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전문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인민"(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통치하지는 않는다. 법문서인 헌법은 미국인들의 머리 위에 신처럼 일렁일 뿐이다. 대부분의 민주정은 이런 식이다. (실제로는) 법이 지배하는 것이지 인민이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저번 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통치자와 통치받는 쪽 모두 인민(이라는 개념이) 실재할 뿐만 아니라 그 인민, 혹은 그 모든 인민의 신비한 의지가 직접 지배한다고 믿는다. 

한국의 공격적인 정치의 배경에는 이러한 관념이 깔려있으며, 이는 왜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직접민주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국가인지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인민의 자발적이고도 집단적인 판단을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인민이 통치한다는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보다 법제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사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지난 몇 주 동안 수십만의 인파가 청와대 인근의 도심을 가득 메운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에게는 현재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지난 12월 9일, 국회가 의결한 박근혜 탄핵에는 불법행위에 대한 하나의 (법제도적) 내러티브가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그에 따르면 (박근혜 탄핵은) 삼성 등 재벌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기밀문서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고쳐쓰는 등 '베프'를 기용한 것에 대한 검사들의 고발로부터 촉발된 듯 보인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선 된 한국의 여섯번째 대통령의 몰락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었다. 대중이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여자에 의해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다는 TV 보도에 분노한 것이다. 그 몇 주 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의결되었다. 만약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처럼 법을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이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2년 걸린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대통령은 2018 년 2월에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인민의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에서는 인민의 분노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확립된 절차와 법규를 돌파해버리는 야수로 일그러지게(변신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이라고 부른다. 이는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뒤에 있는 현상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집단적 감정" 혹은 "폭도의 열정"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있는데,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민심'이라는 것은 그런 부정적인 것과는 다른 의미를 안고 있다.  

그것은 그 집단의 혼이자, 존엄한 것으로 간주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민심은 법에 우선한다"라는 말까지 있다. (역주: 아무래도 '민심은 천심이다'를 잘못 인용한게 아닌가 싶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인민을 가장 앞에 놓는다. 예를 들어, (한국) 대통령들에 있어서 불문율이 있다면, (대통령이라는 것은) 인민의 선택을 받아 공공행사를 주관하고, 외교사절들과 노닥가리며, 대체로 '출세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통령은) '민심'을 대변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대통령에 따르면, "민중이 곧 신이다" (역주: 정확한 인용구 출처 아는 분 있으면 지적 바람) -- 그리고 모든 한국의 대통령은 그 신을 섬겨야 한다. 

민심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은 막강한 권력을 지닌 한국의 대통령직이 수행해야 하는 기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비교하자면, 이론적으로는 내각을 주관하는 역할을 하는 총리는 (사실상) 상징적 직위에 불가하다. 아무 한국인이나 붙잡고 물어보라. 절반 넘게 '모른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한국의 국회는 정부의 행동을 감시하고 법률을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한국의 권력구조에서는 미래의 대통령감이 두각을 드러내는 일종의 포럼으로 인식될 뿐이다.  

통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이며, 인민이 그 자리에 앉혀준 것이다. 지금 야수가 분노하며 깨어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단'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개인적 친분의 최순실을 제단에 높이고 인민이 아니라 최순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박근혜는 '첫 계명'을 어겼다: "너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지어다." 

이러한 '신학'은 매우 강력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최순실의 영향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외신기자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던 몇일 동안 -- TV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을게 분명한 -- 한국인 지인, 혹은 배우자를 두고 있던 외국인들은 '박근혜는 끝났구나'라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야수가 통치를 시작할 때, 권력자들은 그 뒤를 따른다. 국회든, 검찰이든, 세무조사든 모든 절차는 거리시위, 온라인 평, 언론보도 등을 통해 드러나는 인민의 요구에 순응한다. 

2007년, 미국에 거주하던 한국출신 학생 조승희가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쏴죽이고 17명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분노할 것이며, G. W. 부시 정권은 (한국에 대한) 무비자입국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의회는 갓 서명 된 FTA를 취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한국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했더라면 한국인들은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끔찍한 사고로 2명의 여중생이 미국 군용차량에 깔려 죽었을 때 그 다음 날  수 만명이 거리로 뛰쳐 나와 그 운전자를 살인죄로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군중은 그것을 고의젹인 살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이 발병한지 몇년 후 한국 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을 때 비슷한 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수 천명의 학생들조차 이 시위에 가담했다. 미국에서는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여 학교 급식용으로 쓰게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를 폐쇄할 정도로 극단적 행위를 강요받기에는 한국에 있어서 미국은 너무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리고, 민심이 그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2002년에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당시 미국의 신문에서는 한국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한국으로부터 철수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반미시위가 촉발되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이 반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문제였던 것 같다. 한국의 시위대는 미국이 떠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 미군이 한국인들을 존중해줄 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위로 미군기지가 폐쇄되지는 않았는데, 한국인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위를 통해 미군은 범죄자들을 군사재판을 통해 내부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한국에 순순히 인도하는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또, 다수의 상호교류 프로그램을 제정하도록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상당한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재판에 어마어마한 대중적 압력이 내리누른다.  박근혜가 무엇을 했든, 혹은 하지 않았든, 결국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대중적 압력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기소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법률은 해석에 유연한 편이다. 만약 직접 기소가 불가능하다면 다른 수단을 쓸 여지도 있다 -- 예를들어, 검찰에 협력하는 대통령 주변의 보좌관들에게 선처를 약속한다든가. 

그 것 조차 불가능하다면,  검찰은 과정을 질질 끌어가며 최후의 항소가 끝날 무렵 무죄판결이나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어도 별로 큰 분노가 일지 않을 정도로 민심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것이다. 한국에서는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놈 없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최초 수사를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든 없든, (필요하다면) 수사 과정에서 기소를 할 만한 무엇인가를 밝혀낼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박근혜가 잘못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탄핵을 받기는 했어도 현재 박근혜에 대한 증거는 불투명하며,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녀의 유죄를 확실시 하고 있다. 

'민심'이라는 야수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10월 말에 폭로가 이루어졌을 때, 신뢰를 깨뜨린 대통령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생각하게 된 이미지는 형제로부터 멀어진 나이 든 여성이 친구로부터 조종당하는 모습이었다. 대중은 분노하였고 제대로 된 통치자가 설 수 있도록 대통령직을 하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다. 알려진 증거 -- 대체로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이지만 일부는 언론에서 폭로한 -- 에 의해 박근혜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가 재빨리 변경되었던 것이다. 

이제 쟁점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권력핵심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최순실에게 지시를 했는가의 여부이다. 이는 한국 대통령들과 연관된 보다 익숙한 양상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부패행각이다. 여섯 명의 대통령 중 두 명이 부패 및 여타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고,한 명은 자살함으로써 수사를 종료시켰으며, 둘은 가솔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박근혜와의 차이점이라면 이들은 현직에 있을 때 소문이 무성했음에도 일단 퇴임을 한 후에야 전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불이 붙은 민심은 그러한 세부사항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폭로가 되어버린 이상 권력은 자기 일을 맡아서 할 뿐이다 -- 대통령의 죄를 밝히고, 제거하는 것이다. 

                        누구도 야수를 거역할 수 없다.  

 

 

 

혹시 원본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