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마담이 파출소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백미러로 지켜보던 신 경위는 그녀가 경찰차 가까이에 다가서자 차에서 내리며 호기롭게 차문을 닫았다.

 '쾅!'

 따라 내리려고 문고리를 더듬거리던 류 탐정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신 경위의 마초 같은 행동과 자신의 민달팽이 같은 소심한 태도가 극명하게 차이 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화를 돌릴 대상도 없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신 경위와 양 마담 앞에서 자신의 분을 폭발시킬 수도 없는 일이기에 속으로 꾹꾹 눌러 참았다.

 겨우 마음을 다잡은 그가 문을 열고 나서자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8월의 무더위가 후끈 밀려왔고, 신 경위와 마주선 채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찍어내는 양 마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 경위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차에서 내려서는 류 탐정의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보이더니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아는 채 했다.

 그 모습에 신 경위의 시선이 양 마담에게서 벗어나 류 탐정에게 옮겨지며,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겉으로는 동료니 어쩌니 갖은 사탕발림을 했지만, 양 마담이 류 탐정을 반기는 모습에 배알이 꼴린 것이었다.

 양 마담은 그런 신 경위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쪼르르 류 탐정 앞으로 뛰어 왔다.

 "탐정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아, 신 경위님과 마을 어귀에 발생한 사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류 탐정은 신 경위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류 탐정은 내가 무척이나 아꼈던 후배지. 과거 강력계 시절에 이런 사건은 부지기수로 함께 했기에 의견을 좀 물어 보려고 불렀어."

 신 경위가 한껏 가슴을 부풀리며 과거에도 써먹은, 있지도 않은 강력계 경력 이야기를 꺼냈고, 류 탐정은 고개를 끄덕여 짐짓 그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끔찍한 살인 사건이라고 좀 전에 다방에 오신 손님이 그러시던데, 사실인가요?"

 양 마담이 신 경위에게 물었다.

 "그것이……."

 "류 탐정은 일단 가만히 있어."

 신 경위는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류 탐정을 급하게 막아섰다.

 "아직은 뭔가 확정할 단계는 아니에요. 여러 가능성을 놓고, 조사 중이지."

 신 경위는 다급한 듯 경어와 존칭을 혼용하며, 혹시나 류 탐정이 꺼낼지도 모를 양 마담 남편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을 원천봉쇄했다.

 "네. 그렇군요. 저는 문방구 바깥양반이 같은 보혈의 집 신도이시기도 해서 혹시나 우리 집 양반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했죠."

 신 경위의 생각대로 양 마담은 그 일에 신경이 쓰였던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두 남자를 번갈아 훑어보며 말했다.

 "미현 씨 마음이야. 내가 백 번, 천 번 이해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먼저 경찰에서 면밀하게 조사하고, 확인해서 결론지어질 문제야. 그저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신 경위가 추후에도 불거질지 모를 양 마담의 개입을 경계하고 나섰다.

 "네. 알겠어요."

 양 마담이 그의 이야기에 알겠노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녀의 눈길은 류 탐정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 탐정은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짐작하고 남았다.

 "그럼. 미현 씨는 그만 돌아가시고, 류 탐정은 사무실에서 나랑 할 이야기가 있잖아. 어서 들어가세."

 신 경위는 서둘러 그 대화를 마무리 짓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에 류 탐정의 등을 떠밀면서 양 마담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네. 그럼. 전 이만……. 아, 그리고 류 탐정님 좀 있다가 시간 되시면 다방에 들려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꼭이요."

 양 마담은 신 경위의 매정한 태도에 골이 났는지 파출소 마당을 나서면서 신 경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류 탐정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류 탐정이 생각하기에도 아침에 만난 그녀가 다시 자신을 보자고 하는 이유는 뻔했다. 그러나 의뢰인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알았노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양 마담은 류 탐정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뒤돌아 자신의 다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마주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삐딱삐딱 리듬감 있게 튕겨지는 그녀의 골반과 바디라인이 고스란히 두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냥 몸에 밴 자연스러운 발걸음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워킹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에 대한 부담을 벗어난 두 남자에게는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내밀한 후끈함을 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신 경위는 양 마담이 도로를 건너 다방 입구로 들어가는 것까지 꼼꼼히 챙겨 본 후, 여전히 다방 입구로 시선이 향한 류 탐정에게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 정신이 있는 거야? 내가 안 막아 섰으면 내가 말한 연쇄살인에 대해 그대로 이야기 하려고 했지? 왜 이렇게 경솔해?"

 "그....... 그게 아니고......."

 "아니, 되었어. 뭐 일단 내가 막았으니....... 아까 사건 현장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번 사건은 비밀리에 조사를 해야 해. 괜한 오해와 억측 때문에 전체 그림을 망칠 수가 있어. 정말 말조심해. 특히 다방에 가서 그 이야기는 절대 꺼내서는 안 돼. 물론 양 마담이 불쌍하고 측은하긴 하겠지. 그리고 그 사건을 자네가 위임 받았으니 책임감도 크겠지. 하지만 연쇄살인은 아직 나와 자네만의 가정일 뿐이야. 이 사건이 정말 완전무결하게 사실로 확인된 이후에 이야기를 오픈해야 해.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니 꼭 명심하라고."

 신 경위는 한껏 찌푸린 얼굴로 혹시 류 탐정이 양 마담에게 자신들이 나눈 이야기를 꺼낼까봐 일대 장광설과 함께 신신당부를 했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신 경위는 류 탐정이 그러겠노라는 대답을 하자, 눈빛으로 다시 한 번 무언의 다짐을 요구했다. 그에 류 탐정이 고개를 끄덕여 재차 확인을 해 주자 표정을 누그러트리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신중하자고. 내 촉이 절대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괜히 설익은 밥솥의 뚜껑을 열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돼. 하지만 정말 확정적인 물증이 나오면 그때, 자네와 내가 함께 이 사건을 세상에 공표하는 거야.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특종을 발표하는 거지. 알겠어?"

 신 경위의 이야기를 들은 류 탐정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는 틀림없이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비록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과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정의가 실현된다면 참아 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었다. 양 마담에게 괜한 이야기를 해 봐야 그녀만 더 힘들어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의를 위해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자, 그럼 들어가세.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만나 볼 사람이 있어. 대신 자네는 내가 조사하는 옆방에서 조용히 듣기만 해. 자네는 지금 경찰 신분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것 이해하지? 대신에 이야기를 듣다가 나한테 할 이야기나 상대에게 물어 볼 것이 있다면 문자로 보내 주게. 내가 대신 물어볼 테니. 오케이?"

 "네. 그런데 조사할 사람이 누군가요?"

 "응. 사망자의 부인."

 "네? 그럼 문방구 여주인?"

 류 탐정은 자신에게 차가운 옥수수차를 건네던 그녀의 끈적끈적한 눈빛이 생각났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김정구가 문방구 주인이라는 거?"

 신 경위는 그가 피해자의 부인에 대해 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그게 어제 사건 조사 차 문방구에 김정구 씨를 만나러 갔었거든요."

 류 탐정은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내가 그리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했건만, 참 자네도 집요해. 그래서 김정구를 만났나?"

 신 경위는 류 탐정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아닙니다.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의 부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정구가 갑자기 집에서 허둥지둥 도망친 일이 있었지만, 혹시나 괜한 오해나 억측을 살까 봐 그냥 간략하게 당시 상황을 요약해서 대답했다.

 "남편도 없는 집에서 유부녀와 대화라....... 자네도 참 대단허이."

 이제는 비웃음인지, 아니면 부러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표정의 신 경위가 그의 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사에 도움이 될까싶어서 잠시 질문을 한 것뿐입니다. 전혀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의 눈빛을 가까스로 회피한 류 탐정이 다시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허여멀건 녀석이 뭐가 좋다고, 이런 촌구석의 여자들은 참 샌님스타일을 좋아해. 정말......."

 신 경위는 류 탐정을 면전에 세워둔 걸 잊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류 탐정의 외모에 대해 비방을 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허. 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어. 미안허이. 자네를 비난하는 건 아니야. 내 마음 알지?"

 "아. 네."

 류 탐정은 습관적으로 괜찮다는 대답을 했지만, 신 경위의 자신에 대한 그의 속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묵은 감정은 접어두고 사건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늘 사망 사건의 피해자 김정구를 만나러 문방구에 들렀을 때, 김정구가 집에 있다가 류 탐정이 자신을 잡으러 온 빚쟁이인줄 알고 도망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어쩌면 류 탐정이 본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단 하루 만에 썩을 대로 썩어서 발견된 사체. 틀림없이 그의 사체는 썩고, 문드러지고, 온통 푸른곰팡이에 뒤덮여 있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일이라고 류 탐정은 생각했다.

 "어허. 또 넋을 놓고 있을 텐가? 이러고 있을 틈이 없어. 사건조사는 신속함이 생명인 거 몰라? 어서 들어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으로 그 상황에 대해 계속 골똘하고 있던 그를 신 경위가 파출소 안으로 이끌었다. 파출소 내부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땀이 송골송골 맺힌 류 탐정의 온 몸을 휘감자 순간 소름이 돋으며 부르르 경련이 일었다.

 이빨까지 딱딱거릴 정도의 섬뜩한 기운을 느낀 류 탐정은 정말 이 마을에 자신이 모르는 어떤 저주가 깃든 것이 아닌가하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