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오해해버려서 미안하다. 축구밖에 모르는 녀석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이것저것 다 하긴 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미드필더야”

 

 

전해지진 않겠지만 나름대로 사과의 뜻을 담아서 착실하게 물음에 답해주었다. 찬용이는 축구소재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지 신이 나서 계속 물었다.

 

 

“공격형? 수비형? 왼쪽? 오른쪽?”

 

 

응? 그런 것도 따지나?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나는 녀석의 질문에 답해주면서 자기소개 하는 여학생들을 지켜봤다. 자기소개 할 때가 아니면 여자애를 이렇게 대놓고 쳐다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 귀중한 시간인 것이다. 음, 쟤는 좀 귀엽군.

 

 

방금 전 교실에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여학생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아까도 잠깐 보았었지만 꽤 귀여운 인상이다. 키는 백육십이 될까 말까 싶고 체중은 많아봐야 오십정도 나갈 것 같다. 딱 봤을때 우와! 예쁘다! 는 느낌은 아니지만 저 정도라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대쉬해볼 남자애들이 많을 것 같은 무난하게 귀여운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들이 고백 받은 경험이 많다보니 눈은 더 높다고 하더라. 뭐 이것도 주워들은 이야기라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름은 이하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특이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꽤 자주 보이는 있는 이름이었다. 하나 두나 세나, 설마 첫째 딸은 아니겠지. 

 

 

이하나는 똑부러지게 자기 소개를 마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체구도 작은 편이었고 조금 전 실수 때문에 덤벙대거나 숫기 없는 편이 아닐까 하고 이미지를 잡았었지만 이렇게 자기소개할 때 말하는 것을 지켜보니 의외로 강단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말도 조리있고 똑 부러지게 잘했다.

 

 

꽤 괜찮네.

 

 

그리 생각하며 잠시 있었더니 자리로 돌아오던 이하나가 내 쪽을 왠지 노려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라? 뭐지? 하고 그쪽을 제대로 쳐다본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이하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음... 기분탓인가... 방금 전 박찬용과의 일도 그렇고 오늘은 왠지 주변 시선을 괜히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았다. 등교 첫날이라 이것저것 예민해진 탓이려나. 

 

 

뭐 나도 조금은 긴장했다는 거겠지 하고 납득해본다. 박찬용과는 계속해서 조그만 목소리로 축구이야길 하고 있었다. 주로 박찬용이 이것저것 물으면 내가 간결하게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자기소개에서 말했듯이 나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얘기 하다 보니 만난지 얼마나 됬다고 슬슬 이 녀석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찬용이가 내 팔을 툭툭 쳤다. 

 

 

“야 저기 봐봐.”

 

 

뭔가 하고 봤더니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아이가 교탁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왔던 그 녀석이었다. 아니 그 여자애 말이다. 

 

 

키와 체구가 조금 전 보았던 이하나라는 여자애보다 조금 더 작은 것 같았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동그랗고 작은 귀 옆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살짝 엿보인다. 모자는 앞이 보일지 의심스러운 상태로 푹 눌러쓴 채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데 선생님이 들어 왓는데 아직도 모자를 안 벗다니 머리를 염색한 것도 그렇고 이것저것 건방져 보인다. 나야 같은 학생이니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앞에 서있는 담임선생님이 버럭하고 화내지 않을까 걱정됬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인것 같았다.

 

 

앞으로 나간 그 여자애가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선생님은 뭔가 이해한다는 얼굴로 덤덤히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모자를 쓰고 등교 하는 건 봐주겠지만 교실에서는 모자를 벗어라”

 

 

그저 그렇게만 말했다. 

 

 

응? 염색은 아무 말 안하나? 이 학교 염색 허용이었던가? 하고 생각하는데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 그 여자애가 모자를 벗었다. 

 

 

어떻게 그 작은 모자 안에 다 숨겨져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연한 금발의 머리카락이 소녀의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모자챙에 가려져있던 커다란 호박색 눈동자가 보인다. 분을 칠한 것과 같이 하얀 얼굴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소녀의 여리여리한 체형과 맞물려 마치 요정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소녀는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기며 간단히 정돈하고서 앉아있는 반 아이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리샤(Richart) 라이엔(rien)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외국인이었나... 아니 우리말이 유창할걸 보니 혼혈인가? 아무튼 나는 요정과도 같은 그 가녀린 외모에 감탄했다. 앞자리 어디선가 본심을 숨기지 못한 어떤 남학생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소녀는 어디학교를 나왔다느니 무엇을 좋아하느니 라는 부가 설명 없이 잘 부탁한다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당당하게 반을 한번 훑어보고는 교탁에서 물러났다.

 

 

너무 새침하다. 집은 어디인지 폰 번호는 어떻게 되는지 현재 남자친구는 있는지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은 어떤지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는가?

 

 

물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농담이다. 내겐 저런 질문을 할 용기도 없거니와 설령 대답해준다 하더라도 고백할 용기는 더더욱 없다. 이미 박살난지 오래다.

 

 

그러니 생각은 마음속으로만 하고 그저 눈앞에 있는 빛나는 보석을 구경할 뿐이다.

 

 

자리로 돌아오던 소녀는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마주 바라보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앉아서 앞을 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변명도 준비되어있었고. 지금 그 소녀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도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나는 앞자리에서 몸을 180도 돌려서 계속 쳐다보고 있는 저 남자들보다는 덜 뻔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눈을 떼기가 싫었다. 세상이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린지도 오래되었고 티비만 틀어도 심심찮게 외국인이 나온다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게 된 금발 미소녀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더욱 컷다.

 

 

마치 까마귀가 처음으로 빛나는 물건을 보게 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에 새겨진 것처럼 금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동안 수없이 보았던 검은 머리색과 다른 소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인우월주의에 빠지는 거구나 하는 엉뚱한 깨달음마저 들 정도였다.

 

 

음, 그런데 말이다. 나야 단순히 앞을 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핑계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왜 얘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을까?

 

 

멀리있을 땐 빛나는 보석을 마음놓고 구경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소녀는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시...심장에 좋지 않다! 뭐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혹시 입가에 침이라도 흐른건가? 손을 올려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 행동자체가 너를 보고 있었다는 반증이 되는 것 같아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휴 짧지만 길었던 순간이 지나가고 소녀는 내 옆을 지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왠지 내 옆을 지날 때 나를 비웃는 듯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내 착각이겠지.

 

 

안심하기도 잠시 무언가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찬용이의 팔꿈치였다. 

 

 

“야, 방금 지나간 애 네드베드 딸 닮지 않았냐?”

 

 

 

p.s

 

 

 

리샤 라이엔: 평범한 인간에게는 흥미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저에게로 오십시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