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류시어급 튤리엇 벤 아덴트는 임무를 받아 작전공역에 도착했다.

험준한 산맥과 궤도폭격 크레이터가 가득한 지대에 들어서자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함체를 흔들었다. 곳곳에 파인 거대한 구덩이와 뭉개지지 않은 산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에는 1km에 이르는 에류시어라 해도 흔들흔들 흔들렸다.

"곧 작전 구역에 들어갑니다. 전파 은폐 시작, 모든 감시장치 활성. 목표 탐색."

아덴트의 인공지능인 아덴트가 읊는 기계적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줄리 소령은 뒤로 밀어놓았던 헬멧을 착용했다.

지휘실 내부는 기계적인 소음도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다른 관제인원들도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튤리엇 벤 아덴트는 지금 방금 적의 세력권에 들어왔다.

시야 한쪽에 밀어놓았던 지도가 위로 떠오르며 붉은 색 영역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작전명령서에는 여기서 10분 더 간 곳에서 30분간 목표를 향해 포격, 함장 재량 사격인 간단한 임무였다. 다만 이쪽은 가장 가까운 아군 기지에서 긴급 발진한 지원편대가 10분은 걸려야 닿을 곳으로, 적 궤도폭격 함대의 정규 순항 궤도 바로 밑이었다.

"이거 등골이 오싹오싹해지는 구만."

물을 마시며 줄리 소령은 계속 하늘을 보았다.

에류시어의 관측장비로 최대 망원과 최대 광각을 동시에 보고 있는 밤하늘엔 한창 궤도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에서 폭발광이 번쩍거리고 저궤도로 내려온 함선들의 모양이 보였다.

"함장님. 포격대기 좌표까지 9분 남았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함내에 포격 준비령 발령해."

"알겠습니다. 함내에 포격 준비령 발령! 전 승무원 정 위치! 신체 고정!"

일련의 복창과 함께 함교에 경고등이 켜졌다. 아덴트가 분주히 내부 기관들을 제어하며 함선 깊은 곳에서 부엉이 우는 듯한 소리들이 들렸다.

줄리 소령은 보고 있던 화면을 내린 후 지도를 띄웠다. 아덴트는 현재 달도 없는 밤에 맞춰 검은색 위장색으로 위장한 채 엔진을 최소 출력으로 맞추고 적외선 방출까지 최대한 저감시켰다. 궤도 위에 있는 적 함대에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1km에 달하는 거체가 움직이는 기척은 쉽게 감출 수 없다.

지도에는 거친 지형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아덴트의 모습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는 지면 마이크로파 스캔 밖에 하지 못하는 상태다. 자연히 아덴트와 조함장의 조타도 조심스러워서 아덴트는 구렁이 담 넘듯 구덩이와 능선을 기었다.

"경계구역에 이상 없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며 줄리 소령은 포술장에게 물었다.

"예. 이런 데에 숨겨봤자 적당한 지대공 미사일 정도겠죠. 별다른 기척은 없습니다."

"함장님 조마조마하는 거 너무 얼굴에 보입니다. 이거 한두 번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오른쪽에 있던 조함장이 명랑하게 건넸다. 일견 무례한 언동이었지만 줄리 소령은 괜찮은 조타수인 처녀를 탓하지 않았다.

아덴트가 임무를 시작한지도 벌써 20년째다.

줄리 소령은 처음 함을 인도 받은 그 때부터 보신주의로 살아왔다. 물론 받은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간 크게 뭔가 공적을 세우겠다고 나서는 일은 절대 없었다. 지령 받은 임무만큼 한다. 이 원칙을 고수해온 덕에 아덴트는 20년 동안 큰 파손은 단 한차례 밖에 없었다.

"긴장 좀 해라. 여기 적 세력권이야. 아덴트. 함내 배치 완료 됐어?"

"완료중입니다. 14명의 신체 고정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늦은 데는 어디야?"

"조리실, 경비대기실입니다."

"굴러다니기 전에 빨리 움직이라고 해. 갑판장. 모든 함내 문을 닫고 격벽 차단 실시. 궤도 포격 대비 태세에 들어간다. 조함장. 배를 세울 준비를 해."

"예. 함장님."

"포격 대비 태세로 이행합니다! 전 갑판 구획 폐쇄!"

에류시어급의 지휘실은 함장 바로 앞에 포술장, 그 오른쪽으로 갑판장, 왼쪽으로 조함장, 뒤쪽으로 5명의 전술 통제 사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함의 크기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나머지 세부 조정은 아덴트가 부담하고 있으므로 부족한 점은 없었다.

"목표 포착. 조준선 표시."

하늘을 이리저리 관측하던 아덴트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궤도 3000~3500km 사이에 포진하고 아군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적 궤도폭격 함대가 목표물이었다. 방공함들이 내뿜는 대공포탄과 레이저가 먼지처럼 반짝이고 폭격함들은 우왕좌왕하며 폭격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전함인 기함이 앞으로 나서서 분투하고 있지만 상대하고 있는 아군은 저궤도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경계 비행사단이었다. 지원포격을 요청한 것은 그들이 틀림없었다.

"휘유. 훼방 좀 놓아야겠지. 포격 준비!"

"포격 준비! 함을 세운다!"

"대공 방어망 가동합니다. 1급 경계 태세 발령! 아덴트! 모든 레이더 가동! 궤도 포격 단계로 이행!"

"아덴트는 지금부터 1급 방공 경계 태세에 돌입합니다. 전 발사관 장전."

"아덴트! 배를 세워!"

줄리 소령은 팔걸이를 꽉 붙잡았다. 눈앞의 정보 표시 창에 온갖 경고가 떠오르며 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수와 함미에 장치된 자세제어 엔진이 점화되면서 튤리엇 벤 아덴트는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표를 향하고 있는 좌현 함수 추력 엔진이 샛노란 불꽃을 뿜어내며 배를 들어올렸다. 거친 언덕 위를 미끄러지며 나아가던 1km짜리 함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장대한 흙먼지와 함께 공기가 울렁거리며 온갖 난기류가 닥쳤다.

"29, 39, 40, 함미 자세제어 엔진 점화. 중앙 수평타를 엽니다. 아덴트는 궤도포격 임무로 이행 중. 반복합니다. 아덴트는 궤도포격 임무로 이행 중."

길이만 1km에 달하는 함선이 지표에서 일어나며 난기류를 만들고 분사화염으로 땅을 태웠다. 강력한 핵융합 불꽃이 긁어낸 지표면이 새빨갛게 녹아 내리며 계곡을 만들고 밤하늘에 번개가 치는 연기구름을 만들었다.

"49도에 다다랐습니다! 우현 자세제어 엔진 점화! 반동추진 준비! 좌현 수평타의 기류제어 정상치! 진행각 정렬 시작합니다!"

"73도에 다다르면 주포 포격 준비해. 경계구역에 이상 있으면 최우선으로 보고해."

잡다한 명령들과 보고들 사이로 줄리 소령은 주변 경계구역의 동태를 빠짐 없이 살폈다. 에류시어급 포함에 장착된 궤도포격용 주포는 구경이 3500mm에 길이만 300미터였다. 거기에 3단 주퇴복좌장치와 20TW짜리 발전로, 축전기나 기타 지원장비들을 합하면 무게가 현기증이 날 정도라 에류시어급을 일으키기 위한 자세제어 엔진은 궤도에서도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하다. 당연하지만 이런 거포를 포탑 형식으로 탑재했다간 에류시어급 질량으로는 반동제어가 불가능하다.

"56, 57, 58, 진행방향 정렬 78%. 함수, 함미 보조 수평타 전개. 중앙 수평타의 출력 100% 고정. 62, 63, 64."

아덴트는 계속 각도를 읊어나가며 갖가지 장치들을 작동시켰다. 전자유체제어장이 가동된 날개들이 아덴트의 몸체에서 열리며 일어나서 기류제어를 시작하고 함체를 진행방향과 정렬시켰다. 동시에 그 반대쪽에서 수평 추진 엔진이 점화되며 느려졌던 속도를 가속시켰다.

"73도 도달! 주포 포문을 엽니다! 1,2,3번 주퇴복좌기 최대 연장 위치로 이행! 축전 개시! 아덴트! 발전로 포격 출력으로 증강해!"

"이야, 야단났다! 237도에서 레이더 반응이다! 다들 긴장하라고! 포술장! 최대한 빨리 포격해!"

아니나 다를까 살피고 있던 레이더 화면에서 반응이 있었다. 줄리 소령은 침을 삼키고 희미한 반응이 있었던 구역으로 지향성 레이더를 돌려 최대 출력으로 훑었다. 어차피 자세제어 엔진에서 뿜어지는 적외선량이 엄청나므로 이 정도야 광고하는 정도도 되지 않았다.

"요 새끼들, 이런 데에 잘도 처박혀 있었네. 얼마나 잘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아덴트! 좌현에 부유포탑 모두 배치해! 일단 각 포탑당 3발씩 쏴본다! 반응 있나 알아봐!"

"포격 범위를 설정해 주세요."

"아 진짜, 그런건 좀 알아서 해라."

입으로는 우는 소리를 했지만 줄리소령은 재빨리 손을 움직여 탄착군을 표시했다. 아덴트로부터 70km 벗어난 곳에서 100미터 간격으로. 1번 포탑의 첫 포탄은 정찰포탄, 두 번째부터는 모두 고폭탄으로 설정했다.

"89, 90, 91 자세 안정 중! 주포 충전 중입니다! 제 2탄 장전 준비!"

"으악!"

그러나 채 포탄을 발사하기도 전에 레이더에 광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덴트는 경악한 줄리소령이 반응하기 전에 이미 전자전을 개시하며 발사체의 정체를 확정했다.

"지상 차량 발사 중형 지대공 미사일. 요격합니다."

"23, 30, 저게 다 몇 개야! 탄종은 그대로 냅두고 저기다 다 쏴버려! 탄착범위는 반경 200m!"

"함장님 진땀 빼시네요. 균형 안정! 자세제어 엔진 정지! 수평타 출력 70%에서 자세 안정  됩니다! 언제라도 포격 가능!"

"포격하겠습니다! 충격 대비!"

함이 완전히 수직으로 서자 함교 전면 대형 표시창에 궤도의 상황이 떠올랐다. 첫번째 공격 표적은 3500km에서 초속 16km로 이동중인 중형 방공함이었다. 뒤쪽으로 쏟아내는 요격탄이 지표에서 보면 별처럼 반짝거렸다.

"빨리 빨리 해! 아덴트, 총 34발이지? 다른 공격 징후는 없어?"

"요격 중. 레이저 요격 중입니다."

강력한 전자전 파에 맞은 미사일 몇 개가 목표를 잃고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덴트에 피해를 입히기엔 조금 모자란 미사일들이지만 궤도포격을 위해 아슬아슬한 자세를 잡고 있는 이 때 수평타에 맞기라도 하면 배가 그대로 뒤집힐 수도 있었다. 긴장한 줄리 소령은 점점 말이 경박해졌다.

"와! 와와! 중거리 방공 선까지 들어왔잖아! 그것도 20개나! 아덴트! 빨리 요격 미사일 발사해! 넌 인공지능이 왜 이렇게 늙다리냐! 부유 포탑은 모두 지정 표적에 쐈어?"

"함장님. 주포 포격 대비해 주십시오. 포격 위치까지 4초, 3초, 2초. 1초."

"쏴!"

갑자기 세찬 충격이 덮쳐오는 바람에 줄리 소령은 살짝 혀를 깨물고 말았다. 그리고 중력방향이 바뀌며 함 전체가 몇 십 미터나 꺼졌다. 거기에 3단으로 된 주퇴 복좌기가 작동할 때마다 다시 둔한 충격이 3번씩 일었다. 튤리엇 벤 아덴트는 포격 충격으로 무려 80미터나 가라앉고 주퇴 충격에 자세가 10도 정도 무너졌다. 이 정도는 수평타의 기류제어로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첫 포격을 한 이후 다들 말이 없어졌다. 함의 뱃속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울리는 쇳소리는 지휘실에서도 귀를 먹먹하게 했다.

이 포격의 위력은 그야말로 장난치는 수준이 아니라서 방금 다가오던 미사일들의 태반이 포격 충격파에 조각나 폭발해버렸다. 포탄과 레일을 접촉하는 접속자가 증발한 플라즈마는 아덴트의 두 배나 길게 뿜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산의 사면이 통째로 무너져 버리기까지 했다.

"제1 방공구역에 접근한 표적 5개에 대해 요격 실시. 우현 자세제어 엔진 시동. 제 2포격으로 이행합니다."

최근접 방공구역에 진입한 살아남은 미사일 다섯 중 네 개가 부유포탑의 요격에 말려들어 폭발하고 한 개가 명중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포신이 복좌되며 들리는 소리에 그대로 묻혔다. 아덴트도 담담하게 장갑 1미터 정도가 구멍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2차 포격합니다! 2번탄 장전!"

"저런 놈들이 있다는 건 날파리들이 꼬셔진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다는 건데, 그림자 하나 안 보이네."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함장님. 진로를 158로 수정합니다. 10km에 앞에 3000m짜리 봉우리가 있어요. 여차하면 대피장소로 쓸까요?"

"오. 거기 좋다."

"2차탄 장전! 충전 완료까지 1분 45초!"

쿵쿵거리며 포탄들이 움직였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다음 포격까진 1분이 넘었다. 줄리 소령은 밀어놓았던 궤도현황을 다시 올려서 전과를 확인했다. 첫 탄은 역시나 빗나간 모양이었지만 목표가 되었던 방공함은 허겁지겁 함대 진형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고도에서 폭발한 포탄의 잔광이 보였다.

"주변 방공구역은?"

"지형이 거칠어서 아직 뭐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함장님이 지정한 좌표에는 큰 흔적이 없습니다. 무인 발사차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덴트. 피해는? 피격된 데가 어딘지 표시해."

"좌현 중앙 상부 제 5갑판입니다."

다행이 중력제어기관의 안테나 라인은 벗어났다. 생짜 장갑이라 맞아도 흠집 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줄리 소령은 한숨을 내쉬고 헬멧을 벗은 다음 이마의 땀을 재빨리 훔쳤다.

"함수 표적 레이더 개량을 건의한게 벌써 몇 년 째인데 아직도 안 고쳐 주냐. 이번 창정비 때는 반드시 어떻게 해달라고 해야지."

"제 2탄 사격까지 62초 남았습니다. 그거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함장님. 주포 조준 레이더가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어요."

"됐어. 겁을 상실한 놈들. 나는 지금 피 말라죽겠는데, 아우. 아파라."

줄리 소령이 깨문 혀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자 뒤쪽의 사관들 사이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함장님 너무 좌불안석이시다. 매번 그러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맞아요. 전 주포 쏘는 반동이 뱃속에 울려서 그게 더 죽겠어요."

"이것들이! 재잘재잘 떠들지마! 나중에 우는 소리 하지 말아라!"

"함장님. 주포 충전 끝났습니다. 현 자세 유지하며 25초 후 2차 사격합니다."

10초가 남았을 때부터 아덴트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이번 표적은 23522km에서 움직이고 있는 항공모함이었다.

궤도 화면을 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밝은 빛 하나가 터져서 줄리 소령은 눈을 비비고 욕지거리를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폭발 잔향이 터지고 파편들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1200km 떨어진 곳에서 아덴트와 마찬가지로 포격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루시엔 벤 솔튀르의 작품이었다.

"2초. 1초."

"쏴!"

2차탄 사격으로 포신 온도가 500도까지 올랐다. 이번엔 우로 12도 정도 조준이 틀어졌다. 아덴트의 뱃속에서 울리는 굉음은 수백 번을 들었어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주포 3번까지 주퇴 종료! 복좌 시작!"

함장석에 의지한 채 조마조마한 숨을 내쉬고 있는 함장과 달리 포술장은 화면에 나타나는 수치들을 보며 계속 힘차게 복창했다. 그의 앞에 띄워진 화면에는 주포 주퇴복좌기를 감시하는 6개의 감시 카메라 화면과 주포 사격 과정을 재현하는 그래픽이 움직이고 있었다.

"맞았다!"

줄리 소령이 보고 있는 화면에 밝은 빛이 뿌려졌다. 전면 화면에도 밝은 폭발광이 크게 일어났다가 흩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궤도에서 일어나는 폭발은 대기권만큼 극적이지 않아서 금방 빛이 가라앉았지만 몇 개인가의 커다란 파편이 너울거리며 비산하는 것을 보고 아덴트가 대략적인 중파 판정을 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잠시,

"궤, 궤도폭격 경보! 궤도 사령부에서 왔습니다! 착탄까지 135초! 3급입니다! 각도는 152도!"

전술 사관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약간 여유가 있었던 조함장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고 포술장은 으악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줄리 소령은 이번에야말로 귀신을 본 것처럼 떨었다.

"포, 포격 중지! 아덴트! 모든 엔진 점화! 착탄 예상 지역이 어디야!"

"계산 중입니다. 궤도 사령부로부터 정보. 착탄 위치는 함으로부터 반경 200km 이내. 착탄 각이 얕으므로 튕겨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피 방향 설정. 추가 정보입니다. 발사체의 분열 확인. 즉시 대피합니다. 전 엔진 최대 출력 점화. 제가 조함 하겠습니다."

기계적으로 보고를 하는 아덴트의 목소리마저 떨렸다.

튤리엇 벤 아덴트에게서 삽시간에 9줄기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줄리 소령은 비질비질 식은땀을 흘리며 지휘 조작계를 건드려 착탄 예상 지점과 각도를 화면에 띄웠다.

궤도 폭격탄은 12개로 분열되어 대기권을 뚫고 있었다. 속도는 초속 87km. 발사한 각도가 지평선에 가까울 정도로 낮기 때문에 일부는 튕겨나갈 것이 분명하지만 개당 30톤 짜리 폭격탄은 산쯤은 간단히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나마 직선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멀어지는 지평선 쪽이라 대피할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불과 몇십 초에 지나지 않았다.

"으아아아! 엄마!"

"야! 포술장 너 임마! 하여간 되는 일이 없어!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아덴트! 주포 충전 다 됐어?"

"주포 사격은 기동에 큰 영향을 미치며 권하지 않습니다."

아덴의 담담한 말에 줄리소령은 엿 먹으라는 듯 검지손가락을 위로 쳐들며 악을 썼다.

"너도 그냥 죽기 싫을 거 아냐! 착탄까지 얼마 남았어! 빨리 누가 말해봐!"

"100, 92초! 궤도 폭격탄이 가속했습니다! 최종 착탄 각도는 145도!"

줄리 소령은 사관의 말을 듣고 입으로 계속 욕을 내뱉으면서 재빨리 화면을 정리했다. 예상 착탄 위치와 아덴트의 기동성, 착탄 후 피해 범위와 주변 지형들을 이리저리 대입하고 끼워 맞추고 신경질적으로 화면을 두드린 끝에 벌벌 떠는 포술장을 갈궜다.

"야! 엄마 찾는 새꺄! 너 빨리 주포 발사 준비해! 살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엄마 찾으면 다 해결 되냐!"

조함장이 넋 나간 얼굴로 돌아보았다.

"하, 함장님. 전에 그러다가 실패했잖아요."

"와! 저거 보소! 네가 아덴트냐! 말 나오는 거 보게! 아오 속 터져! 나 아직 여자도 못 사겼는데 여기서 죽을 것 같냐! 아덴트! 계속 가속해!"

"현재 최대 출력입니다."

"이놈의 근성 없는 인공지능도 갈아치워 달라고 해야지! 야 포술장! 정신 안 차려? 야! 야 이 새꺄! 빨리 사격 준비 해! 아덴트! 내가 계산한 각도대로 함수를 들어! 대기권이니까 마주 쏘면 어긋날지도 몰라!"

줄리 소령은 외치다 못해 안전 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켜 포술장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러다 함을 뒤흔드는 진동에 천장까지 날려갔다. 걸려 있던 안전 줄 때문에 천장에 부딪치는 건 면했지만 쉴새없이 뒤흔들리는 통에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크윽. 아, 알겠습니다! 주포, 사, 사격 준비!"

"으아악! 야! 몇 초 남았어!"

"사, 43초!"

"계속 세! 입 방정은 이럴 때 떨라고!"

함교 인원들이 패닉에 빠진 사이 아덴트는 일어섰던 것보다 빨리 내리 누우며 흙바닥을 긁어 나갔다. 달도 없는 밤하늘인데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이 확연히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지척에 있던 구덩이 가장자리에 자세제어엔진의 불꽃이 직격하자 그대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 기세가 워낙 거칠어 채 닫히지 않고 있던 좌현 함미 수평타가 땅에 그대로 긁히더니 절반이 뚝 부러져 버렸다.

"와, 와와와!"

"38초! 37초! 36초!"

"주포 충전 85%! 사, 사격은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기다려! 포격 각 확보해야 해!"

지휘실 안에 있는 인원들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새된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줄리 소령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궤도 폭격탄 12발의 착탄 예상 범위는 아덴트의 앞으로 7발, 뒤로 5발이었고 각각 20km씩 탄착군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제 막 가속한 아덴트의 속도는 기껏해야 시속 400km 남짓이었고 초속 100km로 달려드는 탄환에 비하면 달팽이와 다름이 없었다.

"저게 100미터 밖에서 스치기만 해도 아덴트는 두 쪽 날거야."

"착탄까지 27초. 26, 25, 24."

"20초에 발사한다! 아덴트든 누구든 해!"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함교 전면 대형화면에 이쪽으로 집어삼키려 다가오는 불덩어리가 생생하게 잡혔다. 어찌나 빠르게 대기권을 뚫고 내려오는지 정면에서 보면 시퍼렇게 불타는 플라즈마를 두른 검은 탄알이 보이고 그 주위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생기는 굴곡마저 보였다.

"21, 20!"

"발사합…!"

멍청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던 포술장의 머리가 덜컥 앞으로 넘어갔다. 강력한 주포 사격의 반동이 지휘실 안을 뒤흔들자 비명이 쏙 들어가고 쇳덩이가 우르릉거리는 소리만이 귀 안에 가득 찼다.

"주포 사격. 전속 회피. 궤도 폭격탄 착탄 접근 중. 전 승무원은 충격에 대비하세요. 궤도 폭격탄이 접근 중입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아덴트는 회피기동 중입니다."

아덴트만이 침착한 음성으로 방송을 할 뿐이었다.

"최종 착탄시를 셉니다. 13, 12, 11, 전방 77km 지점에 1탄 착탄. 이어 좌전방 66km에 2탄 착탄."

밤하늘을 새파랗게 달구며 궤도에서 쏟아져 내려온 거대한 탄알이 대지에 쑤셔 박히자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아덴트의 전방에 있던 지름 10km짜리 폭격 구덩이 하나가 간단하게 터져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그 안에서 새빨간 버섯 갓이 피어올랐다. 제 2탄은 그 버섯 갓의 한쪽을 터트리며 튀어나오더니 진로에 걸린 산봉우리 하나를 종잇장처럼 꿰뚫고 땅에 격돌했다. 평지 하나가 그대로 폭발하며 검은 덩어리가 하늘로 퉁겨 올라갔다.

3탄은 착탄 직전 저 혼자 폭발하며 1탄이 착탄한 버섯구름을 간단하게 흩어버렸다.

궤도가 어긋나 다른 탄들과 방향이 틀어진 6탄이 착탄한 곳은 아덴트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이었다. 음속의 200배 속도로 충격파가 튀어 올라 아덴트의 함체를 때리자 자세제어 엔진의 분사 불꽃 하나가 그대로 끊어졌다.

"으아아아악!"

아덴트는 굵직한 파편과 돌덩이를 뒤집어쓰며 뒤집힐 것처럼 너울거렸다. 대지를 긁으면 그대로 용암으로 변하는 핵융합 로켓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7번째 탄환은 휘청거리는 아덴트의 위쪽으로 1000m차를 두고 스쳐 지나가서 산맥의 능선 하나를 끊어버리고 그대로 튕기며 반대 지평선으로 사라졌다. 한차례 지상에 격돌했는데도 대기를 찢는 탄환 주위로 다시 새파란 플라즈마가 타올랐다.

다음 탄환은 땅에 닿지 않았다. 가루가 되어 불타는 채로 하늘에 수많은 호선을 그렸다.

"엄마! 엄마!"

"10탄 착탄 합니다. 우후방 112km. 11탄 우후방 74km, 12탄 우전방 30km."

"우와아아!"

"함장님! 사랑해요!"

"으그그그극!"

검붉은 버섯구름 두개가 피어오르고 아덴트의 앞에 있던 구덩이 하나가 소멸하면서 튕긴 탄환에 우현 함수 추력 엔진 하나가 그대로 뭉그러졌다. 그 뒤의 함수 수평타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갑판 전체에 금이 쩍쩍 그어졌다. 하면에 있던 좌현 함수 추력엔진도 그 서슬에 짐벌이 깨지더니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계곡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고. 피격. 양현 1번 자세제어 엔진 탈락. 우현 5층 갑판까지 균열. 우현 함수 수평타, 중앙 수평타, 함미 수평타 대파. 1번 주 엔진 출력 0.2%로 감소. 9층 갑판까지 화재. 주포 발전로 출력 불안정으로 정지. 중력 제어기 출력 56%로 감소. 수평 유지 불가능. 32도까지 우현으로 기울어집니다. 주포 사격 불능. 우현 함수 발사관은 모두 강제 배제. 부유포탑 3기 모두 손실. 주포 조준레이더 응답 없음."

"됐어. 아덴트. 그만해."

자세를 유지 못하는 아덴트는 비척거리며 날다가 우현부터 옆에 있던 폭격 구덩이 벽면에 몸을 긁었다. 줄리 소령은 형편없이 흔들리는 의자를 붙잡고 진동을 감내하며 버텼다.

"젠장. 와. 나 진짜. 아오. 이게. 아덴트. 아직 날고 있냐?"

"중력 제어기 출력 63%까지 회복. 부유는 가능합니다. 우현 2번 자세제어 엔진에 이상 발생. 가동 정지합니다."

또 다른 궤도폭격 징후가 없을까 싶었지만 대부분의 화면에 작동불능 표시가 떠 있었다. 줄리 소령은 숨을 한껏 들이키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지휘를 해야하지만 그러기는 불가능했다.

"함체 완전 정지. 기울기 35도. 긴급 피해 제어 작업에 돌입합니다. 궤도 사령부로부터 궤도 폭격 징후 발신은 오지 않음. 직접적인 궤도 관측은 불가합니다."

한참이나 바닥을 긁고 겨우 멈춰선 아덴트의 지휘실에서 토악질하는 소리들이 울렸다. 다들 체면이나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뱃속을 게워내느라 정신 없었다. 줄리 소령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주었던 힘을 풀며 등받이에 한껏 기댔다. 꼭꼭 눌러 담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지만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야. 포술장. 포술장."

앞을 보자 포술장은 지휘조작계 위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아덴트를 호출하니 포술장은 혼수 상태에 심장이 멈추었으며 목이 대차게 부러졌다. 지금은 생명유지장치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5년이나 굴러먹은 놈이…조함장. 조함장 괜찮아?"

조함장은 헬멧을 벗고 얼굴에 토사물이 가득 묻은 채 힘없이 몸을 돌렸다. 길다란 머리카락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죽은 해초를 연상케 했다.

샐쭉한 눈동자에 눈물이 핑 돌더니 입술이 비죽 내밀어졌다.

"함장님. 사랑해요. 흐흑. 흑."

"어. 그래. 사귀자. 그럼 됐지? 아덴트. 함내 사상자 몇 명이야?"

"집계 중입니다."

"젠장. 배가 아직 살아 있으니까 비상탈출도 못하고…일단 쥐 죽은 듯 있는다. 가만있으면 우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 나머지 임무는 루시엔이 해줄 거고."

줄리 소령은 그제야 헬멧을 벗고 풍겨오는 악취에 얼굴을 찌푸렸다. 조함장이 와앙 울음을 터트리고 뒤쪽 사관석에서도 죽을 듯한 한숨소리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대로 멀쩡한건 갑판장뿐인 듯 싶었다. 갑판장은 이 소동에도 꿋꿋하게 헬멧을 쓰고서 정 위치를 지켰다.

"갑판장?"

"예. 함장님. 이번에도 살았네요. 허허."

갑판장은 뒤로 돌아보며 헬멧을 벗고 허탈하게 웃었다. 줄리 소령은 그 얼굴을 보고서야 헬멧을 바닥에 내던지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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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함거포 로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