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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그는 검은 공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검기만 한 세계였다. 그 잠깐사이에 세계가 멸망이라도 한 걸까.

 

뺨을 꼬집어본다. 아프지 않다.

 

아, 그건가. 흔히들 말하는 '심층세계' 같은건가.(해석:서로 다른 두 존재의 정신과 정신이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루시드 드림' 같은 거겠지.(해석:자각몽.즉, 자기스스로 꿈을 꾼다는 것을 자각하는 꿈속에서의 상태.)

 

하지만 말야. 진짜 이게 내 꿈인거야?

 

너무 삭막하잖아.

 

 

그런 생각을 하던 가온의 눈앞에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다.

 

어마어마한 푸른 빛과 스파크의 향연에, 그는 그만 눈이 멀어버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조심조심 눈을 떴을때,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용이 있었다.

 

드래곤 이었다.

 

DRAGON이었다는 말이다.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에겐 다시 설명하겠다.

 

GODZILLA다.

 

영알못들을 위해 발음만 표기하자면, GOZIRLA다.

 

이상.

 

 

"뭐가 이상이냐아아아!!! 으아악---!"

 

 

그는 평소의 시크함과 도도함으로 무장된 특유의 말투조차 잊어버리고는 되는대로 소리질렀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당혹감과 공포로 약간 비틀려지긴 했으나, 어딘가 와일드한 면이 남아있어서 여전히 잘생겼다.

 

소위 남자들이 말하는, "폭발해라 리얼충!!!"같은 소리를 듣기에 지극히 합당한 얼굴이란 것이다.

 

그의 눈앞의 푸른 룡(㡣)은 전신에서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만 정신이 아찔해질 뻔한 가온이었다.

 

이윽고 룡(㡣)은 입을 열더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숨결을 내뱉었다. 

 

푸른 스파크가 번쩍번쩍 튀기는, 굳이 따지자면 약간 차가운 숨결이었다.그러나 그 풍압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그 풍압에 날려 그 검은 공간에 끝으로까지 날아간다 생각될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너무 강한 풍압에 자신의 손의 살이 날아가 분해되었고, 뼈만 남았다.

 

그는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악!!!아파아아아아!!!"

 

 

그는 울부짖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손이 왜 보건실에나 있을법한 해골모형처럼 된건지 이해 못하고 있었다.

 

인간의 신체라는 것은, 가끔씩 정보수용량의 한계를 뛰어넘는 막대한 정보와, 반사신경이 따라갈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신체가 떨어져가면, 뇌가 반응을 못하는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너무 빠른 속도를 반사신경이 따라가지 못하고, 그로인한 뇌의 정보처리가 늦어져서 고통을 망각하는,

일시적인 마취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일 뿐이다.

 

그것을 이해 못하던 가온을 덮친것은---

 

고통이었다.

 

그가 생전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그가 그런 고통에 울부짖는 동안에도 그 룡(㡣)은 입김을 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평범한 입김이 아닌, 소위 《브레스》라 부르는 것인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온몸의 살이 다 떨어져 나가 해골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풍압에  그만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어둡고 어두운 공간에서, 가온은 떨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분명 가루가 되었을 터인 그가 어찌하여 다시 살아났는지, 그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는 말이다.

 

그는 숨어있었다.

 

공간이 굴곡져있는 공간의 틈에 숨어서, 제발 저 푸른 룡(㡣)이 그저 지나가주기만을 바랬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채, 그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도 흘리고 있었으나, 훌쩍이는 소리는 내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훌쩍이지 않는다.


그랬다간 저 빌어먹을 용가리새끼가 쳐들어올 테니까.


그는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랐다.


이윽고 룡(㡣)이 지나가자,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주...잘숨는 구나, 나."



그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경험한 일이, 그토록 쾌활하던 겨울이 죽은 것이, 그가 그 남성을 죽인 것이, 단순한 착가이 아니라고.

 

단순한 꿈이 아니라고.

 

이제는 그것이 피부로 느껴져왔다.

 

그리고, 그는 그 남성을 죽일때와 달리 아무런 힘도 쓸수 없었다.

 

그는, 무능했다.

 

살인의 죄를 저질렀음에도, 그에게는 각오가 없었다.

 

마음속 한구석에서 그랬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할 뿐, 각오가 없었다.

 

진짜로, 겨울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인간이었고 어째서 그런 일을 당한건지, 알려는 각오가 없었다.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그 남성도 죽였으니 뭐, 꽤 강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서 죄책감에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하려 한게 아니라, 오히려 자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저 빌어먹은 푸른 룡(㡣)에게서 이기기는 커녕 도망치기도 힘들었으며, 이 공간에서 탈출한 방법따윈 찾지도 못했다.

 

 

"당연하지. 여기는 바로 너의 마음속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너 자체인데, 어떻게 빠져나가겠단것이냐."

 

 

갑자기 들려온 성스럽기까지 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마음속에, 공간 전체에 울려퍼졌다.

 

마치 텔레파시같은 그 느낌에 그는 그만 소름이 쫙-돋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작은 떨림으로 생긴 대기중의 미세한 파장을, 푸른 룡은 놓치지 않았다.

 

가온이 "아차"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을 때에는, 그의 눈앞에서 눈부신《브레스》의 광선이 춤을 추고 있었다.

 

 

--------------

 

 

가온은 또 다시 숨어있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죽어도 다시 숨었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아무런 원한도 없다.

 

그 용의 눈은 먹이를 보는 눈이나 적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아니,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눈이었다.

 

굳이 덧붙여서 말하자면, 심심해서, 할게 없어서 죽이는 것 같달까.


몇번 정도는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려 했었다.


용은 지능이 낮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마어마하게 높아서, 내가 전혀 모르는 상식외의 학술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매우 현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대화 따윈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문답무용으로 《브레스》.


도저히 말이 통할만한 상대가 아니다.


죽는다고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시 살아나서 또 죽을 뿐이다.


그럼 방법은 하나 뿐이다. 조금이라도 덜 괴롭게 하기 위해, 최대한 숨고 도망치는 것.


그렇다고 이곳에서 탈출할 순 없지만, 최소한 조금이라도 덜 죽는 것이다.


푸른 용에게 '힘 조절' 따윈 없다.


그냥 어떻게 맞아도 즉사. 살짝만 스쳐도 즉사. 조금 떨어져 있어서 피한다 해도 그 충격파로 인해 즉사.


몇번이고 죽다보니, 이젠 그냥 조금이라도 덜 죽기 위해 이렇게 숨고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 이상한 검은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는 대신 공간사이에 틈이 있어서 숨기엔 제격이었다.


가장 오래 숨어있던건, 아니 가장 오래 살아있던건, 아마 30분쯤 되는 것 같다.


정말로, 여긴  미친 곳이다.


[ -3화- 고결하고 고귀한 푸른 룡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