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가 파병을 나간 작은나라 B국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구적으로 세계의 밑바닥이나 모퉁이라고 할만한 자그만 B국은 자국과 이래저래 별차이도 없는 작은 옆나라 A국과 종교와 민족, 영토 등등이 복잡하게 얽힌, 하지만 사소하고 지리한 작은 전쟁을 두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이어오고 있었고 나는 국제기구의 평화유지군으로 B국에 파병을 나가 두 나라 사이의 전쟁범죄를 감시하는 부대에 속해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부대에서 했던 일은 두나라의 분쟁과는 전혀 상관 없었는데 정치나 전략, 이권다툼과는 거리가 먼 어느 외진 지역에서 사막과의 경계선상에 있는 작고 초라한 초소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그곳에서 대량 살상무기, 생화학무기, 소년병, 인권유린 같은 것을 감시한다는 것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높으신 분들의 선긋기놀이의 실수로 그어진 어느 선의 한 점에 내가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가 배치된 B국의 612번 초소, B612초소는 주민의 대부분이 큰도시로 떠나고 거의 폐허가 된 작은 마을을 한참 지나, 길도 없는 황무지를 또 한참을 지나, 마른 덤불마저 보이지 않게되는 막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덜렁 지어진 작은 초소였습니다. 마을까지 간신히 닿았던 전기선도 이곳까지는 들어오지 않아 일주일에 한번 지나가는 보급차량에 기름을 받아 가끔씩 발전기를 돌려 축전지에 충전을 해야지 간신히 작은 등과 몇가지 자잘한 전기기구를 조심스레 사용할 수 있는곳. 마찮가지로 물도 보급차량이 실어다주는 몇통의 물이 전부. 음식도 차량편에 배달되는 장기보존용의 퍽퍽한 음식들이 전부. 그런곳에서 나는 대략 일년은 안되고 반년은 훌쩍 넘긴 정도를 홀로 지냈습니다. 본래는 일개월마다 교대하기로 되어있었던 것이지만 이것도 어느 높은 분이 달력을 넘기는 것을 잊은 탓인지 그정도 걸렸습니다.

B612초소 그곳에선 모래와 먼지가 뒤섞인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솔솔 불어오곤 했고, 눈에 온통 보이는 누런 풍경 속에선 이따금 지나가는 새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가끔, 동틀녘이나 해질녘에 몇마리 빨갛거나 노랗거나 파란 색의, 누가봐도 독사인 것 같은 뱀들이나 독침이 달린 꼬리를 잔뜩 치든 전갈이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지만 외국의 병사가 신기한 것인지 이따금 폐허마냥 텅 빈 마을의 주민들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대개는 멀리 양 몇마리를 끌고 풀을 멕이러 나깄다 오는 양치기이거나 어디에 있는지 모를 다른 폐허 마을로 떠도는 행상이었지만 더러는 철없는 마을아이들도 오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멀찍이서 이국의 병사인 나를 훔쳐보다 꺅꺅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곤 했지만 개중에는 가까이 와서 빤히 보다가 말을 거는 아이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푸대자루 마냥 통으로 된 낡은 천옷을 입고 있었는데 움직이거나 걸을 때면 앙상하고 길쭉한 팔다리가 천의 밖으로 삐져나와 휘적휘적 흔들리곤 했습니다. 까만 얼굴에는 커다란 까만눈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 작고 몽툭한 코가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로 자글자글한 까만 곱슬머리를 정수리 위에서 굵은 끈으로 묶어서 머리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아재 총 있어요?

소년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초승달처럼 드러내고 웃으며 갸름한 까만 팔을 뻗으며 물었습니다.

있지. 군인이니까.

줄 수 있어요? 한번만 쏴볼게요.

나는 절래절래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소년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어깨를 으쓱했는데 통으로 된 낡은 옷이 어깨를 따라 올라가 앙상한 까만 허벅지가 드러났다가 다시 낡은 천 아래로 숨었습니다.

됐어요. 뭐 어차피 몇년 지나면 쏘게될 텐데. 그럼 불은 있죠? 저번에 아재 담배 피우는 거 봤어요.

내가 일회용 라이터를 내밀자 소년은 앙상한 팔 끝에 붙은 작은 손을 뻗어서는 라이터의 끝을 겨우 잡아 건네 받았다. 그리고는 뒤집어쓴 옷안에서 팔을 부스럭거리더니 작은 곰방대를 꺼내고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이내 능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다져진 마른 풀을 한움큼 집어내 곰방대에 재워넣더니 라이타로 불을 붙이고는 후욱 한모금 파란 연기를 천천히 뱉았다.

아재도 한 모금할래요? 

힘 빠진 손으로 라이타를 돌려주며 소년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막의 먼 곳을 보고 있는 두눈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꼬마야, 그건 마약이잖아?

마법의 풀이죠. 아재, 이건 약초에요.

꼬마야, 총으로 죽은 사람만큼이난 마약으로 죽은 사람도 많다는 걸 모르니?

아재는 사람을 쏴본 적 있어요? 이런 곳에 있으면서?

소년의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 총은 보관함에 처박혀 손질을 안한지도 한참이었다. 이곳의 모래먼지 바람이 스며들어 어떤 꼴이 되어있을지 짐작이 갔다.

나두 마법의 풀로 죽은 마을 사람을 본적이 없어요. 가끔 마을 영감들이나 할망들이 시들어버리면 다른 아이들하고 같이 묻는 걸 도와준 적은 있어요. 꽃은 시들어도 다시 피는 데 왜 영감들 할망들은 다시 피지 않을까요?

나는 대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저 소년이 피워올리는 파란 연기를 보다가 나도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마법의 풀을 함께 태우진 못하더라도 내 나름대로 무언가 태워보고 싶어졌던 탓이다. 소년도 굳이 물어보지 않고 꿈꾸는 시선으로 파란 연기가 가늘어질 때까지 작은 곰방대를 빨다가는 뒤집어서 툭툭 불똥을 털어내 뒤집어쓴 옷 안으로 감추더니 휘적휘적 마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막 저편에서 타오르듯 밀려오는 뻘건 노을이 그 뒷모습을 물들였다.

그리고 한 일주일 정도 지났다. 보급차량이 또 한번 지나갔으니 그랬을 터였다. 보급차량이 날자를 속이고 열흘이나 보름에 한번씩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그리 틀린 날자에 지나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것이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또 저마다의 일정과 계획 규칙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법이니까. 마치 내가 이 작은 초소B612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찮가지인 것처럼 보급차량의 운전병도  B001에서 B999의 초소를 떠도는 길 위에 갇혀있을 터였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장소에 길에 갇혀 있고 세상에 갇혀있는 것이었다.

꼬마야 어딜 가니?

마침 모래먼지 섞인 바람도 불지 않던 그날 아침, 나는 초소 밖 처마 아래에 작은 의자에 늘어지 듯 앉아서 시간을 죽이다가 소년을 발견하고 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자루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옷을 입고 낡은 샌들을 털럭이며 어딘가로 걸어가던 참이었는데 한손에는 길다란 장대를 들고 있었다.

사막늑대를 잡으려고요. 아재 여기 오래 있었어요? 사막늑대 지나가는 거 못봤어요?

여기 늑대도 사니? 뱀이나 전갈은 가끔 봤지만 늑대는 본 적 없는 걸.

분명 이쪽으로 도망갔는데… 아마 아재는 익숙하지 않아서 보고도 놓친 걸지 몰라요. 마을에 들어와서 새끼양을 몇 마리나 죽였어요. 영감들은 도망간 사막늑대를 사람이 쫓아갈 수 없다고 하고 양치기들은 덫을 놓겠다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쫓아가볼 생각이에요. 너무 화가 나거든요.

소년은 씩씩대며 손에든 장대를 번쩍 치겨들었다. 그러고보니 장대의 끝이 뾰족한 것이 창처럼도 보였다.앙상한 까만 팔과 긴 나무 창이 하나의 긴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어른들도 안 된다는 걸. 그나저나 사막늑대는 어떻게 생겼니?

아재는 어른인데 그것두 몰라요? 사막늑대는 사막처럼 생겼으니까 사막늑대인 거죠! 아무튼 나는 사막늑대를 찾아서 혼내주러 갈거에요!

자글자글한 곱슬머리를 정수리에서 묶어 넘긴 머리가 푸댓자루 같은 옷 위에서 흔들리며 작아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막늑대를 생각했다. 사막처럼 생겼다는 사막늑대는 대체 어떤 모습인 걸까. 모래먼지가 앉은 것처럼 누런 털을 지닌 커다란 늑대를 떠올렸다. 구름 하나 없이 아찔하고 아득한 사막 위의 파란 하늘 같은 눈을 가진 커다란 황색 늑대였다. 사막늑대는 소년의 작은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진 사막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파아란 눈을 크게 뛰고 내쪽으로 겅중겅중 뛰어왔다. 달려들었다. 사막늑대는 점점 커지며 가까워졌다. 작은 강아지에서 커다란 개로 커지더니 이내 말로 곰으로 하마나 코끼리로 커지더니 작은 집만큼 언덕 만큼 커졌다. 숨이 멎을 것 같은 누런 빛이 시야를 채우고 시릴 것 같은 파란 눈이 시야를 채웠다. 사막늑대는 사막처럼 커져서 사막 자체가 되어 세상을 덮었다.

아재? 하루 종일 이러고 있었던 거에요?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소년이 바닥에 창자루를 늘어뜨리고 풀죽은 얼굴로 서있었다. 까만 얼굴이 모래 먼지를 뒤집어 써서 뽀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창자루를 질질 끌고온 자국이 뱀이 기어간 것처럼 소년의 뒤로 길게 이어져있었다.

사막늑대는 잡았니?

보고 알면서 그러는 거죠? 아재도 나빠요. 저만치 본 거 같아서 쫓아가보면 없어지고,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지 뭐에요. 그래서 더 약올라서 쫓다가보니 제자리만 맴돌았더라고요. 내가 뭐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온종일 뛰어다녔는지 바보가 된 거 같아요.

꼬마야,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길이라도 잃었으면 큰 일 났을텐데.

다행은요 무슨.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 겠어요.

마을 방향으로 소년은 멀어졌고 그 뒤를 따르듯이 사막 저편에서부터 빛이 죽고 어둠이 태어나려는 무색의 공기가 퍼져왔다. 나는 오래 앉아있어서 삐그덕 거리는 몸을 일으켜 어느새 몸과 머리에 앉은 모래먼지들을 떨어냈다. 어둠이 먼저 스며든 초소에 들어가 축전지에 연결된 등을 켜려는데 멀리서 거친 바람소리가 들렸다. 늑대의 울음소리인 것도 같았다.

그리고 며칠이지났다. 벌써 혹은 이제야 일주일이 된 것인지 모래먼지를 날리며 털털털 보급차량이 왔다.

매주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텐데 기름을 좀 많이 채워두고 보름이나 한달마다 오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발전기의 기름통을 간당히 채우고는 물 몇통과 보존식 몇 상자를 내려주는 운전병에게 물었다. 운전병은 화물칸의 짐받이를 쾅 닫고 짐에 포장을 내리다가 그말을 듣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게 그렇지도 않지 말입니다. 여기 덜 온다고 쉴 수 있겠습니까? 괜히 엄한데 끌려가서 더 고생하지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초소야 괜찮지만 큰 마을이나 도시하고 가까운 초소중에 기름을 팔아먹는 녀석들도 있지 말입니다. 그러니 위에서 한번에 많이 보급하지 못하게 하는 거고 말입니다.

헐, 초소에서 빼돌리면 얼마나 빼돌린다고… 어차피 그 위에서 다 떼 가고 남은 찌꺼기일텐데.

뭐 세상이 다 그런거지 말입니다. 그 뭐냐 당랑거철인가? 그런 말도 있지 말입니다? 사마귀가 벌레를 노리고 새가 사마귀를 노리고 사냥꾼이 새를 노리고 강도가 사냥꾼을 노리고 군인이 강도를 노리고 권력자가 군인을 노리고 권력자의 첩이 권력자를 노리고 기둥서방이 첩을 노리고 뭐 그렇게 돌고돌아 다 서로 뒤통수 때린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 들어보긴 한 것 같군요. 그럼 다음 주에도 부탁드립니다.

짐칸을 정리하고 다시 운전석에 오르는 운전병에게 나는 엉성한 경례를 던졌고 운전병은 차 안에서 손을 들어보이고는 이내 차를 몰아 마을방향으로 가버렸다. 나는 메마른 흙바닥에 놓인 식품상자와 물통을 낑낑대며 초소 안으로 옮겼다. 철제 캐비닛과 나무 선반, 간신히 축전지로 돌아가는 작은 간이냉장고에 이것저것 나누어 담고 넣고 쌓고 나니 묵은 쓰레기와 새로운 쓰레기가 한짐이나 나왔다. 그것들을 긁어모아서 초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돌을 적당히 둘러 만든 소각장에 가져가서 불을 붙였다. 쓰레기들은 고약한 냄새를 내며 흐리고 까만 연기를 피워올렸다. 다 타고 나면 남은 찌거기는 또 땅을 파고 묻어야할 터였다.

아재! 아재아재! 초소에 없다 했더니 여기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거에요? 할망이 그러는데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싼 대요!

어디서 불쑥 나타난 것인지 소년이 푸댓자루 같은 옷을 펄럭이며 종종 달려와서는 작은 소각장 옆에 쪼그려 앉아 불길을 보며 물었다.

꼬마야 불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려무나. 그러다 옷이 다 타겠어. 그리고 내가 너같은 애두 아니구 불장난을 하겠니? 쓰레기를 태우고 있단다.

흥, 나두 알아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나빠요! 우리 마을엔 쓰레기가 거의 없지만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요.

결국에는 튀어버린 불똥에 푸댓자루 같은 옷 위로 까맣게 탄 점을 몇개 만들고서야 소년은 앉은채 깨끔발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래, 쓰레기를 버리면 나쁜 사람이지. 그런데 세상에는 사람을 버리는 사람도, 추억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단다. 더 나쁜 사람이지.

나는 쓰게 웃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열기로 달아오른 통통한 까만볼을 작은 손으로 문지르더니 까만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아재는 그런 사람을 아나요?

꼬마야,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단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서 멀리 여기까지 온 것도 그런 이유란다. 나도 누군가에게 버려진 채로 저 쓰레기처럼 타버릴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넌 모르겠지만.

딱히 소년이 이해하길 바라고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무언가 맘에 안들었는지 눈을 찌푸리고 얼굴을 꾸기더니 벌떡 일어났다.

모르긴 왜 몰라요? 마을의 영감들 할망들 중에 자식들이 버리고 간 사람들이 있는 걸요. 마을의 아이들 중에도 가족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이 있는 걸요. 일하러 간다고 큰 마을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도 있는 걸요. 형제들도 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혼자 남은 아니도 있는 걸요. 버려지는게 무언지 나두 잘 알아요.

소년은 버럭 소리지르더니 급하게 몸을 돌려 저만치 뛰어갔다. 그 눈이 젖어있는지는 미처 보질 못했다. 푸대자루 옷을 펄럭이며 앙상한 팔다리를 휘적휘적 뛰어가던 소년은 저만치에서 멈추더니 돌아섰다.

아재가 총을 빌려주지 않아도 되요. 나도 며칠 있으면 큰 마을에 있는 군인학교에 갈거에요. 거기서 군인이 되서 나쁜놈들하고 싸울 거에요.

소년은 크게 외치고는 팔을 허공에 휘휘 저어 보이고는 다시 마을로 달려갔다. 나는 소년이 말한 나쁜놈이 B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A국을 말하는 건지, 사람을 버리는 사람, 추억을 버리는 사람을 말하는 건지, 혹은 버려진 쓰레기를 말하는 건지 고민하다가 초소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이런 오지에서 벗어나면 좋은 일이겠지. 생각할 뿐이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보급차량이 한두번 왔다갔고 큰 모래폭풍이 한차례 지나가서 초소에서 모래먼지를 퍼내고 대청소를 해야했고 양치기들이 몇번 멀찍이 지나갔다. 하루는 그런 양치기들 중 하나가 조심스레 이쪽으로 오더니 겁없이 여기 오던 꼬맹이가 큰마을로 갔다고 전해주었다. 양치기는 군인인 나를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냥 알았다고만 대답했고 양치기는 후다닥 뛰어 도망쳤다.

사막은 셀 수 없는 모래알로 덮여있었고 모래알 마다 매마름이 덮여있었다. 저녁이 되면 온통 불타오르다가 이내 파란 어둠이 까만 어둠이 차례 대로 밀려들었다. 멀리서 늑대 우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가끔 들려오며 공기가 어수선해지는 순간을 제외하면 내내 조용했다.

나는 간만에 통신장치를 켜고 초소에서 초소로, 초소에서 부대로, 부대에서 부대로 이런저런 보고와 지시와 소식이 오고가는 것을 들었다. 크고 작은 전투가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었고 어떤 마을이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숫자가 죽었고 숫자가 부상을 당했다. 내가 갇혀있는 이곳 B612초소와는 아득하게 먼곳의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자글자글한 곱슬 머리를 정수리에서 굵은 끈으로 묶어 뒤로 넘기고 까만 피부에 통통한 볼과 커다란 눈, 푸대자루 옷에선 앙상한 팔다리가 비어져나와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긴 총을 들고 있었다. 소년은 신나게 웃으며 사막을 달리며 파란하늘에 총을 쏘았다. 요란한 총소리가 텅빈 사막에 울렸다. 나는 그런 소년을 말리려 한 것도 같고 웃으며 박수를 친 것도 같았다. 소년은 꺅꺅 웃다가 우뚝 멈추더니 발치를 내려다 봤다. 거기에는 사막의 빨간 뱀, 노란 뱀, 파란 뱀이 몰려들어 낡은 샌들 밖으로 드러난 발가락과 발꿈치를 깨물고 있었다. 소년의 까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더니 사막의 밤 같은 어둠이 깃들고 모래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천둥 같은 요란한 울음이 들리더니 사방에서 사막늑대들이 나타나 소년의 몸을 물어뜯었다. 피와 살이 튀고 뼈가 으스러지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막늑대들은 배를 채우고는 하늘을 보며 피에 젖은 주둥이로 길게 울더니 사막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나는 어디선가 나무상자를 구해 바닥에 흩어진 살점과 뼛조각, 피에 젖은 곱슬머리 터럭을 고이 담았다. 그리고 모래바닥을 파헤쳐 구덩이를 만들고 소년이었던 조각들이 담긴 상자를 놓았다. 그리고 그 위로 새빨간 수다쟁이 장미 한송이를 놓고 모래더미를 밀어 묻었다.

꼬마야,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지 않는 것, 거기에도 여기에도 없는 것은 그냥 없는 거란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이를 조심하렴. 없는 것을 위해 너를 바치라고 하는 이를 조심하렴.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보급차량은 복귀 통지서를 가지고 왔다. 본국으로의 복귀 통지였다. 또 한주가 지나 보급차량은 교대 인원을 태우고 왔고 나는 그간 갇혀있던 사막 언저리의 B612초소를 벗어나 세상으로 갇히기 위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