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 전 쯤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서울에서 신도로 온 김선영이라고 합니다.”

 선영은 노부부의 이야기 이전에 한 자기 소개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녀가 더 이야기를 하지 않자, 할머니가 재촉하고 나섰다.

 “그 이야기는 아까 한 이야기잖아.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할 참이야?”

 “너무 그러지 마. 그러면 긴장해서 더 이야기를 못할 것 아냐? 조금 기다려 보자고.”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선영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에 할머니가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순간, 선영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가 뭔가 숨기거나, 이야기를 꾸미려고 이야기에 뜸을 들이는 건 아니에요.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할지 몰라서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겠네요. 일단 두서는 없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릴 테니 이해해 주세요. 뭔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가 황당하고, 비현실적일지도 모르지만 저한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심각한 일이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그럼 시작할게요.”

 선영을 향해 두 노부부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가 10년 전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이곳에 온 이유는 제가 계속해서 꾸는 악몽 때문이에요.”

 “악몽?”

 선영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할머니의 반문이 이어졌다.

 “네. 겨우 악몽 때문에 먼 이곳 신도까지 오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고생을 하나 싶으시겠지만, 분명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 악몽 때문이에요.”

 “흠........”

 이번에는 할아버지도 뭔가 께름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콧숨을 내쉬었다.

 “그 꿈은 어떤 마을에 관한 꿈이었는데, 작은 마을이 보이고, 마을로 이어진 긴 신작로가 보이고, 온통 하얀 눈이 가득한 무척이나 평화로운 꿈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꿈에 눈 밟는 소리와 추운 한기가 느껴지는 기분이 나빠지는 악몽으로 변했어요. 가위에 눌린 듯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로 밤새 시달렸어요. 물론 중학생이 된 후로 어느 정도 극복은 했지만요.”

 “그런 꿈이야. 다들 어릴 때 하나 씩 있지 않나? 나도 어릴 적에 그런 꿈이 있었지.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선영의 악몽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네. 저도 그러다 말았다면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그 꿈을 꾼 날에는 보여서는 안 될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귀신이라도 보였다는 겐가?”

 할머니의 삐딱한 의도가 바로 내뱉어졌다.

 “네. 귀신이 보였어요.”

 “뭐?”

 선영의 성실한 대답에 두 노부부가 놀라서 대답했다.

 “안 믿기실지 모르지만 정말 보였어요. 그래서 그 꿈을 꾼 날은 여느 때와 달리 조심해야만 했어요.”

 “그런........”

 두 노부부는 도저히 선영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시겠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황당하더라도 다 들어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귀신만 보이는 거야 문제라고 할 순 없죠. 문제는 그것들이 저에게 덤벼든다는 거예요. 저의 눈에 자기들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조건 저를 공격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것들이 보였지만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꿈이 올해 들어 더 끔찍해졌어요. 올해 새로 꾼 꿈에 이상한 굉음과 함께 신작로에 검은 두 줄기의 선이 그어졌고, 그 전까지는 쉽게 벗어났던 악몽이었는데 제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그날 눈에 보인 귀신은 이전에 보던 그 모습이 아니었어요.”

 “뭐가 어떻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선영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전에는 뿌연 형태만 겨우 보였는데, 그 꿈 이후로는 뚜렷하게 그 모습이 보였어요. 특히 사고를 당한 그것들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어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꿈을 꾼 날만 그것들이 보였는데, 그 이후에는 꿈을 꾸지 않은 날에도 계속 그것들이 보여요. 지금까지 계속.......”

 “좋아. 학생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긴 해. 그런데 그 꿈과 잃어버린 과거와 여기 신도는 어떤 관련이 있지?”

 할머니는 선영의 이야기를 부정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이야기를 끊고 퉁명스럽게 질문했다.

 “그 꿈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10년 전 잃어버린 기억이고, 그 장소가 바로 여기 신도에요.”

 선영은 막힘없이 할머니의 질문에 대답했다.

 “10년 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며? 그리고 그 곳이 여기 신도인 것은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선영에게 질문을 했다. 그 역시 그녀의 이야기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 한 학생이 전학을 왔어요. 소희라고....... 그 친구가 꿈에 등장하는 곳을 찾아 귀신과 연결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 친구가 약간의 예지력 같은 게 있었거든요.”

 “예지력? 보혈파 성녀가 쓴다는 그 능력이구먼. 개나 소나 다 예지력이라니 쯧.......”

 할머니가 선영의 이야기에 토를 달고 나섰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선영은 가슴이 뜨끔했다. 소희의 말만 듣고 보혈파의 근원인 신도로 온 자신의 판단이 너무 아팠던 것이다. 기도회에서 민주와 경도만 보였고, 소희를 보지 못하였지만 모든 일의 뒤에 소희가 있을 것이란 의심을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 신도가 악몽 속의 장소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생각에 골똘한 선영을 할머니의 질문이 깨어나게 했다.

 “그것은 엄마에게 제 꿈 이야기를 했는데 밤에 부모님이 신도라는 곳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엿듣고 알았어요. 그리고 2005년도에 원주시 신도면에서 있었던 ‘보혈파 집단 사망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을 떠올리자 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꿈속의 장면이 펼쳐졌어요. 생생하게....... 그래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이곳 신도로 오게 되었어요.”

 “흠.......”

 할머니는 선영의 이야기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양새였다. 그 옆에서 할아버지는 잠자코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뭐.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따박따박 잘 대답하는군. 그럼 신도에 와서는 어디서 지냈어? 거기 무슨 여관이나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의 질문공습이 이어졌다.

 “네. 저는 신도에서 영월 쪽으로 좀 가다가 있는 소희의 별장에 있었어요. 거기서 계속 있으면서 신도에 과거의 기억을 찾으러 나갔고요.”

 “이 근처에 별장이야 몇 군데 있지. 거기 주소나 뭐 기억나는 것 없어?”

 할머니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저도 며칠 안 있어서 주소는 모르겠고요. 별장 위쪽에 오래된 방공호 비슷한 게 있다고 했고, 그 옆에 옛날 기도원이.......”

 이야기를 하던 선영의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 기도원이 어쩌면 자신이 갇혀있던 그 기도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응? 그 별장이라면 혹시 여기 반대 능선에 있는 보혈파의 별장 이야기 하는 거 아냐?”

 선영의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녀의 추론을 더욱 확실하게 했다. 또한 보혈파의 별장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소희의 별장으로 알았던 그곳이 바로 보혈파의 별장이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그랬지. 그런데 그 이후에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어. 그 별장도 내가 이 땅의 주인일 때는 없었는데 사람들의 피를 빨아서 모은 돈으로 지은 거야. 쯧.”

 할머니는 보혈파를 떠올리자 화가 치미는지 혀를 찼다.

 “그런데 학생. 거기 별장에서 있다가 저 위의 기도원에는 왜 갇힌 거야?”

 할아버지가 측은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도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소희라는 친구와 몸싸움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두운 골방이었어요.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계단을 올라오니 보혈파의 예배인지, 기도회인지가 열리고 있었고요. 그래서 도망을 치려다가 저를 가르치시던 과외선생님의 귀신과 마주치게 되었고, 그 귀신에 쫓겨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요.”

 “이런........”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영의 고생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직 의심이 남아있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과외선생님의 귀신이라니 또 생뚱맞구먼. 과외선생의 귀신이 왜 거기에 나타나누?”

 “그것이........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그 선생님은 저와 친구들의 입시를 도와주러 내려오셨다가 며칠 전에....... 그러니까 제가 감금되기 직전에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더 과외를 못하신다고 하고 이곳을 떠나셨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 앞에 옆구리에 칼에 크게 찔린 듯한 상처를 가진 귀신으로 나타나셨어요. 왜 그렇게 되셨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선영도 쫓길 때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과외선생이 왜 거기서 귀신이 되어 나타났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상처로 미루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라 다른 답변에 비해 대답이 어눌했다. 선영은 혹시 그 점을 빌미로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불신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할머니의 반응은 의외였다.

 “또 누군가를 보혈의 증인으로 만들었구먼. 이런 천벌을 받을 종자들! 또다시 그 짐승만도 못한 짓을 시작한 게야.”

 할머니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할머니 옆에 있던 할아버지 역시 결연한 눈빛으로 그녀의 일갈에 동조했다. 갑작스러운 노부부의 태도에 놀란 선영에게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