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나 소방공무원 관련해서, 체력 기준을 성별에 따라 별도로 적용하는 게 최근 이슈가 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를 둘러볼 일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있어서 정리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1 대상 결정례 

 

 

경찰 선발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는 3개 정도 확인됩니다.

04진기213, 경찰채용시험제도 개선
13진정0701900 등 병합, 경찰대 신입생 모집 시 성차별
13진정0093000, 경찰간부후보생 모집 시 성별 구분모집 및 여성지원 제한 

 


소방관 선발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는 다음 1개의 결정례입니다.

05진차430, 성별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


 

 

/2 경찰공무원 관련 결정례 검토 



일단 <04진기213>은 경찰 채용 과정에서 ① 남녀를 구분해서 모집하는 구분모집을 폐지하고 ② 응시자격 중 신체조건으로 여성 신장 157cm 이상을 요구하는 것을 완화해야 하고 ③ 영어 시험 제도를 개선하고 ④ 무도자격증을 필수자격요건으로 도입하며 ⑤ 필기시험 문항 수를 늘리고 ⑥ 경찰관련학과 출신자에 대한 특별채용기회를 확대하라는 주장에 대한 결정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아마 경찰관련학과 출신에 무도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신장 157cm 미만의 여성이 낸 진정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 중 ①은 차별에 해당한다고 보아 시정 권고조치가 들어갔고, ②는 이미 다른 진정에 의해 시정 권고조치가 된 사안이라 각하, 나머지는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없어서 각하되었습니다.


이 결정문 6페이지에는 인정사실로서 외국 사례를 들고 있는데, ▲ 일본은 남녀를 구분모집하고 있으면 여경 비율이 4% ▲ 미국은 구분모집 없고 체력검사를 남녀 동일한 기준으로 잡고 있으며, 여경 비율이 14.6% ▲ 프랑스 역시 구분모집 없이 직능별, 직급별로 자격요건을 달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근부서에 남성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고 여경비율은 20.2%라는 사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워싱턴은 100파운드(약 50kg)짜리 인형을 들쳐엎고 1.5m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는 요건 등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네요. 당연히 남녀 모두에게 동일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진정을 당한 경찰청장은 ▲ 구분모집은 폐지하되 신체·체력기준은 다르게 적용할 경우 여성 합격 비율이 과도하고 높아질 수 있다는 점 ▲ 여성 경찰관의 내근직 근무 선호로 인해서 남성 경찰관들에게 인사이동 시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점 ▲ 동일한 체력 기준을 적용할 경우 오히려 지금보다 여경 비율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 경찰공무원의 모든 직무가 범죄자 제압능력 등 신체적·체력적 우위를 요구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별이 직무수행 가능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 어렵고 ▲ 외근 부서가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보기 어려우며 ▲ 특정 업무 중 그런 강인한 체력이 필요할 경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데, 성별을 기준으로 하는 건 부당하고 ▲ 경찰관들이 정기적인 체력측정을 받는 등 제도적으로 체력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경찰청장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2005. 12. 5.) 6개월 뒤인 2006. 5. 15. 이러한 시정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고, 현재는 2022년까지 여경 비율을 15%까지 높인다고 밝힌 상황으로 보입니다. 경찰 간부후보 선발 시 남녀 구분모집은 2019년에 폐지한다고 하는 기사가 확인되네요. 2004년 당시에 여경 비율은 4% 수준이었고, 2013년 3월 기준 7.6%로 증가하였으며 2014년까지 10%로 올리는 게 목표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간부후보생 중 10%, 신임순경 중 2~30%를 여성으로 배정해 선발하는 중이었다는 내용이 다른 결정례에 등장합니다.



이 결정을 필두로 해서 지난 2013~2014년에는 경찰대 신입생과, 경찰간부후보생 모집 시 여성 선발 비율을 확대할 것을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가 나옵니다.



<13진정0093000> 사례에서 2013년 경찰간부후보생을 모집할 때 경찰청장은 일반분야는 남성 35명, 여성 5명을 선발하고, 세무회계, 전산정보통신 등 특수분야는 남성만 10명 선발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에 대해 차별이라고 진정이 들어갔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 채용율 확대와 특수분야에서 여성 채용 제한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결정례를 내놓았습니다. 보직 순환이 되기 때문에 일반직에만 지원가능하게 한 게 딱히 문제되지 않는다는 경찰청장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특수분야 합격자 50명 중 30명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고, 분야별 평균 재직기간은 3.22년으로 조사된 것이 확인됩니다.

재밌는 건 이 결정례는 '구분모집 폐지'를 권고했던 2005년 결정례보다 다소 후퇴해서 '여성 채용 비율 확대'를 권고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서 국가인권위원회는 ▲ 장기적으로는 성별 구분 모집 폐지가 합당하지만 ▲ 당장 구분모집을 폐지하면 여성 합격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수사나 경비 같은 업무에서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경찰 공무원 모집 시 성별 구분을 하지 않으며, 미국과 영국은 체력 측정기준이 남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체력 기준에 대한 별도의 코멘트는 이 결정례에서도 없었습니다. 다만 '수사, 경비 등 높은 수준의 체력이 요구되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업무에서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라는 문장은, 다르게 해석하면 '저런 일은 남성 경찰관들이 해야 하다보니 여성 경찰 비율이 올라가면 사람이 부족할 수 있다' 라고 읽을 수 있겠죠. 현재 기준에 따라 선발된 여성 경찰관들이 경찰 업무를 완전히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비율 상향 조정만을 요구한 상황으로 읽힙니다.



경찰대학 신입생 성별 구분모집 사례(<13진정0701900> 등 병합)에 대해서도  '수사, 경비 등 높은 수준의 체력이 요구되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업무에서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문장은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순경 공채에서는 20%, 경찰대학은 12%, 경찰간부후보상은 10% 정도의 여성 채용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성 경찰을 하위직에만 묶어놓는 현상을 만들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경찰 선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미권에서 성별구분 모집을 하지 않는 경우, 아예 직무별로 기준을 다르게 설정해서 선발하는 등 남녀 간 체력 요건 기준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건 조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음.
2. 수사, 경비 같은 고위험 업무는 남성 경찰관들이 맡아서 하기 때문에 여경 비율이 높아지면 공백 발생할 수 있음.
3. 하지만 이런 상황을 남녀 간 체력 요건 동일 기준 적용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도 코멘트할 생각 없음
4. 하위직 말고 상위직에서 특히 여성 비율 더 높일 필요가 있음
5. 2005년엔 구분모집 완전 폐지를 권고했었는데, 2013년 이후로는 걍 비율 상향 조정 정도로 권고함

 

 

 

/3 소방공무원 관련 결정례 검토 



이러한 태도는 2007년 있었던 소방공무원 사례(<05진차430>)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반복됩니다.

이 결정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 소방관들이 현장직 등의 외근업무와 행정직 등의 내근업무를 순환 보직으로 소화하고 있고 ▲ 2005년 신규채용 소방공무원 중 여성이 6% 선이며, 최근 3년 간은 9.5% 정도로 확인되고 ▲ 체력검사의 '검사종목'은 남녀 동일하지만 기준은 서로 다르고,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기준인지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는 점을 우선 사실로서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성이 많다는 현상만을 근거로 소방공무원 업무가 반드시 남성들만에 의해 행하여져야 하는 업무로 볼 수 없고', 성별을 기준으로 구분하여 선발하는 것이 차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2005년 경찰공무원 사례와 거의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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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사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체력평가 기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합니다. ▲ 현재 시험 제도가 여성에게 낮은 체력평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 일부 여성들이 이러한 혜택을 통해 임용된 이후 직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 조직내부에서 도태되는 여성들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남녀 소방관 양측과 소방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도 환영할 수 없는 일이고 ▲ 소방공무원의 직무 자격기준과 체력 조건은 국민 안전과 생명 보호, 소방공무원 본인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적정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이러한 체력 요건의 별도 적용이 '성별 구분모집'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이를 폐지하는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적정한 체력 요건을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4 나가며

개인적으로는 경찰 채용 관련 결정례들보다 소방공무원 관련 결정례가 훨씬 합리적을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2019년부터는 경찰간부 후보생 모집 시 남녀구분모집을 폐지한다는 기사들이 눈에 띄더군요. 모집 요강을 설계할 때 체력기준과 같은 부분에서 합리적인 결정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