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이 작품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 및 불펌, 허가없는 2차창작을 금합니다.※




가온은 문득 자신이 무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해야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감각에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어딘가로 막 달려가고 있었단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마음먹은 후, 발에 힘을 주었다.

 

음속을 넘어 번개, 즉 뇌신의 힘으로 빛의 속도로 달리던 그의 두 발이 땅을 박차며 멈췄다.

 

붉고 끈적한 액체를 사방에 튀기며 가온이 급정지했다.

 

......응? 붉고 끈적한 액체?

......피?

 

 

 

"어?......이거, 피...?왜, 내 손에...?"

 

 

 

그랬다,

 

에너지를 흡수하고 "칼로리" 로 변형되버린 에너지조차도 모조리 다시 에너지로 변형시켜 다뤄내는 가온이다.

 

그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분노" 라는 감정이 에너지화되어 흡수되었다.

 

이로써 그는 일시적으로, 푸른룡 《뇌신》을 대할 때, 부모님께 믿음을 잃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저, 그들이 이해돼지 않았을 뿐이다.

 

대체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한것인지. 그저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일뿐.

 

"분노" 같은 강렬하고 위험한 감정은 마치 양날의 검과 같아서, 강한 분노는 자신도 모르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준다.

 

그러나 결국 이성을 잃고 마구 날뛰게 되어,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양날의 검인 것이다.

 

그러한 에너지는 흡수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인간의 감정은 매우 복잡한 것이라서, 그렇게 흡수한다고 해도, 그걸 완전히 에너지화 해서 써버리는건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그 감정을 일시적으로 가둬놓는 정도다.

 

그러다가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면, 결국 폭주하고 마는 것이다.

 

뇌신과의 만남이 그랬고, 부모님을 살해했을 때에도 그랬다.

 

뇌신과의 만남은 그나마 심층세계에서의 일이라지만, 여긴 현실이다.

 

그는 부모를 죽인 패륜 살인범이 되는 것이다.

 

안그래도 겨울의 죽음과 뇌신의 손에 놀아나 몇만, 몇억번을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한 가온에게, 연이어서 일어난 부모의 불신과 매도는 타격이 컸다.

 

결국, 그의 한계를 넘어버린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정신이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그는 마치 미쳐버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두 발에 힘이 풀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때마침 인적이 드문 이 골목길에는, 누구하나 보는 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인 듯 했다.

 

그의 눈앞이 킴캄해져, 그의 정신이 심층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찾았어. 드디어 찾았어. 유가온, 너를 계속 찾아다녔어."

"......"

 

 

 

가온은 말없이 그의 정신세계를 구축해 그의 손에 푸른 스파크를 두르고 왼손의 동맥을 끊어 피의 창을 만들어 쥐었다. 가온이 이렇게 경계하는 이유는 눈앞의 존재가 이미 죽었을 터인 뇌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크기와 위용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부모를 죽였다는 정신적인 충격에, 두 눈에 눈물을 맺히면서도, 뇌신을 계속 노려보며 경계하고 있는다.

 

그런 가온을 보고 뇌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나는 뇌신이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뇌신이 만들어낸 간절한 "욕망" , 그것이 구체화된 것이랄까."

 

 

 

가온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런 가온을 보며 한숨을 내쉰 뇌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일단 보도록 해. 어차피 나는 뇌신의 '욕망' 이라는 더러운 감정이 구체화된 것이라 그닥 오래 가진 못해. 그저 네게 전해줄 것이 있어서야."

 

 

 

가온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자세로,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낱낱이 네게 들춰내주지. 너의 그 추악한 점. 너의 그 악랄한 점. 너의 그 가장 고통스러운 추억을, 네게 선사해주겠어. 그것이 지금 내 존재의 이유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아줘."

 

 

그러고는 갑자기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그래, 이건 분명히, 가온의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의 기억이었다.

 

 

 

              ***

 

 

 

가온.

 

그에게는 소꿉친구가 세명이 있었다.

 

그중 두명은 여자, 한명은 남자애로, 여자애는 이겨울, 임연주였고, 남자애는 이선우라는 아이였다.

 

모두들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중 임연주와 이선우는 서로 알콩달콩 달달한 나날을 유치원때부터 보내왔는데, 놀랍게도 이 둘, 안사귄다.

 

서로 좋아는 하는데, 서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만년 썸만 타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 답답했던 겨울이 막무가내로 둘을 밀어붙여 키스시키려 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 둘의 새빨개진 얼굴은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사실 겨울도 가온에게 수없이 어필해왔으나, 둔감계 올 Max를 달성한 가온에게는 통하질 않았다.)

 

그들이 살던 마을은 세상과는 단절된 곳으로, 이따끔씩 왕도에서 최소한 아리스 왕국의 소속인 영토라는 것의 증명을 위하여 1년에 1번씩 오는 것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런 외진 곳까지 오진 않는다.

 

이곳으로 오는 길은 죄다 산길이고, 게다가 엄청 험하다. 산에는 온갖 잡귀와 마귀로 들끓고 있어, 그야말로 목숨이 몇개씩 있지 않는 이상,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왕국에서 파견된 정예부대조차도 올때보다 최소 절반 이상은 줄은채로 왕도에 돌아간다는 것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보통이 아닌 것들만 득실대는 듯 하다.

 

선우는 이런 외진 곳에서 언젠가 사람들을 탈출시켜주겠다며, 10살 무렵부터 어디선가 《백마:백마법의 시초》라는 말도안돼는 책을 갖고와서는 백마법을 배워 저 마귀들을 무찔러주겠노라고 선언하고 다녔다.

 

그러나 선우에게는 정말로 재능이 있었던 듯 하다.

 

선우가 이제는 주문을 외면 선우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떠오르는 정도는 된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우의 아직 미숙한 백마법에 겁을 먹은 건지, 하급 마귀와 잡귀가 선우를 노리고 숲과 산을 떠나 마을 내부로 침입했다. 마을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선우의 주변에서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선우를 저주받은《흑마의 아이》라고 하였다.

 

이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는데, 바로 언젠가 마을에 복수의 화신이자 파괴의 화신인 《흑마》라는 악신의 아이가 나타나서, 마을에 큰 재앙을 불러들이리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만 듣고보면 선우는 말 그대로 흑마의 아이같았다. 그러나 어찌 흑마의 아이가 선량한 신인 백마의 은혜인, 백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가온과 그의 친구들의 말을 마을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선우를 짚더미속에 넣어 기름을 붇고 불을 붙여 화형시키고는, 그것을 "제물" 이라 칭하며 선함을 담당하는 신인 《백마》에게 보내는 제사를 올렸다.

 

그런게 있다해도, 선함을 담당하는 신이 동족을 살해해 바치는 제물을, 곱게 볼리가 없잖은가.

 

애초에 생명을 죽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매사에, 마을 안에 갇혀 살아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참인데, 이젠 그 마을마저 없어진다고 생각하자, 그들은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천벌이 내려졌다.

 

임연주의 그 긴생머리가 공중에 떠올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로 엉켰다, 풀렸다 하면서 복수의 화신, 《흑마》와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중한 친구를,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슬픔이 분노의 화신을 깨워버린 것이다.

 

임연주는 단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마을사람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온몸에 피와 내장을 뒤집어 쓴채 웃고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분노의 화신이자 그 미친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웃어대며 자신을 타이르려는 그 모습은, 어딘가 매우 슬퍼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공포에 떨며 숨어있던 그와 겨울을 발견하고는, 이내 굳어졌다가, 마침내 그 웃음을 날려버리고는 몰려오는 슬픔을 견뎌내지 못하는 듯한 얼굴로 눈물을 쏟으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아...저기, 얘들아..."

 

 

 

 

그러나 너무 울어 목이 매었는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가온과 겨울은 겁에 질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자리에는 어마어마한 허무감만이 남아, 연주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음날, 결국 연주는 마을을 떠났다.

 

사랑하던 이가 죽은 장소라면, 그때의 일이 계속 떠올라 괴로워진다면, 떠나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손으로 그 마을 사람을 모두 죽여버렸다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던 친구들은 그녀를 두려워하며 거리를 벌렸다.

 

결국 연주는 떠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가온은 선우가 죽어 재만 남은 제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을사람들이 떠오르자, 울분에 차서 제단을 걷어 차 버렸다.

 

산사람을 제물로 바쳐야만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종교따윈,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가온은 이윽고 겨울과 함께 연주가 전날 밤, 마지막으로 마을에 머물렀던 방을 찾아갔다.

 

그 방의 벽에는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선우가 죽었어. 선우가 죽었어. 마을사람들이 죽었어. 모두 죽었어. 내가 죽였어. 나는 살인자야. 나는 쓰레기야. 애들도 나를 피해. 걔네도 내가 무섭나봐. 나는 걔네가 나를 피하는게 더 무서웠는데. 나는 선우가 죽는 게 더 무서웠는데. 아아, 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 이렇게 무서울 바에는, 차라리 죽고싶어.'

 

 

 

가온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다가, 마침내 눈물을 터트렸다.

 

울분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마을사람이 모두 죽은것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럼 전설에 비추어볼 때, 흑마의 아이는 아마 선우가 아닌 연주였을 것이다.

 

허나, 그런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엔 어린애였다.

 

아이였다.

 

마음이 여리고 고운, 소녀였다.

 

살인을 하고,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두려웠을 것이고, 도움을 바랬을 것이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가온과 겨울이, 그녀를 다독여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녀에게 어떻게 행동했던가.

 

그때, 손을 내밀어 그 눈물을 닦아주었더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마을을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까.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제야 가온은, 소중한 친구였던, 가족과도 다름없던 친구를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되었다.

 

임연주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온, 그에게 있어, 첫번째 이별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어버린, 아수라장이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가온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 -6화- 아이의 기억 속, 남겨진 아이 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