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시점]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전쟁 중 벌어진,  그런 화창한 날씨라는 것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을만큼 화창한 그 날씨는,  과연 알고있을까.

저기 저 흘러가듯 떠나가는 구름들은 제 친구라도 있지,  그것마저 없는 내 심정을 알까.

저기 저 뒤떨어진 작은 구름은 어떨까.

내 심정을 이해해줄 수 있으려나.

이런 화창한 날씨마저 얄밉다.

마치 전쟁에 승리하고 모든 공적을 차지하고 나까지 죽이게된 권력자를 칭송하는것만 같아, 너무 얄밉다.

아아, 드디어, 너무 뛰어나서 죽게된,  어느 천재의 비운한 운명이, 그 비극적인 인생이, 이제 막 끝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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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우중충한 날이었다.

전쟁이 한참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분위기에 걸맞게 날씨가 구렸다.

검은 구름들이 잔뜩 낀 날씨는 벼락이라도 내릴듯 하여 조마조마하다.

싸움이 한창인데 비까지 내린다면,  이보다 최악은 없겠지.

아직 철제기구가 생기기 전인지라 장비가 녹슬진 않을테지만, 질퍽질퍽해진 땅은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런 땅을 밟으며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언제 발이 빠져 적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지 모른다.

쏴아아-

하하하.젠장. 비 한번 시원하게 오는군.  거의 다 이겼는데,  비로인해 전투가 길어지면 당연히 전사자의 수는 늘어간다.  진짜 최악의 최악의 경우, 우리가 지는것 역시 염두에 둘 수 있는것이다.

.......벼락이 난무하고 빗방울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 지옥같던 전장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그렇게 지옥의 끝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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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보자, 이렇게!"

그의 손길에 빗방울이 난무했다.

빗방울은 약간 날카로운 비수(해석:던져서타격을 주는 검)의 형태를 띄는듯 했으나, 금세 다시 모양이 흐트러져 그대로 쏟아졌다.  물방울의 수 역시 적었다.  술법에 실패하자 군장은 창피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숨으려 했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러나 멍청한 일반인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태어나서 단한번도 손에서 물이 치솟아 난무하는 광경을 본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 양이 매우 적고 위력 역시 약할지언정,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적잖이 놀란것이다.

그러자 군장은 다시 코가 우뚝 솟고,  우쭐해져선 허리를 짚고 섰다.

"누구 나보다 뛰어나게 기이한 일을 할수 있는자 있느냐?!"

"여기있소."

나는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그깟 물방울쯤,  몇번이고 다룰 수 있었다.

어쨋든 군장에게 인정받기만 한다면,  금방 출세할 수 있었다. 

잘만 하면 동생의 병을 낫게 할 약초를 구할 수도 있었다.

"흡!"

나는 기합을 외우고 손에 기를 모았다.

마치 빨려들어가는 듯한 모양새로 백기(白氣)가 모이더니,  부적의 형태를 갖춰갔다.

"하앗! 비각수하(飛各水河)!

 날아다니는 각각의 강물은 나의 뜻에 알지니!"

그러자 말도안될만큼의 강물이 역류했다.

가히 작은 해일이라 해도 될 만큼의 물의 역류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했다.

그때,  그 어마어마한 양의 강물이 물방울 하나하나 전부 매우 가늘고 날카로워지더니,  일제히 군장이 술법으로 내리쳤던 허수아비에게로 떨어졌다. 물방울들은 허수아비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고나면 사라졌다.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작은 물방울 하나도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았다.

군장의 술법과 확연히 비교되는, 조금의 군더더기 하나없이 깔끔하고 천재적인 술법에,  사람들은 아까보다 훨씬 더 열광했다.

"우와아아아아!"

"하늘이 우리 구야국(狗邪國)에 인물을 내려주셨다아!!"

"군장의 오른팔이 될만한 사내가 나타났다아!!"

군장은 나를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주변의 분위기에 억눌려서 하는 수 없다는 식으로 내게 읍차(邑借)의 자리를 주었다.

기껏해야 고작 구야국의 많은 소국중 하나의 군장에게 받은 직위일 뿐이다.  그것도 가장 쓸모없고 가장 낮은 직위인 읍차(邑借)를 받은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쁨이 홍수처럼 밀고들어왔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도,  마치 인생의 모든 단맛을 다 맛본것처럼 행복했다.

........그런데 그게 거짓일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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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이곳에 들어가면 아무리 위험한 죄인이라도 잡지 못한다..."

하늘아래,  군장의 힘이 닿을 수  없는 지역이 하나 있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지역, 소도.

지상에서 하늘로 보낼 기도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비는 곳...

군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소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