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고생하셨습니다. 소장님!"

 서늘한 실내공기를 뚫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오! 그래. 진현아. 그사이 별 일 없었어?"

 박 순경의 절도 있는 경례에 신 경위는 어정쩡하게 손을 올려 손 인사를 하고는 누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거들먹거리는 태도는 류 탐정에게 익숙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과거에도 신 경위는 신참 형사의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형사과 막내에게 큰 목소리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하게 했었고,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경찰로 복귀한 그에게도 과거의 기억이 없으니 신입이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그와 같은 행동을 요구했었기 때문이었다.

"네. 오전의 사망 사건 접수 이후로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박 순경은 그의 무성의하고, 고압적인 태도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단순명료하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사망자 부인은 기다리고 계시고?”

 신 경위는 박 순경의 책상 위에 있던 물티슈를 한 움큼 뽑아들더니 얼굴과 목덜미를 닦으며 물었다.

 “네. 현장 신원확인 이후에 바로 이곳에 모셔왔습니다. 안쪽 숙직실에 계십니다.”

 박 순경은 그의 지저분한 행동을 애써 외면하려는지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뭔가를 타이핑하며 대답했다.

“알았어. 아, 그리고 내 후배 류 탐정이랑은 구면이지?”

 그는 이번에는 여름 근무복의 단추를 몇 개 풀더니 얼굴을 닦던 물티슈로 땀이 흥건한 겨드랑이를 쓸어내면서 물었다.

 “네. 김철규 씨 사건 관련해서 몇 번 뵀었습니다.”

 박 순경은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류 탐정을 바라보며 어색한 눈웃음과 함께 목례를 했다. 류 탐정에게 그 모습이 자신의 상관의 허울을 너그럽게 봐달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단정하고 바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역시 박 순경에게 가벼운 목례로 화답했다.

 “저기 숙직실 옆에 탕비실 있잖아. 거기로 이 친구를 안내해 줘. 내가 조사를 하는 동안 커피나 한 잔 하면서 기다리게. 그리고 사건보고 자료는 다 준비되었어?” 

 신 경위는 온몸을 훑은 물티슈를 박 순경의 책상 언저리에 던져 놓으며 말했다.

 “네. 초동보고서 작성은 마쳤고, 피해자 부인의 진술서만 첨부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발자국 옆에 휴지통이 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류 탐정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만, 박 순경은 그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신 경위의 끈적한 체취가 묻어있는 물티슈를 그러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며 대답했다.

"그래. 고생했다. 난 화장실에 들렀다가 진술서를 받으러 갈 테니 이 친구 안내 좀 해 줘."

 신 경위는 툭 불어나온 배를 한 손으로 쓸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탐정님은 이쪽으로 오시죠."

 박 순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류 탐정을 탕비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싱크대 옆에 달린 붙박이 선풍기를 켜주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류 탐정은 그런 그의 꼼꼼하고, 배려 깊은 행동에 같은 남자지만 호감을 넘어 선망을 느껴졌다. 그러자 박 순경의 흠 잡을 데 없는 인성과 비교되는 자신의 배배꼬이고 부정적인 성격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 바로 신 경위를 떠올리니 결코 박 순경처럼 평온함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과거 그가 류 탐정에게 행한 행동은 단지 더러움, 거만함, 안하무인 이상의 행동이었다.

 

 류 탐정이 며칠간의 행방불명 후 다시 경찰에 출근을 했을 때, 처음에는 누구보다 살갑게 대해 주었다가 나중에는 미칠 정도로 그를 괴롭힌 사람이 바로 신 경사....... 그러니까 지금의 신 경위였다.

 처음에는 기억이 돌아오게 도움을 준다고 과거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고, 물어 보는 친절한 상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류 탐정은 적잖은 감동마저 받았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도 신 경사가 겉으로는 까칠하게 대했어도 속으로는 류 정직을 무척이나 아껴했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경찰에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야말로 180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신입에게나 시키던 경례가 그 시작이었고, 그 이후에는 갖은 유치하고, 더러운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불면증과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경찰 생활에 적응에 실패하고, 경찰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래도 한동안은 모든 것이 어리바리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했었다. 그런데 퇴직 후 우연히 의경으로 근무했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자신이 기억 못하는 과거의 모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로는 행방불명이 되기 이전의 그는 불의에 전혀 타협하지 않아서 어떠한 예외나 편법도 인정하지 않았고, 신 경사는 그와 반대로 관할 내 어깨들과도 형, 동생을 할 정도로 모든 일에 요령과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 타입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둘 사이가 완전 상극이어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사사건건 부딪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까마득한 후배였지만 류정직의 강직한 태도와 원칙에 신 경사가 아니꼬워하긴 했어도 대놓고 막말을 퍼붓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경찰 생활의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신 경사가 마치 과거의 일에 복수라도 하듯이 그를 괴롭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 경사의 처우에 불만이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 경사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이해도 되었다. 사실 과거의 그의 모습이 그러했다면 누구라도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얼마 남아있지 않던 신 경사에 대한 의리, 연민, 인간적인 이해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한 일이 생겼다.

 결국 수중의 돈도 거의 떨어져 경찰생활동안 거처하던 오피스텔을 떠나 명월동 고시촌으로 이사를 하던 날이었다.

 이사를 하기 위해 TV장식장을 옮기는데 그 TV장식장 뒷면에서 두툼한 서류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툼한 서류봉투를 보는 순간, 신 경사가 그에게 끊임없이 확인했던 그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기억이 없는 자신에게 다가와 몇 번이나 확인했던 서류뭉치. 특히 경찰의 기밀사항이니 절대 개봉하지 말고 자신에게 가져 와야 한다는 그 서류였던 것이다.

 기억을 잃고 경찰서에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면........ 신 경사가 여전히 따뜻하게 자신에게 대하고 있는 때라면....... 아니 여전히 경찰을 그만두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쩌면 신 경사의 말대로 서류봉투를 개봉하지 않고 그의 턱 밑에 갖다 바쳤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는 경찰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고,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신 경사였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다.

 투명한 지퍼 팩에 담긴 서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신 경사가 기밀이라고 했지만, 기밀문건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비문표시도, 제대로 된 밀봉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서를 꺼내 살펴본 결과, 신 경위가 그렇게 자신에게 친근했다가 불같이 괴롭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시 신 경사의 비위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형사과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얼마간의 비리야 있을 수 있었겠지만 지역 불량배들과의 뒷돈 내역은 썩을 대로 썩은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역으로 인해 과거 신 경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자료가 그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뭔가 낌새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행방불명 후 바보가 되어 온 그에게 계속 물어보고 확인한 것이 그 서류였다는 점에서 그의 짐작이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 서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어떤 다른 과거의 기억도 떠올리지 못하자 눈엣가시인 그를 그냥 둘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신속하게 그를 경찰에서 쫓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신 경사에게서 받은 온갖 수모의 이유가 밝혀지자 허망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자신의 비위를 숨기기 위해 자신을 동료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그의 비정함에 다시 한 번 치가 떨렸다.

 평소 말버릇처럼 조직에게 충성하면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 주기에 무엇보다 조직의 위계질서확립이 최우선의 가치라고 주장하던 그.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사람이었다.

 류 탐정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 서류뭉치를 본청 내사과에 보냈다. 경찰 신분도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회심의 일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문서로 인해 신 경사도 자신과 같이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몇 개월의 감봉과 형사과에서 배제되는 것이 다였다.

 그가 말한 조직, 그와 함께 상부상조하는 동료들이 그를 구명한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었던 것이었다.  

 류 탐정이 탐정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얼마 간 경찰이었던 자신도 이러할 진데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결코 대항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의 벽.

 다시 경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돌아가도 그 조직에 끼지 않으면 어느 순간 지금과 같이 버려질 조직.

 비록 정식 수사권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탐정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좀, 괜찮으십니까?"

 그때 옆방에서 신 경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 탐정은 그의 과거의 가증스러운 모습이 떠올라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옆방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100% 성공한 복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의 형사과에서 시골의 출장소장으로 좌천을 시켰으니 나름은 소득이 있었다고 자위를 하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 아뇨. 흐흑."

 옆방에서 여자의 울음 섞인 대답이 들렸다.

 "이런....... 그럼 진정하시게 제가 좀 더 시간을 드릴까요?"

 그의 느끼한 목소리를 들은 류 탐정의 머릿속에 여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젠틀한 모습을 보이려는 신 경위의 태도와 방금 전 온 몸을 닦던 물티슈가 머릿속에 오버랩 되어 또다시 매스꺼움이 몰려들었다. 

 "아뇨. 그냥 하시죠. 이미 벌어진 일....... 흑. 말씀하세요."

 어제 들은 목소리여서 그런지 단번에 문방구 여주인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어제의 끈적이는 듯한 고혹적인 물기와는 달리 헛헛함이 느껴지는 깔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서 고혹적이니 어쩌니 하는 생각을 한 자신의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다 여자 앞에서의 신 경위의 태도나 자신의 지금 상상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이 들자 쓴웃음이 지어졌다. 정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