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건현장에서 적잖게 놀라셨을 겁니다. 저도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훼손된 시신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신 경위가 그놈의 '강력계'라는 수식을 무척이나 경외하는 것에 류 탐정의 입에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 겨우 옷이랑, 신발을 보고 알았어요. 도저히 그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흑."

 문구점 여주인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셨군요. 신원은 1차적으로 소지한 주민증으로 확인한 상태입니다. 훼손이 심해 지문은 채취하지 못 했지만, 정확한 신원은 유전자 검식을 통해 밝혀질 겁니다. 감식을 위한 대조 샘플은 박 순경이 찾아가서 요청할 겁니다."

 "무슨 샘플이요?"

 여주인이 흐느낌을 멈추고 신 경위에게 되물었다.

 "아, 뭐 별건 아니고. 남편께서 쓰시던 칫솔이나 머리카락이 붙어 있을지 모르는 빗, 또는 면도기 등입니다. 유전자를 대조하기 위해서는 남편분의 체모나 체세포 샘플이 필요합니다.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뭔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 경위는 부드러운 억양으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가증스러운 의도를 숨긴 목소리.......'

 류 탐정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틀림없이 시커먼 속내가 내포된 것 같아 진저리가 쳐졌다. 

 "예. 칫솔은 어느 게 그 사람 건지 모르겠고, 빗은 거의 안 썼을 거예요. 아! 욕실장에 어쩌면 예전에 쓰다가 녹슨 면도기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요?"

 여주인은 신 경위의 친절함에 긴장이 풀린 것인지 아니면 울만큼 울었는지 더 이상의 흐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안 되겠다싶으면 다른 샘플을 또 찾으면 되니 걱정하지 마세요."

 신 경위는 웃음소리만 없을 뿐, 목소리는 명랑함이 묻어났다. 그게 과연 방금 남편의 죽음을 목도한 미망인 앞에서 보인 태도인가 하는 생각에 류 탐정을 혀를 찼다.

 "네. 감사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주인은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니면 공권력 앞에 선 일반인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별다른 거부감 없이 도리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투로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제가 성심성의껏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부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신 경위는 한 술 더 떠서 사건조사에 대한 각오를 밝히는 모양새였다. 그의 언행에 류 탐정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무슨 성심성의에....... 무슨 진실?'

 신 경위의 뻔한 속내를 지탄하던 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생각해보니 그가 사망자 부인 앞에서 보인 태도는 자신이 양 마담 앞에서 보인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 경위가 자신이 양 마담 앞에서 보인 행태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아 거울을 마주하고 별 웃기지도 않는 연기를 펼치는 피에로 같은 심정이었다.

 자신도 어쩌면 불손한 의도가 우선인 상태로 양 마담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기 의심이 들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온통 그녀의 웃음기 넘치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마음 놓고 신 경위를 욕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았다.

 "자, 그럼.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신 경위가 좀 전과는 다른 다소 사무적인 목소리 톤으로 사망자 부인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도 조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남편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가요?"

 "그게. 한 일주일은 지난 것 같아요."

 사망자 부인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일주일이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시고요?"

 '일주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류 탐정의 뇌가 브레이크를 걸며 이상한 괴리감을 감지했다.

 류 탐정이 문방구를 찾아간 것은 어제였고, 신 경위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로는 남편이 방에 있다가 빚쟁이가 온 것으로 생각하고 도망쳤다고 했었다. 그리고 신 경위가 사건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문자를 하라고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신속하게 휴대폰을 켜서 신 경위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 자판을 입력했다.

 '어제 문방구에 갔을 때 거기에 김정구가 있었'

 류 탐정은 문자를 입력하려다가 주춤했다. 자신이 어제 문방구를 찾아가서 생긴 일을 신 경위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 걸렸다. 그리고 문방구 여주인과 함께 있었던 사람. 우당탕 도망치는 소리가 남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 존재가 이번 사건의 핵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 자신이 신 경위에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다고, 과연 제대로 된 정의로운 결론에 다다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과거에도 수없이 자신을 골탕 먹이고, 괴롭힌 존재.

 지금은 연쇄살인이라는 공통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 자신을 버리고 혼자서 모든 공과를 챙길 사람.

 논리적이지 않은 정보에 잠시 갈등하던 류 탐정의 뇌가 다시 빠른 연산에 들어갔다.

 

 먼저, 자신이 신 경위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내용을 여전히 숨겨야 했다.

 다음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신 경위와 문방구 여주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으로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날 핑계가 필요했다.

 

 류 탐정은 오늘 아침에 창고방을 나와 다방에서 사건현장으로 그리고 사건현장에서 이곳 출장소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빠르게 탐색해 나갔다. 그리고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나름의 묘안을 궁리해냈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최대한 불편한 얼굴과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박 순경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흡."

 금세라도 토할 것 같은 연기를 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쪽입니다. 불편하시면 제가 부축이라도 해 드릴까요?"

 박 순경은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류 탐정에게 필요한 것은 빠르고, 홀로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속이 매스꺼워서요. 혼자서 갈 수 있습니다. 흡."

 또 한 번의 연기로 박 순경의 호의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출입문을 꼼꼼하게 닫고, 두 개로 나눠진 대변기 칸 중 안쪽에 자리를 잡고 문을 잠갔다.

 "웩! 우웩!"

 류 탐정은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듯하게 토하는 소리를 연기하고는 휴대폰을 열고 신 경위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 저 속니 안 좋아서 더 못잇겠습니다. 선배님 호장실 나오시고 바로 화장실로 달텨왔네요. 어제 술리 문제인가봅니다. 바로 숙소네 가야할거같습니다. 죄송랍니다'

 그는 맞춤법에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빠른 입력으로 문자를 보냈다. 속이 좋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느린 타이핑 속도로 자칫 조사가 꽤나 진행된 상황에서 문자를 보내면 신 경위가 초반에 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더 강했다.

 '딩동!'

 얼마 지나지 않아 신 경위의 답장이 왔다.

 '알았어. 그러게못이기는술은먹어서그래? 정신들면 연락해.'

 그의 답장에 류 탐정은 겨우 안심이 되었다. 그의 답장에 미루어 거의 의심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세면대에서 얼굴과 머리에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조금 헝클어뜨렸다.

 화장실 문을 나서는데 역시나 박 순경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신 경위님께는 말씀드렸는데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괜한 심려를 끼친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으읍."

 류 탐정은 마지막까지 연기를 잊지 않았다.

 "많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고 싶습니다만, 현재 진술서 작성이 끝나면 바로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박 순경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류 탐정을 배웅했다. 얼마 전 밤에 얼핏 그의 얼굴에서 비웃음을 느낀 적이 있었던 류 탐정은 그것이 정말 자신의 심각한 오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사람에게 연기를 하는 자신이 더 초라해 보였다.

 "아닙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전 이만."

 그는 황급히 출장소를 벗어났다. 문을 나서기 무섭게 후텁지근한 한여름의 열기가 칭칭 비로드 장막을 치며, 그의 성공적인 연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커튼콜을 보냈다.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연기를 펼친 류 탐정은 타는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며, 출장소 앞마당에 깔린 자갈을 헤집고 창고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출장소 현관문 안쪽에서 박 순경이 걱정스러운지 한껏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