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물찬 장화를 신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찌걱 거리는 소리와 눅눅해진 양말 너머로 전해져 오는 감촉. 무감각한 나날에조차 반기기 어렵다. 데쥬네 자리에서 은행장에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듣는다. 노동하지 않는 자와 노력하지 않는 자의 알력 관계는 인류의 오래된 관습이다. 유명한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고, 나는 그 이유들을 정리한 두꺼운 이야기들에 대해 듣는다. 그 중에 익숙한 이름과 비슷한 이름, 그리고 알지 못해야할 이름도 듣는다. 은밀한 정보들 사이에 빠끔히 고개를 내민, 익숙함 그 자체가 흥미롭다. 그때의 호박색 눈동자가 떠오른다. 장화의 찰박거림이 오니처럼 가라앉은 옛 기억을 뒤흔든 탓이다. 너는 일족을 잃었고, 곧 너의 종족이 멸종될 순간이었다. 핏물로 잘박거리는 와중에 파란 색은 눈에 잘 띄었다. 일대의 웅덩이는 모두 너의 것이었다.

은행장은 자신의 알려진 나이보다도 오래된 와인을 권한다. 호사가를 위한 명장의 와인, 나는 이 고집통이를 알고 있다. 어리석게도 그는 일평생 찬사를 미래로 유보해왔다. 묘비명 위로 쏟아진 찬사는 이제 그의 자손도 아닌 자의 몫이었다. 은행장은 좋은 포도농장을 갖고 있다. 좋은 목장도 갖고 있다. 아마 곧 생제르맹 거리에 있는 좋은 건물도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굽힐 정도로 타산적이고, 겉모습에 속지 않고 상대의 가치를 섣부르게 평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과실이 익은 후에 수확하는 법이다. 그의 욕망은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고, 통제된 욕망은 승리자의 냄새를 풍긴다. 너의 고고한 세월 동안 너의 날개 없는 사촌들은 그렇게 세상 속을 파고들어왔다. 지금 눈 앞의 뱀은 나를 어떻게 이용할지를 가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뱀은 실로 인간답다. 그리고 망각의 해변에서 오늘도 밀려들어오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늙은이에게 이들을 막을 힘은 없다. 나는 오늘의 파도에도 부서지고 있다.

유익한 자리가 끝나고 거리로 나선다. 뱀의 호의는 언제나 뒤끝이 있기 마련이다. 몇 가지 의문을 묻어둔 채 적당한 핑계를 대고 발 가는대로 걷는다. 네가 없기에 일정은 은행장이 주선한 디네 때까지 비어있다. 걸음에는 목적만 있고 목적지가 없다. 집에는 네가 배어있다. 너의 계절, 가로수 길에서는 라일락이 활짝 피어 있다. 길가의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몇 개 산다. 배가 꺼지기엔 아직 멀었지만, 허기가 끊임없이 몰려온다.

네가 없는 거리에는 오늘도 어리석은 이들이 많다. 그곳은 뺨이 붉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의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궁극적으로 이유가 없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이유 없는 행동의 비효율성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더라도 그들이 역사에서 배우는 일은 드물다. 너와 나는 그들이 역사라 부르는 시절을 살아왔다. 따라서 너의 그런 사랑이 덧없음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언제나 그들보다 어리석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들 사이에서 너를 본다. 나는 네가 왜 이 도시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헛되이 발걸음을 옮겨봤자 의미 없는 일이다. 결국 이곳에서 너를 떨쳐내는 것을 포기한다. 너의 계절에, 널 닮은 도시에서 너에게서 벗어나려는 나 또한 어리석다. 다시금 허기가 몰려온다. 식료품점에서 사탕 한 통을 사들고 택시를 잡아탄다. 기사가 목적지를 묻는다. 나는 네가 없을 곳을 바란다. 나와 너 사이에 놓인 시간은 너무 많은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오로지 새로운 것들만이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다.

 

너는 나에게 언제나 영리한 사냥감이었다. 나는 너를 온전히 안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 오래전에 잠시 알았었다. 그래도 그것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고, 그럼에도 승리를 목전에 둘 때마다 반드시 둘 중 하나는 발을 빼곤 했었다. 우리가 영혼을 공유해오던 시간 동안, 너와 나는 최후의 미지라 생각 되는 곳은 상자 속 마지막 사탕처럼 남겨두었다. 대신 그때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너는 아주 오래전에 그 피 웅덩이 속에서 죽었다. 나는 어린 너를 동정하지 않았고, 너는 운명대로 죽었다. 나는 사람답게 늙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였다. 백골이 된 너와 주름진 나의 손가락이 맞닿을 일은 없다.

나의 무덤 속에서, 너는 너무도 많이 변해있어서 우리는 기억으로 서로를 더듬어야만 했다. 그때 너는 자신이 늙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기력도 의욕도 사그라져 있었다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됐다며, 그렇게 말하곤 너는 웃고 있었다. 시간이 너의 복수를 대신 해주었고, 나는 너에게 복수자의 마지막 권리를 양도했었다. 작은 고갯짓만으로도 너의 복수는 완성될 터였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거부했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말했다. 너의 일족을 도륙하고 네 눈앞에서 가족을 참살했던 것도, 네가 영원히 어미가 되지 못할 것도. 너는 이제 원망스럽지 않다고, 후회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실로 모든 말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때 너는 정말로 늙어 있었다.

너는 나에게 후회한 적이 있냐고 물어왔었다. 너는 그 질문을 웃으며, 가장 은밀한 순간에 물어보았다. 그 요람 속에서 세상은 오로지 너와 나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채워지고 물들어갔다. 그리하여 삶이 있었다. 나는 네 안에서 그것을 알았다. 그 순간에도 네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오래 전 내가 들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너의 질문이 있기 전부터 되뇌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모든 말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문뜩 통 속에 사탕이 잡히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에 도시 냄새는 나지 않는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반파된 건물도 보인다. 입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사유지, 출입금지] 기사에게 물어보니 이 건물은 3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작은 마을의 예배당쯤이었다가 전쟁 당시 일대가 초토화 될 때 부서졌다. 사람들이 없어지니 예산과 신도 수 문제로 방치되다가 결국 철거가 결정되었다. 흔한 이야기다. 종교는 사람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오며가며 이곳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입구에 내려 출입금지 선을 넘는다. 잡초가 우거진 뜰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는 늦가을 들녘처럼 정갈하다. 이미 돈 될 만 것들은 전부 처분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다소 무더워진 날씨에도 그늘진 곳은 서늘한 기운이 인다. 부서진 창틀에 흔한 종소리조차 없이 바람만 울린다. 예배당 한 가운데에는 무너진 천장에서 초여름의 오후가 구원처럼 내려오고 있다. 마치 설 자리를 마련해 주듯이. 노골적일 정도의 강요다. 거룩하신 주여. 전능하신 주여. 그러나 내게 그것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든 적은 없다. 거룩한 옛것들은 모두가 정의롭기에 공멸했고, 역설적이게도 정의가 사라지자 한동안 세상을 위협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것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이루었고, 기록으로 사실을 만들었다. 그래서 옛 사가의 기록들 중 일부는 내가 경험한 것이었지만, 네가 없던 나에게 기억나는 것들은 전부 타인의 기록들을 보고 떠오르는 것들뿐이다. 나의 기억은 다른 무언가를 통해 확인되고 고정된다. 그것이 나의 기억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제외한 기억을 신뢰하지 않는다. 너와 나의 이야기만이 오로지 우리의 것이다. 오로지 우리만의......

배를 찌르는 허기와 함께 잊었던 사실이 밀려온다. 애초에 나는 나를 구성하는 너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없는 신이 구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너와 나는 구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구원은 삶을 살아가는 것들에게만 통하는 말이다. 구원을 이야기하는 종교에서는 창조주가 항상 자신들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인간이 사랑받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인간에게 보장된 미래는 오로지 그들이 죽는 다는 것뿐이다. 비가역의 무기한 상실만이 확정된 미래를 위안 삼을 담대한 인간은 드물다. 따라서 대다수에게 있어 삶은 언제나 공포에 쫓기는 일이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우리에겐 그런 공포가 없다. 그저 대본 없는 즉흥극처럼 삶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연극은 관객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유일한 관객이며, 네가 없는 내게 굳이 삶을 연기할 이유는 없다. 관객이 없다면 배우는 무대 뒤로 돌아가야 한다.

문뜩 주위를 둘러보니 실내에서 빛이 조금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조금 더 기울어진 햇빛이 창밖을 붉게 만들어 놓았다.

뱀의 초대에 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