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세요!" 

노을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가 PC방으로 뛰어갔다. 
스톰 오브 레전드 시즌 마지막 날인 오늘은 노을이에게 특별한 날이다. 
오늘까지 실버가 되어야만 시즌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실버 시즌 보상은 아올린 전설 스킨이었다. 
워낙 비인기 캐릭터였기 때문에 골렘 게임즈는 아올린의 픽율을 높이기 위하여 회의 끝에 아올린 전설 스킨을 시즌 보상으로 결정했다. 
노을이는 평소부터 노리고 있던 스킨이었으므로 시즌이 끝나는 오늘까지 실버가 되어야만 했다. 
이제는 브론즈 1등급 100점을 달성하여 오늘은 승급전 5판 3선만을 남겨두고 있는 시점. 
시즌 종료 3시간을 남겨두고 노을이는 벌써부터 뛰는 내내 손발이 찌릿찌릿 거렸다. 
스무살의 긴머리 늘씬한 소녀가 거리를 바람처럼 질주하자 많은 사람들이 눈길이 노을이에게 머물렀다. 
장장 1킬로미터의 거리를 질주한 끝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노을이는 겨우 단골 pc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씨! 제 자리 그대로 있죠?!" 

사장 김홍도는 설겆이를 마친 음료컵을 딱으면서 턱짓으로 한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은 노을이가 항상 찾는 '캡슐'이었다. 
'예약'이라는 푯말이 얹어진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장은 노을이의 승급전을 위해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노을이의 감사 인사에도 불구하고 사장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마저 자기 일을 시작했다. 
노을이는 캡슐로 들어가 센서를 팔에 붙이고 바로 VR을 썼다. 
두 눈으로 각기 다른 영상이 쏘아져 나와 마치 자신이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노을이는 익숙했지만 항상 이 기분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소녀의 손짓이 부드럽게 허공을 가르고 센서가 손짓을 인식하여 알파벳과 숫자로 변환했다. 

-id: godness 
-pw : ************ 
-로그인 

-둔둔둔! 

잠엄한 북소리와 함께 인트로 화면이 켜졌다.  
노을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랭크경기 시작버튼을 눌렀다. 
오늘이 시즌 마지막이었으므로 1분도 되지 않아 바로 픽창이 올라왔다. 
원탁에 다섯 그림자가 나타났다.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는 4픽, 후픽이라서 다행이다. 
처음부터 '아올린'을 고르면 팀원들이 즐겜픽을 고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올린? 즐겜!'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아는 관용어구였다. 
만약 다른 이들이 브론즈5에서 브론즈1까지 오직 아올린만으로 올라왔다는 이 소녀를 만난다면 그녀의 정신력에 박수를 쳐 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당장 같은 팀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대의 영웅을 고르십시오! 

노을이는 모두의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좌클릭했다. 

-운명은 여신이 그대들과 함께한다! 

아올린의 음성이 나오자 채팅창에는 '...'이 연달아 나왔다. 
노을이는 속이 상했다. 
하지만 아무 채팅도 치지 않고 게임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채팅창으로 불만이 쏟아졌다. 

-영어 아이디 꼬라지를 보니 중국인이네 
-좆됐네 아 왜 말도 안 통하는 중국인이냐고 승급해야 하는데 
-아올린? 즐겜! 

그러나 이정도로 멘탈이 무너질 노을이가 아니었다. 
노을이는 한국어를 쓸 줄 모르는 중국인인척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 정도였다면 모두들 다이아도 한 번 빠지면 석탄으로 돌아간다는 브론즈5에서 그래도 사람이라고 불리는 브론즈 1까지 올라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카운트 다운과 함께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군과 적군 모두 근접 전사 둘, 마법사 하나, 원딜러 하나, 서포터 하나를 뽑았다. 
모두들 아올린이 한 팀이었으므로 초반 퍼블 싸움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팀원들이 미드 타워에 모여 있자 노을이는 여신을 조종하여 봇으로 움직였다. 

-영웅들이여! 전투를 시작합니다!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코어에서 미니언들이 생성되어 전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봇에서의 전투는 아군의 소극성과 적의 적극성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아올린을 만나 신이난 상대는 연실 스킬을 아군의 원딜에게 난사했다. 
아군 원딜은 그저 미니언만 죽여대면서 그 스킬을 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었다. 

"적당히 좀 피해줘" 

노을이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상대 서포터가 달려들었다. 
'모르곤'은 집체만한 덩치를 가진 전사형 서포터로 적의 신체를 번쩍 들어올려 원하는 위치로 던져버리는 스턴기를 가지고 있었다. 
평타 공격은 강하지만 기절과 던지기가 각각 다른 기술이었으므로 독자적인 라인으로 가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 모르곤이 아군 원딜을 향해 달려왔다. 
노을이는 백핑을 찍었다. 
그러나 그 순간 상대 원딜 '제야'의 스킬이 하늘에서 쏟아져 들어와 아군 원딜은 슬로우 상태로 빠졌다. 
아군 원딜은 결사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 모르곤에게 난사를 가했지만 모르곤은 미동도 없었다. 
노을이는 고민했다 지금 광풍으로 적을 밀쳐야 할까? 
스톰 오브 레전드는 플레이어의 센서를 붙인 손동작으로 캐릭터를 제어하게 한다.  
노을이는 오른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을 준비자세를 취했다. 

아군 원딜의 머리에 도움 표시가 떴다. 

"엄살 떨지마, 아직 안 죽어" 

노을이는 도움 표시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손동작을 준비했다. 
그 동안에 모르곤은 아군의 원딜 앞으로 다가와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 원딜은 주저앉아 버렸다. 
스톰 오브 레전드는 각자의 표정을 인식하였으므로 아군원딜의 표정이 드러났다. 
집체 만한 모르곤의 그림자가 자신의 앞으로 닥쳐왔을 때 그 표정은 그저 '공포'였다. 
기절 상태인 아군이 채팅을 쳤다. 

-살려달라고 시발! 

그래도 노을이는 기다렸다. 
모르곤은 아군 원딜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포탑 쪽을 향해 던져버릴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였다. 
노을이는 자신의 양 팔을 자신의 다리를 향해 내뻗었다. 

-주문 점멸 

모르곤의 뒤에서 나타난 노을이는 모르곤과 아군 원딜을 한꺼번에 아군 포탑을 향해 날려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디버프 스킬 
아올린이 손가락으로 모르곤을 가리켰다. 

-그대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리라! (방어력 감소) 

그리고 마침 아군 포탑에 다가온 미니언들이 피라니아처럼 모르곤에게 다가가 그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모르곤은 그래도 기어코 원하는 방향대로 아군 원딜을 날려 보냈지만 결국 아올린이 날려보낸만큼 던져졌으므로 원래 자리에 돌아온 정도 밖에는 안 되었다. 
모르곤은 포탑 앞에 남겨졌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포탑 데미지를 간지럼 정도로만 느끼는 모르곤이지만 저렙에는 뼈아픈 데이지였다. 

-비켜! (공포) 

모르곤은 '공포'를 사용하여 자신을 막고 있는 미니언들을 밀쳐내며 나오려 했다. 
그때 아군 원딜이 공격을 시작했다. 
3개의 스킬 중에 2개가 적중했다.  
원딜임에도 불구하고 평타를 칠 줄 몰랐으나 평타 데미지는 노을이가 보충했다. 
주문 점멸까지 사용하여 도망가려고 했으나 끝까지 달라 붙는 아군 원딜의 첫 평타에 의해서 모르곤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펑! 

전장에 첫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퍼스트 블러드 : 상대 영웅이 사망하였습니다. 

아군 플레이어들은 그 북소리를 듣고 한 번 놀라고, 그 북소리가 봇에서 만들어졌음에 두 번 놀랐다. 

-뭐야?  
-어떻게 이긴거야? 
-우리팀 원딜이 쩌나? 

모두들 원딜의 대답을 기다렸다. 
원딜은 우물쭈물 거렸다. 

-아니 그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네 

그리고 상대 원딜이 분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전장에서 뒤로 물러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군 원딜이 노을이의 아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려는 표정이지만 노을이는 그대로 생츄어리로 귀환해 버렸다. 

-저... 저기 

아올린이 사라져버린 봇에서 뻘쭘해진 아군 원딜은 그저 다시 미니언들에게 평타를 날려대기 시작했다. 

한편 생츄어리에서 노을이는 고민했다. 
이 경험치를 어떻게 써야 할까? 
스톰 오브 레전드는 골드의 개념이 없었다. 
모든 것은 경험치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특성을 올리거나 레벨업을 하려면 경험치를 소비해야 한다. 
노을이는 준비했던 댁에서 카드를 뽑아 스킬을 올리기로 했다. 

-지휘관 : 아군 미니언에게 공격 대상을 지정할 수 있으며 공격력을 높입니다. 60초마다 재상용할 수 있습니다. 

아군 원딜러가 평타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준비한 댁이었다. 
카드 사용이 적용되자마자 채팅 창은 또 한바탕 난리였다. 

-크으으 퍼플로 사온 카드 댁 클라스 보소! 
-이야아! 대장군 납셨네 
-아올린? 즐겜! 

노을이가 전장에 복귀했을 때에 아군 원딜러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스톰 오브 레전드가 킬과 어시스트 모두 동일한 경험치를 부여했으므로 손해 볼 것도 없었을 터인데 아군 원딜러는 서포터가 추가 버프 스킬을 사온 것이 아니라 기분이 상했다. 
노을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또 소규모 한타가 일어났다. 
경험치 차이를 매꾸기 위한 상대의 행동이었다.  
이번에 수풀 속에서 숨어 있던 모르곤은 갑자기 튀어나와 노을이의 아올린을 겨냥해 다가왔다.  
자신의 앞에 있는 미니언들을 공포로 밀어내고 아올린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상대 원딜은 하늘에서 화살비를 내려 아올린을 감속시켰다. 
주문 점멸도 없는 상태이고 모르곤을 밀어낸다고 하더라도  
도망가는 동안에 모르곤이 뒤 이어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노을이는 아군 딜러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공격, 모르곤 

아군 딜러는 모르곤을 향해 3개의 스킬을 난사했다. 
그 스킬이 닿기 전에 노을이는 상대 모르곤을 향해 디버프를 걸었다. 

-방어력 감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니언들을 향해 명령했다 

-지휘관 : 공격, 모르곤 

모르곤은 한꺼번에 2/3 데미지를 입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아올린에게 다가와 허공을 향해 충격파를 발산했다. 

-기절 

하늘에서 아올린이 떨어져 내렸고 이를 덥석 잡아든 모르곤은 자신의 포탑을 향해 아올린을 집어 던졌다. 
상대 원딜은 아올린이 떨어지는 위치로 이미 이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노을이는 신호를 보냈다. 

-공격, 모르곤 

원딜의 표정에는 욕이 넘쳐나는 듯했다.  
'ㅆ'의 발음이 입술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때 날아간 노을이는 포탑과 원딜의 공격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광풍을 일으켰다. 
적군과 아올린에게만 적용되는 광풍은 아올린을 끌어 올려 벽을 향해 날려보냈다. 
상대가 날아가는 아올린을 보면서 웃고 있을 무렵에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광풍의 적용 범위가 지형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아올린이 지형 반대편으로 벽을 넘어 이동해 버린 것이다. 
실가닥 같은 체력이 남은 아올린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상대는 어안이 벙벙했다. 
문제는 아군도 어안이 벙벙했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아군 원딜은 모르곤을 치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모르곤 역시 실가닥 같은 체력을 남겨서 부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군 원딜은 당황했다. 
하지만... 

-펑! 

다시 한 번 북 소리가 울렸다. 
아군 원거리 미니언이 쏜 투사체가 수풀 속으로 들어간 모르곤을 전사시킨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장면을 모든 아군들이 보고 있었다. 
채팅창에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어느새 귀환을 마친 노을이는 레벨을 올려 궁극기를 준비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두 번의 소규모 교전으로 첫번째 게임은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상대 봇에서 정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모르곤은 상대 원딜과 싸웠는지 딜 카드를 뽑아들었다. 
탱킹을 못하는 모르곤은 모르곤이 아니었다. 
모르곤은 각 라인에 로밍을 다니면서 고군분투를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아군 라이너들에게 경험치의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벌어진 경험치는 전투력의 차이를 불러왔고 한타 다운 한타를 해보지 못한 상대는 아군에게 너무 쉽게 코어를 내주고 말았다. 

-승리! 

노을이는 캡슐 의자에 기대어 겨우 숨을 돌렸다. 
어느새 땀이 어려 송글송글 물방울이 되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아군 원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 둘이 같이 하면 다 털어버릴 수 있겠어. 같이 듀오 돌리자 

시스템이 물었다. 

-****님을 친구로 추가 하시겠습니까? 

"아니거든!" 

노을이는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카운터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