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기억이 나네요. 맹수의 누나. 그 당시에도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면 자청해서 아이들을 돌봤어요.”

 양 마담은 담담한 목소리로 류 탐정에게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혹시 그 아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없는지요?”

 류 탐정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뭐. 말수가 적고,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었고, 동생도 좀 그랬고, 아버지인 이춘식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어서 가족들과 지내기보다는 친구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네요.”

 비교적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지 양 마담은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네. 그럼 혹시 그 아이와 친하던 친구들도 기억나시는지요?” 류 탐정은 강만수에게서 획득한 정보에서 비교적 부실했던 흰 피부의 아이와 맹수의 누나. 그리고 선영이일지도 모르는 다른 한 아이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양 마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류 탐정의 눈을 응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예. 대략적으로 기억은 나요. 그런데 죄송한데 제가 탐정님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양 마담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로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되레 류 탐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류 탐정은 그녀의 질문과 눈빛에 밥상까지 힘들게 차려 주었는데 자신의 실수로 분위기를 망쳐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그녀에게 생뚱맞게 질문을 시작한 이 상황에 대한 원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자신이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어도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 네. 말씀하시지요. 어떤 설명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궁금한 것만 여쭤봤네요. 죄송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질문은 그 이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뇨. 그러실 일은 아니에요. 그냥 궁금한 게 생각나서 그런 거예요. 저야말로 언제든지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물어 봐 주세요. 탐정님 조사하시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네요.”

 양 마담은 류 탐정의 사과에 부산하게 손 사레를 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갑자기 왜 그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 보시는가 하는 거예요. 이춘식 씨야 제 남편이 속했던 파수대 대장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 아이들 이야기가 탐정님 조사에 도움이 되나하는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부탁드리긴 했는데, 너무 먼 사람들까지 조사하시느라 고생이신 것 같아서요. 아니면 혹시 그 아이들이 남편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류 탐정은 양 마담의 이야기에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사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질문은 김철규 사망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자신이 사망현장을 조사하러 갔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와 선영이 다시 그 자리에 섰을 때 보았던 하얀 피부의 소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물론 그 소녀의 환영이 김철규의 사망 장소에서 여러 번 나타난 것은 불가사이한 일이긴 했지만, 그것을 양 마담에게 이유로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소녀가 죽음을 당했다면 엄청난 일이겠지만, 그 역시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특히 김철규의 사망과 연관 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양 마담의 질문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때, 자신이 그 질문을 한 이유와 그 이유를 그녀에게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선영이었다. 자신이 강만수에 이어 양 마담에게까지 물어 보고 싶었던 것은 10여전 전의 그때 그곳에 있었을지도 모를 선영의 존재여부였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진짜로 숨기고 싶은 것이 선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었다.

 자신이 의뢰받은 사건의 해결에 무엇보다 매진해야 할 탐정이 자신의 사적 목적인, 선영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양 마담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이실직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핑계를 찾아야만 했다.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밥을 차려주고, 자신의 허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 여자에게 비록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지만 다른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류 탐정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주저했다. 결국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던 양 마담이 엷은 미소와 함께 먼저 말을 꺼냈다.

 “사건해결을 위해 아직은 비밀을 지켜야 하는 내용인가요? 그렇다면 저한테 이야기 안 하셔도 되요. 저는 그저 탐정님이 힘드실까봐 말씀 드린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가 도리어 류 탐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가책이 느껴졌다. 비록 화류계를 업으로 삼고 있는 그녀였지만, 류 탐정에게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아, 아닙니다. 비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 다만 의뢰인께서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가급적 다양한 시각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그 질문을 드린 겁니다. 그래야 전체적인 사건을 추리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아직은 초보 탐정이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류 탐정은 선의의 거짓말을 그녀에게 전했다. 자신의 변명 또한 자신의 현재 상황과 같이 궁색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에 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녀가 생각하는 범주 내에서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초보라니요. 제가 볼 때는 정말 열정적이시고, 유능한 탐정님이세요. 괜한 말씀 마세요. 호호호.”

 양 마담의 그에 대한 신뢰가 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아니면 자신의 남편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류 탐정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친 찬사와 기대였다.

 류 탐정은 그렇다고 다시 그 부분에 대해 맞느니, 틀리느니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에 대한 양 마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만 했다.

 “말씀하신대로 그 소녀에 대한 부분은 당장의 조사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좀 더 직접적인 조사를 진행한 후에 보강이 필요하면 그때 다시 여쭤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모로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그는 일단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양 마담과의 대면에서는 항상 자신의 바보스러움이 더 부각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더 있어봐야 또 다른 일이 발생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아직 제대로 밥 한 술 못 뜨신 것 같은데요. 마저 식사는 하고 가시죠?”

 양 마담은 떠나려는 류 탐정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녀의 만류에 류 탐정의 생각은 또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양 마담에게 말했다.

 “그러고 싶은데 창고 방에 휴대폰을 놓고 온 것 같아서요. 중요한 연락이 올 곳이 있어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 탐정은 주머니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휴대폰의 핑계를 댔다.

 “그러세요? 그럼 다음에 정식으로 식사 대접할 기회를 한 번 주세요. 오늘 저도 제대로 대접할 만한 것이 없어서 죄송했거든요. 어때요?”

 “네. 알겠습니다. 저도 오늘 실례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양 마담의 이야기가 부담되긴 했지만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류 탐정은 그녀의 요청에 응했다.

 “죄송할 것 하나 없어요. 무리하게 식사를 차려온 제 잘못도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좀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하도록 해요. 호호호.”

 양 마담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드려지자 특유의 웃음과 함께 류 탐정을 놓아 주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류 탐정은 길고긴 양 마담과의 어색한 아침 식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인사를 했다.

 “네. 그럼 제가 연락드릴게요. 살펴 가세요.”

 양 마담도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류 탐정은 다시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 다방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 때, 그의 뒤에서 양 마담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만약 맹수의 누나가 살아있다면, 지난 번 보육원 앞에서 본 그 여고생 정도 나이가 되었겠네요. 아마 고3?”

 양 마담의 이야기가 다방을 나서려던 류 탐정의 무릎을 관통하는 바람에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의 말이 선영을 의식하고 한 말인지, 아니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한 것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네....... 그렇군요. 가....... 감사합니다.”

 류 탐정은 어떤 이유이든 일단 그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냥 있다가는 자신이 간직한 비밀과 속내를 다 들켜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최대한 빠르지만, 최대한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으로 입구에 자리 잡은 어항 앞을 지나갈 때였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전화 벨소리가 사람도 없는 텅 빈 다방 안에 울려 퍼졌다. 류 탐정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소리였다. 그는 허겁지겁 전화기의 벨소리를 끄기 위해 주머니 속을 헤집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에게는 물론, 그녀에게 충분히 들린 후였다.

 류 탐정은 도저히 뒤를 돌아 양 마담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황급히 다방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딸랑!’

 그에게 방울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들렸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슈퍼 주인 강 씨의 전화였다. 컴컴한 복도를 뛰다시피 올라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류 탐정?”

 그에게 강 씨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쏟아내려던 그 순간,

 “문구사 주인. 정구가 죽었데.”

 류 탐정은 강 씨의 이야기에 복도 계단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네?”

 그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강 씨가 한 이야기가 사실인지 되물었다.

 “만수가 알려준 그 파수대였다는 친구 있잖아. 그 녀석이 시체로 발견되었데. 어제 우리가 만수 만나러 왔다 갔다 했던 그 도로 가 도랑에서....... 지금 파출소 직원들 다 나왔고, 사람들 몰려서 난리야. 빨리 와.”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류 탐정이 다방에서 사적인 고민에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살인 또는 사망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류 탐정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히 다방 안으로 돌아가 양 마담에게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신속하게 사건 현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결코 양 마담에게 사과할 면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며 다방을 나와 일단 삼거리로 내달렸다.

 류 탐정이 그 자리를 벗어나느라 급급해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가 떠난 다방 지하 복도 끝에는 양 마담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둠에 가려져 얼굴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어깨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