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괴승 4


4부

염주 몇 알을 다시 깨뜨리자, 흉물스러운 송장들이 속속 땅에서 솟구쳐 올랐다. 송장은 몸을 다 갖추기도 전에 비틀거리며 선승을 향해 몰려갔다. 송장의 뒤에서 팔로가 주문을 읊었다.
선승들은 마치 한 몸인 양 동시에 합장하더니 그들의 입에서 장엄한 경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백 년 시공 저편에서 건너온 메아리가 좁은 석실을 흔들었다. 

주술의 힘에 맹목적으로 나아가던 송장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지를 떨었다. 단단하게 살집을 이루지 못한 팔과 다리에서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떨어져 돌바닥 위에 두부처럼 뭉개졌다. 팔로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주술에 힘을 실었다. 등을 떠밀리듯 송장들은 선승을 향해 팔을 뻗었다.

'결'

선승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단음절 한마디에 석실의 벽과 천장, 후미진 구석에서 거미들이 벌떼처럼 기어 나왔다.

"사형 저기!"

바들바들 떨던 중만이 펄쩍 뛰어오르며 팔로의 승복 소매를 붙잡았다.

잉크 번지듯 새까맣게 벽을 물들인 거미들은 삽시간에 송장을 덮었다. 팔로가 중만의 팔을 뿌리치며 손끝으로 기력을 모았지만, 이미 거미를 담요처럼 두른 송장들에게 주문이 미치지 못했다. 찰나였다. 부글거리는 거품처럼 송장을 빼곡히 덮고 요동치던 거미들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바닥으로 내려앉더니 천장과 벽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송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팔로가 낮게 신음했다. 선승들이 팔로를 향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들의 노기 어린 음성에 소름이 돋았다. 선승들은 손을 합장하며 염불을 시작했다. 처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는 석벽에 반향을 일으킬 때마다 때마다 종을 두들기듯 쇳소리가 났다. 그들의 주변에 푸르스름 안개가 뒤섞이더니 좁쌀 같은 결정이 허공에 맺혔다.

"헉! 사형 또 옵니다!"

중만은 아예 고개를 출구 쪽으로 돌린 채 여차하면 도망갈 기회를 노렸다. 좁쌀 알처럼 허공에 맺힌 영기는 서로 엉겨 붙으며 눈 결정처럼 날카로운 끝을 만들었다. 이미 손가락 마디만큼 커진 결정 하나가 날아와 팔로의 상박을 찢고 벽에 부딪혀 사라졌다. 예리하게 베인 승복에서 피가 배었다. 짧게 신음했지만, 그는 괘념치 않는 듯 가슴팍의 은십자가를 번쩍 치켜들었다.

"파사"

선승의 포효와 함께 수백의 결정들이 일제히 팔로와 명기를 향해 날아갔다. 명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과연 무결의 방패로다!'

팔로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눈을 뜬 명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놀라 염불을 멈춘 선승들의 모습이었다. 팔로가 쳐든 은십자가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반구형 빛이 날아오는 결정을 튕겨내거나 그대로 증발시켰다. 

선승의 수염과 기다란 눈썹이 돌개바람을 마주한 것처럼 심하게 흩날렸다. 그들이 합장을 풀고 수인을 맺자 빠르게 생겨난 결정은 서로 엉겨 붙으며 예리한 끝을 가진 고드름 모양의 창을 만들었다. 네 개의 날카로운 창은 선승의 외침과 함께 맹렬한 속도로 날아갔다. 창끝이 반구의 빛에 닿으며 '지지직' 방전을 일으켰다. 날아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창 두 개는 산산이 파편으로 부서지고, 다른 두 개의 창은 끝내 빛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 석실의 천장을 때렸다. '펑' 소리와 함께 부서진 돌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평정을 잃은 선승은 지옥에서 뛰쳐나온 야차처럼 포악하게 변했다. 뱀처럼 여러 갈래로 꼬인 수염은 제각각 꿈틀거렸고 승복 자락은 넝마처럼 찢겨 펄럭였다. 공중을 어지럽게 유영하던 그들은 넷이 서로의 신체를 얽어 마치 8개의 팔을 가진 하나의 마수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제 그들은 한때 인자한 선승의 모습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네 쌍의 손이 기이한 수인을 완성하자 이번엔 결정들이 그들의 팔에 달라붙었다. 8개의 광채가 번쩍이는 칼이 그들의 손에 들렸다. 팔을 흔들 때 마다 칼의 범위에 닿는 벽이 패며 요란하게 불꽃이 튀었다.

"으아아! 이번엔 정말 안 될 것 같아요!"

얼이 빠진 중만이 석실 밖으로 달아났다.
팔로는 굵은 침을 삼키고 십자가를 거두었다. 자포자기인가? 돌발 행동에 놀란 명기가 팔로를 바라보았다. 절대 포기하지 않은 눈. 명기가 도망치려 하자 팔로는 그녀의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얼굴을 바짝 붙이며 속삭이듯 그가 말했다.

"이제 네 차례다!."

"파.사.귀.공"

석실을 통째로 흔드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검을 든 여덟 개의 팔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칼날이 그들을 향해 무섭게 떨어지기 직전, 팔로가 선승을 향해 명기를 거칠게 떠밀었다.

"꺄아아악!"

그녀에게 여덟 개의 칼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뒤에서 급작스럽게 몰아친 바람에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이 끊어지며 명기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그녀의 등으로부터 거미의 다리처럼 뻗어 나간 8개의 불길이 차례로 선승의 검과 부딪치며 격렬한 불꽃을 피어 올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리를 뻗은 불길은 8개의 검을 칭칭 감았다. 

공력의 마찰로 불꽃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일더니 선승의 검은 끝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선승들이 놀라 일순 움직임을 잃었다. 칼을 박살 낸 채찍 같은 불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날아왔다.

선승은 여덟 방향으로 찔러 들어오는 불길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마계불이 든 궤를 가운데 두고 거대한 영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힘은 주변 공기를 공명시켜 석실을 뒤흔들었다. 천장에서 부서진 돌가루와 흙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찡' 소리와 함께 네 개의 사리항아리에 굵은 금이 지나갔다. 석실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벽마저 위태롭게 흔들렸다. 팔로가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명기의 등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위태천의 진짜 힘을 끌어내!"

순간 명기의 두 눈과 벌어진 입으로 빛이 터져 나오며 화염이 무서운 기세로 선승을 덮치고 휘감았다. 화마는 뒤에 섰던 팔로에게도 닥쳤다. 승복의 소매에 들러붙은 불은 금방이라도 그를 삼켜 버릴 듯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며 기어올랐다. 팔로는 급히 은십자가를 들어 불길을 막았다.

화염에 휩싸인 선승은 고통에 입이 벌어졌다. 푸르스름하던 빛과 형태를 잃어가던 선승은 굽이치는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펑' 네 개의 사리 항아리가 모두 깨지며 가루가 된 사리가 허공에 날렸다. 별안간 화염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명기는 헝클어진 머리를 바닥에 묻고 고꾸라졌다.

"됐다!"

팔로는 옷에 붙었던 남은 잔불을 털어 끄고 참나무 궤짝을 뜯었다. 무명천을 걷어내자 마침내 마계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로의 눈에 감격 어린 눈물이 고였다. 십수 년을 기다린 보람 그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마계불을 꺼냈다. 불상이라고 부르기에 마계불의 생김은 깎다 버린 조각처럼 투박하고 조악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대수겠는가. 갓난아이처럼 마계불을 품고 석실을 나가려던 그가 죽은 듯 쓰러진 명기를 바라보았다.

"위태천의 힘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칼이 아니구나."

그는 품 안의 마계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흙먼지가 떨어지는 석실을 나오던 팔로는 입구로 막 들어서던 검은 그림자와 맞닥뜨렸다. 확인할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달려든 그림자는 마계불을 덥썩 움켜잡았다.

"이놈! 감히 내 보물을 노려?"

팔로의 완력은 대단했다. 한쪽 팔로 마계불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그림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커 컥!' 숨통이 눌린 그림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숨을 쉬지 못하면서도 그는 힘을 다해 마계불을 잡아당겼다. 팔로는 그림자의 멱살을 바짝 당겨 자신의 등 뒤로 업어 메쳤다. 석실 안쪽으로 날아간 그림자는 바닥에 죽은 듯 고꾸라졌다. 팔로는 품 안에 온전한 마계불을 확인하고 한달음에 석실을 벗어났다.

석묘 밖 상황은 이미 정리가 된 듯 고요했다. 과연 구찬수였다. 가장 아끼던 귀혼 송장 셋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먼저 달아났던 중만도 수갑으로 손을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진기와 찬수가 달려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명기 어디 있어?"

진기가 팔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팔로는 대꾸 없이 찬수만 매섭게 쏘아 보았다. 불안한 진기의 눈이 석묘 입구에 닿을 무렵 먼지를 뒤집어쓴 은결이 명기를 안고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형. 얘 기절한 것 같아. 그나저나 저 땡중 힘이 무지막지한데?"

은결은 자국이 선명한 목을 좌우로 비틀며 갈라진 목소리를 다듬었다. 주빈이 울먹이며 명기에게 달려왔다. 바닥에 그녀를 편안하게 눕힌 은결은 목을 매만지며 진기와 찬수의 사이에 섰다.

"물건만 찾으면 난 빠지려고 했는데, 받은 만큼은 갚아 줘야겠어 빚지고 못사는 성격이라."

팔로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은십자가가 은결의 가슴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애초부터 은결은 마계불을 노렸던 게 아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목걸이가 사라진 헛헛한 자리를 쓸던 손이 마계불을 굳게 잡았다.

"네 놈이 기어코 마계불을 꺼냈구나!"

팔로의 품 안에서 마기를 뿜어내는 목불을 발견한 찬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뭐랬소? 반드시 얻을 거라 하지 않았소?"

"그래, 그 요물로 네가 하려는 게 뭐냐? 귀신의 힘으로 네 사욕을 채우려는 것인가?"

"거사님은 나를 그렇게 모르오? 이 팔로를 내 뱃속이나 차리기 위해 사는 그런 놈으로 보셨소? 나는 불가에 귀의한 그 순간부터 중생구제만을 목표로 살아온 사람이오."

"귀신의 힘으로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삿된 힘을 빌어 올바름을 추구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말하는 거사님은 무엇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소. 정의? 신뢰? 사랑 따위의 달달한 생각?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거 잘 알지 않소. 선량한 마음으로 세상이 바뀝디까? 정의네, 법치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어차피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마련이오. 그리고 그자들이 도덕적이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 아니요?"

열변을 토하는 팔로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권력과 재물에 눈먼 그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어간 내 가족들. 내 이웃들. 내 나라 민초들! 큰 뜻을 품고 출가를 한 이상, 난 그들의 절절한 염원을 모른 척하기 싫소. 아니 모른 척할 수 없소. 내 손으로 얻은 힘으로 진실로 만인이 평등한 세상, 정토를 이루어 낼 것이오."

"네가 신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피눈물을 흘려가며 애원해도 정의를 외면하는 신이라면, 차라리 내가 신이 되는 게 낫지 않겠소?"

"무력은 또 다른 무력을 부르고, 복수는 다시금 복수를 잉태하지. 너의 섣부른 생각에 더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고통으로 죽어갈 것이다. 정의를 내세우는 건 구실 뿐, 너는 힘에 눈이 먼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아."

격분한 팔로의 눈에 퍼렇게 안광이 솟았다.

"닥쳐라! 힘의 위대함을 모르는 너 따위가 감히 내 큰 뜻을 어찌 안다고!"

흰자를 희번덕거리며 떠드는 그의 입에서 가늘고 날카로운 타인의 소리가 났다. 마계불을 하늘로 번쩍 치켜든 그의 몸 가장자리가 푸르스름 빛났다.

"그때 이루지 못한 과업을 지금부터 시작하리라!"

고막을 찡찡 울리는 날 선 목소리의 주인은 선승에게 마계불을 빼앗기고 내쳐졌던 승려 만륜의 것이었다.

그는 들었던 마계불을 바닥에 세차게 내리꽂았다. 마계불의 밑동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밤의 어둠마저 삼키는 암흑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 하늘과 들판 가리지 않고 급속하게 번진 어둠은 진기 일행을 밑도 끝도 없는 암흑의 공간에 가두었다. 그들은 마치 빛 한 자락 닿지 않는 우주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현기증을 느꼈다.

은결의 가슴이 빠르게 고동쳤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상. 누나가 떠돌고 있을 세상. 진기가 버티어 가는 세상. 기어코 들어오려고 했던 그 낯선 세상의 첫발. 그는 자신을 둘러싼 극도의 어둠 속에서 폐소의 공포감을 느꼈다. 호흡이 불규칙하게 가빠오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때 진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의 옆에 섰다. 살짝 닿은 진기의 어깨가 -이 끝 간 데 없는 어둠 속에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던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은결은 힐끗 진기의 얼굴을 보았다.

'형이 버티고 선 세상··· 이런 곳에서 혼자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