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러 나온 노을이에게 사장 김홍도가 물었다. 

"이겼냐?" 
"네!" 
"나쁘지 않군." 

그러고는 카운터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요즘 김사장은 고민이 많았다. 
다 낡아가는 PC방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캡슐을 들이기는 했지만 20년 간 오르지 않는 1500원 요금 때문에 본전을 뽑기 전에 PC방이 망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타자를 따각가려가며 엑셀 파일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저씨, 계산 안 되는 것 있으면 도와드릴까요?" 
"돕긴 뭘 도와. 헛소리 말고 절루 가라." 

김사장이 정리하는 장부 엑셀 양식은 노을이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사장은 투덜투덜거렸다. 
그때 짤랑거리며 PC방 문이 열렸다. 
서른은 넘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노을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가 요즘에 잘 안보이는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 나 왔어요." 
"왜 왔어? 오지 말지. 영영. 영원히" 
"아, 왜그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는 빌어먹을." 

사내는 능글능글 웃으며 물었다. 

"캡슐 자리 있어요?" 
"왜? 또 고장내려고? 네놈 때문에 센서 부서진 거 모르냐?" 
"내가 형님과 같은 키보드 세대라서 손동작으로 작동하는 걸 적응을 못해서 그랬어요. 주먹을 쥐는데 센서가 부서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수리비도 드렸는데." 
"그래, 그런 거 적응 못 할 때가 왔으면 게임을 그만 둘 때가 온거야." 
"아 왜 그래. 형, 미안합니다." 
"어?! 너 아직도 거기 있었냐?" 

노을이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끼어들 수가 없어서 물을 마저 마시고 게임을 하러 캡슐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렵게 이기고 쉽게 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본격 트롤방송, 심해 탈출방송, 본캐 다이아, 스트리머 '개득'입니다! 트와치 제 채널에 접속하셔서 팔로잉을 눌러주세요! 캐리해 드립니다. 

두 번째 게임 2픽은 픽창에서 쉬지 않고 나불거렸다. 

-제가 레온 200판에 승률이 70퍼센트가 넘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주세요. 조합 맞춰봅시다. 2탱과 1서폿만 맞춰주시면 진짜 진짜 캐리해드립니다. 

팀원들은 스트리머라는 말과 70퍼센트라는 말에 솔깃해서 '개득'의 말에 조합을 맞췄다. 
마지막 5픽 노을이의 차례였다. 

-모르곤 좋다! 모르곤 뽑으세요. 

그러나 노을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캐릭이 아올린이었으므로 아올린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아올린이 픽창에 나타나자 '개득'이는 얹짢아진 심사를 보였다. 

-하... 캐리해 드린다니까... 
-원딜형 참아. 쟤 전적보니까 아올린충이야. 
-형이 캐리하면 되잖아 참아 

그 누구도 노을이의 편은 없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됐다. 
개득이가 고른 '레온'은 스톰 오브 레전드가 나온 이래로 꾸준하게 상위 티어로 인정받고 있는 원딜 캐릭터였다.  
암흑의 도시 '룻'에서 매정한 추적 암살자라는 배경을 가진 이 캐릭터는 상대를 중독, 둔화시키고 난 이후 끊임없이 평타를 날려 피를 흡수한다.  
초반 딜교에서는 체력 유지가 관건이었으므로 그만큼 매리트가 있었지만 마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두들겨 맞을 수 있는 극단의 캐릭터였다.   
게임 초반에 의외로 '개득'이는 놀랄만큼 마나관리와 딜교를 잘했다. 
상대는 피가 빨려서 줄행낭 치기 일쑤였고 개득이는 별 도움 없이 스스로 퍼블까지 땄다. 
노을이는 둔화에 걸려 있는 적을 벽으로 밀쳐 기절만 시켰을 뿐이었다. 
기절하지 않았더라도 죽을 것은 확실해 보였다. 
게임 시작 10분만에 5킬을 올린 '레온'은 무쌍이었다. 
노을이는 솔직히 기뻤다. 
쉽게 1승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망 때문이었다. 
채팅창은 기대로 넘쳐났다. 

-와 형 진짜 쩌는듯 게임 끝나고 바로 팔로우 함! 
-이게 바로 버스 아니겠음? 승차감 쩌네 
-아올린 때문에 무너진 멘탈 형 덕분에 회복하네 ㅋㅋㅋㅋㅋ 
-여러분 기억하세요! 본격 캐리방송 '개득'입니다!  
-개이득 줄임말임? ㅇㅈ ㅋㅋㅋㅋ 

그러나 노을이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은 중반부터였다. 
상대 포탑을 밀어서 한타에 합류해야 할 시기에 개득이는 상대 정글로 들어갔다. 
그리고 영웅 사냥에 열을 올렸다. 

-'레온'의 트리플 킬! 
-아군이 당했습니다. 

개득이는 혼자 상대의 봇 두 명, 정글러 한 명을 죽이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아 아깝다 살 수 있었는데 
-무빙 봄? 프로게이머인 줄 ㅋㅋㅋ 

노을이는 개득이가 다시 라인으로 돌아와 포탑을 밀어주기를 기다렸다. 
노을이는 이번에 원딜을 믿고 댁에서 버프 카드를 뽑았기 때문에 혼자 포탑을 밀 수 없었다. 
원딜을 따라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혼자서라도 포탑을 밀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노을이는 원딜을 믿어볼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실질적으로 레온말고 각 라인은 미세하게 상대에게 뒤쳐지고 있었다. 
전방 포탑도 곧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상대는 포탑을 잠시 놔두고 레온을 정글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노을이가 궁극기 '운명의 장난'으로 상대 탱커와 능력을 교환하고 원딜을 보호했다.  
레온은 상대 하나하나에게 폭딜을 쑤셔 넣었다. 
공교롭게도 막타가 들어가는 순간 한 명씩 주문 점멸을 사용하여 시야에서 벗어났고 스킬이 빠져버린 상태에서 레온은 피흡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게다가 노을이의 아올린은 궁에 의해 주문력이 사라져버린 시점이라 패시브 회복이 미약하게 변한 상태이기도 했다. 
노을이는 백핑을 찍었다. 

-후퇴! 후퇴! 후퇴! 

그러나 레온은 듣지 않았다. 
레온은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펑! 펑! 
-아군이 전사했습니다. 

레온과 아올린이 전사했다. 
노을이는 화가 났다. 
처음으로 채팅을 쳤다. 

-빼라고 했잖아요! 

노을이는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기다렸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아 씨발 아올린 아니었으면 다 죽였는데, 힐도 안되고 탱도 안되고 뭐임? 

노을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형 참아. 아올린이 그렇지 뭐 
-아올린 니가 그따위로 말하면 안되지. 아올린 자체가 민폐구만 
-뭐래 

노을이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참았다.  
참으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개득이의 레온은 계속 정글 속으로 들어가 영웅 사냥을 계속했고 결국 자주 죽었다. 
어느새 상대는 레온의 레벨과 코어댁을 따라 잡았다. 

-어쩔 수 없다 미드로 모여! 

개득이는 오더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포탑이 밀려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한타는 레온과 아올린 이외에는 단숨에 산화해 버렸고 둘은 오래 버텼지만 결국 전멸했다. 
코어는 터져버렸다. 

-패배  

개득이는 채팅에서 패배의 책임을 아올린에게 돌렸다. 
다른 이들도 패배에 대한 분함을 아올린에게 물었다. 
노을이는 팀원들에게서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와 시발 아올린 아니었으면 이겼는데 아올린 개트롤이네 
-탱도 안되고 힐도 안되고 뭐임? 
-아올린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아올린 하는 새끼들 다 찢어 죽이고 싶다. 아올린 ㅇㅈ? 아올린 : ㅇㅇ ㅇㅈ 

노을이는 울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서러워서 말도 할 수 없었다. 
캡슐 밖에서도 그 울음 소리가 들렸는지 사장님이 찾아왔다. 

"우냐?" 

심드렁한 목소리지만 티슈를 가져다 노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옆에서는 아까 카운터에서 봤었던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머슥해 하고 있었다. 

"요즘 채팅 제재 심해졌다고 하던데 거짓말인가? 우리 때는 부모 안부 묻는 새끼들이 당연하기는 했지만... 요즘은 그런 거 아닐텐데..." 
"넌 좀 닥쳐라." 

눈치 없는 사내의 말에 사장은 눈깔을 뽑아버릴듯 노려보았다. 
김사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노을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만 하고 집에 가서 쉬어라." 

노을이는 눈물을 딲아내고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오늘 실버 되어야 아올린 보상 받아요... 안돼요... 조금만 더 하다 갈게요." 

그 말에 사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알았다. 그런데 너 다음판에도 울고 있으면 여기 캡슐 그냥 끈다. 울지마. 울거면 집에 가서 울어." 

걱정하는 말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을이는 눈물을 닦고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캡슐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사내가 말했다.  

"여자애가 취향이 특이하네. AOS에서 여자 만나기 쉽지도 않고 여자 만나서 결과 좋은 꼴이 없는데." 

그 말에 이번에는 진짜 사장의 손바닥이 사내의 뒷통수에 작렬했다. 

"아 왜요!" 
"니 새끼가 재 게임하는 거 보면 그딴 소리는 못하지. 넌 좀 가라. 영원히"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이 새끼가 정말"   

사내는 더 맞을 까봐 캡슐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궈버렸다. 

"아오 저 미운 새끼 어떻게 조지지" 

사장은 씩씩 거리다가 카운터로 돌아갔고 사내도 VR과 센서를 착용하고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