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된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들어오는 아이들은 대게 비슷한 얼굴이다. 중학교를 마치고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고등학교 생활이기에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어색한 얼굴들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쭈뼛거리는 태도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고서는 남들과 떨어져있는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나는 먼저 도착해 자리에 편하게 앉아있는 사람의 특권으로 반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왜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기가 죽는것일까? 들어온다는 그것을 공간이라고 해야할지 무리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먼저 도착한 채로 뒤늦게 도착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왠지 모를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너보다 앞섰다. 혹은 나는 네가 겪는 일을 이미 겪었다. 이런 마음 말이다.

 

뭐 우월감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저 편하게 볼 수 있다 정도로 해석해도 된다. 아무튼 뒤늦게 도착한 사람은 먼저와 있던 사람들의 관심을 동시에 받으며 그들을 한 뭉텅이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무리가 많고 커다랄수록 받게 되는 부담감도 커지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교실안의 무리가 커진다. 들어올 땐 굳어 있던 인상들이 자리에 앉음 으로서 무리와 하나가 되어 새로운 학생이 교실에 들어올수록 점차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어 간다. 흐음 흥미롭군.

 

그렇게 지켜보고 있자니 점차 다른 반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와서는 어색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한 방향으로 시선을 딱 멈추고는 화색이 밝게 변하는 남자학생이그 시작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녀석도 같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한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던 교실에 균열이 생겼다. 두 녀석은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을 무시한 채로 즐겁게 떠들기 시작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사실 거창하게 적어놓긴 했지만 내 목적도 그들과 다르지 앉았다. 아는 녀석 없나 하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오는 얼굴들을 확인한 것이다.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학생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겠지.

 

여덟시가 가까워 질수록 점차 교실은 시끌벅적해진다. 서로 아는 얼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개중 한 무리는 벌써 네 명이나 모였는지 앞뒤 네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의자를 돌려 앉아 교실의 주인이라도 된듯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어 댄다. 니들이 무슨 ‘친구’ 라도 되냐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야 뭐야? 부러움에 속으로 투덜거려본다.

 

교실은 점점 춘추전국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지 못해 나와 같이 고독을 씹고있는 학생들이 교실의 정숙을 지켜내기 위하여 점조직으로서 반 이곳저곳에서 묵묵히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다해내고 있었지만 모두들 통솔할 자격이 있는 담임네이터의 부재로 인하여 한계를 모르고 데시벨을 올려가는 각지의 제후들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실도 거의 다 찼기에 맨 뒤에 앉은 나로서는 슬슬 앞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잘 안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떠들썩하던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의자 반대로 앉아있던 녀석들이 눈앞에서 말수가 없어진 친구에게 “야 왜그래?” 라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몇 초 후에는 반 전체가 침묵에 휩싸인 채로 모두가 한사람만을 쳐다보는데 맨 뒤에 있던 나라고 해서 이상함을 못 느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보고선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같다. 너무도 전형적인 비유였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마치 티비안에서만 그 존재를 확인하던 연예인이 어느 순간 내 눈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러한 침묵과 서른이 넘는 시선들이 익숙하다는 듯이 아니 애초에 아무런 신경도 안쓰다는 듯이 조금 졸린 듯한 눈을 한 채로 교실뒤쪽으로 걸어왔다. 힐을 신은 것도 아닌데 발걸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듯했다.

 

걷는 발걸음에 맞춰 길게 늘어트린 검고 긴 생머리가 티비에 나오는 샴푸광고를 보는듯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키는 어지간한 남학생들보다도 커보였고 무대의상마냥 타이트하게 조인 교복상의와 교복치마가 나올 곳은 제대로 나오고 들어갔음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후와아 진짜 장난아니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는 반을 살펴보자 남자학생들이 떠드는 것조차 잊고서 그녀가 움직이는대로 고개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대체적으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나도 저런 표정이었겠지 매우 볼썽사나웠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교실 뒤쪽으로 걸어 왔다. 아쉽게도 내가 있는 창가방향은 아니었다. 

 

교실 맨 뒤쪽 자리까지 걸어온 키 큰 여학생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여학생 앞에 섰다.

 

아까 내가 쪽팔린 모습을 보였던 그 여학생이었다.

 

“어머, 그 안 어울리는 모자는 뭐야?”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그렇게 말을 꺼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왜 여기 있냐니, 재미있는 물음이네. 짜잔, 잘 보세요. 이 학교 교복이랍니다.”

 

그녀는 보라는 듯이 시늉했다.

 

“...너 성신고등학교 지원한거 아니었어?”

 

“음, 뭐 거기로 갈까 고민하긴 했었는데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거든.”

 

“거짓말”

 

모자를 쓴 여학생은 단언했다. 그 단호한 말을 들은 키 큰 여학생은 마치 칭찬이라도 들은듯이 미소지었다.

 

“분명히 입학식 날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 아무리 입학식때 학생이 많았더라도 이렇게 시선을 끄는 여학생이 있었더라면 몰랐을 리가 없다. 직접 보지는 못했을지언정 주변사람들의 반응으로 뭔가 특이한 일이 생겼었다는 걸 알게 됬을 터였다.

 

몇몇 남자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 보인다.

 

“아~ 그거?”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나른하게 대답했다.

 

“그날은 좀 졸려서 학교에 안 왔거든”

 

...졸리다고 입학식 때 안 오다니 대단하다. 대담한 건지 게으른 건지 모르겠다. 

 

모자 쓴 여학생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나 다리 아픈데 여기 앉아도 되지?”

 

키 큰 여학생은 모자 쓴 여학생의 빈 옆자리를 손으로 짚으며 물었다. 모자 쓴 여학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같은 반이라고?”

 

“응!”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이상한 짓 한 거 아냐?”

 

“어떤 이상한 짓?”

 

키 큰 여학생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 으으... 됐어.”

 

“그럼, 앉는다?”

 

“앉든지 말든지.”

 

모자 쓴 여학생은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지만 끝내 앉지 말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다른 빈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싫다면 앉지 말라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키 큰 여학생 쪽도 빈자리니 그냥 앉아도 될 것을 먼저 물어 보고서 허락이 날 때까지 앉지 않은 것을 보면 모자 쓴 여학생이 앉지 말라고 했다면 앉지 않았을 것 같았다.

 

친구인건가? 묘한 관계였다.

 

모자 쓴 여학생은 무엇이 달갑지 않은지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쓰고 키 큰 여학생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모양새였다.

 

마침 또 그 방향이 내가 있는 방향이라 눈이 마주칠 뻔 했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교실은 정적에서 벗어나 조금씩 다시 소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떠들썩함과는 느낌이 다른 소근거림이었다. 

 

학생들은 눈치를 보며 뒤쪽에 앉은 키 큰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그때 키 큰 여학생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모자 쓴 여학생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입학식날 내가 없는지 어떻게 알았어? 혹시... 나 찾았어?”

 

키 큰 여학생은 걸렸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모자 쓴 여학생은 키 큰 여학생 쪽으로 휙 하고 고개를 돌리고는 정곡이 찔린 것인지 억울해서 그런 것인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쳤다.

 

“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있는지 없는지?”

 

키 큰 여학생은 실실거리며 물었다. 모자 쓴 여학생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야 너는 언제나 사람들 시선을 끄니까... 윽!” 

 

모자 쓴 여학생은 실수 했다는 듯이 말을 하다 멈췄다. 하지만 이미 늦은 듯 했다.

 

키 큰 여학생이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머, 그렇구나 나는 언제나 시선을 끄는구나. 칭찬 고마워 푸후후.”

 

“크으...”

 

모자 쓴 여학생은 분하다는 얼굴로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이번엔 미처 피하지 못해서 눈이 마주쳐 버렸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뭐랄까 딱히 할 것도 없고 재미있어 보여서 계속 엿보고 말았는데 보통 이렇게 계속 쳐다보는 건 실례되는 행동이겠지 하고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원인은 저쪽이 제공했다고 해야 할까 쳐다본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변명을 생각해보며 힐끗 곁눈질로 옆을 바라보자 모자 쓴 여학생이 아직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그 후론 그쪽으론 곁눈질도 주지 않았다. 

 

어느새 여덟시가 다 되었고 교실은 자리가 가득 차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자리가 다 차고 보니 남자는 모두 창가 쪽 방향인 왼쪽에 붙어있고 여자는 모두 복도 쪽 방향인 오른쪽 방향에 앉아있었다. 

 

뭐지 이거. 너희는 물과 기름이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뭐 이렇게 깔끔하게 나눠져 있어? 

 

초등학교 이후로 남녀 공학은 처음이었지만 이 상황이 꽤나 이상하다는건 나도 알 수가 있었다. 아니 자리배치도 안된 첫날 이다보니 이게 당연한건가... 덧붙이자면 남자가 창가 쪽이 된 것은 아마도 처음 창가 쪽에 앉은 내가 원인 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곧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왔다. 뒷머리가 약간 붕 뜬 느낌의 갈색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었다. 

 

키는 백육십 정도 될까 이마가 넓은 편이고 꽤 귀여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여학생의 생김새가 아니었다. 

 

지금 교실은 자리가 전부 찬 것이다.

 

늦지 앉았다는 것을 확인한 여학생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고는 빈자리에 앉으려는 듯이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빈자리는 없었다.

 

여학생은 누가 봐도 매우 당황한 얼굴을 했다. 빈 자리가 없어서 당황했고 앉아있는 마흔명의 아이들이 모두 자기만을 쳐다보고 있기에 더 당황해 했다. 

 

굳이 속마음을 캐낼 것도 없이 그 여학생의 당황스러움이 이해됬다.

 

가끔씩 이런 녀석이 있는 법이다. 모임시간에 늦는 녀석. 거기에 늦는 바랍에 허겁지겁 오느라 무언가를 두고 오거나 장소를 착각하는 녀석.

 

아마 이 여학생은 후자일 것이다. 마치 나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는 투로 설명해본다.

 

여학생은 그제서야 반을 잘못 찾았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들어온 문으로 다시 빠져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학생이 불쌍하긴 했지만 웃음이 터진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 모두가 웃는 와중에 키 큰 여학생. 그러니까 내가 처음보고서 연예인을 떠올렸던 그 예쁜 여학생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다들 웃느라 그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난 줄은 뒤에 있던 몇몇 밖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저 둘은 전혀 안 웃네. 오히려 모자 쓴 여학생은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다. 

 

“나, 가볼게.”

 

아마 그 말은 나하고 몇몇 밖에 못 들었으리라. 

 

모자 쓴 여학생이 그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 어디 가는데?”

 

“내 반으로.”

 

“ ? ”

 

수수께낀가? 아니면 새로나온 유행어인가? 모자 쓴 여학생도 갑자기 키 큰 여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키 큰 여학생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방, 없잖아. 나 이 반 아냐.”

 

그녀는 그러고선 휙하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모자 쓴 여학생이 뒤늦게서야 상황을 이해하고는 등 뒤에다가 “거짓말쟁이!” 하고 외쳤지만 왠지 나도 키 큰 여학생이 웃고 있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다시 반에 들어왔고 맨 뒤에 비어있던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여러 학생들이 영문을 몰라 당황해했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친해지는 녀석이 있다면 알려주도록 하자. 

 

그나저나 아쉽네. 다른 반인가... 아니 뭐, 같은 반이었으면 내가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p.s

2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