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만 정신 차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신 경위가 류 탐정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꺼냈다.

 "네. 말씀하십시오."

 류 탐정은 신 경위의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게......."

 신 경위는 주변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데도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 사건, 연쇄 살인 같아. 아직 경찰의 공식 입장은 아냐. 다만, 내 촉이 그렇다는 거야. 류 탐정도 알지? 내 촉이 대단하다는 거?"

 "아, 네. 네."

 류 탐정은 얼떨결에 그의 질문에 동의했다. 그에게 그런 기억은 없었지만 조건반사처럼 대답이 나왔다. 사실 생각나지 않는 과거의 어디엔가 신 경위의 감각이 돋보인 경우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 역시 도랑의 끔찍한 시신을 보고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 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쇄 살인.'

 신 경위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속으로 되뇌자,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건 자체가 주는 위압감과 그 말이 내포한 의미가 그의 뇌하수체에 호르몬 펌프질을 하게 했다. 

 ‘연쇄 살인, 연속된 살인.’

 그것은 지금 사건이 자신이 수임한 ‘김철규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 경위가 갑자기 그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류 탐정은 생각했다.

 신 경위는 단지 젯밥에 더 관심이 있을 뿐, 양 마담 남편의 죽음이 부각되는 것은 원치 않은 상황이었다.

 단지 그녀의 고통해결을 위해 자신은 과거의 유능한 부하였던 탐정까지 불러주는 등 최선을 다했으니, 그의 노력에 양 마담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면, 응당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복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류 탐정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사건을 이리저리 파헤치면서 양 마담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 틈에 그녀에게 찰싹 붙어 온갖 아양을 다 떠는 바람에 자신의 밥그릇이 자꾸 멀어지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 지금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류 탐정의 주장에 어느 정도 배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에게 과분한 친절을 베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이런 '연쇄 살인'이라는 굵직한 사건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자신을 촌구석에서 건져내 줄 튼튼한 동아줄로 보였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인지하고, 주도면밀하게 수사하여 범인을 체포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공이여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을 나눌 필요도 없고, 자신이 다루기에 만만한 류 탐정은 자신을 대신해 사건을 조사해 줄 비선조직으로 운영하기에 안성맞춤인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일전에 나한테 김철규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었지? 그때 내가 불같이 화를 냈지. 그런데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나?"

 "아. 아뇨."

 "이런 눈치 없는 친구를 봤나? 그건 나 역시 뭔가 있겠다 싶어서 비밀리에 혼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걸 자네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 혹시나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조사에 차질이 생길까봐 그랬던 거야.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 일도 사과할 겸, 자네 의견도 들어볼 겸해서 슈퍼주인 강 씨를 통해 자네를 불렀어. 알겠지?"

 불과 며칠 전 류 탐정의 과거까지 들먹이며 한껏 짓이겨놓던 신 경위가 은근슬쩍 그가 차려놓은 밥상 위에 수저를 얹었다.

 “네. 그러셨군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탐정은 그의 밉살스러운 행동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수긍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사건을 개기로 그의 조사에 신 경위의 조력을 일부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신 경위에게는 김철규 사망 사건이 살인이든, 사고든 중요치 않았다. 괜히 자신과 같이 한솥밥을 먹는 다른 경찰조직에 의해 결론 내린 사건에 사실을 뒤집을 확증이 없는 한 섣불리 나섰다가 정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령 그들이 조사과정에 다소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놓고 폄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역시 과거 많은 실수와 그 실수로 인해 철밥통이 위태한 경험이 있었고, 그런 상황을 서로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진정한 동업자 정신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신 경위 자신이 누군가의 투서에 의해 비위가 까발려지게 되었고, 결국 서울 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신도라는 촌구석으로 좌천된 것 또한 조직의 생리에 반하는 누군가의 소행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특히 김철규 사망 사건과 같이 내사 종결된 사건은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실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생색을 내기에 적합한 인물로 류 탐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사건에 과거 진돗개라는 별명 만큼이나 집요했던 류정직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신에게 대들뻔 한 것도 있지만, 양 마담의 부탁으로 살펴 본 그녀의 시체사진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농수로에 쳐박힌 시체가 사람만 다를 뿐, 틀림없이 같은 방법과 의도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설프게 증거도 없이 다른 동업자의 결론에 토를 달았다가는 조직에서 미운 털만 박힐 것이 자명하겠지만, 서로 동떨어진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졌음에도 너무나도 닮아있는 두 사건은 틀림없이 잘 엮으면 반드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까지 마친 그였다.

 "내 촉은 확실히 같은 녀석이 저지른 연쇄살인이야. 그래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도 있듯이 자네에게 확인하고 싶었어. 자네는 나와 한솥밥을 먹은 동지잖아? 안 그래?"

 "네. 맞습니다. 선배님."

 류 탐정은 우쭐대며 그의 동의를 기다리는 신 경위에게 그가 좋아하는 친근한 호칭과 함께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나도 자네가 수임한 사건은 사진으로만 봤거든. 그런데 이건 무슨 쌍둥이도 아니고,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없었어. 그 포즈하며, 썩어 문드러진 살 위에 시퍼렇게 덮은 이끼 같은 거 하며......."

 '쌍둥이.'

 신 경위의 입에서 나온 용어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쌍둥이지만 생긴 모습만 같을 뿐, 전혀 반대의 성격과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겨우 탐정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자신과 그 깊고 음침한 정신병원이라는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자신의 반쪽 존재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지금 처한 상황의 격차는 크지만, 계속 실수하고, 실패를 하는 자신의 모습은 병원에서 멍 때리고 있을 녀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식이라면 그 역시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었다.

 "어이. 류 탐정. 또 뭐에 꽂힌 거야? 다른 단서라도 찾은 거야?"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의 류 탐정을 어깨로 툭 치면서 신 경위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단지 김철규 씨 사망 사건 자료에 대해 다시 한 번 복기해 보았습니다."

 류 탐정은 생각지도 않은 신 경위의 스킨십에 움찔하면서 하지도 않은 생각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역시! 그래. 난 자네 이런 면이 정말 마음에 들어. 옛날에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확인하고 그랬지. 왠지 이전의 자네가 가졌던 본능이 깨어나는 것 같은데? 하하하."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서늘하게 류 탐정을 훑어보고 있었다.

 "자, 그럼. 여기 볼일은 이만하면 되었으니 이제 사무실로 가세."

 "아, 네. 알겠습니다."

 류 탐정은 신 경위의 재촉에 못 이겨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가 이끄는 대로 경찰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에에에엥!"

 신 경위는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이목이라도 끌려는 듯이 싸이렌을 한껏 울리고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건 현장을 빠져 나갔다. 그 먼지 사이로 얼핏 강 씨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자욱한 먼지 사이로 사라졌다.

 아스팔트로 올라선 경찰차는 싸이렌이 움찔거리는 차량을 앞지르며 삼거리를 지나 파출소 앞에 다다랐다. 마침 그린 다방 입구로 양 마담이 나타났다.

 파출소로 들어서는 경찰차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에 반응한 것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 본 신 경위의 입이 씰룩 움직였다. 류 탐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되레 위축되어 조수석 시트로 몸을 파묻었다.

 파출소 앞마당으로 들어선 경찰차가 정차하자 싸이렌 소리도 끊어졌다. 그리고 잠시 고요한 공백이 이어진 후, 자그락거리는 자갈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양 마담이 경찰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