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정문을 몇 번 드나들었고 C 신문사에서 몇 번이나 급여란 것을 받았는지 부터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런 일들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일푼이 되고 별거라는 소소한 불행에 빠진 것도 1년이 지났다. 사실 불행은 2년 전, 내가 기자 생활에 점점 염증을 느끼는 도중 운명의 부름을 받은 때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날, 여느때처럼 기사 송고용 12인치 타블렛을 들고 거실에 나왔을 때 우연히도 붙박이TV에선 어떤 작가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내는 전혀 관심없는 표정으로 주말드라마를 보기위해 채널을 돌리려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채널고정이라고 말했고, 뉴스의 내용은 그녀의 짜증섞인 눈초리처럼 불편했다. 한국은 그 작가의 미발표 원고를 가진 어떤 일본인에게 자랑스런 한국인이 남긴 문화유산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작가의 친척들과 추종자들이 세운 재단의 성명이었다. 나는 원고를 반환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 40대 일본남자의 모습이 꽤나 뇌리에 남았다. 이렇게 이슈도 됐겠다, 그를 인터뷰하는 것은 나였으면 했고 그 바람은 이뤄졌다.

 불행 속에서도 차마 지우지 못한 타블렛 속의 파일 한 개. 완성되지 못한 그 기사는 그 때의 인터뷰를 담고 있었다. 나는 기사화 되지 못한 그 파일을 훑어보면서 그 강렬했던 이미지를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사실 그 강렬함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인터뷰는 어떤 천재 작가의 미발표 원고에 대한 것이었다. 호들갑을 떨자면 동아시아의 안톤 체호프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가 그의 작품에 뒤흔들렸더랬다. [실격 도마뱀], [바질], [3000] 등의 단편 소설은 오래지 않아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나는 그것들을 교과서에서 배워야 했다. 모든 고전이 그렇듯 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살고, 쓰고, 죽었다.

 작가의 부모는 한국에 사는 화교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들은 귀화를 했고 작가는 중국혈통의 한국인으로 1966년, 어느 겨울에 태어났다. 혈통이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그의 핏줄이 중국계라는 것은 황해 너머 붉은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꽤나 민감한 문제였다.

 나는 내 뇌리에 남은 2050년 KBS 9시 뉴스의 짧은 영상을 보고싶다고 말했다. 붙박이TV는 즉시 그 때의 뉴스를 내게 보여주었다. 중학교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교토에 머물면서 J. D. 샐린저마냥 조용히 살았던 그는 한국어로 단편을, 일본어로 장편을 썼다. 동아시아 3국은 그의 미발표 원고를 놓고 꽤나 첨예하게 대립했다. 물론 뉴스영상을 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뉴스는 이 대립을 다루지 않았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흔하고 쉬운 이야기다.

 달궈진 냄비처럼 뜨거웠던 그 일주일의 둘째날. 나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그 남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출국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여느 도시와는 달리 도심에 닿아있는 공항덕분에 그를 만나러 가기도 수월했다. 대도시치고는 유난히 낮은 건물들 사이를 버스로 지나다보니 그가 사는 낡은 집에 도착했다.

 2000년 대에 지어진 것 같은 좁은 연립이었다. 작곡을 공부하던 친구에게 선물받은 구형 녹음기와 기사를 쓰기 위한 12인치 타블렛을 가방에서 꺼낸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십니까.”하는 낮고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막아섰다. 목소리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시달려 왔는지, 그리고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C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인터뷰하러 왔다고 말하자마자 그는 준비한 것처럼 고함을 쳤다. 타블렛의 음성번역에 의존하고 있던 나는 순간 번역기가 고장난 줄 알았다. 관념 속의 일본인답지 않은 그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이승진 - 천재작가의 이름이다. 그에게는 이사카 세이사쿠라고 들렸을 것이다. - 재단의 입장과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대다수 한국인은 그 재단을 마음 속에서부터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대답이 없는 문 너머로 나는 조금 거짓말을 해 보기로 했다.

 “저도 학생 때 소설을 쓰던 사람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이승진 씨는 교과서같은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작품에 대한 어떤 이야기라도 들으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배웠으니 교과서같은 작가는 맞지 않은가. 소시테(그리고)라는 말의 울림이 복도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 대답이 없자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대로 적겠습니다.”

 지잉 하고 문이 열렸다. 내가 좁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발견한 것은 고양이 떼였다. 수십마리의 고양이가 주인처럼 모든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해야할 지 난감했다. 공항에서 바로 여기로 온 것도 있지만 당장 다섯시간에 걸친 이동시간에 쌓인 피로가 날 짓눌렀다. 그는 고양이를 안은 채 어두운 주방에서 나왔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러고보니 점심시간이었다. 품에 안고 있는 저 흰 고양이가 식재료인가 싶어 거절하고 싶었다. 사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상당히 많은 고양이 털을 먹게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은둔자의 그늘이 드리운 중년에게 우선 내 명함을 건냈다. 일본어가 없어서 읽지는 못하겠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점심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요.”

 “아닙니다. 어차피 라면이니까요.”

 그는 잠시 후 컵라면 두 개를 식탁에 놓았다. 마감일에 자주 먹던 농심의 그 상표였다. 한국과는 다른 자극에 나는 몇 번이고 킁킁거리며 콧물을 들이마셔야 했다. 예의없는 행동일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을 챙기는 건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나 한다는 듯, 그는 딱히 신경쓰지 않아 보였다. 기내식이 부실했기에 나는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고양이 털이 입 안에 들어간 기억은 없다.

 빈 컵라면 용기를 치우고 나는 그와 마주앉아 녹음을 시작했다.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것에 어쩌면 약소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조금은 미소 띤 얼굴로 내 이름을 어떻게 읽는 지 물었다. 좋은 징조였다.

 “홍진기라고 합니다. 나가시마 케이 선생님이시죠?”

 “그냥 나가시마입니다.”

 나는 타블렛에 저장해 놓은 질문들을 띄우고 필기할 준비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내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직업도 없어보이는 그가 이 많은 고양이를 어떻게 먹여살리는지 궁금했지만 아마 쓸데도 없고 길기만 한 대답을 들을 게 뻔했다. 거의 처음맡다시피한 기획기사지만 철저히 일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이승진 씨의 미발표 원고를 어떻게 가지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할까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93년 입니다. 나가시마 씨는 2009년 생이신데요, 두 분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습니까?”

 

 그는 잠시 실례한다고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이 달린 벽 구석에 있던 작은 금고의 문이 열렸다. 그 금고는 이 방의 생김새와 비교할 때 굉장히 이질적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나가시마 씨의 처지를 보아 짐작컨데 저 금고는 이 방 안에선 고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금고에서 꽤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금고와 상자의 이중 잠금장치를 파고 들어가서야 보물의 속살을 볼 수 있었다.

 나가시마 씨는 내 앞에 그 상자를 놓고, 두꺼운 공책 몇 권이 엮인 한 문서 덩어리를 내 앞에 내놓았다. 그는 당신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오, 라고 말하듯 다른 원고를 다시 이 방의 공기로부터 격리시켰다.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특종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읽어도 된다는 듯 공책을 슥 밀어냈다.

 “반 세기가 넘게 안전했습니다. 센다이의 은행금고에 맡겼던 사본은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원본은 그랬습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한다고, 절대 훼손되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나는 이승진 씨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보이기 싫어했다는 증언을 기억해냈다. 세상엔 그렇게 수줍은 작가들이 적지않다. 이틀만에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 왠지 허탈해지려 했다.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리는 잠시동안 나는 재촉할 생각을 전혀하지 못했다. 내가 현실을 잠시 떠나있는 동안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산입니다.”

 무슨 소린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반문했다. 원고를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 이전에 아버지였다는 단순한 소리인지, 아니면 이승진 씨와 어떤 관계가 있었다는 소리인지 판단할 수 없는 짧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답 대신 세븐스타 한 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불행히도 나는 재작년에 수습기간을 마치자마자 금연하여 그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타블렛에 물음표만 수 개 적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지러이 퍼져나가는 연기 사이로 그는 모호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담배가 아닌 무엇인가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가 뜯은 담배갑은 새 것이었다. 혹시 흡연자가 아니라서 담배에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금속 재떨이에 꽁초를 놓았다. 젖은 화장지 조각이 엿기름 색깔로 서서히 물들었다.

 “뭐부터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것을 읽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말에는 소질이 없어서 좀 그렇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세 국가 사이의 힘겨루기 수단이 되어버린 그 문서에 손을 올려놓았지만 과감히 펼쳐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달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가져왔다. 그리 길지않은 인터뷰 주제에, 그것도 질문과 답변과 별 뜻없는 메모로 가득한 주제에 지독히도 많은 생각을 선명히 떠오르게 한다. 기자시절의 추억팔이라고 할까.

 나는 직업이란 것이 돈과 시간을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 돈이란 것은 악마처럼 영혼을 요구했다. 오만한 검사와 탐욕스러운 회사라는 두 톱니바퀴가 나를 짜냈고, 그 덕에 얻어진 보금자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이력은 꽤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이 나라에서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을 증명했다.

 다시, 나는 홀로 된다는 것에 익숙해질 수 없음을 인정한다. 타블렛에 떠 있는 창을 돌려 이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결실을 확인해보려했다. 이 땅에 발 붙이고 있는 한, 시간의 방향이 바뀔 일은 없을테지만 나도 모르게 내 손은 그 때처럼 망설이고 있었다. 손에 익은 기기와 전세계가 주목했던 원고가 같은 무게를 지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묘하달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닮게 느껴지는 기시감에 나는 타블렛에서 손가락을 뗐다. 지금의 나는 흘려보낸 시간만큼 덜 절실해졌나 싶다. 그 땐 그렇게 절실했다.

 나가시마 씨는 그의 행동이 이상할 정도로 우호적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개하려 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 선듯 원고의 일부를 넘겨주나? 내 의문이 어딜 향해있는 지도 불명확했다. 그가 괜찮다고 말하기 전까지 내 손은 표지 끝 부분을 그저 비비고만 있었다.

 “뭐, 그건 정확히 원고는 아닙니다. 그 분의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읽은 원고는 그게 유일합니다. 나머지는 저도 읽은 적 없고 절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편히 읽으면서 계속해 주십시오. 저는 시간이 많습니다.”

 선을 그어주는 그의 발언이 내 손을 이끌었다. 허락된 땅을 밟는 것, 여기까지는 안전하다는 이정표가 되어준 것이다. 읽으면서 들어달라며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기장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듣는 건 집중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녹음기는 그 말을 충분히 알아듣고 이렇게 기록했다.

 “제 아버지가 친 아버지가 아니듯 할아버지도 친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제 아버지의 장인이셨죠. 그 분이 이승진 씨와 친구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승진 씨가 쓴 원고를 읽고 놀라서 출판하려 열심히 채근하셨다고 합니다. 이승진 씨는 글에 별 가치를 두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승진 씨가 여덟 살이나 어렸지만 할아버지는 작가셨기에 멋진 글에 나이를 뛰어넘는 친분관계를 쌓고 싶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면지로 쓸 예정이었던 그 원고는 할아버지에게 넘어가 단편집 하나로 출간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성공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좋은 글을 알아보는 안목은 확실히 있으셨습니다. 그 때 이미 열 편 넘게 작품을 발표하셨지만 그걸 다 모아도 그 단편집만큼 팔리진 않았습니다. 판매량도 판매량이지만 평가는 도쿄 긴자와 여기 땅값보다 더 차이가 났습니다. 저를 키우실 때도 계속해서 글을 쓰셨지만 한 번도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승진 씨가 글로 돈 벌 생각이 없으시다며 저작권 양도를 해버리신 탓에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그 때문에 그 분의 원고는 고스란히 할아버지에게 상속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동안 힐끔 곁눈질 몇 번을 했을 뿐 열심히 일기를 읽었다. 사실 그 때까지 일기엔 별 내용없는 날들만 지나갔다. 79년 10월이 오고 그가 중학교를 들어가야 할 때 서울의 봄이 시작됐다. 그 시절, 작가의 아버지는 많이 불안해했고 첫 눈이 내리기 전에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보냈다. 이승진 씨는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이 어떤 비극에 물들어갔는지 전혀 모른 채 성인이 되었다. 많은 부분이 사랑과 섹스에 관하여 간결히 적혀있었다. 짧고 차가운 연애들이었지만 꽤나 오래 괴로워했다. 나는 그처럼 여러 여자에게 구애를 하고 상처를 받은 삶을 살지 않았지만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상당한 동질감을 느꼈다.

 작가의 대학 입학식날을 읽을 때쯤에 나가시마 씨의 말이 끝났다. 너무 대충 읽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작가에 대해서였고 그 때까지의 그는 작가가 아니었으니, 문단에 이름을 올린 비평가도 아닌 일개 기자가 그 부분들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나가시마 씨도 나도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작가의 소양이 있었다면 이 일기에서도 어떤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었으니까. 나가시마 씨에게 그런 소양이 있었고 이 일기가 그랬다는 두 가지 가정이 겹쳤다면 아마 이 글을 읽을 기회는 오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드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떻게 보관하셨습니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지진이 날 때마다 원고를 넣은 금고로 달려갔습니다. 대지진이라면 그 원고와 함께 묻힐 것이 분명한데도 대피소를 찾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원본은 그렇게 보관했고……. 2011년, 그러니까 제가 두 살이었고 입양되던 해입니다. 후쿠시마가 터지자 사본을 만들어서 센다이에 있는 은행에 보관했다고 하셨습니다. 아까 말했던 금고 말입니다.”

 나는 나가시마 씨의 말에서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처음엔 번역의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신경써서 들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문어체다 싶을 정도로 딱딱히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진솔하게 들리는 내용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대화로 작품을 쓰려나 싶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작품이라고 하니,

 처형이 어렸을 때 좋아했다던 [살인자의 건강법]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지금과 비슷한 점이라고는 인터뷰 중이라는 것 뿐인데 나는 등장인물인 징그러운 작가와 미녀 기자에게 묘한 공감을 느꼈다. 읽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들은 말을 생각할 뿐, 나가시마 씨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색함을 깨달은 뒤로 이 느낌은 좀처럼 지워낼 수 없었다. 

 “홍 씨.”

 

 그가 나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던가. 나는 망상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스스로 인터뷰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내 눈을 피하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언제까지 일본에 계십니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은 빨리 마치고 내일 아침부터 다시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오늘은 어디 나가봐야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놓겠습니다.”

 그가 많은 고지서와 장바구니를 손에 든 것을 보고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행기는 내일 늦은 밤에 있었고 공항이 멀지 않으니 내일 하루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녹음기와 타블렛을 챙기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작가의 일기장을 가져가서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망설이는 그에게 사본을 만들지도, 어떤 내용의 발췌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나서야 승낙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줄 기념품 몇 개와 기린 맥주 한 캔, 그리고 저녁과 안주를 동시에 해결할 만두를 사서 7시 쯤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처음부터 읽어나갔다. 너무 급하게 읽어나가느라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몰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꼼꼼히 읽어도 중요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글을 꼼꼼히 읽는다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의 대학시절은 다 읽어야 내일 인터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 아내에게 전화하는 것도 미룬채 나는 글에 집중하려했다.

 이승진 씨는 재수 끝에 87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재수시절에 [금각사]를 읽었고 어떻게 구했는 지는 몰라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해 탐독했다. 특히나 일기 곳곳엔 [쉽게 쓰여진 시]의 한 구절인 ‘육첩방은 남의 나라’가 유난히 여러 번 적혀있었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으나 그는 돈을 벌 생각보다 아껴 쓸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 싶었다. 그런 주제에 술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 제 시간에 일어나 하루 종일 공부한 날이었다는 기록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머리는 좋았는지 윤동주를 따라 도시샤 대학에 합격했다.

 그 쯤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그녀는 꿈을 잘 꾸는 편은 아니었지만 악몽에 대해선 언제나 민감했다. 낮잠을 자다가 꾼 꿈이야기를 듣자니 내 마음도 답답해졌다.

 “알았어. 바쁘니까 일단은 그만하자. 내일 밤에 돌아가니까 비행기 타기 전에 내가 연락할게. 그래,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도 사랑해. 응.”

 전화비 많이 나올까봐 끊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승진 씨는 재일 한국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했다. 조총련 계와 잘못 친해졌다가 북한으로 납치되거나 남한으로 납치되는 것, 둘 다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작품에서와는 달리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많아 분단상황을 안타까워한다기 보다는 저주했지만,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학 첫 방학 때 그는 둘 줄도 모르는 바둑을 보기 시작했다. 순전히 조치훈 9단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와 한국을 연결하는 끈은 가족과 뜸하게 편지를 주고받는 것과 조치훈 9단의 경기 뿐이었다. 동아리라든지 그런 외부 활동이 기록된 것은 거의 없었다. 글을 쓰는 취미를 붙인 건 그 때부터여서 카세 유야의 작문 동호회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을 제외하면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다. 사실 친구가 없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찾아다니거나 밀어내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는 혼자였다.     

 그는 가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보통 그 다음 장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는 일기가 따라붙었다. 3개 국어를 하고 도시샤 대학을 다니는 수재였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망상이라는 네 글자가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적혀있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 그는 마음을 닫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글에 천착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늦은 사춘기에 비뚤어진 잉여 룸펜이었다.

 나는 문득 피곤해져 시계를 보았다. 아침부터 움직이려면 일찍 잘 필요가 있었다. 식어빠진 만두와 미지근해진 맥주를 서둘러 먹어치우고 몸을 씻었다. 혼자 자기엔 조금 넓은 침대에 눕자 의식은 쉽게 사라졌다. 아내가 말했던 악몽을 그대로 꾼 것 같은 사나운 꿈자리였지만 제 시간에 일어나자 허무하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조금 일찍 시작하긴 한 모양이었다. 버스에서 서둘러 뒷 부분의 일기를 한 번 훑고 나가시마 씨의 집 앞으로 가자 그제서야 도착해서 인터뷰를 요구하는 기자가 몇 명 있었다. 저 사람들 때문에 내 인터뷰도 망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들도 나처럼 일을 하고 있을 뿐이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 뭐라 화내기엔 어색한 면이 있었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들어갈까 궁리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았다. 나가시마 씨였다.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한 모양이었다. 나는 맛떼 구다사이라고 말하고 타블렛을 꺼내 음성 번역 기능을 시작했다.

 

 “……집이 시끄러워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으니 거기서 만나면 좋겠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이니 들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가시마 씨가 기자들 앞에서 또 울부짖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지만 일이 우선이라며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쳐야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긴 사람들 중 몇은 이런 죄책감을 이기지 못했다. 실은 나도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니었다.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있느냐, 얼마나 뻔뻔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꼴 같잖은 자존심이 나를 그런 물음으로부터 얼마나 잘 지켜줄 수 있을까. 작가에게 전염이라도 됐는지 어려운 생각이 나를 침식해 들어왔다. 흔한 카페에 들어와서 짐을 놓고 나서야, '사는 건 그냥 사는 거다'라고 그 생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시마 씨가 들어왔다. 나는 녹음기를 미리 켜 놓았다.

 “불편하시겠지만 흡연석으로 옮깁시다.”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불평없이 다시 자리를 잡고 커피도 내가 샀다. 일기를 어디까지 읽었더라. 자기 전까지 읽은 내용에서 작가는 스물 둘이었다. 카세 유야 씨와 각별한 친분을 맺고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며 휴학을 했다. 그가 병역을 어떻게 미뤘는 지가 의문이었다. 일단 군대에 관한 고민은 일기에 드러나있지 않아서 한국에 돌아가면 그것을 꼭 조사해 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스물 셋으로 넘어가자 중요하게 언급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당시 8살 소년이었던 나가시마 도시야. 이 원고는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했던 나가시마 씨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평소에도 거의 느끼지 못한 커피 맛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 소년이 그의 아버지일까.

 “맞습니다. 할아버지 - 한국에서는 외할아버지라고 하는 모양입니다만 저에게 할아버지는 이 분 뿐입니다 - 께서는 아버지를 입양절차 없이 데려다 키웠습니다. 이승진 씨와 할아버지가 동호회에서 만나기 1년 전 쯤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버려진 아이가 아닐까하고 자신의 출생을 의심하시곤 했습니다.”

 이승진 씨가 어둡게 변하기 전인 10대 시절, 사고친 결과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기에 그런 중요한 일을 기록하지 않을 리 없고 우연치고도 지나친 우연이라 그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카세 유야 씨가 한국계 고아를 거두고 그 인연으로 한국인인 이승진 씨와 빨리 친해졌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었다. 입양을 하지 않은 것은 막 태어난 외동딸이 얻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가족 구성은 뭔가 설계한 것처럼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거다.

 “[실격 도마뱀]!”

 “네. 이승진 씨의 그 소설은 사실 저희 집 구성원들에게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봐야 합니다. 아직 작품을 쓸 때의 일기는 못 읽으셨습니까.”

 나는 양해를 구하고 일기로 넘어갔다. 이승진 씨는 카세 씨와 평대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카세 씨가 이승진 씨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이 날의 기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기록하고 있는 건 도시야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

 이승진 씨는 도시야의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자청했다. 시키지 않아도 일기를 쓰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했다는 기록에서 도시야는 많은 기대를 받을만한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 기대를 이승진 씨도 카세 씨도 딱히 숨기지 않았다.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군요. 아버님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욕심이 많으셨습니다. 이승진 씨가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친하게 지냈을 거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재능에 대해서라면 탐욕스러우셨습니다. 아버지를 사위삼은 것도 아마 그런 욕심이셨을 겁니다.”   

 이승진 씨는 도시야라는 소년의 말을 굉장히 주의깊게 들었다. 원래 아이들의 눈은 진실을 꿰뚫어 본다고 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재능인지, 아니면 흔한 아이들의 아이다운 소리인지를 구분 못할 두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떤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들은 소년의 말을 굉장히 시적으로 해석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소년은 두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뮤즈였던 것이다. 그런 뮤즈에 대한 감동이 한동안 일기를 뒤덮고 있었다.

 일기의 장면장면이 나의 폐부를 찌른다. 어디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나가시마 씨는 커피를 마시며 살짝 웃었다. 그가 웃는 건 처음 보았다.     

 “처음 웃으시네요.”

 “후련해서 그렇습니다. 이런 말을 어디 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승진 씨의 책은 집에서도 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몇 번 읽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이 일기를 읽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전부 제 아버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사본을 만들었으면서 이걸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에게 불만같은 걸 말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 모금 마시고 두었던 커피를 반이나 마셔 없애며 기사 작성에 열중했다. 미발표 원고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도시야를 만나기 전의 작품인지 만난 이후의 작품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 원고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나가시마 씨가 미발표 원고를 재료로 삼아 음모론을 쓰고 있다고 해도 나는 꼼짝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음모론이라면 그 역시 삶을 속일 수 없는 작가의 재능이 있는 것이었다.

 

 “제가 열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기억에 아버지는 흔한 폐인이었고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일기를 보고서야 참회했지만 저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세계적인 대 작가를 감동시켰던 신동이었지만 아버지는 자기 글을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화를 냈습니다. 글을 쓰라고 화를 내실 때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그런 소리를 할 거냐며 지겨워하셨습니다.”

 2021년. 나가시마 도시야는 마흔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만취한 상태로 바닷가에 나가서 자다가 얼어죽은 것이다. 나는 일기에도 없고 기사의 취지와도 다른 그 남자의 이야기의 꽤나 많은 부분을 받아 적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번역일로 먹고 살았지만 번역한 작품들은 시장에서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장되는 실용서적이었다는 것이고, 그나마도 번역자로 이름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슬프지만 흔한 이야기다.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런 최후를 맞는 사람은 21세기가 반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많다. 글이라곤 학창시절, 영웅문을 흉내낸 불쏘시개 몇 장을 쓴 이후로 기사만 쓰고 있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승진 씨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는데요. 그것이 지금 원고를 공개하지 않으시는 특별한 이유가 될런지요?”

 

 그는 세 개피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커피는 이제 차게 식어 물처럼 마실 수 있었다. 나가시마 씨는 나를 피해 연기를 뱉었지만 그리 큰 의미는 없었다. 그게 딱히 불쾌한 행동은 아니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 느낌에 나는 남은 커피를 모두 입 안에 털어넣었다.

 “원망스럽진 않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면 그 분 사후에도 아버지는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은 무능력했던 아버지와 성공하지 못했던 할아버지, 그리고 니트족으로 살아왔던 저라는 사람이 이렇게나마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의 은혜였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일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자식이니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내 말을 막았다.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그여야 하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저는 아버지만큼의 재능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잘못키웠다는 자책감때문에 저에게 기대를 안 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아버지 역시 저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나친 기대가 아이들을 엇나가게도 하지만 기대도 않고 사랑도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 원고는 아버지 그 자체입니다. 이야기는 하고 싶었지만 이 원고를 제 손에서 떼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반세기도 넘게 지난 이야기가 그 때만큼의 폭발력을 지닐 수 있을까요? 문학사적 의미로 지금 인구에 회자되고는 있지만 그런 열풍이 또 불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저에게 그런 남의 평가나 시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는 이 원고가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저에겐 돈이 필요하지만 돈 때문에 이 원고를 이용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나가시마 씨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주목할 정도로 커졌다. 나는 그를 조금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진정시키고 나니 더 물어볼 말이 궁했다.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작가의 마지막 일기를 읽고 인터뷰를 마치기로 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의문이 생기더라도 나가시마 씨가 풀어줄 수는 없을테니까. 그리 긴 일기는 아니었다.

 <어제 고베에 지진이 있었다. 오늘 하루동안 고민했다. 조국보다 더 많은 사랑을 보내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무너진 한신고속도로가 생생했다. 이 나라가 세웠던 모든 것이 그렇게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하루동안 고민한 것은 과거사였다. 나는 용서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안다. 카세 씨가 보내 준 글렌피딕을 모두 비웠다. 아침이 되면 그곳에 가려한다. 그들을 돕고 싶다. 그들은 죄가 없다.>

 취한 것치고는 꽤나 간결한 문장이었다. 그의 지난 일기도 이처럼 간결했다. 그는 다음날 고베로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봄이 오기 전이었다.

 나는 이 공책묶음을 나가시마 씨에게 건내주고 인터뷰를 마쳤다.

 저녁 먹는 것을 잊고 녹음기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나가시마 씨의 집념이 무섭게 느껴졌다. 검찰청에 근무했을 때 나도 그처럼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그 신념 때문에 그 대단한 건물을 나와버렸는데 정작 결혼이라는 것을 앞에 두고 나니 쉽게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정권의 나팔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치면보다는 문화면과 사회면을 오가는지 알리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이나 불만스러운 일이 있냐 물어보고 취재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내는 일은 드물었다. 아마 지금 쓰려는 기사도 한, 중, 일 삼국의 이해가 엮여있기 때문에 나가시마 씨에게 말했던 것과는 달리 윤색되고 말 것이었다.

 편협할 정도로 굳건한 신념에 거짓을 채색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타국의 공항에 있는 이 시간동안은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편의점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캐스터 한 갑을 사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흡연실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들어오면 나가고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그 방 안에서 나는 연달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숨이 막히고 목이 따가워질 때까지 줄담배를 피워댔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어지러움에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이것이 도피임을 알고 있지만 정신이 조금은 맑아져서 다행이었다. 나는 담배 냄새에 쩔어 그 방을 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녹음기를 꺼내 플래시 메모리를 제거했다. 내일이면 사라질 쓰레기통에 그것을 던져넣었다. 사실 넣었는지 못 넣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른다. 나는 쓰레기통에 그것을 던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탑승구로 갔다. 담배갑에는 일곱 대의 담배가 남아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그것을 다 피워버릴까 싶었지만 김포에 도착해서 피워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기사? 받아 적었던 것만으로도 기사거리는 충분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좌석에 앉자마자 아내에게 연락하겠다는 약속도 잊고 잠이 들었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연락도 안 한 것과 담배를 다시 시작한 것 때문에 아내에게 혼나고, 기사도 쓰지 않았다. 이승준 씨의 미공개 원고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오래지 않아 나는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그 때로부터 1년 간 아내와 냉전에 들어갔고 이은 1년 간 별거에 들어갔다. 2년은 짧지 않았다.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에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그래서 타블렛을 앞에 두고 그렇게 미적거렸을 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기자가 될 것이지만 반드시 사회부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타블렛의 창을 넘겼다. 연봉은 적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라 믿어 서류를 넣은 곳의 결과가 창에 등장했다. 다행히 합격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아마 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심적 안정을 얻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적었던 메모였지만 나가시마 씨에게 했던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작가 흉내를 내고 싶었다. 이 글은 불행하게 살다 간 이승준 씨와 나가시마 씨에 대한 기억으로 점철된 내 짧은 불행의 꼬리일 것이다. 글의 마무리에 와서 나는 도마뱀처럼 그것을 잘라내려고 한다. 나는 거의 쓸 일이 없었던 먼지쌓인 집 전화를 들었다. 벌써 1년, 아직 잊지 않았다면 그녀를 부르고 싶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조용히 말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