이들이 녀석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은 그렇게 외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눈은 꼭 감고 칼을 가로로 눕혀서 휘둘렀다. 확실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녀석다웠다.

목숨을 걸고 벌이는 혈투에서 눈을 감다니. 그건 정말 상상도 못할일이다. 하지만 녀석은 해냈고 나는 당황했다.

옛날의 버릇은 모두 버린줄 알았는 데. 아직 멀었나 보다.

 

-서걱!

 

가슴팍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피했다고 생각했었는 데, 가슴팍에 칼을 맞아버렸다. 허벅지에 경련이 나서 생각했던 것보다 행동이 느렸던 탓이었다.

 

-꺄아아악!

 

뒤에서 유모로 추정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도 깨달은 것이다. 방금전의 한수로 인해서 승패가 갈렸다는 것을.

곧 있으면 짐승의 칼이 어린아이들을 헤칠것이다. 그렇게 놔둘순 없었다. 그것만은 안되는 일이었다.

 

-제발...!

 

나는 가슴팍에서 검은 피를 뿜어내며 애원했다. 하지만 녀석은 바닥에 누워있는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않았다.

 

저벅저벅.

 

쓰러져 있는 내 옆으로 녀석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는 놈의 칼에서 흘러내린 핏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세웠던 몸을 돌려서 하늘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푸른 하늘이다.

 

이런날씨에 죽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날씨였다.

 

-죽고싶지 않아!

 

나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에서 끓어오르는 피가 그것을 막았다. 

 

크륵...크륵...

 

앞선 청년에게서 들렸던 피끓는 소리가 내목에서도 들렸다.

 

젠장.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는 데.

 

눈앞이 흐려지면서 그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석원아! 정신차려라!

 

눈앞에 피칠갑을 한 사형이 내 어깨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 뒤로는 시뻘건 불길들이 치솟아서 건물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으어어...

-석원! 너만은 반드시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사형...사형 살려주세요 사형...

-그래. 살려주마. 반드시 살려주마.

 

사형은 내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손에 검을 들려줬다. 문파를 이끌어갈 이들에게만 하사된다는 검이었다.

나따위는 죽어도 갖지 못할.

 

-저기다!

 

적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사방에서 검은색 복면인들이 우리를 향해 덮쳐왔다.

 

쉬쉭!

 

그들은 바람과도 같았다. 그만큼 날랬고 수가 많았다. 앞에서 나타났다 싶으면, 뒤에서도 나왔다. 옆에서 칼을 들이밀다가 어느새 다시 물러나 있었다.

 

채채챙!

 

사형은 그들의 검을 모두 쳐내고 찌르고 비틀었다. 사형의 검이 한번 빛날때 마다 복면인들이 피분수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석원아! 내 뒤를 놓치면 안된다! 죽을 각오로 따라붙어라!

 

사형이 길을 뚫으면, 나는 이를 악물고 쫒아갔다. 

멍청하고, 등신같은 나였지만 그길이 내가 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적들의 추격이 뜸해졌다. 사형과 나는 그 지옥같은 곳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너는 이쪽길로 곧장 가거라. 가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향하거라.

 

사형이 검을 털어서 핏물을 털어버리며 말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형은요! 사형은 같이 안갑니까?

 

그러자 사형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이대로 갈 자신이 없구나. 이대로 등을 돌려서 저들을 두고 갈 엄두가 안나.

-사형...!

-너는 속 좋은 놈이니 잘 살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하겠다.

 

사형은 그러면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힘없이 밀려갔다. 그길로 끝이었다.

사형과 나는 그 뒤로 다신 보지 못했고, 내가 사형의 소식을 들은것은 그로부터 4년 후였다.

 

마교의 최정예, 질풍타격대의 급습으로 인해서 풍월방이 전멸했다!

 

내가 그것이 내가 들은 사형의 소식이었다. 사형은 그 길로 다시 놈들에게 돌아갔으므로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사형은 나처럼 비굴하게 살아남을 위인이 아니었다. 늘 공명정대했으며 올바랐다. 병신이라고 무시 받던 나와는 다르게 사형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늘 옳은 사형이었다.

 

하지만 그 사형도 틀린 것이 있었다.

 

너는 속 좋은 놈이니 잘 살수 있을 것이라는 말.

 

그말은 완전히 틀렸다. 나는 잘 살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술에 빠져 살았으며, 내가 배운 검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어버렸다. 고매하고 숭고한, 높았던 검은 사람을 죽이는 추악한 칼로 변해버렸다.

 

나는 복수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때로는 사람을 죽이며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했다. 때로는 술을 마시며 다 잊어버리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할것이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그런 내게 때마침 좋은 소식이 들렸다.

 

무림맹이 마교의 섬서비밀지부를 급습한다! 

 

정도 무림의 한축이었던 풍월방에 대한 복수이자 반격의 신호탄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작전에 지원했다. 그렇게 라도 해서 내 마음의 빚을 씻을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좋았다.

 

수많은 군웅들이 몰려들었다. 사실 급습 이랄것도 없었다. 대놓고 무인들을 모집하고 급습에 대해서 떠들고 다녔으니.

 

-이번 기회에 내 별호를 강호에 널리 알릴것이오!

-간악한 마교놈들 에게 정의를 알려주겠소!

 

군웅들은 이렇게 떠들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군웅들 중에서도 죽기 위해서 작전에 참가했다는 자들은 한명도 없었다.

 

-대협은 왜 이 작전에 지원했소?

 

칼을 갈고 있던 내게 누군가 물었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죽기 위해서 지원했소.

-죽기 위해서?

-나는 이 작전에서 죽을 겁니다.

-하하! 각오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정도무림이 바른 뜻을 펼수 있는 것이 겠지요.

 

사람들은 내말을 들으며 감탄했다. 참으로 비장한 각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내말은 각오 따위가 아니였다. 나는 정말로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살았다. 빌어먹게도 질긴 명줄은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려고 마음 먹었음에도, 내몸은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쳤다.

 

탁탁!

 

누군가 내 볼기짝을 거세게 쳐댄다.

순간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오며 눈이 번쩍 떠졌다. 죽기전에 봤던, 그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었다.

 

-대장님! 일어났습니다!

 

내 볼기짝을 툭툭 때리던 남자가 소리쳤다. 그 사이에도 하늘은 계속 이동했다. 내가 땅바닥이 아니라 마차위에 있는 것 같았다.

등이 베기고, 길의 험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걸 봐서는 소달구지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드오?

 

대장이라 불린 사내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몽사몽한 내 정신은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내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의 사물들을 파악했다.

 

-무기는 없소. 내가 치웠으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해드릴테니.

 

칼을 찾으려 꼼지락 거리던 내 손가락을 본 사내가 말했다. 나는 가래를 옆으로 뱉어냈다. 검은 피가 섞인 걸쭉한 가래가 나왔다.

 

-내가 살아있는 것입니까?

 

내 질문에 사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살았다오.

 

그 뒤로 사내는 자초지종을 내게 설명했다.

내 가슴팍을 베어버린 녀석은 그대로 이 사람들의 화살을 가슴에 맞고 죽었댄다. 이 사람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근처 철야방 무인들이었다.

 

-감사하오. 그대의 용기가 두명의 어린아이를 살렸소.

 

사내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 라...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을 만한 사람이던가? 나는 항상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살아왔다. 사형의 죽음, 악당들의 죽음, 황림방 표사들의 죽음, 신진고수의 죽음... 수많은 죽음 위에서 나는 살았다.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소. 혹시, 4년전 마교의 섬서지부 급습작전에 참가한적이 있었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많이 했더니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석원! 살아 있었구만! 내 생명의 은인!

 

사내는 4년전 작전에서 내가 살린 사람이었다. 그 당시 다리가 다쳐서 쓰러져 있던 그를, 빗발치는 화살비를 뚫고 내가 구출했었다.

 

화살비 속에서 죽으려고 했던 짓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와서 내 목숨을 살릴줄은 몰랐다.

 

-반가워,  화월량.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