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가 묻는다.
정말로 신이 우리를 사랑하나요?
모르지, 전에는 그랬을지도.
그럼 지금은요?

 

 남자는 골초였다. 백해무익한 것에 몰두하는 취미를 스스로 경멸하긴 했지만, 쉽게 끊어지는 것이었다면 담배회사들이 수많은 금연상품들을 내놨을 리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할 것을 전제로 생산됐다. 금연 껌을 씹고 니코틴 패치를 붙이며 식후 끽연을 거르지 않는 바람직한 골초들을 위한 물건. 남자는 죽기 전까지는 금연이란 단어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이 망하던지.
 그날 남자는 교외의 호수 공원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시외로 나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외곽으로 벗어나자 도로는 한적했다. 춥고 맑은 밤하늘을 보니 금연하기 좋은 날이었다. 상사와 크게 다툰 끝에 홧김에 사표를 냈고, 며칠 전 다이아 반지 선물을 했던 애인에게서 이별 통보도 받았다. 통장은 배를 째인 채 죽어가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 월세, 다이아 반지 할부금, 동생 병원비, 기타 온갖 명세서와 고지서들이 그 범인이었다. 금연하기 좋은 날이라 그런지 도시는 평상시처럼 평화롭고 고요했다.
 호숫가는 음악 카페와 식당이 즐비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밝은 식당가로 몰려갔고, 남자는 빛이 없는 갈대밭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물가에서 빨간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계절에 맞지 않는 반딧불마냥 껌벅껌벅 거리다 이내 사그라졌다. 남자는 피다 만 장초를 발로 뭉갰다. 담뱃갑 안에는 아직 두 개비가 더 남아있었지만 입맛이 써서 그런지 손이 가질 않았다. 고소하기만 하던 냄새가 그날따라 역하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변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남자는 그렇게 자조하면서 물속으로 발을 옮겼다.
 
 불길은 도시에 자신을 덧댔다. 달궈진 영혼이 그 위를 덮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 옆에 글귀를 적었다. 미덕보단 질책에 치우친 신의 말씀 같은 글귀들. 매일이 시끄럽기만 하던 시절에도 그리 유용하지 않던 말들이었다. 남자는 그런 말들을 싫어했다. 그러나 남자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지금 그것들은 누군가에겐 유용했다. 벼랑 끝의 희망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모두가 꾸는 백일몽을 보지 못하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다.
저기...
뭔데?
누가 우는 소리가 들려요.
남자는 거울로 뒤를 살핀다.
바람 소리만 들리는데.
소녀는 잠시 숨을 삼킨다. 그리곤 남자 뒤로 바짝 붙는다.
진짜에요.
소녀가 옷자락을 당기는 것이 느껴진다. 남자는 한숨을 쉰다.
그럼 길 잃은 유령인가보지.
유령도 길을 잃어요?
그래, 그 많은 사람 중에 누구 하나 길을 잃었을 수도 있지.
안 무서우세요?
아니.
왜요?
죽은 자들은 무얼 요구하지 않아.
해질녘이 돼서야 폐허 끝자락에 도달한다. 시계는 6시 조금 안 되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낮이 인색한 계절, 밤은 길고 춥다. 먼 곳에서 이따금 푸르스름한 광채가 점멸하고 있다. 저게 뭐에요? 남자는 쌍안경을 내려놓고 말한다. 모래폭풍이야. 오늘은 여기서 야영해야겠군.
남자는 벽면에 기대어 천막을 세운다. 말린 밀가루 떡과 콩 통조림을 반찬으로 하고 저녁을 해치운다. 차고 거슬한 공기가 입 안을 맴돈다. 남자는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물가에 발을 들여놓기 전, 남자는 세상이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 이른 해가 떠 있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이윽고 몇 분간 섬광과 굉음, 진동이 뒤따랐다. 머리 위로 갈대들이 쏟아졌다. 폭풍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주변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문뜩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남자가 죽을 차례는 뒤로 밀렸다. 그리고 이제 죽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다른 것을 떠올리기엔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