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이제 도망 못 간다. 죗값을 치러야지.”

 

웃기다는 듯 대형은 코웃음을 쳤다.

 

“죄? 이 땅에 그런 게 아직도 남아 있었나? 당신이나 우리나 다른 사람들 모두 서로 죽여왔을 텐데.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고. 안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그게 자신의 영역에 해당되면 말이 달라지지. 생존을 위해 죽이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고 자기 영역을 뺏기지 않고 줄어들지 않기 위함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룹을 만들고 단체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지. 헌데 그건 미래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 이제는 아니야. 왜냐, 태어나는 건 없고, 남은 것들뿐이니까. 그래서 이제는 시야를 좁힐 수밖에 없는 거야. 내 작은 터전, 내 바로 옆 사람. 그리고 나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제는 그것을 건드리는 게 가장 큰 죄가 됐다는 거지.”

 

집주인은 갑자기 많은 말을 해서인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너희는 내 영역을 침범했다. 이제 납득이 되나?”

 

대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땅에는 이제는 규율 같은 건 없어. 없다고. 왜 그렇게 기준을 만들려고 아득바득하는 거지? 자신의 행동에 합리화하기 위해? 우린 이미 벌을 받고 있다고.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며 무너지는… 서로 죽이고 죽이다가 결국에 누군가의 돌에 맞아 죽으면 그게 죗값을 치르는 거라고. 같잖은 소리 작작해. 인간이기를 유지하지 말란 말이야. 다 사라졌으니까.”

 

“벌을 받고 있다….”

 

차 너머의 남자는 그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형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하게 기수에게 말했다.

 

“이번에 네가 날 좀 믿어줘야겠다.”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을 저 사람한테 던지고 소리 지르면서 옆으로 뛰어. 총에 안 맞게 조심하고. 알았지? 시선을 좀 끌어 줘. 잠깐이면 돼.”

 

모래를 짓이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가 죗값을 치룰 기회를 주지.”

 

목 밑까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실수는 곧 개죽음이었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그는 손가락을 기수 앞에 보여주며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다섯…셋, 하나.

 

차 위로 몸을 올리는 것과 동시에 기수는 가방을 사내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옆으로 뛰기 시작했다.

 

“……!”

 

순간적으로 시야를 방해받은 사내는 뛰는 발자국 소리와 질러대는 소리에 총구를 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때 대형은 혁대에 고정시켜놨던 단도를 뽑음과 동시에 일어나며 사내에게 던졌다.

 

그리고 총을 든 사내도 그의 모습에 다시 총구를 대형에게 옮겼다.

다시 한번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몸을 날려 굴렸던 기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상황을 파악했다.

대형의 바로 옆으로 차 윗부분에 총알이 지나간 자리가 보였다.

 

사내는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목에 박힌 단도 주변으로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그것을 잡고 버티며 어쩔 줄 몰라 한 채 떨어진 총을 줍기 위해 팔을 휘둘러댔다. 

 

“꺽…꺽.”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는 가슴을 후벼 팠다.

헐떡이며 경련을 일으키는 사내는 고통스러운 것인지, 분노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지나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전부 피로 물들이고서야 사내는 움직임을 멈췄다.

 

시커먼 바람이 날아 들어왔다.

한 방울씩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려는 가랑비는 피비린내와 섞여 그들을 같이 감쌌다.

풀린 긴장에 기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대형은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지 숨을 계속 헐떡였다.

 

그는 천천히 쓰러진 사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앞까지 온 그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박힌 단도를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사내의 살에 칼을 박고는 잘라내기 시작했다.

 

죽은 시체 앞에서 뒷모습을 보인 채 무언가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기수는 힘을 짜내 힘겹게 일어서며 다가갔다.

 

“야 이 새끼야. 뭐 하는 거야!”

 

기수는 그의 팔을 잡은 채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에게 소리쳤다.

대형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팔을 뿌리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 모습에 기수는 대형을 거칠게 밀쳐내었다.

 

“미쳤어? 정신 나간 거야?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물기 없이 새어 나오는 그의 말투는 너무나도 덤덤해 당연하다는 듯이 느껴졌다.

 

“먹을 거… 구하잖아.”

 

“왜…이러는 거냐고. 정신차려... 제발.”

 

“난 멀쩡해. 괜찮아. 우리 지금 지쳤잖아. 먹을 건 없고 주변엔 도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마지막을 강조하는 그의 말투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되잖아. 거기서 구하면 되는 거잖아!”

 

대형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보장은 없어. 너도 알잖아. 그따위 것들로 이제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어. 갈수록 적어진다고. 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 이럴 수밖에는….”

 

“닥쳐. 그건 변명이야. 벌써 놔버린 거야?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될 거냐고.”

 

그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이미 똑같아, 모두다. 아닌척 하는 거지. 더 이상은 무의미해. 이제 그만 인정하자 기수야.”

 

기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비틀대며 쓰러진 그를 향해서 기수는 주먹을 말아쥐며 다가갔다.

 

“헛소리 작작해. 우린 괴물이 되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는 터진 입술로 새어 나오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었다.

 

“절대란 건 없어.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먹자고 할 때 처먹으란 말이야!”

 

“그만하라고, 이 미친 새끼야.”

 

흥분한 그는 쓰러진 채로 있는 대형에게 달려들었다.

 

“……넌 이제 혼자니까.”

 

“뭐?”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 그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이제 넌 혼자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 정도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해야 한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혼자 남는다니?”

 

“미안해.”

 

울어대던 하늘에서 내리던 가랑비는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