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하지 않은 고등학생이다. 첫 소개를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어떨까하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남자주인공들이 자신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람 A라면서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거나 겪는데 나는 그들과 달리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먼저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아 물론 평범하지 않다는게 외모라든가 성적이라든가 운동신경, 혹은 가진 돈이 많다거나 그런 부분은 절대로 아니다. 어느 학교나 전교 꼴등이 있다면 전교 1등이 있는 법이고 한 반마다 혹은 한 학교마다 잘생긴 녀석이 있으면 못생긴 녀석도 있는 법이다. 고로 운동신경이 좋든 나쁘든 간에 돈이 많든 적던 간에 평범하지 않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뭐가 어찌됐든 평범하니깐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점은 그럼 평범한 점들과는 다른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꽤나 중2병스럽다. 사실 난 평범하지 않아. 남들과 달라. 크크큭 오른손이 욱신거리는군. 으엑. 뭐 그런 부분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남는건 시간이다보니 집에서 만화도 자주 즐겨보는 터라 그런 서브컬쳐쪽은 나도 좋아하는 쪽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만화에서의 이야기이고 내 실생활과는 관계없다.

 

정말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방문을 잠그고서 지건이나 람각을 몰래 수련해본 사실은 절대로 없다. 절대로.

 

흠흠... 하지만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모두가 자기인생의 주인공이라고. 게다가 나처럼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살다보면 가끔씩 세상의 섭리나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서 탐구하다가 매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기도 하는 것이다.

 

‘나 좀 뭔가 대단한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정반대로 가끔씩 우주의 끝없는 넓이와 인간이란 생명체의 보잘것없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끝이 없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건 중학교시절에 졸업했다. 아마도.

 

......

 

아무리 변명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난 특별하지만 중2병은 아니고 다른 중2병들과는 다르고... 블라블라. 괜히 누구하나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알아달라며 날뛰는 것 같다.

 

이제와서지만 역시나랄까 보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도 이렇게 정리해서 적어보자니 쪽팔림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잠시 펜을 놓고 고민해본다. 으음...자의식과잉인가. 뭐 그렇게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남는 건 시간이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마저 적어본다.

 

이걸 병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초능력이라고 말해야 할까 민폐라면 민폐인데 살다보니 익숙해져서 나름 좋은 점도 생겼다고 해야 할까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나로서는 코로 냄새를 맡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이 되어서 이렇게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숨 쉬는 것처럼 일상인 일이다.

 

아무래도 이제 슬슬 아 되게 돌려 말하네 그러니까 그 평범하지 않은 점이 뭐냐고 하며 태클이 들어올 것 같다. 그걸 아는 것과 별개로 내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우회하며 길게 늘여 수십 페이지쯤 써서 뜸을 계속 들이고 싶을 정도지만 그렇게까지 남의 이야기를 하면 아 됏어, 말하기 싫으면 관둬 라며 대다수가 떠나갈 것 같기에 딱 잘라서 고백해보기로 한다. 뭐 어차피 이 글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사실 아직도 부끄럽고 초조하다. 글을 적는 손가락마저 떨리고 있다.

 

그래 사실은!

 

난 잠을 잘 수가 없다.

 

......

 

말해버렸다. 아니 사실은 적은거지만. 어이. 거기! 뭐야 단순히 불면증인가. 라는 얼굴 하지 말라고!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질질 끌면서 불면증을 고백하냐고! 내가 말한 건 말 그대로의 의미라고! 밤에 커피 마셨냐고? 커피도, 박카스도 안 먹었어! 고작 하루를 안 잔 것도 이틀이나 삼일을 안 잔 것도 아니다. 나는 일년 365일 1분 1초도 잠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시간 때우기용 글을 아무렇게나 끄적거리고 있었더니 어느새 새벽 다섯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벌써 이런 시간인가. 최근에는 시간 때우기 스킬이 점점 늘어나서 예전처럼 침대에 누운채로 시계 초침만 바라보는 일이 별로 없어졌다. 전혀 피곤하진 않았지만 밤새 굳어있던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에 끄적거리던 낙서를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오늘은 내 고등학교 1학년의 첫 등교일이었다.

 

새 학교와 새로운 반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생각을 하니 가슴이 조금 두근거린다. 나 조금 흥분했나? 마치 소풍가기 전날 밤 기대되서 잠들지 못한 아이 같잖아! 뭐 나는 매일 잠들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직 공기가 싸늘한 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충 견딜만 하기에 입고 있던 얇은 옷차림 그대로 거실로 나가 욕실로 들어갔다.

 

온수를 틀고 샤워를 하고선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왔다. 교복입기, 가방 챙기기 기타등등 학교를 가기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마친다.

 

해도 뜨지 않았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밥그릇에 밥을 푸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반찬들을 꺼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어머니가 깨지 않도록 되도록 큰 소리가 안 나게끔 주의하며 식사를 마쳤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니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올려보자 아직 여섯시 되기 15분전이었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꿈나라로 가있는 시간. 조금 부지런한 학생이라도 이제야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가방을 등에 메고서 되도록 문소리가 크지 않도록 조심스레 열고 닫는다. 아직은 싸늘한 아침공기가 온몸에 와 닿는다. 하아 하고 숨을 내뱉어 보니 김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나는 간밤에 차갑게 식어버린 자전거의 안장을 손으로 한번 쓸어내리고서 학교로 향했다.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학교에 가느냐고? 

 

후후 그것은 사실 비밀이지만 당신에게만 알려줄수도 있다.

 

새벽의 학생회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어둠의 학생회라든가. 아 이건 뭔가 연상되는 이미지가 뻔하니 취소하자. 이른 아침에 학교 가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너무 억지를 쓰는 느낌이다. 

 

사실 뭐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그렇게 습관이 들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말이다.

 

당황스런 수위아저씨의 얼굴을 볼 수 있다던가, 학교의 열쇠 있는 곳을 알게 된다는 점, 아무도 없는 교실문을 열고서 들어가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학생들의 순번을 매길 수 있다는 점들은 그다지 큰 메리트가 아니다.

 

나는 그냥...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에 집에서 딱히 할 것도 없고, 그냥 학교에 빨리 가는 것으로 그렇게 습관이 들어버린 것이다.

 

입학식 때 한번 와봤기에 길을 헤메는 일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간은 여섯시 십분이었다. 역시나 이른 시간이어서  교문과 학교근처에는 통학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교문은 열려있었다. 보통 열쇠위치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수위아저씨에게 열어달라고 부탁해서 들어가거나 수위아저씨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고등학교여서 그런 건지 수위 아저씨가 부지런한 것인지 교문의 쪽문이 이미 열려있었다. 

 

수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교문을 통과하며 수위아저씨가 어디 있나 수위실 안쪽과 그 근처를 둘러보았지만 수위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얼굴도장을 익혀놓아야 열쇠위치를 금방 알려주는데 말이다. 아쉬움을 다시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1년간 속한 반은 1학년 2반. 학교 정문과 멀리 떨어진 건물 반대 방향의 1층이었다. 들어가기 전 미리 보아둔 자전거 주차장에 내 애마를 세워놓는다.

 

수위아저씨는 꽤나 부지런한 것인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옆쪽 유리문도 이미 열려있었다. 아무도 없는 차가운 공기만이 맴도는 기나긴 복도를 뚜벅뚜벅 걷는다. 내 발걸음 소리만이 복도에서 울려퍼지며 창밖에서 들려오는 참새소리와 화음을 맞췄다. 

 

새벽공기에 차가워진 문 손잡이를 잡는다. 조금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문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오오 열린다 열려!

 

교실문이 잠겨있어 교무실 앞에서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비참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하다.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열리며 보이는 풍경은 등교 첫날이기에 당연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깔끔한 책상과 걸상들. 마치 갓 눈이 내린 하얀 공간에 내 발자국을 제일 먼저 찍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이제 이 공간은 내가 들어서며 순결을 잃어버린다. 내가 이곳에 발을 내딛는 첫 존재란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물론 고작 교실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인류가 도약할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도약할 수 있다.

 

입던은 점프가 개념!

 

나는 교실 안으로 점프했고 체조선수처럼 착지하며 양팔을 쫙 펼쳤다! 네! 10점 10점 10점 이은호 선수 만점입니다! 

  

나는 만점을 준 심사의원들과 응원해준 고국의 팬 분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왼쪽으로 돌아서며 허리 굽혀 인사했다.

 

어, 잠깐.

 

......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상태로 굳었다.

 

웃으며 고개를 숙일 때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인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 같았다.

 

새벽공기가 쌀쌀해서 그럴 리가 없을 터인데 얼굴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로 조심스럽게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여섯시 십오분이었다. 

 

평범한 학생이 학교에 올 시간이 아니었다. 아니, 오늘은 등교 첫날이라고! 대체 어떤 정신나간 학생이 첫 등교날 여섯시 십오분에 교실에 오냔 말이다!

 

나지 참.

 

-큭큭큭...

 

그때 고개숙인 내 앞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참아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입술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듯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보지 않았지만 지금 내 얼굴은 새빨갈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진정해라 나. 캄 다운. 고작 한명일 뿐이야.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 나에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아니 설명해내지 못하더라도 이걸 기회로 삼아 친구로 만들어 버리면 십년쯤 지나서 그러고 보니 널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하며 동창회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돼서 그 모임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래!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내 천재성에 감복하면서 굽혔던 허리를 폈다. 하지만 쪽팔렸기에 차마 고개는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면 새빨개진 내 얼굴이 그대로 보이겠지, 나는 웃음소리가 난 곳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그 누군가는 뒷문에 가장 가까운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체구가 작다. 중학교때 친한 친구였던 동훈이도 저렇게 체구가 작았었는데 가끔씩 이렇게 성장이 느린 녀석이 있다.  

 

몸집이 작은 사람을 우습게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보다 작다는걸 알게되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다가가며 고개를 좀더 들었다.

 

녀석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그것 때문에 더 작아보인다. 어라? 머리가 검은색이 아니다. 밝은 갈색이라고 해야할까 금발? 아니 금발이라기엔 색이 옅고 그 중간에 걸친것 같은 머리색이다. 

 

정말이냐고, 등교 첫날부터 머리 염색이냐고, 엄청난 녀석을 만난듯 싶었다. 체구가 작은게 콤플렉스여서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을 바라보자.

 

그쪽도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동그랗다. 체구가 작아서인지 머리도 작았다.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길다. 눈썹도 머리색과 맞춰 염색했는지 같은 색이었다. 코는 작고 오똑했고 피부는 하얗다. 이야 이 녀석 미인이네, 완전 여자애같이 생겼다. 하고 생각했더니.

 

여자애였다.

 

나는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몸을 반대로 돌려 교실 맨 뒤쪽 창가 끝자리에 앉았다. 메고있던 가방은 책상 걸쇠에 걸어놓고서 한손으로 턱을 받쳤다. 상체는 여자애에게 등이 보이도록 살짝 비틀었다.

 

자, 자연스러운 자세는 해결 됬고 이젠 반성의 시간이었다.

 

'쪽팔려! 쪽팔려! 쪽팔려!'  

 

난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앞으로 일년간 매일 만나게 될 같은 반 여학생에게 초면부터 그런 창피한 모습을 보이다니  쪽팔려서 죽고 싶었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일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애들에게 팬티를 보였을 때 만큼이나 죽고싶었다. 선생님 전 여자화장실을 엿보지 않았어요. 그땐 아무런 성적호기심이 없었단 말입니다. 여자화장실 같은 건 오히려 더럽다고 생각했을 정도라고요. 여자화장실을 엿본건 제가 아니라 영철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 순간 그 앞을 지나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영철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애들은 마침 그 근처를 지나던 나도 영철이와 공범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항변했지만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의 말만 믿으셨고,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판결아래 여자아이들 앞에서 바지를 벗게 되었다. 너희도 창피함을 맛봐야 한다나 뭐라나.

 

참고로 영철이는 내 옆에서 같이 바지가 벗겨져 울고 있었다. 너는 임마! 억울하지라도 않지!

 

나는 잠시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리다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때 보단 상황이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속옷을 보인 것도 아니었으며 상대는 고작 한명이었다.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내 행동에 대한 해명을 해야했다.

 

닐 암스트롱과 나의 작은 한걸음, 그리고 인류의 도약에 대해서 말이다.

 

...... 미친 짓이었다. 

 

상황이 악화 될 것이 뻔했다. 최소한 저기 앉아 있는 애가 남자였다면 프렌드쉽 충만한 힙합 마인드로 헤이 보이~ 왔썹맨! 너도 혼자 있을 때 그런 짓쯤이야 하잖아~ 지건 연습 해봤냐? 하면서 뻔뻔스럽게 들이대보기라도 하지 첫 대면에 예쁘장하게 생긴 동갑 여자아이에게 그런 짓을 해야 한다니 이 무슨 지옥불 난이도냐. 

 

아 물론 내가 지건을 연습해 봤다는건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아무튼 그렇게 말도 못 붙인 채로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고 있자니 어느새 창밖으로 다른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교실에도 점차 하나둘 학생들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