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원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세상은 끝 간 데 없는 암흑천지였고 좌우와 상하가 급격하게 뒤집혔다. 넓이와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 오히려 텅 빈 것 같은 그 흙빛 심연은 그녀가 몸을 비틀 수조차 없을 만큼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깊은 펄 속에서, 거대하고 미끈거리는 뱀장어떼의 틈에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그 무엇이 다리를 죄고 미끄덩 등을 타고 넘는다. 

얼마나 울고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가. 하지만 그 처절한 절규가 자신의 귀에 닿지 않는다. 이곳은 어디인가. 공포는 끝을 모른다. 숨은 다시 가빠오고 온몸이 짓눌려 터져버릴 것 같다.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뒤에 알아차린 섬뜩한 사실은, 지금 자신에게 호흡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나… 나는 죽은 건가. 여기는 어디지?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진기야 도와줘!'

그때, 어둠의 한 곳에서 미세한 빛을 품은 작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의 근원은 어둠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아가. 거기 있는가? "

"아! 누..누구? 사람 살려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누구라도 곁에 있다면 덜 무서울 것 같았는데, 정작 사람의 소리가 들리자 가슴팍까지 내리눌렀던 두려움이 단숨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절박함을 알려야 하는데, 공포가 만들어낸 언어는 오직 비명뿐이었다.

"아가. 정신 차려! 내가 구해줄 테니. 침착하고 내 말을 들어!"

너무나 간절했던, 구해준다는 말 한마디에 비명이 멎었다. 침묵이 수초간 이어진 후, 어둠 속을 공명하던 찬수의 목소리 톤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많이 놀랐겠지만 잘 참아주고 있구나. 네 몸을 둘러싼 것이 위험한 것이긴 하다만, 당장 너를 해치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당황하지 말거라."

"네… "

찬수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일 리 없겠지만 해원은 꿈틀대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아까는 속여서 미안허다. 나는 골동품 수집쟁이가 아니야. 너도 이제 겪어봐서 알겠지만, 네가 본 그것들은 아주 위험한 존재들이다. 지금 다 이해하긴 힘들 테니 그저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다오. 알겠니?"

해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조각상을 어디서 얻은 거냐?"

"네? 그런 게 지금… 저를 먼저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당장 질식할 것 같아요."

"그걸 알아야 널 구할 수 있어. 얼른 말해다오. 어디서 난 거야?"

"남자 친구가 만들어 준거에요."

"남자친구가 만든 거라고? 그래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냐?  말해라 어서."

초조함에 찬수의 말이 빨라졌다.

"남자친구는 군대에 있어요. 얼마 전 면회 갔을 때 선물로 받아온 건데… "

"군인? 그래 어디?"

"가평이요."

"잘 듣거라. 지금부터 남자친구가 있는 곳을 찬찬히 더듬어 생각해 봐라. 그곳에 가야만 너를 꺼낼 수 있어."

해원은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타래 같았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과 사람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상 모를 증오와 슬픔 그리고 대체 이 빌어먹을 곳은 어디란 말인가!

"정신 차려 아가!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해원은 찬수의 다그침에 진기의 부대가 있는 가평을 떠올렸다.

"어디로 갑니까?"
정진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평으로 가세."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찬수는 눈을 감고 품 안의 조각상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실제로 그의 온기가 해원의 혼백에게 전해지는지 그녀의 마음은 처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정진은 묻고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 대호법의 깊은 묵상을 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찬수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가평은 아직 멀었는가?"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극음과 함께 그 여자의 혼백이 영물 안에 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물에 들어간 극음에게 지금 이 아이의 생령은 이물질 같은 거야. 혼백이 녹아 사라지기 전까지는 완전히 그놈이 차지한 게 아니지."

"혼백이 녹아 사라져요?"

"그래. 극음은 원래 생령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하네만, 이렇게 함께 영물에 내재되면 극음의 독기에 영혼은 점점 힘을 잃어가다가 마침내 녹아 사라지지."

"그럼 이 여자는 죽겠군요… "

"그냥 죽는 게 아니야. 혼령이 소멸하면 구천에 갈 수 없어. 완벽하게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거지. 내생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거야."

"이 여자의 혼백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길어야 두어 시간 남짓."

초록 불 차량용 시계를 바라보는 찬수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그럼 가평까지 갈 게 아니라 어디든 차를 세우고 조각상을 깨는 게 어떨까요?"

정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차를 세울만한 장소를 찾았다.

"안돼. 여기서 영물을 파괴하면 극음이 달아나는 것은 물론 아이의 혼도 산산이 흩어지고 말아. 이 영물이 생명을 얻은 곳. 그곳에서 영물을 파괴해야 해."

"영물이 생명을 얻은 곳… "

 "극음이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그녀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올 거야. 아이의 혼을 무사히 구하고 나면 우리에게 극음을 봉인할 기회가 한 번 더 있는 거지."

"서둘러야겠군요."
굵은 침을 삼킨 정진이 악셀을 힘껏 밟았다.

'진기야. 나 무서워 죽을 것 같아. 도와줘. 제발 나 좀 살려줘. 진기야 듣고 있어?'

해원은 진기를 부르고 또 불렀다.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무엇이든 생각하라고 찬수가 말했다. 실제 해원은 온몸이 눅신하게 가라앉듯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했다. 진기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흐려지려는 의식을 힘겹게 붙들었다. 
진기라면, 그가 곁에 있었다면.

"진기야…제발…"


'해원?"

근무일지를 뒤적이던 진기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해원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하. 보고 싶은 게 간절하면 환청이 들리고 그런다더니.'

해원의 얼굴이 떠오르자 입가로 살풋 웃음이 돌았다.
해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자, 지금은 미래를 함께 꿈꾸는 연인이다. 진기의 스물두 해 인생에서 해원을 뺀다면 순수하게 그의 몫으로 남을만한 기억이 없을 만큼 둘은 각별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마치면 부모님이 계신 미국에서 해원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릴 야무진 계획도 세워 놓았다. 

해원은 소녀상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영원한 사랑이란 뜻을 담기 위해 천년송의 굵다란 가지를 얻어다 6개월 공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소녀상의 밑동에 넣어둔 반지는 아직 모를 것이다. 제대하면 근사한 곳에서 멋지게 프로포즈를 해야지.

"진기……. 도와……"

진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접이식 철제의자가 넘어지며 바닥을 때렸다 '쿵-' 소리는 마치 동굴 속처럼 메아리를 만들며 적막을 깨뜨렸다.

'뭐지? 이 소리는… 환청이 아니야!'

진기는 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해 당직실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실내는 평소의 새벽과 다른 것이 없었다. 무전이 들어오는지 '치지직-' 전파 잡음이 들렸지만 기분 나쁜 기계음만 계속될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당직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자신의 군홧발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요란하게 울렸다. 건물을 나왔을 때, 그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내린 것을 알았다. 팔을 뻗으면 손가락조차 흐릿하게 보일 만큼 안개는 축축하고 농밀했다.

"세상에… 웬 안개가 이렇게."

그때, 안개 사이로 누군가 획 지나가는게 보였다. 평소라면 기겁했을것이다. 군대라고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데라 괴담이 있게 마련. 안개가 심한 날 근무지에서 귀신을 봤다는 목격담이 심심찮게 들렸다. 
하지만 왜일까.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닌 게 확실한데, 시야를 잠깐 스쳐 간 그것이 무섭지 않았다. 그는 숨바꼭질의 술래를 찾듯 팔로 허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안개 속에서 불과 오분 남짓 헤맸을까, 머리와 옷이 축축하게 젖어오는 걸 느꼈다.

"진기…. 흑흑흑."

"해원? 해원아!"

해원이다. 희미하고 울림이 강한 소리지만 틀림없는 해원의 목소리였다. 잘못 들었을 리 없다. 그것도 세 번이나. 얼마나 걸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안개가 슬쩍슬쩍 엷어지는 곳으로 정체 모를 무언가가 보였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진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보다 해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기분 나쁜 상상이 몇십, 몇백 배 그를 떨게 했다.

"잠. 잠깐만요! 거기 기다려."

진기는 고함치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자신의 발에 걸려 나뒹굴었다. 그 앞으로 안개가 옅어지며 그를 돌아보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진기야. 살려…."

"해원아!" 

진기는 진창이 된 옷 따위 신경 쓸 겨를없이 그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꼭 한걸음 빠르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그녀는 먼 거리에서 구슬프게 그를 불렀다. 그는 본능적으로 해원이 위험에 빠졌다고 느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말초까지 뻗어있는 모든 신경세포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방향도 모르는 안개 속을 미친 듯 달렸다. 얼마나 그녀를 쫓았을까. 그는 돌부리에 채이고 넘어지며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안개가 심하네요. 어두워서 영물의 본 터를 찾을 수 있을까요?"

 트렁크를 열고 플래시를 찾던 정진이 말했다.

"산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어두운 길이 더 수월하기도 하네. 내 걱정은 말고 여기서 길목을 지키고 있어. 잡귀들이 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아래서 힘을 보태."

"네,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 주십시오."

정진의 비장한 표정을 보며 찬수는 억지로라도 웃어보려 했지만, 입 주위가 조금 꿈틀거렸을 뿐 경직된 얼굴을 바꾸지 못했다. 안개와 어둠이 삼켜버린 오솔길을 따라 빠르게 산으로 올라갔다. 
찬수는 해원이 진기를 간절하게 부르는 동안 그녀의 혼을 쫓아 진기의 의식에 접촉했다. 그리고 진기의 의식에서 조각상을 만든 나무가 있던 장소를 어렴풋하게 읽어냈다. 짤막한 잔영으로 정확한 위치를 찾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숲에 들어서자 영물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는 미세한 인력을 감지했다.

 억센 칡넝쿨로 뒤덮여 흔적이 사라진 길을 뚫고 들어가 계곡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갈라진 암벽 틈에 뿌리를 묶고 무거워진 기둥과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린 소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진기라는 청년은 필시 이 나무의 일부를 가져다가 소녀상을 깎았을 것이다. 수령이 천년에 가까울 만큼 노쇠한 나무는 영력을 조각상에 넘긴 후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소진하고 있었다. 품 안의 조각상이 바르르 진동했다.

'천년송…. 그래. 이 정도 영물이 아니면 극음이 탐할 리 없지.'

극음을 인식한 잡스러운 영들이 몰려드는지 찬수의 입으로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낡은 바랑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 천년송 앞 평평한 바닥에 봉인진을 진을 서둘러 그려나갔다. 혼자서 감당하기 벅찰 것이다. 하지만 경각에 달린 생명 앞에서 자신의 안위 따위를 걱정할 수 없었다. 

조각상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한다. 극음이 해원의 혼을 완전히 녹이고 영물을 차지하면 조각을 파괴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