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돌담길이 콩 덤불 사이를 지나고, 길옆에 일궈놓은 채마밭에 돋아난 새순을 뜯으려 달려드는 염소들과 그를 말리려 용을 쓰는 수녀들이 악다구니를 치고 있었다. 멍멍거리고 컹컹거리는 것들은 전부 어리거나 작아서 영 효과가 없었고, 근엄하고 성스러워야할 입에서 나오는 상스러운 욕설과 신성모독적인 저주조차 염소 몇 마리의 식탐을 막긴 어려워 보였다. 만약 여기서 지나가던 사람이 오지랖이 넓고 손이 재빠른 농부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 눈앞에 보이는 밭이 꽤 험한 꼴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형제여.”

별 말씀을요.”

까만 옷에 흙먼지 가득 먹은 듯 허연 자국이 온 몸에 가득한 몰골들이 가무잡잡하게 타버린 앳된 얼굴로 몇 번이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그들의 면면을 쭉 봐온 리킨스는 혀를 찼다. 왜 이 시기에도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전부 어린 사람들뿐인가. 아무래도 이런 쓸데없는 부분들이 보이는 까닭은 수상쩍은 반편이거지 녀석이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애써 떠오르는 의혹을 뒤로 하고 리킨스는 자신의 용건을 수녀들에게 말하니, 수녀들은 그제야 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척 보기에도 구순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양새에 다붓하던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서로가 쭈뼛쭈뼛 하며 어색한 공기가 흐르자, 가장 어려보이는 자매 하나가 길 안내를 해주겠노라 나섰다.

하샴 모네 히스타나 두보레르.(주께서 작은 별로써 인도하셨도다)”

리킨스의 인사에 버짐 묻은 것 마냥 허옇게 흙먼지를 뒤집어 쓴 얼굴 위로 갈빛 눈동자가 데굴거렸다.

... 하샴? .. 흐흐, 전 무식해서 그런 말 잘 몰라요.”

산발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과하는 수더분한 얼굴에 리킨스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들 앞에 서서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뱅충맞게 촐싹거리는 검은 옷의 망아지를 보자 거지가 시시덕거리며 속삭인다.

저 치도 허리 좀 돌려봤겠구먼.”

치근덕거리는 눈빛에 쓰읍 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같이 들리니 오해하고 싶어도 오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리킨스는 귓구멍을 들락거리는 다니는 벌레가 있었다는 듯 거칠게 귓구멍을 후볐다.

무슨 급살 맞을 소리를 하시오?”

급살은 무신. 교회가 그렇지 뭐. 아까 뒷걸음질 치던 다른 계집들 표정 봤소?”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저 앞에 가는 애 말이오. 대부분 수녀들은 보통 우리 같이 추레한 것들을 송충이나 깍다구보다도 더 질색을 하는데, 저런 나이의 애가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지.”

리킨스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거지를 쏘아보았다. 아무리 교회가 썩어 빠졌더라도 그렇지 저런 어린애가 무슨 죄라고. 차라리 신성 모독을 듣는 편이 낫지.

허 참, 말 다했소? 그럼 이제 그 입 좀 다무시오. 귀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으니.”

거지는 침을 탁 뱉고는 리킨스의 눈총을 맞받아쳤다.

알았소, 내 입 다무리다.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그리 아소.”

어디서 오셨어요?”

둘의 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환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괜히 양심이 찔린 리킨스가 다소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난 벨로란에서 왔고, 이 친구는 라스캄에서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

라스캄 토박이라는 말도 실은 후하게 쳐준 말이다. 특히 늑대의 거리 출신에게는.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필요한 곳이다. 그리고 이 속이 케케묵은 자는 평생 그곳에서 이유 없는 폭력을 경험한 적은 많았지만 이유 없는 호감을 받아 본 기억은 없었다. 어찌 됐건 거지는 자신을 좀 더 대단한 무언가로 바라보는 듯한 소녀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돌렸다.

흠흠, 뭐 나야 빌어먹던 놈이니까 뭐 대단한 건 없고.”

그래도 도시잖아요.”

그 도시라면 요 언덕 빼기만 올라가도 보이지 않나?”

거지의 물음에 소녀는 민망한 듯 몸을 꼬며 답했다.

전 밖에 나가지 못 해요.”

?”

전 밑창 수녀라서요. 그래서 예전에는 허리도 많이 돌렸어요.”

그리 말하고는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리킨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진 채로 주변을 둘러보다 돌담길에 자란 찔레꽃 덤불을 보았다. 그러나 꽃대가 올라오는 족족 따먹어서인지 이파리와 줄기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니, , 그러니까... 미안하다/미안하게 됐구먼.”

둘의 사과에 수녀는 아까보다 더 곰살궂은 웃음을 지었다.

, 어때요. 그게 잘못인가요?”

세상에는 처치 곤란한 딸 만큼이나 고아들도 많았다. 교회는 밤마다 문 앞에 버려질 아이를 두려워했고,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버리다 붙잡혀 벌금을 물을까 숨을 죽였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댓바람에 얼어 죽는 아이들이 속출했지만 서로가 알바는 아니었다.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반면 유기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였으니까. 그러니 그나마 거둬진 아이들은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전 은총 받은 아이라고 하더라구요. 겨울밤에 버려졌는데 고양이들이 절 살려줬다고요. 그래서 제 이름은 펠리시아(고양이의 딸)에요.”

하지만 그래봐야 고아 신세란 어디나 매한가지라, 그 버림받은 딸들보다 더 아래에서 사는 이들이었다. 노예를 금지한 교회에서 부리는 합법적인 노예. 그래서 평생 동안 교회 밖을 나서는 일조차 드무니, 라스캄이 코앞에 있어도 성벽 안에 사는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일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그런 표정을 마주할 인생은 아니에요.”

얼굴이 돌덩이가 된 둘은 수녀의 뒤를 따랐다. 흥겨운 콧노래가 들려오고 발랄한 발걸음이 박자에 맞춰 가볍게 움직였다. 얼마간 걷다 보니 주변에 처음으로 남성 수도사들이 눈에 띠었다. 수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았다.

, 다 왔어요.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저기에서 바투만 의장님을 찾으면 돼요. 하샴 페타...? 두보레르.(주께서 고통으로 인도하셨도다) 이거 맞죠? 흐흐. 이제 좀 웃으세요. 정말 전 괜찮으니까.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