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인가? -

 ‘알려드립니다. 지금 현재 무단 침입자가 건물 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중입니다. 건물 내에 계신 분들은 진정하고 안내 상황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경비병들은 빨리 움직여! 지금 당장 목표를 제거해야 한다.”

 “네!”

 소란스러운 건물 안, 황급히 어디론가 도망가는 사람들. 자세히 보면 그들은 전부 여자다.

 그 도망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경비병들이 복도를 봉쇄하였다. 이들은 전부 남자다.

 경비병들은 복도 건너편에서 튀어나올 게 뭔지 긴장하며 잠시 동안 침묵을 버텼다.

 얼마나 기다렸을지 감도 안 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복도 맨 앞 쪽의 전등이 꺼졌다. 그리고 뒤이어 차례대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불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은 차분히 고글을 얼굴에 썼다. 야시경이었다. 그들의 시야에는 어둠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그들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재빨리 총을 장전하고 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빛이 확 퍼지더니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정신이 나간 채 총을 무작정 난사해대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총소리들만이 커다랗게 들릴 뿐이었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명이 경비들에게 고함을 쳤다.

 “그만, 그만! 사격 중지!”

 고함을 들은 경비들은 사격을 중지했다. 마지막으로 나간 총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지며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오로지 정적뿐이었다.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고 뒤이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고 있었다. 경비대장은 고글을 벗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보려 했다.

 경비대장은 라이트를 켜고 뒤의 경비들에게 손짓을 하여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들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불빛에만 의지하며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두려움에 맞서 서서히 앞에 있을 무언가를 살피러 갔다.

 마침내 목표물의 끝에 다다랐다. 경비들은 복도 한가운데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경비대장은 조심스레 총구를 그 물체에 가까이 대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물체에서 무언가 우수수 떨어졌다. 핫팩이었다.

 “함정이다!”

 이 말을 미처 다른 경비들이 듣기도 전에 한 명의 경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진 경비는 피를 철철 흘렀다.

 뒤이어 다른 경비들도 어둠에서 튀어나온 사람 형체에 의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경비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나갔다. 어떤 경비는 팔이 잘렸고 또 어떤 경비는 목이 잘렸다.

 이런 혼비백산 속에서 경비대장은 목표를 찾으려 했다. 그는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여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대체 누구야? 모습을 드러내. 나오라고!”

 이 말이 끝나자마자 형체는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의 모습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대체 왜? 아니 어떻게 여자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여자라고?”

 그 형체의 주인공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 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구슬 같고 아름다운 여인의 소리였다.

 “내가 누군지 똑똑히 느껴봐.”

 그녀는 경비대장의 손목을 붙들고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가게 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경비대장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곧 더 놀라운 상황이 일어났다. 그녀의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가슴의 형체가 갑자기 굳어지며 딱딱하게 변하더니 단련된 가슴 근육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슴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 전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는 굵고 튼튼하게 변했으며 날씬한 배에는 복근이 뚜렷하게 생기고 키는 전체적으로 더 커지고 어깨는 넓어졌으며 목에는 굵은 목젖이 생겼다.

 ‘설마?’ 경비대장은 문뜩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사이닉(Xynic)?”

 “그래.”

 그녀, 아니 그는 나지막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누가 봐도 그녀는 이제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사이닉이 대체 이런 짓을 왜 벌이는 건가? 경비대장은 두려움과 공포심에 젖은 궁금증에 그에게 질문을 했다.

 “대체 목적이 뭐야?”

 사이닉은 잠시 동안 말을 멈추고 멍하니 바닥을 쳐다봤다. 경비대장은 이때다 싶어 품에서 권총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이닉의 동작은 그보다 더 빨랐다. 사이닉은 재빨리 경비대장을 제압하고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벌이냐고?”

 사이닉은 마침내 대답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사이닉은 단검을 빼들어 경비대장의 목덜미에 갖다 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이닉은 칼을 높게 들어 한 바퀴 휘둘렀다. 칼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놓여진 손전등 불빛에 의해 찬란하게 빛이 났다.

 “복수뿐이야.”

 말을 마친 사이닉은 그대로 경비대장의 목덜미에 칼을 내리꽂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숨결을 내쉬며 그대로 죽어버렸다.

 

 - 여자의 세상 -

 아주 오랜 옛날, 언제부턴가 인류에게 더 이상 남자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전 세계 인구의 70%가 여자였고 그나마 남은 남자들은 전부 늙고 죽어가는 중이었다.

 세상은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술렁이었고 각국 정부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혼비백산하였다.

 사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더 이상 남자들이 없었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던 남자들이 사라지고 나니 그 빈자리는 나머지 절반인 여자들에게 매우 커다란 짐으로 다가왔다.

 남자들이 필요한 자리는 어떻게든 멀지 않은 미래에 해결이 가능하였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인류의 번식이 더 이상 불가능하였다. 자식을 낳아 후손을 남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분명히 인류 전체가 몰살될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태를 해결하는 법이었다.

 가지각색의 방법을 모두 시험해보았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법을 개발하였고 윤리적 문제도 해결하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인간은 창조주의 발끝을 따라가기엔 아직 미미한 존재였다. 자연적으로 번식하는 것보다 복제인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너무 시간과 예산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자가 부족했다. 정자를 생성하기 위해선 Y 염색체가 필요했지만 인공적인 복제로 태어난 아이들은 전부 여자가 되어서 Y 염색체의 수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그렇게 보존하고 있던 Y 염색체가 바닥날 지경이 될 무렵 한 희망이 생겼다. 어느 연구소에서 X 염색체를 Y 염색체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수정란이 성장을 하는 과정 중에 인위적으로 어떤 자극을 가하여 X 염색체를 Y 염색체로 바꾸는 아주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각국 정부들은 이 기술을 도입하여 자국의 여성들에게 이 기술을 위한 난자를 제공해줄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많은 수의 여성들은 이 비인권적인 처사에 반대하였다. 당연한 것이었다.

 정부들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그 중에서 제일 잘 먹히는 방법이 있었다.

 일단 그들은 나라의 한 지역을 개발하여 아주 호화스럽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거기에서 살 수 있는 일종의 티켓을 주었다.

 물론 형평성을 위해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게 하였다. 하지만 구매 방법은 까다롭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락함과 부유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난자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난자들로 만든 수정란은 전부 남자가 되어 나라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술을 거부한 자들은 호화 지역에 가지 못 했다. 그들이 남게 된 지역은 훗날 외부지역이라는 하층민들과 남자들이 사는 구역으로 불리게 되었다.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여자들이 맡기 어렵거나 번거로운 직업들을 맡게 되었다. 남자들은 전부 여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치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후 내가 태어났다.

 

 - 외부지역 -

 나는 외부지역에서 태어난 소녀였다. 나의 아버지는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난자 제공에 반대한 여성의 후손이었다.

 외부지역에서의 삶은 심심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항상 일을 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으러 나섰고 어머니는 먹을 것을 구걸하기 위해 바쁘셨다.

 결국 집이라고 불리는, 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나는 홀로 쓸쓸히 놀았다.

 내가 ‘로봇 씨’라고 부르는 이 찌그러진 깡통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왜냐하면 주변에는 나의 또래만 한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 호화 지역의 여자의 첩이거나 첩이 되길 바라는 인생이었다. 그들은 최대한 비싼 옷과 좋은 몸매, 그리고 잘생긴 얼굴을 만들기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노동을 헐값에 팔았다.

 그들의 눈에는 외부지역 하층민 여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호화 지역에서 부유한 삶을 사는 게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