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소월을 만난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녹림채에서 내게 의뢰한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휴식을 가지려던 참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눈하나 깜짝 안하던 나였지만, 그런 나로서도 그해 여름의 일은 너무 힘들었다. 그만큼 녹림채에서 받은 의뢰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했다.

-초가산 길목을 지나는 모든이들을 죽여라!

그것이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받은 의뢰였다. 뭇 사람들은 그런 의뢰를 받는 다면, 손사레를 치고 질색을 하며 뒷걸음질을 할것이다. 그도 아니면 조금더 음흉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던가.

-액수가 얼마요?

하지만 이런 자들은 모두 하수다. 누군가 이런 의뢰를 맡겼을때는 다 그만한 대가를 지급한다. 되려 하수들처럼 어설프게 금액을 올리려 입씨름을 하다가는 머리에 철퇴를 맞고, 어느 야산 깊숙한곳이 파묻히거나 들짐승의 밥이 되는 것이다.

물론 거절을 해서도 안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그대들이 이런 의뢰를 내렸다고 생각할때, 거절한 이들을 살려주겠는 가? 어디가서 나불나불 떠들어댈지도 모르는 살인청부자를? 아닐것이다. 나라면 조금의 기미라고 보이는 그 순간에 육젓을 만들어서 산천에 뿌릴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의뢰를 수락했다. 사실, 수락하고 말것도 없었다. 내용을 듣는 순간, 이미 내가 초가산을 지나는 모든 것들을 죽여야 한단것은 사실이 되어있었다.

처음은 비단을 나르는 표사들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황림방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등뒤에 칼을 숨기고 다가오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며, 언제한번 술이나 같이 하자고 떠들어댔다. 녹림채의 이름은 길사람들에게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보호와 약탈. 참으로 상반된 의미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이 두가지 상반된 의미를 가르는 것은 통행세다.

그들은 통행세를 냈으니 거리낌없이 우리를 대했던 것이다. 통행세는 녹림에게 표하는 예의이고 존경이다.

서걱!

초목이 우거진 한 여름 태양아래서, 우리의 첫번째 일은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표두의 오른팔을 베었다. 표두는 바닥에 뒹구는 팔을 보고서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나는 내지른 칼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돌려서 표두의 목을 베어냈다. 한여름의 눅진한 바람이 피냄새를 덮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

표두의 뒤쪽에서 다시 한번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병신들. 나는 병신들을 비웃으며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제서야 그들은 병장기를 빼들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들을 향해 달려가는 바람사이로 쇠맛나는 피냄새가 났다. 한여름의 눅진한 바람도 비린내를 감추진 못했다.

-쳐라!!

누군가 소리쳤고, 초가산의 한적했던 통행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악을 내지르며 찔렀다. 베고, 찌르며, 비틀었다. 시끄러운 창칼소리에 비명소리는 묻혀버렸다. 눅진한 여름의 공기는 그 모든것들을 묻어버렸다.

솨아아. 

한차례 차가운 바람이 불었을때, 통행길 위에 서있는 사람은 우리들 뿐이었다. 서른명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뜨거운 고깃덩어리로 뒹굴었다. 울컥울컥. 뜨거운 피가 역동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제 어떻하지?

일행중 한명이 물었다. 나는 뺨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놔두자.
-악취가 날텐데.
-그냥 놔둬.

우리의 의뢰는 초가보로 들어오는 사람을 치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행로에 고깃덩어리들이 나 뒹굴어 다닌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는 고깃덩어리를 썩게 한다. 

나는 악취가 한여름의 싱그러운 풀냄새를 덮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말은 정 반대였다.
나는 악취가 흐릿해져가는 내 정신을 일깨워주길 바랬다. 피에 미친 살인귀가 되지않도록, 이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었다. 나는 이 썩은내 진동하는 악취를 맡고, 사람들이 오지 않길 바랬다. 눈치빠른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려 도망가길 바랬고, 개중에 용감한 누군가가 관아에 신고를 해주길 바랬다.

내 뒤틀려진 바람이 무색하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두번째는 표가장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남녀두쌍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는 데, 귀티가 줄줄 흘렀다. 아마도 가주의 자식들이나, 그들의 애인들 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길잃은 나그네처럼 굴었다. 얼굴에 악취나는 흙을 묻히고, 다리를 절었다. 나는 장애인 행세를 했다. 그편이 철모르는 도련님과 아가씨의 측은함을 얻어내기에 좋았다.

두명의 남자는 우리를 보고 질색했다. 더러운 벌레를 보듯했다. 천지에 진동하는 고기썩은내가 우리들에게서 나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병신들. 나는 병신들을 비웃었다.

챙!

나를 측은하게 여기려던 여자의 목을 치려고 할때 앞선 사내가 내 칼을 쳐냈다.

-고수다!

나는 소리쳤다. 다섯발자국 뒤에서 내 칼을 튕겨냈다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치잉!

칼과 칼이 부딪혀서 길게 울었다. 아주 길게 울어서 내 손아귀까지 울려버렸다. 사내의 힘은 거대해서 내 손아귀를 갈갈히 찢어놨다.

-이런 건방진!

사내는 내 칼을 쳐내고 내 가슴팍을 쳤다. 숨통이 끊어지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맞는 순간에 허리를 뒤로 쭉 빼음에도 격통은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사내는 내 몸이 날아서 땅에 떨어지는 찰나에도 두명의 사람을 베었다. 그들은 가슴팍에 피분수를 내며 허물어졌다. 

나는 입안에 마른 흙을 머금었다. 그리고 혀를 쭉빼서 내 침과 흙이 섞이지 않게 했다. 입안에 물컹한 무언가가 씹혔다. 내가 죽인 고깃덩어리인가?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돼지고기건 사람고기건 그게 무슨 소용이랴.

타다닷!

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나는 사내의 뒤를 잡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짧게 울었다. 버틸만 했다. 사내의 검을 타고 오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열셋을 베고도 사내는 피로함만을 느꼈다. 괴물.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괴물이었다.

-후웁!

사내가 짧은 호흡소리를 뱉었다. 혀 깊은곳의 단내와 한여름의 악취가 한데 뒤섞여서 내게 닿았다.

-퉷!

나는 사내의 얼굴이 가까이 왔을때 흙을 뱉었다. 분명히 머금을 때는 한움큼이었는 데, 금새 입천장과 혀뿌리에 달라붙었는 지 나오는 것은 반에 반도 안되었다.
하지만 그정도면 충분했다. 마른 흙이 사내의 눈을 가리고, 검을 흐리게 하는데에는 충분했다.

-이런 버러지가!

사내가 눈을 비비며 뒷걸음질 쳤다. 확실히 빠른 속도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굵은 모래알갱이들이 어금니 사이사이에 박혔다. 입안이 씁쓸했다. 머금은 모래알갱이들 때문인가? 아니면 한창때의 남녀를 죽여야 해서 그런가?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게 버러지의 싸움이다!

터질듯한 허벅지를 단단하게 박고 검을 휘둘렀다. 언젠가 내 스승에게 배웠던 그 대로였다. 하체에서 힘을 모아서 허리에서 폭팔시킨다. 칼을 쥔 손은 그 폭팔을 그저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스승에게 배웠던 칼이었고, 살인청부업자로서 10년을 넘게 버텨온 나의 검술이었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는 빛살같은 칼이 따랐다. 내 칼은 사내의 검을 뚫고 목을 베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고 싶지 않은 피냄새가 났다.

-크륵...

피끓는 소리가 사내의 목에서 났다.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데, 뿜어져 나오는 피가 그것을 막았다. 짜증났을 것이다.

-너는 누구냐.

사내가 물었다.

-글쎄. 살인자?

한번쯤 이런 말을 해보고 싶었다. 겉으로야 살인청부업자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그것을 부정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란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피냄새를 맡을때, 내 몸은 차분해졌다. 내가 죽인사람 앞에서 나를 내려놓으면 조금은 편할까 싶었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고, 녹림채의 의뢰는 힘들었다.

사내는 그것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젓다가 쓰러졌다. 그것이 신진고수의 마지막이었다.

쉬익! 서걱!

남은 세명의 남녀는 그길로 고기덩어리가 됐다. 일행은 다시한번 물었고, 나는 놔두라고 했다. 한층 더 고약해진 악취를 맡고 도망가길 바랬다. 그게 내 바램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은 잠잠했다. 내 바람이 통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더이상 누군가가 죽지않는 사실이 좋았다. 일행들은 툴툴거리며 '이러다가 의뢰비를 못받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겉으로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멤돌았다.

그 뒤로 일주일이 흘렀다. 그사이에 장마가 왔다. 뜨거운 비는 눅진하게 우리를 적셨다. 바닥이 진흙탕이 되었고, 공기는 더욱 습해졌다.
그리고 세번째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두명의 여자아이와 늙은 여자. 그리고 칼을 찬 호위 무사들이었다.

-젠장!

나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아이들은 이제 5살이나 됐을 법한 나이였다. 그들은 짐마차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지루할때면 유모로 추정되는 여자의 손을 잡고 걸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떼를 쓰다가 등뒤에 업혀서 잠이들었다. 그런 아이들이었다.

나는 간절히 바랬다. 제발! 제발 이 악취를 맡고 도망가 달라고. 내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들어내기 전에 도망가 달라고. 아니, 모습을 들어내고 칼을 빼기 전까지 도망가라고. 쫒지 않을테니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툭툭.

일행이 검손잡이 끝으로 내 등을 찔렀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때, 그들은 짐승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이 틀어지면 너라도 베어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들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초가산의 통행길에, 이 빌어먹을 지옥길에 저들이 들어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칼 손잡이를 매만졌다. 죽일까? 문득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내가 검을 뽑아서 이들을 모두 죽일수 있을까? 눈 두번 깜빡할 새에 세명까지는 죽일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지? 짐승들이 칼을 빼들고 내 몸을 난도질 하겠지. 나는 그 뒤로 어설프게 버티며 3명을 더 베어버리고 죽을 것이다.

-이자식...

일행이 내 생각을 눈치챈듯 했다. 이제 내 머릿속의 계획은 쓸모없는 것이 되버렸다. 일행은 내 눈치를 보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간다고. 재촉하지마, 오래 앉아있었더니 쥐가 난것 뿐이야.

나는 일행을 째려보며 말했다. 짐승들은 그때까지도 짐승의 눈빛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앞서 죽은자들이 봤을때, 나도 이랬을까? 나도 짐승의 눈빛을 했을까? 두렵다. 사람들에게 내가 짐승으로 비춰지는 것이 두렵다.

-길좀 묻겠소.

나는 두명의 어린아이앞에 섰다. 두명의 호위무사는 검집에 손을 올리고 내게 다가왔다. 그래, 그게 호위무사의 역활이다. 지금이라도 내 시커먼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를 베어줘. 나는 간절하게 외쳤다.

-길을?

수염이 멋드러지게 난 무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속에 숨겨진 악의를 알아차려줬으면 했다. 한적한 초가산의 통행길에서 길을 묻는 사람을 의심해 주기 바랬다.

하지만 호위무사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병신들. 이 병신들아! 나는 소리쳤다. 왜 하나같이 이곳에는 병신들밖에 오지를 않는 건지.

-철야방의 서북 지부로 가고 싶소. 거기에 맡겨놓은 물건이 있어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수룩한 나그네의 모습이었다.

-거긴 내가 잘 알지. 우리 형님이 거기서 일을 하시거든.
-그것 참 다행이오. 그러면 길을...

나는 뒷말을 흐렸다.

솨아아아...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소리를 냈다. 그들의 선의는 한여름의 바람에 묻혔다.

서걱!

다시 한번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검을 쥔 손아귀가 떨렸다. 몸이 피로한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피로했다. 녹림채의 의뢰는 너무나도 고약했다. 고작 살인청부업자인 내가 따저 물을 말은 아니었지만, 무엇때문에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을 베는 것과. 물론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이건 순전히 내 기준이었다. 아무튼 그런 자들을 베는 것과 일반인들을 베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을 죽이면서 내가 중얼거렸던, '죽어 마땅 할자를 죽이는 것이니 아무렇지도 않다.' 는 위로는 통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두명의 호위무사는 실력이 좋지 않았다. 내가 앞선 자의 팔을 베고 목을 벨때까지도 반응하지 못했다.

-채챙!

내뒤에서 칼들이 튀어나왔다. 짐승들의 칼은 호위무사의 몸을 난도질 했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나 까지 칼을 내지르면, 호위무사가 빨리 죽어버릴까 두려웠다.

-으아앙!

아이들은 우렁차게 울어댔다. 울음소리는 창칼들의 스산한 소리를 뚫고 나왔다. 조용했던 통행길에 울음소리가 울렸을때, 나는 검을 다시 쥐었다.

-도저히 못하겠다.

나는 칼을 뒤로 내질렀다.

-푸우욱!

칼이 근육을 가르고 시원하게 나아갔다. 외마디비명도 없었다. 칼을 맞은 녀석은 그냥 그렇게 쓰러졌다.

-이 개자식이!
-홍윤이 배신을 했다!

짐승들이 울어댔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일을 시작한 이상, 승자는 내가 되어야 했다.
눈을 향해 칼이 들어왔다. 녀석들의 칼은 살기가 흉흉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칼. 그 목적에 충실한 녀석들이었다.

-채챙! 치잉!

칼을 쳐내고 곧바로 찔러들어오는 두번째 칼과 맞댔다. 칼이 길게 울었다. 칼을 놓친것은 상대였다. 나는 곧바로 검을 가로로 휘둘러서 놈을 베었다. 놈은 목을 부여잡으며 허물어졌다.

벌써 두명을 베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시작이 좋았다. 이럴줄 알았다면 두명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싸웠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살인귀 주제에 같잖은 동정심은!

녀석들이 나를 보며 웃었다. 손이 하나 줄었으니, 의뢰금을 더 두둑히 받을것이다.

-동정심? 웃기고 있네. 나는 그저 돈이 더 필요한것 뿐이야! 내가 니들과 같은 보수를 받는 게 말이 안되잖아?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편이 서로에게 유리했다. 사치스러운 감정이 섞인다면 검이 흐려진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휘이잉.

한차례 바람이 불때마다 내 몸엔 상처가 생겼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벌써 내 앞에는 다섯명의 고기덩어리가 뒹굴어 다녔다.

-젠장! 도대체 왜 이짓거리를 하는 거야!

짐승들중 한명이 울어댔다.

-일이 끝나고 해도 됐잖아! 아직 1주일이나 남았는 데, 굳이 이렇게 해야겠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서 말했듯이 나는 돈이 더 필요했을 뿐이야.
-이렇게 하자! 홍윤, 너에게 죽은놈들의 몫을 조금 더 떼어주겠어. 그걸로 마무리를 짓자.

놈들은 내게 협상을 제의해왔다. 내 시야는 흐려지고 몸은 비틀거렸지만, 검은 흐려지지 않았다. 놈들은 다음번 희생자가 자신이 될까봐 두려워 했다. 형세는 안좋았지만, 기세는 좋았다.

-얼만큼?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이렇게 라도 해야 조금 더 시간을 끌수 있었다.

-금 닷냥! 3할을 보장해줄께!

나는 피식 웃었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구라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제 놈들이 3할을 퍽이나 넘겨주겠다. 아마 그것을 받으려 할때 칼을 들고 나를 덮칠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애초부터 줄 생각이 없거나.

놈들역시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듯 했다. 서로에게 의미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둘다 끝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뒤로 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싸움은 둘중 하나가 죽어야만 했다. 내가 죽거나, 저 녀석들이 모두 죽거나.

스릉!

검이 울어댔다. 피맛을 보게 해달라는 듯, 스산하게 울어댔다. 내 등에 흐르던 땀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야앗!

놈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오른발을 반발자국 빼고, 자세를 잡았다. 침착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을수 있다. 나는 입으로 웅얼거리며 녀석들을 맞이했다.

푸우욱!

나는 먼저 달려오던 놈의 검을 맞아줬다. 차가운 검이 달궈져있는 내 몸으로 들어오자 시원함이 느껴졌다. 상대의 검은 내 복부를 손가락 반마디 정도 뚫고 들어갔다.

-뭐야?

상대가 물었다. 왜 이렇게 허무하게 공격을 맞아주냐는 뜻이겠지.
나는 미소로 답했다.

-저승사자!
하얗게 질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검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렀다. 녀석뿐만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놈들까지도 한번에 베어버릴 요량이었다.

촤아악!

뜨거운 피가 내 얼굴을 덮쳤다. 썩은 고기냄새와 비릿한 피냄새가 섞여서 내 코를 괴롭혔다. 젠장. 이냄새는 죽을때 까지 못 잊을것 같다.
두놈이 가슴팍에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지독한놈!

내 앞에 서있는 놈은 질색을 했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뭐해 안덤비고?

허세를 부려야 했다. 사실, 난 평소에 허세 부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부류중에 한명이다. 왜냐하면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면서 허세를 부린다는 건, 내 손에 죽어버린 놈들을 비웃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삿갓을 눌러쓰고, 바닥을 보며 걸었다. 싸움이 일어나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으며 혹여나 불똥이 튀겼을때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허세를 부려야 할때였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부리는 허세라면, 내 손에 죽은놈들이 이해를 해줄것만 같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녀석은 쉽사리 들어오지 못했다. 내손에 죽은 놈들만 7명이었다. 

-왜 겁나?
-허세는.
-그럼 들어와. 창자부터 깔끔하게 갈라줄테니까.

검을 쥔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스승님께 배운 검술은 너무 내력 소모가 심했다. 원래는 이런용도로 쓰이는 검술이 아니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검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검술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 짓을 하고나서부터 검술을 내 손에 맞게 변형을 시켰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변형을 시키진 못해서 내력소모가 심했다.

-...여기서 그만하자.

녀석이 먼저 두손을 들었다.
나는 눈을 굴려서 녀석의 말이 진심인지를 살폈다. 항상 눈을 보면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 지 진실을 말하는 지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