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하느님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시지. 하지만 성서는 거짓말이야." ​

남자는 조심하며 모래 위를 걷고 있다. 적당히 엉겨 붙은 유리와 독 안개 넘실거리는 황무지에서 걸음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특히나 튼튼한 밑창이 없다면 더더욱. 푹푹 꺼지는 모래 수렁 사이에 자리한 유리조각으로 피를 보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 이런 장소에서 발에 부상을 당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체험은 아니었다.

소리가 이상해요.

뒤따르는 속없는 말에 남자는 퉁명스레 대꾸한다.

이상한 것들이 묻혀있으니까.

모래 아래 재와 숯으로 빚어진 세계가 있다. 이따금 모래 아래 파묻힌 것들이 뭉그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옛 시대가 지르는 비명 같은 소리다. 남자도 기억이 아니었다면 그게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들은 정말 이상한 것들이었다. 하늘을 날고 우주를 넘나드는 경험은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였다. 남자에게도 그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어린이와 호기심은 불가분의 관계다. 소녀의 손이 남자의 말과 함께 멈춘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치를 본다.

안 돼.

물론 지금 와서 그것들을 건드린다고 정말로 큰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만약이란 것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때때로 아무도 바라지 않는 결과를 낳곤 한다. 눈앞에 두터운 시간을 뚫고 나와 있는 영화의 편린은 그 사소했던 사고의 결론이다. 물론 완전히 사고만으로 점철된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남자는 시계를 본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만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시계는 꽤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유치한 캐릭터 장식이 들어간 알록달록한 장난감 태엽시계. 그러나 첨단의 물품들보단 수명이 길었다. 자신을 행상인의 길로 이끈 양반이 은퇴 기념으로 물려준 것이 인연이 되어 반생을 길동무로 있어왔다. 그래서인지 슬슬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기분도 들지만.

시계는 3시가 좀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정오 때 이곳을 지나쳤어야 했다. 애당초 이레 거리를 애를 데리고 제 시간에 간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긴 했다. 하지만 그는 행상인이다. 장날에 늦으면 다음 장이 설 때까지 도시에 묶여있어야 한다. 그에 비해 동행자는 팔자 좋게 폐허 속을 산보 하고 있다. 어제 밤에 보았다던 이상한 빛이 마냥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무엇이건 건드리길 좋아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녀를 불행으로 내몰았다.

남자는 소녀를 보면서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아이가 조금 더 나은 시절에 태어났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이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고, 그녀는 단지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아는 방물장수와 사막을 여행하고 있을 뿐인 것이라고.

히카사는 어떤 곳이에요?

남자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짧게 답한다.

도시지.

황무지 사막에서 히카사를 모른다면 둘 중 한 가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바보거나, 혹은 외계인이거나. 아무리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후손들이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을 테니까. 등 뒤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남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베로니카 언니는 언제나 도시로 가고 싶어 했어요. 배불뚝이만 되지 않았다면 함께 따라 나왔을 거예요.

배불뚝이?

남자의 반문에 소녀는 화색을 하며 답한다.

네, 그렇게 되면 걷기가 힘들어지니까요.

그렇군.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리곤 잠시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린다. 땟국을 한 사발 끼얹은 얼굴에 눈동자만 초롱초롱 하다. 소녀는 뭔 일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손해 봤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을 뿐이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요?

버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 환불하려 한다면 아마 총알로 받을 것이다.

빨리 안 오면 버리고 갈 거다.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붙는다. 남자는 보폭을 늘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편하면 내일은 고달프다. 황무지 사막을 걷는 이들에겐 진리나 다름없는 경구다. 그리고 남자는 그 뒤에 한 마디를 더 붙인다. ‘그렇다고 오늘의 고달픔이 내일의 편함을 보장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