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아주 희한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꿈이란, 하룻밤의 상상에 불과해 깨어나면 잊어버리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도무지 잊혀지질 않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날도 내 반복적인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씻고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으로 별 시답지 않은 기사나 보다가 잠이 들었다. 하지만 변화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잠이 든 순간,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빛이 나를 비추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내 집이 아니었다. 나는 당황과 혼란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깨어난 곳은, 눈이 온 것처럼 안개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이었다. 들판은 안개꽃의 싱그럽고도 은은한 향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나는 낯선 곳에서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들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들판을 바라보는데, 그때 웬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하세요.”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보아하니 내 또래 같았는데, 그녀는 무릎까지 오는 무늬가 없는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뱀이 자주 나타난답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치 안개꽃에 둘러싸인 한 송이의 장미를 연상케 하는 그녀는 두리번거리는 내가 신기한지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여긴 대체 어디죠? 나는 분명 집에서 잠들었는데...”

 

 “글쎄요... 여긴 어딜까요?”

 

 그녀는 또다시 싱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물었는데 내게 되묻다니...황당했다.

 

 “당신은 누구죠? 어쩌다 이곳에 왔나요?”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그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만 지었다. 아까는 몰랐지만,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 어딘가에는 슬픔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내 안의 나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깊었다.

 

 “안녕.”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안녕. 그 한마디에 내 심장이 뻐근히 아파지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에서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순간,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자, 그녀의 긴 웨이브 머리가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지금 이 상황, 왜 낯설지가 않지?’

 

 모든 게 낯설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내가 서 있던 들판과 낯선 여자가 내 시야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더니 곧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난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23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다. 하지만, 꿈임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들판이, 그 여자의 웃는 얼굴이,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했다. 아직도 들판의 싱그러운 안개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뭐지... 뭔 꿈이지...’

 

 머리가 복잡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미소... 나도 모르게 느껴진 감정... 모든 게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꿈일 뿐이야. 잊어버리자.’

 

 나는 혼돈에 빠진 정신을 붙잡고 다시 자려고 누웠다.

 

 ‘깨기 전에 나한테 안녕이라고 한 것 같은데... 뭐지?’

 

 꿈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생각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더욱 의식이 되 떠올랐다. 결국, 나는 이것저것 따져보며 생각하다가 새벽 일찍 깬 피곤함에 다시 잠들었다. 다행히(?) 꿈은 다시 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