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반장의 두팔은 허공을 움켜쥐려는 듯 뻗친채 부르르 떨떠니 축 늘어져 멈췄다. 꼭 살충제를 맞은 날벌레가 몸을 뒤집고 떨어져 버둥대다 죽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고개를 떨궈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채,엉거주춤한 자세로 상체를 작업대 위에 얹고 있었고 용접로봇의 차갑고 묵직한 외팔이 그 상체를 또 단단히 누르고 있었다.

야! 비켜!

누군가 소리를 지르더니 보고있던 작업자를 밀어내고는 조작판넬을 두들겨 로봇의 팔을 들어올렸다. 위잉하는 모터소리가 나고 무기질의 외팔은 너무나 가볍고 자연스럽게 들어올려졌다.

누군가가 작업대에서 권반장을 끌어내려 눕혔다.

숨을 안쉬어!

옷을 풀어! 인공호흡! 인공호흡! 가슴을 눌러! 더 빨리! 더쎄게!

누군가 뺨을 두들겼는지 찰싹 거리는 소리가 나고 하얀 얼굴이 흔들렸다. 벌어진 입이 누군가의 머리에 가려졌다. 누군가가 가슴을 반복해서 힘껏누르면서 초록색 바닥에 누워있던 몸이 들썩였다.

안돼! 숨을 안쉬어! 일일구!

불렀어! 계속해!

안돼! 심장도 안뛰어!

젠장… 구경났어! 다들 자기 자리로 가!

작업자들은 미적미적 제자리를 찾아돌아갔다.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바닥에 누워있는 권반장을 보면서.

썅! 구급차는 왜 이렇게 안 와!

로봇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용접 불꽃이 돌아가는 소리, 생산을 마친 금속 제품이 케이스에 떨어지는 소리들이 평소처럼 요란한게 아니라 고요하게 들렸다. 한여름인데도 다들 피부에 오톨도톨 닭살이 돋았다.


2.

이제 시작인 거죠.

열흘 내 공장 문에 붙어있던 커다란 노란스티커 표지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서과장은 중얼거렸다.

그래도 한 고비 넘긴거 아냐? 어쨌거나 생산은 다시 돌아가잖아?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던 반백의 윤공장장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과장은 한차례 후욱 하고 짙은 담배연기를 뱉고 고개를 저었다.

생산을 다시 돌리는 건 돌리는 거고 어쨌거나 일은 아직 계속 진행중인 거죠. 경찰서하고 법원하고 노동부하고 보험사하고… 장차장님은 괜찮으세요?

서과장은 심드렁하게 내뱉다가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장차장에게 물었다. 곰같은 사내, 장차장은 온몸을 안으로 말아들이듯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넓은 얼굴도 안으로 말려들어갈 것처럼 구겨져있었다.

그때 일이 자꾸 생각나서. 심장이 벌렁벌렁해. 이젠 괜찮을줄 알았는데.

권반장은 깔끔하게 죽었잖아. 그게 벌써 몇년 전일인데 왜 자꾸 그걸 생각해.

윤공장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서과장은 그때는 다른 회사에 있었지만 입사하고 몇번인가 들었던 이야기였다. 깔려서 으스러져 말그대로 피떡이 되어 죽은 작업자가 죽은 사건이었다.

거의 십년 전이죠? 팔년 전인가?

서과장도 아나?

많이 들었으니까요.

그때 처음 발견한게 장차장이었거든. 신고하고 경찰하고 일일구에서 와서 치워갔지만 외국인애들하고 같이 핏자국 청소도 하고… 외국인 애들도 토하고 난리였지. 결국엔 다 그만뒀어.

윤공장장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장차장을 안쓰레 쳐다봤다. 서과장은 담배를 털어 끄고는 은색의 알루미늄 잿털이통에 던져넣었다. 장차장은 다시 몸안으로 머리를 말아넣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서과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서과장은 젊었을 때 외국의 현장에서 일하며 험한 경험을 많이 해봤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도 동남아에서 마약상 반군들이나 중동에서 이슬람무장단체들을 상대해본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조국에서 일하는 게 서과장에게는 더 어려운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부터 늘 위협당하고 쫓기는 느낌이었다.


3.

왜 그만두는 거에요?

서과장은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물어보려고 애썼다. 영어가 통하면 차라리 편할텐데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엘요르는 영어는 전혀 몰랐다.

무서워. 권반장 죽었다. 죽기싫다.

그건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거 잖아요. 안전장치 다 있어요. 안 죽어요.

서과장은 최대한 믿음을 주려고 애쓰며 말했다. 물론 대부분 죽지 않는다. 안전장치도 진짜로 잘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또 죽는 사람이 언젠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된다. 로보트 무서워 일 못 해. 우즈베키스탄 간다.

서과장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항상 좋은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고 자신은 악역전문이었다.

엘요르 근로계약서 사인했죠?

서과장은 복사해온 근로계약서를 엘요르 앞에 들이밀었다. 엘요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써 몇달 전에 새로 썼던 삼년차의 근로계약서를 다시 보았다.

여기! 그만두려면 한 달 전에 사직서를 내야한다고 되있죠. 엘요르 그만두려면 사직서 내고 한달 있어야 해요.

안된다. 더 일 못한다. 내일부터 안 나올 거다.

그러면 한달 동안 결근이에요. 퇴직금 줄어들어요.

안된다. 퇴직금 줘라. 노동부 간다.

퇴직금은 줄 거에요. 하지만 회사에선 다음 사람도 뽑고 해야 하잖아요.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않되죠. 그러니까 한달 지나야 하고 그전에 안나오는 건 결근이에요. 그만큼 퇴직금 줄어들거에요.

안된다. 퇴직금 줘라. 노동부 간다.

그러니까 그만두려면 한달 더 일하다 그만두세요. 회사도 사람 뽑으면 더 빨리 보내줄테니까.

안된다. 죽기 싫다. 내일부터 안 나올 거다.

서과장은 몇번이고 되풀이 되는 돌림노래에 질려서 고개를 흔들고 엘요르를 내보냈다.

다섯명째인가...그래도 베트남 애들은 간다는 소릴 안하네.

어디서 구한 것인지 꼬깃한 한글 사직서에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글자와 숫자들을 보며 서과장은 한숨을 쉬었다.


4.

얼마라고?

윤공장장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삼억정도 되겠죠. 정말 다 때리면…

서과장은 흡연구역을 덮고 있는 커다란 파라솔 너머로 뿌연 연기를 뱉으며 담배연기보다도 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구겼다. 덥고 습했다. 얄팍한 여름옷이 습기를 머금고 피부에 축축 들러붙었다.

나 짤리겠지?

윤공장장은 반백의 머리를 쥐어뜯듯이 벅벅 긁으며 물었다. 주름이 가득한 넓데데한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었고 베어나오는 땀방울을 머금고 번들거렸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3억도 최고가 그렇다는 거지 설마 진짜 그대로 물리겠어요? 고용노동부도 뻔히 우리 매출을 아는데… 많아도 1억이고 그 아래로 나오겠죠.

서과장은 은색의 기둥을 잘라 놓은 것 같은 스텐레스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고 말했다. 윤공장장이 주눅이 든 이유는 알았지만 정말로 그가 잘리지는 않을 거였다. 아직 책임질 일이 많으니까. 경찰에서 조사도 받아야하고 법원에도 출두하고 해야하는데 사업주가 그런 일을 스스로 할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대신해야하는데 그게 누구겠는가? 아마 이 일이 완전히 끝날때까진 공장장이 짤리지는 않을 거였다. 대신 그만큼 고생을 하고 괴롭힘당하고 결국 지쳐서 제발 보내달라고 할 지경까지 가겠지. 물론 서과장 자신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결국 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일 뿐이었다. 으깨지고 부숴지면 다른 톱니바퀴가 밀려들어서 떨어져서 그 자리를 메우는. 죽은 강반장은 생명으로 그 톱니바퀴를 다 한 거고.

툭… 툭… 투둑… 투두두두….

한 방울 비가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수방울 수십방울 수백수천방울의 빗줄기가 이어졌다. 파라솔 지붕이 요란하게 울렸고 공장의 포장마당을 두들기며 작은 물안개를 만들었다.

틱톡 틱톡…

서과장은 서양 사람들이 시계바늘 움직이는 소리 내는 것을 따라해보고는 재떨이에 담배를 찍어누르듯이 꺼버렸다. 바람에 밀린 빗방울이 뺨에 부딪혔다.. 달아오른 얼굴 위로 서늘한 빗방울이 간질간질 흘러내렸다.