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은결은 인사도 없이 진기의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았다.

"잘 지냈어? 어쩐 일이야 갑자기."

진기는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곧 무안해진 손은 물컵으로 향해야 했다. 둘은 한동안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은결은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진기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그로선 마뜩잖았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오랜만에 해원을 보기 위함이었다. 사고 이후 깊은 잠에 빠져 단 한 번도 자신을 반갑게 맞아준 적 없는 해원이지만, 그래도 은결은 한 번씩 그녀를 봐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여전히 지독한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깊은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진기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게 두손놓고 있어야 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진기는 그 비난의 방향을 자신에게, 은결은 타인에게 돌리고 있을 뿐이다. 둘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해원을 만나고 나오던 길에 그는 미국의 친구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가 스승처럼 모시는 애덤스 요한 신부가 괴한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덤스 신부는 젊은 시절 조성배 신부와 함께 한국에서 구마사 제로 명성이 높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구마 의식을 포기하고 평범한 사제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을 쫓아 구마 사제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고 은결도 그중 하나였다.

"무슨 소리야 자세히 좀 말해봐. 애덤스 신부님이 어떻게 되셨다고?"

"며칠 전, 낯선 방문객을 만나셨는데 폭행을 당하셨어. 아직 ICU에 계신다고."

"범인은? 잡았대?"

"아니. 그대로 도주했나 봐. 그런데 그날 신부님을 만난 사람을 마리아 수녀님이 보셨대. 특이한 방문자라 확실하게 기억하고 계셨는데 그 사람 중이었대. 몽크 말야. 그것도 한국 사람 ."

"한국 사람?"

"그래. 애덤스 신부님과 대화를 한국말로 했었나 봐. 신부님이 한국어를 하시잖아."

"그래서 그 중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는 거야?"

"한국으로 돌아간 게 확실해. 경찰에 의뢰해서 알아봤는데 출국 기록이 있더라고."

"요청하면 이쪽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지 않아?"

"그게 쉽지 않은가 봐. 미국에 있다면야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확증도 없는 데다가, 자칫 종교 갈등으로 보일까 봐 경찰은 난색을 보이더라고."

"신부님 많이 위독하셔? 내일이라도 당장 들어가는 비행기편 알아볼게."

"그런데 신부님이 의식이 없으면서도 도난당한 십자가를 계속 찾고 계셔. 알지? 항상 목에 걸고 다니시던…"

모를 리가 없다. 애덤스 신부는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은색 십자가를 항시 걸고 다녔기 때문에 '은십자가의 신부'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거기서 그 괴승을 찾아봤으면 싶어서. 하다못해 은십자가만이라도 찾아 돌아올 수 있다면 신부님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 가능하겠어?"

은결은 암담했다.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신부이기도 했지만, 그의 목표를 위해 애덤스 신부는 반드시 무사해야 했다. 이대로 스승마저 잃는다면, 자신의 가야 할 방향도 심연으로 가라앉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볼게."

"그래 고생 좀 해라. 너도 몸조심하고. 아 참! 조성배 신부님을 찾아가 봐. 그분이라면 뭔가 알고 계시지 않을까?"

"알았어."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괴승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애덤스 신부의 절친이라는 조성배 신부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뒷방 늙은이같이 초라해 보이는 조 신부가 한때 귀신들을 물리치던 전설의 구마 사제라는 것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가 건넨 투박한 나무 십자가는 은결이 내심 바랬던 도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진기라면… 은결은 진기가 무속 쪽 사람들과 얽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혹 괴승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 진기를 만나려고 했던 진짜 목적이었다. 하지만 침묵한 지 십 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진기도 어색한 자리가 불편한지 자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창밖을 바라보던 진기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결아.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줄래? 금방 돌아올께."

진기는 은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사색이 되어 사람들을 헤집고 가던 명기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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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망했다. 또 난리 칠 텐데'

지하철은 원하는 시간에 그녀를 홍대입구역에 내려주었지만, 일요일 저녁 축제로 거리를 꽉 메운 사람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것은 잘 넘어가 주면서도 약속에 늦는 것에는 용서가 없는 주빈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명기는 마음이 급했다.
인파에 갇혀 더디게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우연처럼 맞은 편 인도를 걷고 있는 주빈을 발견했다.

'어? 쟤 지금 어딜 가는 거지?'

그녀도 늦은 걸까. 그렇다면 천만다행. 하지만 그녀는 약속장소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명기는 찻길로 빠져나오며 맞은편 주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주빈은 정면만 응시한 채 격하게 손을 흔드는 명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야! 쭈빈. 어디가?"

생각보다 큰 목소리에 맞은편 길을 가던 사람 몇이 명기를 쳐다보았다. 명기는 부끄러움에 급히 입을 가렸다. 하지만 정작 돌아봐야 할 주빈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뭔가… 이상한데.'

한눈에 보기에도 주빈의 걸음은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명기가 그녀의 걸음 특징까지 파악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는 15도가량 하늘로 향한 채 양팔을 움직이지 않고 걷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할 모습이다. 한가한 거리였다면 사람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주빈을 에스코트하듯 그녀의 앞과 뒤에 바짝 붙어 걷고 있는 두 남자의 행색도 퍽 수상쩍었다.

'납치? 설마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흉기로 위협당하고 있다면 가능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명기는 자신의 심장이 저릿저릿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이럴 때 아는 사람이 있다면… 천신단 아저씨들에게 연락할까?'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연락하라고 그들은 명기의 휴대폰에 번호까지 직접 저장해 놓았다. 아니. 이런 일이 할머니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자신에게 좋을 리 없다. 최악을 가정하면 다시 해남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명기가 망설이는 사이 주빈은 급류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멀어졌다. 그녀는 방향을 돌려 주빈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진기가 카페를 나와 명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두세 걸음 막 걸음을 떼었을 때,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도로 건너편을 힐끔거리며 진기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진기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었지만, 명기는 그를 보지 못하고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표정은 심각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허둥대는 모습이 그녀의 걸음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무슨 일로 저렇게 급히 가는 걸까.'

진기는 멀어지는 명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은결이 기다리는 카페로 돌아가려 할 때, 불길한 느낌이 그의 걸음을 묶었다. 진기는 심호흡하고 명기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역시 괜히 왔어. 진기 형에게 도움을 받겠다는 약해빠진 생각이나 하고.'

은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기라면 곧 돌아오겠지만, 굳이 기다려 어색한 작별을 할 필요는 없다. 은결은 그대로 카페를 빠져나와 분주한 행인들의 대오에 합류했다.

명기의 시선은 산만하게 흔들렸다. 수많은 뒷모습 속에 어떤 것이 주빈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쫓아가길 수 분. 그녀는 일행을 따라잡았다고 확신했다. 혼동할 수 없는 뒷모습. 바로 팔로의 승복이었다. 
넓적한 그의 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그의 어깨 사이로 언뜻 주빈의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보인 듯도 하다. 하필 그때 앞에 걷던 취객이 넘어지며 명기의 급한 발길을 막았다. 휴대폰을 보며 걷던 뒷사람이 멈춰선 명기와 부딪쳐 그녀도 넘어질 뻔했다.

'어디? 어디로 간 거지?' 

그 사이 사람들 속 팔로와 주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뒤꿈치를 들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어지럽게 엉키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승복은 없었다. 차도로 고개를 돌렸을 때, 명기는 택시 문을 열고 주빈을 밀어 넣는 팔로를 발견했다.

"주빈아!"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명기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주빈은 명기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주빈을 뒷좌석에 태운 팔로가 명기 쪽을 한동안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명기가 택시를 향해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문을 닫았고, 택시는 황색으로 접어든 교차로를 건널 심산인지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택시가 떠난 도로까지 내려간 명기는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치며 물었다. 명기는 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 아! 아저씨는?"

"그래 맞아. 우리 저번에 한 번 만난 적 있지? 하도 급하게 달려가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쫓아 와봤는데… 그리고 아저씨라는 호칭은 좀…."

명기는 다짜고짜 진기의 옷자락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제 친구가 납치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뭐 납치?"

진기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도로 건너편에 서 있던 은결과 눈이 마주쳤다. 상기된 얼굴의 은결은 차가 지나가길 기다려 진기와 명기를 향해 걸어왔다.

"은결아.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야. 너 혹시 중과 함께 택시 타고 간 애랑 친구냐?"

은결은 진기를 무시하고 대뜸 명기에게 물었다.

"네. 제 친구예요. 지금 이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된 것 같아요. 혹시 주빈이를 아세요?"

"잘 몰라. 아까 잠깐 마주쳤을 뿐이야. 같이 탔던 중도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이에요. 주빈이도 모르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놈이야. 은십자가 목걸이를 봤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은결이 눈을 치켜뜨며 진기에게 물었다.

"형. 나 그놈을 잡아야 해. 어떻게 저놈을 쫓아가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진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그때 진기의 점퍼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꺼낸 휴대폰에 강건웅 형사의 번호가 떴다.

"진기냐? 나다."

"엇. 형사님이 아니네. 어르신 어쩐 일이세요. 서울 올라오셨어요?"

"오냐. 강 형사 만나서 밥 먹을라 하는데 너도 오너라. 함께 먹자."

"아. 제가 지금 일이 좀 생겨서…"

형사란 말에 귀가 쫑긋한 명기가 진기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진기가 알겠다는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거기 강 형사님도 함께 계시죠? 금방 그쪽으로 갈게요."



찬수를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 은결은 괴승을 쫓고 있는 이유를 진기에게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진기는 찬수 어르신이라면 분명 괴승에 대해 알고 계실 거라고 말했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은결의 부탁이 싫지 않았다. 해원에 대한 감정을 내려두고 녀석과 이야기를 나눈 게 얼마 만인가. 
삼십 분 뒤, 그들은 사당역 뒤편 골목의 감자탕집에서 찬수와 강건웅 형사를 만났다. 진기에게 소개를 받은 은결이 찬수에게 인사했다.

'그 애와 선량한 눈망울이 닮았구나.'

묵묵히 인사를 받으며 찬수는 해원을 상기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감자탕을 앞에 두고 진기는 은결과 명기에게 들었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래, 자네가 말하는 그 승려 인상착의를 말해보게."

"조금 전 잠깐 본 것 뿐이지만 친구에게 들었던 것과 거의 일치했어요. 큰 키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장비처럼 덥수룩한 수염도 그렇고요."

"전국의 스님들 중 그런 모습을 한 스님이 그 사람 하나뿐일까? 그것만으로 동일인이라고 단정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데…"

강 형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은결의 대답에 의구심을 보였다.

"하지만,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중은 세상에 그놈 하나뿐일걸요?"

"짚이는 데가 있습니까?"
진기가 조심스럽게 은결을 대신해서 물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그 중이 걸고 있다는 십자가가 자네 스승의 것이란 말인데… 중이 왜 십자가를 탐냈을까? 그것도 미국까지 날아가서?"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만, 그 목걸이는 애덤스 신부님이 한국에 계실 때 얻으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구한말 조선에 들어왔던 외국인 선교사의 것인데 신부님이 보물처럼 아끼시던 물건이었어요."

"파란 눈의 십자가!"
찬수가 식탁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치며 말했다.

"그게 뭐죠?"

"예전부터 무속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지. 구한말 왜놈들이 민심을 어지럽히기 위해 나쁜 무당들 몇을 고용했다고 하네. 놈들의 사주를 받은 무당들은 흉물을 소환해 사람들을 홀리고 많이 죽였는데 일본의 잡귀들까지 끌어들여 위세가 대단했다고. 
그때 그들을 물리고 선량한 민초들을 구한 사람 중 하나가 당시에 보기 힘든 파란 눈의 선교사였고, 그가 지닌 십자가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네. 미국까지 가서 빼앗아 온 거라면 파란 눈의 십자가가 틀림 없겠구먼."

"그런 영물을 굳이 종교도 다른 스님이 노린 이유는 뭘까요?"

찬수는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 굵은 침을 삼키며 얼굴을 찡그렸다.

"덩치가 큰 텁석부리 중이라고했지…. 팔로였구만. 내 까맣게 잊고 있었어."

은결이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럼 어르신은 그 괴승 아니, 팔로라는 사람을 아세요?"

"그놈 잘 알지."

"잠깐만요. 말씀 중에 끼어들어 죄송한데 그럼 제 친구는 왜…"

명기가 초조한 눈빛으로 은결과 찬 수를 번갈아 보며 대화를 잘랐다.

"학생. 혹시 날 아는가? 낯이 많이 익은데."

찬수는 명기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눈을 모았다.

"아니요. 저는 처음 뵙는데요. 그보다 제 친구는 어떻게 되는 거죠? 형사님. 어떻게 해요?"

"학생. 아까 친구가 그 중에게 강제로 끌려간 건 아니라고 했지? 그럼 납치라고 보기도 좀 어려운데."

"그렇지만, 뭔가 협박을 당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걷는 게 정말 이상했다구요."

"걷는 게 이상했다? 어떻게 걷든?"
찬수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평소랑 너무 달랐어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턱을 치켜들고 팔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제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듣지 못했고요."

"팔로 이놈 조령술을 썼구먼. 근거리에서 사람의 신체를 조종하는 질 나쁜 술법이지. 못 봤겠지만 아마 그 학생 목 뒤에 침이 꽂혀있을 거네."

"네? 그런데 왜 하필 제 친구를…'

"자네 친구라는 아이. 좀 특별한 아이인가? "

"무슨 말씀이에요?"

"그 아이 무슨 비범한 능력 같은 게 있느냐 말이야. 귀신을 본다든가 하는 그런 거."

진기와 명기의 눈이 마주치며 번개 같은 불꽃이 튀었다. 귀신을 부리는 아이… 진기가 찬수에게 말을 꺼내려고 하자 명기가 그의 말을 막으려고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알기로 주빈이는 그냥 평범한 애예요. 그런 능력 같은 거 없어요."

"그놈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이군. 아무튼, 조령술은 몇 시간 못가니 친구는 곧 정신이 돌아 올 게야."

명기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음… 팔로 그놈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면 틀림없이 마계불을 노리는 걸 텐데."

"마계불이요?"
진기와 은결이 입을 맞춘 듯 동시에 물었다.

"파란 눈의 십자가와 마계불이라… 허. 불길허다. 아주 불길해."

더 물어보려는 은결을 향해 손을 들어 제지하고 찬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무결의 방패와 충천의 검… 그 둘을 손에 넣었단 건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게 좀 해주세요."

은결이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찬수가 버릇없다는 듯 은결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은결은 기죽지 않고 다시 물었다.

"마계불은 뭐고 방패, 검은 또 뭐죠? 아니, 그보다 어디를 가야 그 중놈을 잡을 수 있습니까."

"가자. 놈이 일을 벌이기 전에 잡아야 한다."

찬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금요? 어디로 갑니까?"

"만약에 놈이 두 가지를 다 손에 넣었다면 갈 곳은 거기밖에 없어. 남양주. 석성사로 가세."

일행은 한마디 대꾸 없이 찬수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도 늦었으니 거기 학생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 있어. 우리가 친구 찾으면 바로 연락할게."
강 형사가 일행을 따라나서는 명기를 제지하며 말했다.

"아니요! 저도 함께 갈게요."

명기의 단호한 대답에 강 형사는 그녀를 막아 세우기가 머쓱했다.
명기는 팔로가 노리던 사람이 주빈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확신했다. 어째서 주빈이 대신 끌려갔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 때문에 그녀가 위험해질지 모르는 판국에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게 명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