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시점]

 

"끼

    이

       익

            .

                .

                     . "

 

녹슨 문이 조용히 열리려 한 듯 하지만 녹슬대로 녹슬어 버린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조만간 문에 기름칠을 더 해야겠군. 그보다 누구지? 부모님이라기엔 너무 이르고. 그 밖엔 딱히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

 

헉. 나는 재빨리 입을 틀어 막았다.

그 녀석...그 녀석이다. 결국, 그 녀석이 오고야 말았다.

두려움에 가득찬 눈은 생각을 느리게 했고, 쿵쾅대는 심장은 차분함을 날려버렸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어차피 내가 여기 있는걸 알고 올 정도로 머리 좋은 녀석은 아니니, 안 들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방문을 닫았다. 그러나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녀석의 방식은 늘 똑같았다. 무조건 때려부숴서 안나오면 다른데로 가는 것.

그런데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하단 것이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문을 열려던 찰나,

녀석이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육중한 무게에 계단은 삐걱거렸으며,

그러다 어느 한 계단은 마침내 부러지고 말았다. 그 육중한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었다. 최소한의 방범시스템 만큼은 구축해 놓았어야 했는데, 너무 경솔했다.

 

"크르르, 크으윽, 게륵? 케륵퀡 게륵?!"

 

녀석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젠장, 문틈으로 날 본건가?!

이젠 진짜 시간이 없었다. 저주받은, 저주받은 날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해야했다.

저주받았다지만, 죽고싶진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정신을 차렸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떳다. 그러자 내 눈앞에는

온몸이 하얀 괴물이 서 있었다. 팔은 8개에 머리는 4개, 다리만 2개인 이 새하얗고 끔찍한 괴물은, 자신이 남의 집에 무단침입

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제집인양 날뛰었다.

 

"영멸도(蠑滅刀)!!!"
 

주문을 외자, 내 오른손 위 허공에 푸른 빛으로 마방진이 그려졌다. 마방진의 비어있는 가운데에 하얗고 찬 기운이

모여들더니, 이내 눈부시게 하얀 빛을 내는 영멸의 검이 내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 영멸의 검은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자 배가 고팠는지, 피를 갈구하는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영멸의 검이 내뿜는 엄청난 살기에 눈앞의 마물(魔物)은 잠시 움츠러들었다.

 

"은신(隱身)!!!"

 

다시한번 주문을 외자, 내 몸은 빛을 잃고 사라져 투명해졌다. 갑자기 눈 앞에서 먹잇감이 사라지자, 영멸도의 살기에 멍해있던

마물이 정신을 차리고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악!!!"

 

나는 오른 손에 쥔 영멸의 검을 바라보았다. 영혼까지 영원히 소멸시켜버린다는 무자비한 그 단검은, 눈 앞의 상대에 경악하고

있었다. 죄와 온갖 악으로 뒤덮여, 악(惡) 그 자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엄청난 요기(妖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영멸의 검을 격려하듯 꼭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 마물을 향해 검을 던졌다.

 

"키에에에에엑!"

 

보이지 않는데도 그 엄청난 살기를 눈치챈듯, 마물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그러나 영멸의 단검은 마물의 머리를 노릴 생각이 없는 듯 마물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고 있었다.

 

"키야아아아악!"

 

그제야 무얼 하려는 지 알아챈 마물은 포효하며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영멸의 단검이 지나간 곳이 푸른 기운으로 빛나며 허공에 마방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방진의 비어있는 8개의 자리중 가장 가운데에 영멸도가 자리잡자, 작은 결계가 생겨 마물을 가뒀다.

그리고 이내 가장자리에 있는 7개의 작은 마방진 빈자리에, 똑같은 영멸의 검이 생겨났다.

이윽고 그 수는 불어날 대로 불어나서, 집 천장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잘가라, 사멸(死滅)."

 

그러자 마방진의 가운데 빈자리에 있던 영멸도를 제외한 모든 영멸도가 마물을 향해 쏟아졌다.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잠시후 마물은 정수리의 좁은 빈자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하얀 단검으로 뒤덮여 있었다.

 

"금(金)."

 

그러자 마지막 남은 영멸도의 손잡이가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더니, 마물의 비어있는 정수리를 향해 내려꽂혔다.

 

"크아악!"

 

마물은 마침내 온몸이 새하얗게 뒤덮이더니, 짧은 비명을 토해내고, 잠시 빛을 내다가 사라졌다.

마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석이 있었다.

 

"또 분신인가...그 보다 생명석은 10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영물인데, 이런걸 데체 누가, 어떻게..."

 

생명석은 생명의 힘이 깃들어있어, 이 생명석으로 분신을 만들면 매우 강력한 분신이 된다.

하지만 10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영물이고, 게다가 분신술은 이미 1000년 전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후

사용이 금지되었고, 관련서적들도 모조리 불타 없어졌으며, 그를 아는 이도 모조리 죽어서,

분신술에 대해 연구할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어떤 이가 계속해서 생명석으로 분신을 만들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당연히 타락한 신, 그놈이었다.

그놈한테서 홍이는 부모를 잃었으며, 강호는 형을 잃었다.

나의 친구들을, 이번에는 잃지 않을 것이다.

좋아, 니놈 정체가 무엇이든간에, 한번 와봐라.

그 더러운 면상을 후려 갈겨줄테니.

 

                                                      

                                                                                    [프롤로그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