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있지 않아 성인여성 한명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이겠지. 성별은 뭐... 역시 여자 선생님이었다. 인터넷에 뜨는 기사를 보면 남자선생님이 설 자리가 줄어간다고 하는데 내 경험에 비추어봐서도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남자가 담임선생님이었던 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 한번 뿐이었으니 말이다.

 

칠판에 분필이 맞닿으며 하나의 이름이 적혀진다. 아마도 선생님 이름이겠지. 일단은 속으로 읽어봤지만 기억에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좀 더 시간이 지나야겠지. 

 

그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약간 화장이 진한것 같은 새 담임의 얼굴이라든가 남자친구 있냐며 괜히 호들갑떨며 물어보는 같은반 남자 녀석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곧 시작되는 것이다.

 

“자 그럼 한명씩 나와서 자기소개 해볼까?”

 

자기소개가 말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주춤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직전까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질문공세를 하던 남학생 무리도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담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맨 앞자리부터 남자부터 옆 방향으로 한명씩 나오도록 시켰다. 왜 항상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건 남자부터 시키는 건줄 모르겠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하는 우리반 녀석들을 살펴보았다. 주눅들은 목소리로 이름과 어디 중학교를 나왓다는 것만 말하고 들어가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호탕하게 나오는 녀석도 있었다. 아무래도 전자 보다는 후자가 인상이 좋다. 성격도 좋아 보이고 말이다. 나도 저런식으로 소개해야겠다.

 

하나하나 소개를 해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있는데 의외로 내가 나온 중학교에서 올라온 녀석이 몇 명 있었다. 아는 얼굴이 없어서 한명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는 나중에 같은 중학교 나온 것을 핑계로 말을 붙여 볼 요량으로 그 몇 명을 기억해두었다.

 

어느새 뒷자리까지 차례가 돌아왔다. 지그재그로 순서가 돌아 맨 뒷자리는 나부터 시작이었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의자를 밀고 일어나 교탁까지 걸어갔다. 몸을 돌려 앉아있는 반 아이들을 바라보자 수십의 시선이 나 하나에게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제 이름은 이은호이고요. 구산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축구와 농구를 좋아하고요. 게임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집이 멀지 않아서 자전거로 통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무난하려나? 나름 밝은 표정으로 자신있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내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돌아가던 도중 나 다음으로 자기소개를 하러 나오는 남학생과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반가운 척을 하며 씨익 웃고는 인사하듯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으응? 누구지? 모르는 얼굴인데 설마 같은 학교였나?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반사적으로 마주 손을 들어주었다.

 

일단 자리에 앉는다. 앉아서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에이 뭐 이름 들으면 기억나겠지. 나는 조금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칠판 앞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는 그 남학생을 지켜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축구를 엄청 좋아하고요. 중학교 때 축구부였습니다. 포워드를 했었고요. 매일 공을 가져올테니까 축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아, 사실 오늘도 가져왔는데 끝나고 축구하고 싶은 사람 없나요?”

 

이름을 말하라고! 

 

전부 축구이야기 뿐이었다. 그리고 반 아이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야 그렇지 조금 친해진후에 개별로 물어보면 모를까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개에서 대뜸 축구할 사람 있냐고 물어보면 설령 하고 싶은 애가 있더라도 보통은 대답 못 해준다고.

 

녀석은 아무도 대답이 없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으음...... 아무도 없나. 그럼 이따 끝나고 다시 모아볼게요.”

 

포기 안했냐고! 한명도 모이지 않았는데 얼마나 근성있는 거냐고!

 

녀석은 그렇게 축구 이야기만 하고서 자리로 돌아오려 했다. 

 

“저기 이름을 말해야지?”

 

그렇게 자리로 들어가려 하자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이 불러세웠다.

 

“이름이요? 맞다. 깜박했네요. 박찬용입니다.”

 

모른다. 모르는 이름이었다. 내 주변에 저렇게 열정적인 축구광이 있었다면 특이해서라도 모를 리가 없으며 이름도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녀석 대체 뭐야? 왜 아까 친한척 한거야? 설마 그건가? 아까 돌아오던 도중 내 뒤에 앉아있던 녀석한테 인사한건데 내가 혼자 착각하고서 받아준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 쪽팔린 일이었다. 분명 다른 녀석한테 인사한건데 마주 손드는 날보고 이녀석 뭐지? 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자리로 돌아오면서 앉아있던 나와 다시 얼굴이 마주쳤고 다시 씨익 웃으며 아는체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내 다음으로 자기소개를 나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박찬용의 자리는 바로 내 옆자리였다. 전문용어로 짝꿍이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박찬용은 자리에 앉으며 내쪽으로 의자를 끌어 앉았다.

 

어라? 난 너 모른다니깐! 함부로 접근하지 말아줄래? 라고 정조의 위협을 받은 새침데기 여자애처럼 반응하기도 전에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포지션이 어디야?”

 

“포... 포지션?” 

 

뭐?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이녀석? 갑자기 왠 포지션을 묻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 어리둥절하는 내 머릿속으로 번뜩 하나의 이미지가 지나갔다. 최근 인터넷에서 하나의 트렌트로 떠오르는 그것이었다. 헉! 이녀석 설마 그건가? 그거라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설명이 되었다. 날 처음 봣는데 친한척하며 웃음지은 것이나 의자를 끌어당기며 가까이 붙어 앉은 것이나. 포지션을 묻는 것까지!

 

나는 이녀석 설마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모든 것이 내 오해일 수도 있으니 확인 차 되물어보았다.

 

“어, 포지션이란게... 그 뭐냐... 위냐 아래냐 같은거냐?”

 

인터넷서핑을 하며 의도치 않게 알게 된 지식으로 그걸 탑이니 바텀이니 하고 부른다고 들었기에 조금 돌려서 물어보았다.

 

“위? 아래?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헷갈리지 않아? 보통은 공격이나 수비라고 하는편이 더 알기 쉽지 않아?”

 

보통은 그런건가! 역시 인터넷으로 주워들은 지식은 실재와 차이가 나는구나! 우리나라에서 배운 영어를 외국에 나가서 쓰면 정작 외국인들은 안쓰는 말인 경우가 많아 못 알아듣는다더니 이게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확실히! 탑이니 바텀이니 하는 것보다 공격이나 수비라고 하는 편이 의미가 더 알기 쉽다. 꼭 몸이 아래 있다고 해서 공격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으엑! 아니 나는 그런건 좀...별로 안 좋아하는데”

 

질색하며 강력히 부정해보았다. 박찬용은 위로 솟은 굵은 눈썹이 인상적인 남자답게 생긴 호방한 이미지였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취미는 없다.

 

“무슨 소리야. 좋아하잖아?”

 

안 좋아한데도! 

 

박찬용은 웃긴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내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녀석의 부리부리한 눈이 부담된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명확히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는 찰나.

 

녀석이 생각났다는 듯이 양손을 책상 아래로 내리며 허리를 숙였다.

 

“아 맞다. 내꺼 볼래?”

 

뭘! 뭘!

 

나는 기겁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응?”

 

박찬용은 의아하다는 듯이 가방에서 꺼낸 축구공을 들고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축구 얘기였구나. 

 

“이름이 이은호였나? 무슨 일이지?”

 

이런, 아직 자기 소개 도중이었지 어느새 여학생쪽으로 차례가 넘어갔는지 칠판 앞에는 여학생이 한명 서 있었고,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내게 물었다.

 

“아, 아니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대체 무슨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한거람. 이래서 인터넷은 너무 많이 하면 안된다는 거다. 최근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워낙 그런 소재가 많이 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그쪽으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